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주의에서 복음주의로
행위주의에서 복음주의로
  • 진행 김소리 기자
  • 승인 2015.09.0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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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의 이야기

 

 
 

있어야 할 곳을 찾았다
주막인 교회에서 주인의 돌봄을 받으며
/ 박영철 선교사(카자흐스탄 알마티교회)

 

 

연약한 줄 알았지만 자신감으로 살았다
초여름, 한국에서 월드문화캠프가 시작되고, 또 선교사 교제가 시작되었다. ‘박옥수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 자연스럽게 반응하면 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목사님은 선교사들과 모인 자리에서 자신감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목회하다가 그만둔 몇몇 형제들이 아직도 교회만 맡겨 주면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마음에 비쳐지는 것이 있어서 간증했다.
 “목사님, 저는 제가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늘 나는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감을 인간의 의지와 각오, 결심 정도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말씀을 듣다 보니 하나님으로, 성령으로, 말씀으로 말미암지 않은 모든 것이 내 행위에서 나온 자신감이었다는 마음이 듭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했던 일들이 자신감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나’라는 인간은 결코 복음을 위할 수 있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교회를 위하셨고, 복음을 위하셨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하시는 곳이 믿음의 세계요, 신앙의 세계였다. 이러한 사실들이 발견되면서 내 마음이 ‘행위’에서 ‘믿음’의 세계로 옮겨졌다.

목사님은 말씀으로 마음을 바꾸고, 나는 행동을 바꾸려 했다
선교사 교제 기간에, 22년을 목회해 온 나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선고宣告가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목회를 해서는 안 될 자였다.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선교지에서 양식이 떨어졌을 때, 돈이 없었을 때, 이슬람교도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 하나님이 도우셨잖아. 공안들에게 살림을 다 빼앗기고 그들의 구둣발에 교회가 짓밟히고 성도들이 죄수 아닌 죄수가 되어 옥에 갇혔을 때, 나 역시 두 번의 재판을 받아 추방당하면서도 도망가지는 않았잖아. 복음을 등지지는 않았잖아.’
 속에서 이런 생각들이 솟아올라왔다. 하지만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은 왜 내가 목회를 해서는 안 되는 자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나는 다시 내 마음을 목사님께 표현했다.
 “목사님, 허인수 목사가 백혈병에서 나았습니다. 온몸에 암이 퍼진 최수현 자매가 살아났고, 술에 빠져 살던 심홍섭 형제가 변화되어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대적하며 떠났던 몇몇 목회자들이 뉘우친 후 새로워져서 복음을 위해 힘 있게 일하는 것을 봅니다. 목사님을 만나 교제하고 믿음을 배운 사람들은 이처럼 살아나고 새 삶을 얻는데,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마음을 다 쏟아 말씀을 전하지만 우리 교회 성도들의 삶에 변화가 생기지 않습니다. 전에 술과 마약에 빠져 살았던 형제 자매들이 말씀을 전해도 변하지 않을 때 저는 교제한 만큼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냥 두었습니다.”
 교회에는 인생에서 어려운 문제를 만나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들을 일으키지 못했다. 살릴 수 없었다. 강도 만난 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가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살아온 내가 보였다.
 박 목사님과 교제를 나누면서 내 신앙의 문제점과 그 원인을 하나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목사님의 신앙과 내 신앙의 차이는 단순했다. 목사님은 성경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셨고, 나는 성경말씀으로 사람들의 ‘행위를’ 바꾸려고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말씀대로 망한 나, 말씀대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 믿어졌다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신 9:7)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행 7:51)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히 3:10)
 정확히 성경적인(?) 길을 걷고 있는 나, 성경에 기록된 대로 대적하며 살고 있는 나를 목사님이 이번 교제 속에서 보게 해주셨다. 그렇다. 나는 성경대로 하나님을 격노케 했고, 성경대로 하나님을 거슬렀으며, 성경대로 미혹되어 하나님을 떠났다. 그런 내 모습이 베드로와 같다고 생각되었다. 말씀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 그리고 말씀대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던 베드로. 말씀대로 망한 나는 말씀대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 믿어졌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일이기에 나는 이미 말씀 안에서 세계 최고의 목사였다. “목사님! 이제 제가 말씀을 전하고 교제해도 사람들이 살아날 것입니다.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주막에서 벗어나려는 교만과 어리석음, 주막에 머무는 행복!
박옥수 목사님은 회개 없는 구원, 회개 없는 믿음, 회개 없는 은혜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사람들은 회개 없이 믿음만 가지려고 한다. 그 믿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만 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신앙생활에서 은혜를 입는 것과 회개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전부터 궁금했다. ‘도대체 회개가 뭐지? 회개했다는 사람들도 다시 넘어지고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기도 하잖아. 자신의 생각에서 말씀으로, 자신에게서 주님에게로 옮겨졌다고 간증했는데, 왜 또 넘어지지?’
 교제가 계속되면서 이 부분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었다. 많은 단원들이 노래하지만 한 사람이 부르는 것처럼 노래하는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지휘자인 보리스 교수가 음을 정확하게 잡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리스 교수가 러시아로 돌아가면 그때부터 음이 조금씩 틀어지다가 그분이 다시 한국으로 오면 합창단원들의 음을 다시 잡아 준다고 한다. 한번 음을 정확하게 잡았다고 그 음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해마다 한국 월드캠프에 참석해 말씀을 듣고 교제를 나누었다. 그때마다 나름대로 깨닫는 것도 많았고, 은혜로운 일도 많았다. 박옥수 목사님과 마음을 조율하며 믿음을 배우고 힘을 얻어 기쁘게 선교지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 기쁨과 충만이 오래가지 않았다. 이런 경험을 한두 번 반복하면서 한국에서 갖는 선교사 교제 시간이 부담스러워졌다.
 아이는 아버지에게서 얻는 사탕과 초콜릿으로 기뻐한다. 언제나 사탕을 줄 수 있는 아버지의 소중함을 알 리 없다. 내가 주님과 교회 안에서 아이처럼 살았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의 종이 없는 신앙은 있을 수 없었다. 전에는 변질되는 내 모습에 실망만 했는데, 정확히 알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내 신앙이 흐트러질 때마다 이끌어 주고 조율해 주시는 하나님의 종이 있기 때문이다.
 전에 나는 교제를 나누면 빨리 깨닫고, 빨리 회개하고, 빨리 은혜 입고, 빨리 믿음을 가져서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교회 안에 머물며 인도를 받는 쉼과 행복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다. 주님은 강도 만난 자처럼 거반 죽어 있던 나를 구원하셔서 교회의 상징인 주막에 맡기셨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막에서 주막 주인의 돌봄을 받으며 살라고 하신다. 주막과 주막 주인의 인도에서 벗어나려고만 했던 나는, 이번 선교사 교제를 통해 평생을 주막 안에서 돌보심을 받아야 할 자임을 알았다. 이번 교제는 내가 있어야 할 위치를 되찾은 너무 복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은혜를 입은 아들로 거듭나다
아버지 집에서는 두 아들 모두 은혜로 산다
/남경현 선교사(필리핀 케손교회)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오랜 세월 교회 안에서 맏아들로, 행위주의자로 살아온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동안 하나님의 종이 믿음으로 나와 싸와 주셨고, 기다려 주셨으며, 품어 주셨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얼마나 놀라운지! 하나님이 당신의 종을 통해 내 영혼을 살려내신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 인생의 황금기라는 생각까지 들며 행복했다
나는 1996년에 필리핀에 선교사로 파송받아 20년 가까이 필리핀에서 보냈다. 필리핀이 나의 제2의 조국인 셈이다.
 선교한 지 10년이 지나면서, 선교사라는 이름에 걸맞을 만큼 시간이 흐르고 선교의 외형적인 모양도 어느 정도 갖추었기에 나는 누가 보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은 선교사였다. 그런데 2010년에 선교회 본부로부터 ‘필리핀에서도 월드캠프를 개최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 올해 나는 내 무덤을 파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믿음으로 행하지 않은 선교의 결과를 봐야만 했다. 2010년 필리핀 월드캠프는 내 한계 안에서 산 삶이 허망하게 무너져내리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월드캠프를 망치고 한국에 들어와 기쁜소식강남교회에서 4개월을 머물며 신앙 훈련을 받았다. 당시 내 모습은 마치 감옥에 갇힌 술 맡은 관원장 같았다. 하나님은 영적인 감옥 생활을 통해 나의 악을 발견하게 해주셨고, 회개하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만 세울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필리핀으로 돌아가던 날 박옥수 목사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필리핀에 돌아가면 이제 하나님이 일하실 걸세!”
 2011년에 하나님은 신년사 말씀 안에서 나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셨고, 박 목사님 말씀대로 하나님이 새롭게 일하시며 많은 간증을 남겨 주셨다.
 특별히 2013년에는 필리핀에서 마인드 교육이 시작되었다. 현재까지 약 2만 6천 명이 마인드 교육에 참석해 복음을 들었다.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였다.
 ‘아! 하나님이 나를 악에서 돌이키게 하시고 이렇게 일하시는구나! 나에게 큰 복을 주시는구나!’
 마음이 뿌듯하고, 내 인생의 황금기라는 생각까지 들며 굉장히 행복했다.

“목사님, 우리가 이런 교제를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현상이 마음에서 나타났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월드캠프에 가려고 할 때마다 싫은 마음이 올라왔다. 실제로 2014년에는 오기 싫어서 오지 않았고, 올해는 나와야만 하는 상황이어서 왔다. 그리고 선교사 교제가 시작되었다.
 내가 보기에 선교사 교제는 올해도 ‘교제가 되는 자’와 ‘안 되는 자’로 구별지으며, 교제가 안 되는 사람은 선교지로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예측할 수 없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속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우리 선교회는 이게 문제야! 작년에 교제하고 선교사들이 다 좋았잖아. 하나님이 각 나라에서 일하고 계시고. 그런데 왜 또? 약속의 말씀을 좇아 시작한 필리핀의 마인드 교육도 한창 꽃피고 있는데, 왜 이런 교제를 계속해야 하지?’
 강하게 반발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2년 전, 한국 월드캠프 기간에 가졌던 선교사 교제를 통해 나에게 ‘필리핀의 디엘 무디가 되었다’는 믿음이 생겼고, 필리핀으로 돌아와 그 마음으로 살았다. 그런데 한국에 오기만 하면 다시 ‘잘못된 자’가 되었다. ‘디엘 무디가 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더 문제’라는 이야기까지 들으니 기가 막히고 불평만 쏟아져나왔다. 회개와 믿음의 과정을 통과했다는 나름의 옮음이 있었기에 ‘이런 식의 교제는 할 수 없다. 성경 어디에 이런 교제가 있지?’ 하며 따지고만 싶었다.
 하나님이 그동안 선교사 교제를 통해 우리에게 일하신 것은 사실이다. 나로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인간의 무익함과 악함을 깨닫게 하셨고, 수없이 육에 대해 마음에 선을 긋게 하셨다. 나를 믿는 마음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과 교회의 음성을 받아들이게 하셨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게 하셨다.
 ‘그런데 여전히 아니라면 교제가 무슨 의미가 있지? 올해에 교제해서 변해도 내년에 또 다시 이 모습일 텐데…. 작년에도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허리가 부러져라 교제하며 깨닫고 믿고 변해서 돌아갔잖아?’
 지구상에 우리가 하는 교제 같은 교제는 없을 거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과 함께 대적하는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과 내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몸이 교회 안에 있을 뿐이었다. 그런 생각에 잡혀 있을 때 박 목사님이 누구든지 할 말 있으면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벌떡 일어나 마음에 있는 것을 쏟아냈다.
 “목사님, 우리가 이런 교제를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30년 전에 세상을 향해 사직서를 쓰고 나와 복음 하나만을 좇아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목회를 할 수 없다면 세상으로 다시 가야 합니까? 목사님과 개인적으로 상담을 하고 싶습니다.”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이야기한 후, 선교사 교제를 이끄는 목사님들과 계속 교제를 나누었다. 조組를 짜서 다른 선교사들과도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교제하다 보니 서서히 발견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나와 박옥수 목사님이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나는 박 목사님과 같은 길을 걷는다고 여겼다. 최소한 4년 전에 회개한 이후로는 말이다. 그랬기에 내 길이 바른 길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목사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편 58편 3절 말씀이 내 모습을 비춰 주었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내가 복음을 전할 때 자주 이야기했던 성경 구절이 다름 아닌 내 이야기였다. 구원을 받았지만 근본 악한 DNA를 가지고 태어난 나. 그런 내가 가는 길은 곁길이었다.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었어도 말이다. 30년간 걸은 목회의 길이 곁길로 간 삶이었음이 보였다. 영적인 체했지만 실제로는 거짓을 말하며 살았던 것이다. 곁길에서 깨닫고, 곁길에서 돌이키고, 곁길에서 선을 그었다. 곁길에서 잘하려고 했고, 곁길에서 충성하려고 했다.
 “교회와 하나님의 종에게 입은 은혜를 배반하면 사람도 아니지!”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이 말은 인간적인 충성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교회에 우리 가족들이 많이 연결되어 있기에 욕먹는 짓은 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내 마음, 그것은 교회를 업신여기고 종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이 내 신앙이었다.

나는 완전한 행위주의자였다
어쨌든 불평을 쏟아낸 덕에 박옥수 목사님과 가장 먼저 상담할 수 있었다. 목사님은 누가복음 15장을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맏아들과 둘째 아들을 통해 ‘복음주의’와 ‘행위주의’ 신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남 목사, 잘 들어봐. 맏아들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겼고 행한 것이 있으니까 염소 새끼를 구하는 행위주의자지? 그런데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뭐라고 하셨어?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하며 은혜로 대하잖아. 아버지는 아들을 여전히 은혜로 대하시는 거야. 이게 아버지야!”
 목사님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보니, ‘나’는 완전한 행위주의자였다. 완전한 맏아들이었다. 선교하면서 복음의 일들을 하고 나면 힘이 나고, 밥을 먹어도 당당했다. 반대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하루를 대충 보내고 나면 떳떳하지 않았다. 한국 월드캠프 기간에 한국에 나오려고 하면, 박 목사님 앞에 무슨 결과물이나 잘한 것을 가지고 나와야 할 것처럼 부담스러웠다. 돌아보니, 나는 항상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어떤 행위가 있어야 쉬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행위주의자로 살았기에 나를 대하는 교회와 하나님의 종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맏아들이 아버지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한 것처럼 나도 철저히 그랬다. “내가 저놈을 선교지에 보냈더니 기특하게 밥값을 하는구나.”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 마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이었다. 나를 세우려는 마음이었고, 내가 세워지지 않을 때 결국 섭섭해하며 떠나가는 자가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집에서는 맏아들도, 둘째 아들도 은혜로 산다. 잘하느냐 못하느냐와 상관없다. 그런데 맏아들은 자신의 옳음으로, 둘째 아들은 부끄러운 허물로, 둘 다 행위주의자의 삶을 살았다.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라고 노를 발하는 맏아들을, 아버지는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하며 은혜로 대했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며 나아오는 둘째 아들을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입을 맞추며 은혜로 반겼다.
 ‘아!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구나! 교회는 바로 아버지의 집이구나! 목사님이 그래서 우리와 싸워 주셨구나!’
 아버지의 마음이 보였다. 목사님의 마음도 보였다. 우리 선교회에서 지낸 지 32년 만에 나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와 영혼의 인도자를 찾았다.

영혼을 얻는 참된 지혜가 바로 그 교제에 담겨 있었다
생각해 보면, 박 목사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 목사님의 마음과 만나면서 내 마음은 녹아내렸다. 눈 녹듯이 말이다. 품고 있던 더러운 마음의 누더기들이 벗겨지고 나니 참 교회인 우리 교회가 보이고, 참된 하나님의 종이 보였다.
 이제 나는 스스로 올바로 살 수 없음을 고백한다. 맏아들의 DNA를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내 속에서 맏아들은 계속 튀어나올 것이다. 그래서 이런 교제가 필요하고, 또 교제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한국에 나가려고 할 때마다 부담스러워했던 나, 교제하는 것을 싫어했던 나. 나 같은 사람들이 많으니 교회는, 하나님의 종은 싸우고 또 싸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교제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얻어 가는 교회. 영혼을 얻는 참된 지혜가 내가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던 바로 그 교제에 담겨 있었다. 교제하는 동안 내 속에서 맏아들이 튀어나왔고, 나의 악을 깨달으며 아버지의 은혜의 세계에 속했다. 놀라웠다.
 맏아들이었던 내가 교회와 하나님의 종 안에서 은혜를 입은 아들로 거듭났다. 그 아들의 모습으로 필리핀에서, 세계 곳곳에서 복음을 외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영원히 맏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를 아버지의 영원한 은혜 안에 두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젠 그 다음을 본다
사마리아인을 만난 후 다음 삶이 이어지듯
박재윤 선교사(베트남 호치민교회)

 

 

‘아하, 나를 믿지 않고 말씀을 믿는 것이구나!’
박옥수 목사님이 선교사들을 책망하고 이끄실 때, 처음에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만 많이 부족하기에 인도해 주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교제를 나누다 보니, 목사님은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지적하셨다.
 작년에 가진 선교사 교제 시간에 내 삶에 회개가 없었던 것이 발견되었다. 나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항상 내 생각과 판단을 마음에 두고 복음과 교회를 섬기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은 교회를 비방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가는 길과 똑같았다. 박 목사님이 교제 중에 말씀하시는 수많은 말씀들을 의미도 이해하지 못한 채 관념으로만 들어왔던 것이 마음에 크게 보였다.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던 수많은 것들이 무너져내리면서 처음으로 잘못된 자가 되었다. 그때 목사님이 하시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렸다.
 “우리는 다 거짓됩니다. 그래서 우리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내가 걸어야 할 신앙의 길이 보였다.
 ‘아하, 나를 믿지 않고 말씀을 믿는 것이구나! 나는 지금까지 나를 믿는 마음을 두고 하나님을 믿었기에 내 판단을 따라 살아왔구나. 이 길이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는 길이고, 망하는 길이구나!’

종일 교제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베트남에 돌아와서 많은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었다. 오전, 오후, 저녁, 밤에도 교제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교제하는 동안 하나님이 말씀도 보여 주셨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사 55:7)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구나! 나를 믿으면서 절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구나!’ 전에는 나를 믿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 판단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믿을 수는 없었다.
 교제하는 동안 감사한 일도 많았다. 한번은 어느 자매님의 아버지와 교제를 나누었다. 그분은 기성 교회 목사로, 암에 걸려 딸의 간곡한 부탁으로 나와 만났다. 이틀 동안 그분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이야기했다. “자기를 믿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믿으면 죽습니다. 영적으로도 지옥에 가고, 몸도 죽을 겁니다.” 그분은 자신이 구원받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자기 생각과 판단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믿으려고 했었기 때문임을 발견하고 마음을 돌이켰다.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받았고, 예수님이 병도 고치셨다는 말씀을 받아들여 암도 나아 건강해졌다.
 하루는 어느 자매님이 전화해서 자기 집에 꼭 심방을 와 달라고 부탁했다. 집에 찾아가니 자매님이 폐결핵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의사도 사망 선고를 내린 상태였다. 자매님이 결핵 약을 먹으면 더 심한 부작용이 일어나 약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매님은 마지막으로 나와 교제하길 원했다. 자매님은 이미 죽음을 받아들였고, 가족들도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자매님 생각을 믿으면 정말 죽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자매님 생각과 달라요.”라고 말한 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라는 말씀으로 교제했다.
1시간 정도 이야기했을 때 자매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내가 이 병을 만난 것이 죽을 일이 아니고 도리어 기쁨이구나! 하나님을 얻게 하려고 허락된 병이구나!’ 마음이 바뀌면서 자매님은 마음에서부터 병을 이길 수 있었다. 그 후로 건강을 되찾아 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베트남에는 현지인 전도자와 선교학생이 40여 명 있는데, 그들과도 많이 교제했다. 2015년 신년사 말씀을 가지고 교제를 나누었다. 전도자들이 신년사 말씀을 50~100번씩 들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12) 신년사에도 정확한 ‘회개’와 ‘믿음’이 있었다.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한 것은 사탄이 가르쳐 준 노래였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아이를 낳는다’는 새 노래를 가르치셨다. 사라는 이전 노래를 버리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새 노래를 불렀다.
 나는 신년사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술에 빠져 살았던 나의 형님은 성경을 가슴에 품은 채 비참하게 죽었다. 그런데 내 형님처럼 술에 빠져 살았던 심홍섭 형제님은 목사님을 만나 살아났고, 지금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나를 믿고 살면 나도 망하고 내 주위 사람들도 망하는구나!’ 이 마음이 깊이 새겨졌다.

이상한 통역기가 내 마음에 장치되어 있었다
지난 여름, 한국 월드문화캠프에 참석하기 전날까지 교제를 나누다가 한국에 갔다. 올해도 선교사 교제가 시작되었고, 교제 위원으로 세워진 목사님의 간증과 말씀이 은혜로웠다. 그 목사님이 “캠프가 진행중이기에 박 목사님이 굉장히 바쁘시지만 여러분이 교제를 신청하면 다 개인적으로 교제해 주시려고 합니다. 목사님의 가장 큰 관심은 선교사 교제에 있습니다. 교제를 원하시는 분은 손들어 주십시오.”라고 했다. 나는 손을 들지 않았다. 그 후로도 여러 번 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때마다 손을 들지 않았다. ‘지금은 선교사들과 교제하고, 나중에 강남교회에 가면 뵙고 교제할 텐데…’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큰 이유는 ‘나는 작년에 회개하고 1년 동안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고 왔어!’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종일 교제를 나누며, 교제를 인도하는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다 알아듣겠기에 내 마음이 그분들과 같다는 마음으로 지냈다. 캠프 2주차 장소인 대덕 수양관에서 교제가 이어졌다. 7월 14일(화) 새벽, 박옥수 목사님이 선교사들을 심하게 책망하셨다. 회개하지 않고, 목사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지내려면 차라리 우리가 술을 사다가 마시고 놀자’고 하셨다.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우리 상태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그렇게 비유하시는지, 너무 놀랐다. 하지만 ‘나에게 하시는 이야기는 아닐 거야. 다른 선교사들에게 하시는 이야기일 거야’라고 여겼다. ‘나는 목사님에게서 배운 성경 말씀으로 베트남에서 교제하고 또 교제하다 왔는데….’ 목사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하는 이상한 통역기가 내 마음에 장치되어 있었다.
 7월 16일(목) 새벽,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신앙의 최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은혜만 있습니다. 행위주의자가 되면 담대함을 잃어버립니다. 맏아들은 행위주의자였지만 아버지는 은혜주의자였습니다. 여러분, 담대하세요.”
 여전히 내 귀에 있는 통역기에 통역해 주었다. ‘선교사들이 대부분 회개하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말씀하시지?’ 책망도 그대로 받지 못하고, 은혜의 말씀도 그대로 받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목사님은 우리에게 ‘회개’와 ‘믿음’을 전하신 것인데 말이다. 내가 한 일, 깨달은 것, 아는 말씀…, 이런 것들이 통역기 부품이 되어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항상 통역해 주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했다.

“항상 악한 인간인 것이 보이면 그 다음이 보여”
기쁜소식강남교회로 옮겨 교제가 계속되었다. 비로소 박 목사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내가 아주 악한 자로 진단되었다. 목사님과 실제로 만나니 내 통역기의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나는 복음을 섬긴 사람이 아니라, 참된 복음을 흐리는 사람이었다.
‘그토록 분노하며 책망하신 것이 나에게 하신 이야기였구나!’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교제를 마치고 집무실에서 내려와 다시 교제를 갖기 위해 기다리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교제 위원인 선배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을 버려? 우린 항상 악한 상태야. 이것이 보이면 그 다음이 보여. 내가 믿음으로 살 수 없고, 나는 미친 마음을 품고 사는 자며, 내 길은 망하는 길인 것이 보이니까 그 다음이 보이더라. 교회와 종이 마음에 그대로 들어오더라!”
 나는 그 목사님과 달랐다. 나는 믿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었고, 회개한 사람이었으며, 열심히 교제한 사람이었다. 서툴지만 박옥수 목사님과 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항상 악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지, 항상 악한 자는 아니었다.
 박 목사님과 교제 약속한 시간이 되어 집무실로 올라가니, 목사님이 “난 지금 선교사 사모들과 꼭 교제해야 해요.” 하며 다른 교제 위원 목사님과 교제하라고 하셨다. 그 목사님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야기한 목사님과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두 분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니, 나는 그분들과 비슷한 줄 알았는데 달랐다. 룻과 오르바처럼! 하나님이 이런 것을 느끼게 해주셨다.
 ‘나는 믿음도 필요하고 말씀도 필요한 사람이었는지 몰라도 세밀한 인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종이, 교회가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베트남에서 1년간 전도자들이나 선교학생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박 목사님에게 물으려고 전화 한 통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전해 주신 말씀을 받아서 전도자들과 선교학생들에게 전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형제 자매들에게 전해 주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을까! 그러고 보니,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교회를 망치는 사람이었다. 다시 ‘교회와 종의 인도를 받지 않는 선교사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사실까? 무슨 열매를 맺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많이 되었다.
 항상 악한 인간이기에 그 다음이 보였다는 두 목사님의 간증이 나에게도 조금 이루어졌다. 룻에게 모압 땅이 사망과 저주의 땅인 것이 보인 후 그 다음이 보인 것처럼! 라합이 여리고 성이 이미 망한 성인 것을 안 후 그 다음이 보인 것처럼! 강도 만난 자가 사마리아인을 만난 후 그 다음 삶이 이어졌던 것처럼! 탕자가 돼지우리에서 주려 죽을 위치에 들어간 후 그 다음 삶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종이 있는 교회가 아름답고 복되다
그 주일에, 오전 예배를 마치고 다시 박 목사님에게 개인 교제를 신청했다.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목사님과 만나고 싶었다. 내 마음을 표현하자, 목사님이 중간에 내 이야기를 끊고 “예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셔.”라고 하셨다. 내가 항상 더럽고 악하기에 항상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영원히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예수님이 나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
 마음이 항상 미혹되기에 하나님의 종이 전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는 삶이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이런 참된 복음 안에, 이런 참된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럽다! 이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영광을 돌린다.
 베트남으로 돌아와 지내면서, 나는 ‘말씀만을 믿고 따르는’ 신앙의 기본음을 조금씩 잊고 있다. 스스로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그 다음이 보인다. 나에겐 기본음을 잡아줄 분이 항상 필요하다. 나를 잡아줄 하나님의 종이 있는 교회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복되고, 이 교회 안에 있는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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