신앙은 성령에 이끌리는 것
신앙은 성령에 이끌리는 것
  • 박영준 목사
  • 승인 2013.03.1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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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4~13)

자기 지혜를 따라서 산 고린도 교회 성도들
고린도전서 2장의 위 말씀에서 성령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시고, 성령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세계를 보이시며, 성령이 우리를 가르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를 읽어보면, 고린도 교회에는 분쟁과 악행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산 것이 아니라, 자기 지혜 곧 육신의 생각을 따라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탄에게 속아서 자신들의 지혜와 말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을 대신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1~2) 사도 바울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세워져 있었지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는 자신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베뢰아로 가고,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다시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아덴으로 갔습니다. 아덴(아테네)에는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 바울은 철학적인 이야기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구원받는 사람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좇아 복음을 전하면 핍박과 어려움도 있지만 성령이 역사하시는데, 바울이 구원받기 전에 배운 지식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했기에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지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한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후 바울은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했습니다. 그랬기에 자기 지혜를 의지해서 사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줄 수 있었습니다.

내 원함이나 생각을 버리고 성령의 음성을 따르자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성령이 빌립에게 광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전해 그곳에서 사람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힘있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빌립은 은혜로운 그 자리를 떠나기 싫었을 텐데, 자기 생각을 버리고 성령의 음성을 따랐습니다.
빌립이 광야로 가자 병거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사람이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성령이 다시 빌립더러 병거로 가까이 가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이 병거 가까이 가긴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병거에 탄 사람이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고 있어서 “읽는 것을 깨닫느뇨?”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며 빌립에게 병거에 올라와 앉으라고 청했습니다. 마침 그 사람은 이사야 53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부분을 읽고 있었고, 빌립이 바로 복음을 전해 그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사람 속에는 성령이 계십니다.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은 때부터 성령이 그 안에 들어가 거하십니다. 성령은 그 사람을 통해 나타나시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세계를 보이시며 가르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성령의 인도를 좇아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것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령의 인도가 우리가 원하는 것이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빌립처럼 내 원함이나 생각을 버리고 성령의 음성을 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원받은 후 여러분이 실수하거나 어려움을 조금 겪더라도 인간적인 수단이나 자신의 재치를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우시는 것을 기다려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속에 계신 성령이 여러분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갈 것입니다.
사실, 거듭난 사람은 구원받고 마음에 성령이 들어온 그날 자신의 지혜가 끝이 났습니다. 모든 성도는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에게 가르침을 받고, 성령에게 이끌려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구원받은 후로도 십자가에서 죽은 옛사람의 지혜를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신다
노아가 방주를 지었습니다. 방주를 짓는 목적은 생명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많은 복음의 일들을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맛봅니다. 교회 안에 많은 행사들이 있고, 그 일들에 동참하면서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은혜들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그 일들은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모든 일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방주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짓는 것이지 방주를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만큼 소중하고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나를 통해서 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보다 기쁜 일은 없습니다. 그 어떤 은혜도 생명을 살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위해 살면서 입은 모든 은혜를 내려놓고 다만 생명을 구원하는 데 쓰임 받기 위한 도구로 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 속에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만들어주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 동안 마음껏 복음을 외치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일에 쓰임 받다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열매를 맺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며
우리 선교회 안에 흐르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고, 성도 개개인 속에서 말씀하시고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 모두 우리 안에 성령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라고, 실제 삶 속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서 열매를 맺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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