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행위를 버리는 믿음의 행함
율법의 행위를 버리는 믿음의 행함
  • 이헌목(기쁜소식양천교회 목사)
  • 승인 2015.08.0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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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병은 어떻게 낫는 줄 알아?
‘말판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가진 자매가 남편과 함께 박옥수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제가 병에서 정말 낫고 싶었어요! 그런데 병이 낫지 않아요.”
 “김 자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잘 들어봐. 사람이 죄를 어떻게 사함받는지 알아?”
 박 목사님은 자매에게 마치 교회에 처음 온 사람에게 설명하듯 죄를 어떻게 사함받는지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 죄가 씻어졌다고 하지? 그런데 죄를 사함받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죄를 씻으려고 하지?”
 목사님은 다시 히브리서 10장 14절을 편 후 이야기를 이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히 온전케 되었다고 말씀하시지? 안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알아? 자기가 온전하게 되려고 애쓰지?”
 목사님은 다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펼치셨습니다.
 “여기 성경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되어 있지? 그런데 안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알아? 죽으려고 애를 쓰지? 그럼 병은 어떻게 낫는 줄 알아?”
 목사님은 이사야 53장 5절 말씀을 읽어 주셨습니다. 
 “…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 말씀대로 병은 다 나았어! 그런데 안 나았다고 믿으니까 나으려고 애썼지. 내가 전에도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김 자매는 안 믿었지. 그러고는 ‘이만큼 산 것도 기적이니 그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그런 마음 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실 수 없어.”
 목사님은 마음에 조금도 의심이 남지 않게, 같은 이야기를 하시고 또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자매는 ‘내가 살아 있다고 믿는 거기서부터 신앙이 안 되었구나. 말씀이 아닌 것은 다 거짓이구나’ 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그날 후로는 마음이 살아났고, 몸의 모든 기능이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간증은 교회 형제 자매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행위와 행함의 차이
야고보서를 생각하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는 말씀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믿음의 행함’을 많은 성도들이 ‘행위’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십자가의 은혜로 받았는데, 신앙생활은 우리가 하나님을 열심히 잘 섬겨야 한다고 생각해 행위에 빠집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쉼을 얻지 못해 잘하려는 행위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는 단 한 가지의 법이라도 세워서 지키려고 하고, 잘하려고 하는 동안 마귀의 궤계에 속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거듭난 성도들이 자신이 잘하려고 하는 행위에 대해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약 1:21)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많은 성도들이 행위가 얼마나 더럽고 악한 줄을 모르기 때문에 늘 잘하고 싶어 합니다.

아브라함의 행함
성경 여러 곳에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기에, 야고보서에 기록된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말씀이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통해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의 의미를 살펴보면,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 순종, 그 행함은 믿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율법의 행위’와는 상반된 ‘믿음의 행함’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잘 섬겨서 인정받고 세움을 입고 싶은 마음은 육신의 세계인데, 그 육신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행함’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다 이루어 놓으신 세계를 믿음으로 삽니다. 야고보서는 우리가 거기에서 떠나 자신이 무엇을 하나라도 이루어 보려고 하는 순간 저주 아래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십자가로 율법을 폐하셨는데, 여전히 많은 성도들이 마음 안에 율법을 폐하지 않고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적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에게서는 ‘율법을 버리는, 나를 버리는’ 신앙이 나옵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나오는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고 야고보는 말합니다.

라합의 행함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 2:25)
 야고보서는 라합이 행한 바를 ‘믿음의 행함’이라고 합니다. 라합은 여리고 성 사람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영접한 것은 자신의 본토, 아비의 집, 조국인 여리고를 배신하고 버리는 행동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여리고는 바로 내 육체, 나 자신입니다. 내 육체와 나 자신을 배신하고 버리는 행함이 바로 야고보서가 이야기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라합이 여리고를 버리고 정탐꾼(살몬)을 영접한 ‘믿음의 행함’처럼 우리도 나에게서 돌아서고 예수님이 다 해놓으신 것을 영접하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서는 말합니다. 성도의 삶에서 아직도 내가 잘하려는 율법의 행위가 나오고, 아직도 십자가에서 자신이 죽은 것을 믿지 못하면,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버리는 믿음의 행함
성도의 삶에는 매일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 나와야 합니다. 육체에 속한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온전함, 거룩함을 하나님이 우리 것으로 주신 것을 믿는 행함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성도가 일하는 세계가 끝이 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내가 되어 일하십니다. 그때부터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옵니다’(약 1:17).
 믿음은 행위와 함께 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여전히 율법의 행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구원받았기에 교회에서 하는 열심이 다 믿음의 행함인 줄 압니다. 이제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잘하려는 육신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율법을 버리는 행함의 말씀을 삶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의 행함’을 정확히 아는 지혜를 구하여, 그리스도가 풍성하게 나타나는 믿음의 행함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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