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람이 된 여리고의 기생 라합처럼
이스라엘 사람이 된 여리고의 기생 라합처럼
  • 박옥수 (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4.04.0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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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얻자

 

이 삶을 끝내고 싶다!
여리고 성에 살던 기생 라합은 어쩌다가 기생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삶에 지쳐 있었다. 무엇보다 라합은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다. 어쩌다 집안에 일이 있어서 친정 집에 가면 오빠나 언니들이 “너, 우리 집에 안 오면 안 돼? 너, 그런 꼴로 살면서 집에는 왜 왔어? 제발 오지 마라! 난 네가 우리 동생이라는 게 너무 부끄러워!” 하고 말했다. 가족들은 늘 라합을 싫어하고 멸시했다. 동네 친구들도 길에서 라합을 보면 “어휴, 쟤 기생이래. 어쩌다 기생이 되었대? 학교에 다닐 때는 안 그랬는데, 사람의 앞날은 정말 몰라.” 하고 수군거렸다.
라합은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었고, 마음이 쉴 만한 곳도 없었다.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손님들뿐이었다. 라합은 늘 술에 취한 손님들을 만났다. 술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칠거나 규모 없이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라합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지만, 라합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육신의 욕구를 위해서였다. 그들은 라합의 몸을 요구하고 저질적으로 대했기 때문에 라합은 남자들이 신물이 날 정도로 싫었다. 하지만 기생이기에 남자들이 오면 싫어도 웃어 주어야 하고, 좋은 척해야 하고, 같이 잠을 자는 일들을 해야 했다. 라합은 그런 삶이 너무나도 싫었다.
종종 라합의 마음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나, 이 생활 정말 끝내고 싶다! 정말 죽고 싶다! 내가 어쩌다가 기생이 되어서 이런 짓을 하고 있고, 많은 사람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나도 좋은 남편 만나서 아기자기하게 지내며 서로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남편과 함께 앉아서 음식도 먹고 싶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 아이들도 낳아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나는 왜 이처럼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가? 정말 이 삶을 끝내고 싶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굉장히 고통스러웠지만 라합 자신이 선택한 삶이었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날이 갈수록 라합은 점점 더 지쳐 갔고,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꼈으며, 그 삶을 끝내고 싶었다.

그렇게 인생을 마치기에는 삶에 미련이 남았다
그때 사람들이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리고 성에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들어온대. 그들이 쳐들어오면 우린 다 망한대. 그들은 애굽 사람을 이기고 그 압제에서 벗어났고,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죽였잖아.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요단강의 물을 말려서 그 강을 건너왔대. 그들이 공격해 오면 우린 다 죽어.”
여리고 성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도 염려만 했지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냥 근심하고 두려워하고만 있었다.
라합은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차라리 전쟁이 일어나 다 죽었으면 좋겠다. 내 인생도 끝나면 좋겠다. 이런 삶 정말 그만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인생을 마치기에는 너무 아쉽고, 삶에 미련이 남았다. 평생 고통만 당하다가 그냥 가고 싶지 않고 행복이 뭔지 맛보고 싶었다.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도 해보고 싶고, 아들을 낳아서 젖도 먹여 보고 싶었다. 여자로서의 행복을 누려 보고 싶었다. 
 
마음을 여리고 사람에서 이스라엘 사람으로 바꾸자
어느 날, 누가 라합이 사는 집의 문을 두드렸다. 라합이 문을 열자 낯선 사람 둘이 안으로 들어오는데, 라합은 첫눈에 두 남자가 이스라엘의 정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라합은 마음을 바꾸었다.
‘그래, 내가 그냥 죽을 게 아니라 마음을 바꾸자. 여리고 사람이라서 죽는 것이지 이스라엘 백성이면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 내가 마음을 여리고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으로 바꾸자. 그러면 죽지 않고, 기생의 삶도 청산하고 밝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어.’
라합은 이 마음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정탐인 두 남자를 정중하게 모셔서 음식을 대접했다. 라합은 여리고 사람들에게 진절머리가 나고 그곳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인생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었기 때문에, 마음을 여리고 사람에서 이스라엘 사람으로 바꾸어 새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 시간이 가까웠을 때 갑자기 밖에서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열어! 문 열어! 우린 군인이다!”
라합은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리고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마음에서 여리고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이스라엘 사람이니까 당연히 이스라엘의 정탐들을 숨겨야 했다.
“나를 따라오세요. 빨리 여기로 올라오세요. 빨리 올라와요.”
라합은 정탐들을 지붕 위로 올라오게 한 후, 지붕에 벌여 놓았던 삼대 밑에 그들을 숨기고 표시가 나지 않게 삼대로 덮었다. 그러고는 여리고 군사들이 세차게 두드리고 있는 문으로 가서 태연하게 말했다.
“누구세요?”
“우린 군인이다!”
“오늘 영업 끝났는데요.”
“빨리 문 열지 못해?”
라합이 문을 열고 문 앞에 서 있는 군인들에게 말했다.
“이 밤에 웬일이세요?”
“여기에 수상한 남자 둘이 왔었지?”
“아, 예. 두 사람이 왔었어요.”
“그 사람들 어디에 있어? 그들은 이곳을 정탐하러 온 자들이다!”
“진작 오시지, 그 사람들 갔어요.”
“어디로 갔지?”
“어두워 성문 닫을 때쯤 되어 성밖으로 나갔어요. 그러니 빨리 뒤쫓아가 보세요. 그러면 잡을 수 있을 거예요.”
군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밖으로 달려나갔다.

“당신들과 나는 한편이니까요.”
라합은 지붕 위로 올라가서 두 정탐을 만나 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이곳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간담이 다 녹았어요. 당신들을 심히 두려워해요. 내가 당신들을 살려 주었으니 이제 당신들이 우리 가족을 살려 주세요. 당신들과 나는 한편이니까요.”
라합은 자신이 이전의 여리고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어서 이스라엘 사람이 된 것을 말했다. 두 정탐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기생 라합에게 감동했다.
‘기생이 어떻게 저렇게 지혜롭고, 어떻게 저렇게 결단성이 있으며 담대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기생 라합은 여리고에서 그곳 사람들과 사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수치스럽고 괴로워서 그 삶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라합의 삶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의 자손으로 태어나 마귀에게 속해서 죄를 짓고 사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그 삶에는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과 부끄러움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그 가운데에서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
라합은 여리고에서 도저히 행복할 수 없어서 죽고 싶었다. 그렇게 살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죽는 대신 여리고 백성으로 살았던 마음을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우리 신앙생활이 그와 같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밝고 깨끗하고 선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애써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은 악하고 더럽기 때문에, 아담으로부터 받은 이 마음으로는 절대로 선을 행할 수 없다. 그래서 그 마음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마음을 얻어야 한다.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 사람의 마음을 버리고 이스라엘 사람이 되어 이스라엘 편으로 살다가, 다른 여리고 사람들이 다 멸망을 당할 때 구원을 받았다. 라합은 마음을 바꾸어서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얼마나 선한 일을 하는지’를 보시지 않고 ‘누구의 마음으로 사는지’를 보신다.
우리가 가지고 살아왔던 마음에는 죄악이 들어 있다. 미움이 들어 있고, 시기와 질투가 들어 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마음을 다 꺾어버리고, 벗어서 내버리고 귀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전에 없던 기쁨과 평안을 삶에서 누리게 된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면 절망 속에서도 기쁨이 일어난다. 예수님의 마음 안에 소망과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서 아무리 어렵고 곤고한 속에서도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라는 말씀처럼, 신앙생활은 내 생각과 내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서 사는 것이다. 그것이 참된 신앙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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