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 이헌목(기쁜소식양천교회 목사)
  • 승인 2015.04.0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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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거듭남을 모르는 성화주의자

 
성도가 거듭난 뒤 ‘신앙생활을 내가 잘하려고 하는 것’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선한 행위를 완성해 구원에 이르려고 하는 성화주의에 젖어들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행위를 좋게 고치고 바꾸려는 생각이 들어오면, 구원은 은혜로 받았지만 신앙생활은 자신의 행위를 기대하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어느 시대에나 사탄은 성도들의 마음을 이런 방향으로 이끌어 참된 믿음 위에 서지 못하고 잘하려는 행위로 끌고 갔습니다. ‘신앙생활을 내가 잘하려고 하는 것’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성도의 삶 속에서 반드시 선이 그어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하셨고, 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은 모두 우리 육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영으로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생활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잘하느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미 성도 안에 이루어놓으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믿고 사는 것’입니다. 내가 잘하려는 사람들은 영과 육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육이 선하고 잘하면 영이 되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육을 가지고 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신앙에 치명적인 것입니다. 마치 호박에 줄을 그으면 수박이 된다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해도 수박이 되진 않습니다. 호박은 호박이고, 수박은 수박일 뿐입니다.

영은 성화가 필요 없다
예수님은 ‘영으로 난 것은 영’이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은 성화가 필요 없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거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완벽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온다는 의미도 있지만, 또 다른 의미는 성령께서 그 말씀을 믿도록 도와주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고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도다…”(사 49:8)
 다시 말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감동하여 주 예수님을 믿게 해주심으로 우리가 거듭난다는 말입니다. 우리 지혜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마음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라는 찬송 가사처럼 말입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3)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주셔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을 사는 데 있어서도 우리의 열심과 선한 행위는 조금도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거듭남, 온전함, 그리고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단번에 일어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잘하려는 사람들은 마귀에게 속기 쉬운 것이, 예수님이 이미 우리를 거룩하고 완전하게 해놓으신 것에 육신의 선한 행위를 보태려 하여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을 놓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죄인 마리아의 태중에 임한 하늘의 생명
마리아에게 말씀이 임하면서 그녀의 태중에 거룩한 예수님이 잉태됩니다. 그 사실은, 죄인인 우리 속에 복음이 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탄생되는 부분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영이 깨끗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죄를 짓고 안 짓는 것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하고 깨끗하게 산다 해도 그것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라고 했듯, 인간에게서는 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보고 잘하라고 하는 것은 개보고 사람처럼 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근본 종자가 다르기 때문에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기대를 가져 사탄에게 속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는 온전히 거룩한 자들입니다. 당연히 성화라는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이미 거룩한 자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마리아가 원죄 없이 태어났다는 무염시태無染始胎 교리를 주장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죄 없이 잉태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범죄한 아담의 자손입니다. 예수님께서 처녀에게서 났다는 것은, ‘남자의 종자가 아닌 다른 종자로 났다’는 의미입니다. 남자의 씨는 ‘행악의 종자’
(사 1:4)이고, 성령은 하늘에서 내려온 ‘의의 종자’입니다. 마리아가 더러워진다고 태중에 있는 예수님이 더러워지지는 않는 것처럼, 우리가 악을 행한다 하더라도 우리 안에 탄생된 거룩한 영은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영과 육은 전혀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기’(약 1:18)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낳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신이라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온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처럼 온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겐 앞으로 점점 더 온전해지는 것이 없습니다. 놀랍고 신비하게도, 우리도 예수님과 똑같아졌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반문하던 마리아가 천사가 전해준 말을 순종함으로 그의 태중에 예수님이 잉태됩니다. 마리아의 육과 전혀 다른 영, 곧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와 마리아에게 다른 생명이 탄생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복음을 믿으면 우리와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이 탄생합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 10:35)
 예수님께서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듭난 성도를 놀랍게도 ‘신’이라고 하십니다. 성도들이 더 이상 육신의 ‘나’로 살지 않고, 육신의
‘나’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로 삼으면, 성령으로 도우심으로 놀랍고 신기한 하늘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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