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
가시나무
  • 글.그림/배은미
  • 승인 2015.08.1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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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어느 숲에서 있었던 이야기예요. 그 숲은 작지만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소나무, 참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과 이름 모를 풀꽃들이 모여 살고 있었어요. 그리고 어린 가시나무도 한 그루 있었어요. 그곳은 참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가시나무는 늘 불만에 싸여 투덜거렸어요.
“흥, 오늘은 날씨가 왜 이리 더워?”
“아, 밤은 너무 어두워.”
“여긴 너무 복잡해.”
가시나무가 불평을 할 때마다 몸에 가시가 하나씩 돋아났어요.
 
하루는 파랑새가 작은 숲을 찾아왔어요. 그리고 특이하게 생긴 가시나무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했어요.
“넌 참 특이하게 생겼구나.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네 가지 위에 앉아서 노래해도 될까?”
늘 혼자 놀던 가시나무도 내심 파랑새가 반가웠어요.
“뭐 그러든지….”
파랑새는 가시나무 가지 끝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찌르르르 찌르르’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가시나무는 파랑새의 노랫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졌어요.
‘아이, 시끄러워. 목소리가 왜 이 모양이야? 노래가 다 똑같아서 지루하잖아.’
가시나무가 불평하는 순간, 커다란 가시가 돋아 파랑새의 발을 콕 찔렀어요.
“아얏, 이게 뭐지?”
파랑새는 포르르 날아올라 멀리 멀리 날아가 버렸어요.
“흥, 갈 테면 가라지. 안 그래도 시끄러웠는데 잘 됐다.”
 
이번에는 예쁜 나비들이 향기로운 꽃을 찾아 작은 숲을 찾아왔어요.
나비들은 가시나무에도 향기로운 꽃이 있는가 하고 가까이 다가갔어요. 그러자 가시나무는 몸에 난 가시들을 힘껏 세우며 소리쳤어요.
“왜 여기 와서 춤을 추고 난리야? 아휴, 어지러워! 저리가!”
나비들은 깜짝 놀라 바람에 나부끼듯 정신없이 도망갔어요.
그런 일이 몇 번 있은 뒤부터 가시나무 근처에는 아무도 얼씬하지 않았어요. 가시나무는 처음에는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는 것이 편하고 좋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심심하고 외로워졌어요. 그래도 겉으로는 아무도 성가시게 하지 않아 좋다고 떠들어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도끼를 든 군인아저씨가 숲에 나타났어요.
“음, 이게 좋겠군.”
군인아저씨는 가시나무를 베어 커다란 자루에 담았어요. 갑자기 도끼에 몸이 베인 가시나무는 놀라 부들부들 떨었어요.
“이게 무슨 일이람?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가시나무를 데리고 간 군인아저씨는 가지를 이리저리 자르고 구부려 뭔가를 만들었어요. 그리곤 음흉한 웃음을 웃으며 한 마디 했어요.
“유대인의 왕이 쓸 왕관으로 딱이군.”
‘왕이 쓸 왕관이라고? 그럼 그렇지! 내가 있을 곳은 바로 임금님의 머리지.’
가시나무가 의기양양하고 있는데, 갑자기 피투성이가 된 죄수 한 사람이 끌려 왔어요. 채찍을 많이 맞아 여기저기 살이 찢기고 멍이 들어 흉측한 모습이었어요. 그 사람을 보고 군인아저씨가 말했어요.
“마침 잘 왔군.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왕관이다.”
군인아저씨는 뾰족뾰족 가시가 난 가시관을 죄수의 머리에 눌러 씌웠어요. 죄수의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어요. 그런데도 죄수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당하기만 했어요. 가시나무는 뜻하지 않은 장면에 화가 날 지경이었어요.
‘임금님의 왕관이라더니, 이게 무슨 임금이야? 더러운 죄수의 머리에 나를 올려놓다니 말도 안 돼!’
군인들은 죄수에게 커다란 나무십자가를 지우고 언덕을 올라가게 했어요. 그리고 언덕 위에 이르자 죄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높이 세워 올렸어요. 가시나무는 너무 무섭고 두려웠어요.
‘도대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무서운 형벌을 받는 걸까?’
그때까지 아무 말도 않던 죄수가 힘겹게 입을 열었어요.
“다 이루었다.”
 
그러고는 숨을 거두었어요. 사람들이 죄수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십자가에서 내렸어요. 그제야 가시나무는 죄수의 머리에서 벗겨졌지만 피투성이가 된 채 언덕 한쪽 구석으로 내팽개쳐졌어요. 죄수를 따라왔던 사람들도 하나 둘 언덕을 내려갔어요. 사람들은 죄수를 ‘예수’라고 부르며 욕하고 저주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죄수의 죽음을 슬퍼했어요. 가시나무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땅바닥에 처박혀 버렸어요.
“힝, 임금님의 왕관이 된다고 좋아했는데, 이게 뭐야? 흉측한 죄수의 머리 위에 있다가 결국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네. 나도 이제 저 죄인처럼 끝이구나.”
가시나무는 힘을 잃고 칠흑 같이 어두운 땅속에 처박혀 한참 동안 잠을 잤어요. 멀리서 사람들이 기뻐하며 떠드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 말이에요.
“예수님이 살아나셨어. 우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어.”
“약속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다.”
가시나무는 그 소리에 퍼뜩 잠에서 깨어났어요.
“구세주 예수님이라고? 그럼 내가 구세주의 머리에 씌어졌단 말이야?"
가시나무는 어안이 벙벙했어요.
“나는 쓸모없고 형편없는데, 예수님을 찌르고 피 흘리게 했는데! 이런 내가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에 쓰임 받다니!”
가시나무는 기쁨에 찬 나머지 눈물을 흘렸어요. 눈물이 흐르는 곳마다 연둣빛 새 순이 돋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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