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난 술람미 여인
잠에서 깨어난 술람미 여인
  • 박영준(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15.05.01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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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솔로몬이 문을 두드려도 문을 열지 않은 술람미 여인
아가서 5장에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왔는데, 술람미 여인은 자느라 문을 바로 열어 주지 않습니다. 문을 두드려도 맞이하지 않습니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아 5:3~4)
 솔로몬이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 때에야 술람미 여인은 문을 엽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이미 떠난 후입니다. 그제야 술람미 여인이 정신을 차리고 신랑을 찾아 나섭니다. 그 후 술람미 여인이 어려움을 겪고 고통을 당하면서 신랑을 향한 마음을 회복하는 이야기가 아가서 5장의 내용입니다.
 아가서 5장은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영적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받을 수 없는 왕의 사랑을 받은 술람미 여인은 그 사랑에 화답해 결혼식을 갖고, 신랑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신랑에게 젖어듭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예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 주님께 젖어듭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찾아올 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성도가 영적으로 잠을 자는 모습입니다. 솔로몬이 떠난 후에야 술람미 여인이 정신을 차리듯, 우리도 주님과 끊어진 것을 발견하고야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데 그 사랑을 잊고 육신에 젖어 지냈구나! 내가 혼이 나갔구나!’ 하며 돌이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가나안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가나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이 오자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아내를 빼앗기는 일을 당합니다. 그 일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끊어진 자신을 보았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가나안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발견하여 가나안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아브라함과 함께했던 롯도 애굽으로 갔다가 가나안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아브라함과 롯이 나누어집니다.
 오늘날도 성도들이 애굽으로 간 아브라함처럼 형편에 끌려갈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아브라함이 아내를 빼앗기는 일을 당하듯 어려움을 당합니다. 고통과 아픔을 겪습니다. 그 고통과 아픔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도구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사실을 발견했기에 마음에서부터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롯은 그 사실을 발견하지 못해 결국 소돔과 고모라 성을 선택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신앙의 잠을 잘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고 했지만 어느새 하나님의 사랑에서 떨어져 있을 때가 있습니다. 육신의 형편을 좇아가기도 하고, 은혜에서 떨어져 자신의 행위와 수고에 빠지기도 합니다. 아가서 5장이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돌이키는 마음을 보여 줍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브라함처럼 돌이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롯처럼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이 끊어지면 생기는 것, 옳음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눅 22:44~45)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이 될 만큼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데, 제자들은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교회에서 지시받은 일은 할 수 있지만, 마음을 받아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떨어진 마음으로 흘러가면 주님을 부인할 수도 있고, 인간의 지식과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잘못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떨어지면 생기는 것이 ‘자기 옳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교회와 목회자를 문제삼아 마음이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집니다.
 성막의 등대를 만들 때 불똥 그릇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기름이 타며 밝은 빛을 낼 때 밑에 불똥들이 쌓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사탄은 우리 마음에 자만과 교만을 간교하게 집어넣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불똥과 같은 찌꺼기들이 마음에 쌓입니다. 그것들을 바로 비우고 처리해야 계속해서 밝은 빛을 낼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은혜를 입은 것으로 나를 세우고 옳음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미천한 저도 예수님을 만나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입은 사랑이 너무 커서 말로 다 표현이 안 됩니다. 그런데 내 속에서 선한 마음이나 나의 옳음이 올라오면 내가 교회나 하나님의 종을 섬기려고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예수님과 떨어집니다. 그런데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내가 교회를 잘 섬기고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이키면 만날 수 있는 더 큰 사랑
술람미 여인은 신랑과 떨어져 어려움과 고통을 당한 후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러고 나자 신랑의 아름다움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 내용이 아가서 5장 10~16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멀어졌다가 돌이킨 후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고 주님과 마음이 합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떨어진 것을 발견할 때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인지 느껴지면서 육신에 속해 지냈던 지난 삶이 부끄러워집니다.
 예수님과 멀어진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쉽고 단순합니다. 지금 내가 영적인 잠을 자고 있고 예수님과 멀리 떠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시 주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면 죄가 저절로 떠나듯,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인간의 생각과 옳음이 다 떠납니다. 그러면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다시 사랑으로 맺어지듯, 우리 삶 속에서 주님이 다시 힘있게 역사하십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 6:9~11)
 거듭난 모든 성도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예수님에게로 돌아와서 주님의 사랑과 화합해 주님의 뜻을 이루는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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