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
  • 레온 락Leon Lorke(링컨학교 교사)
  • 승인 2015.12.0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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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간증

 
유복한 가정, 명문대 졸업,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행복의 조건을 갖추었지만 마음은 항상 공허할 뿐이었다. 친구의 죽음이 불러온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아 방황하다 한국에서 우연히 만난 링컨학교에서 구원받고 답을 찾았다.

나는 중국계 이민 2세대인 아버지와 싱가포르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의사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부유한 환경 속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한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운동을 너무 못해 자주 놀림을 받았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항상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셨고, 나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종일 공부했다. 당연히 성적은 최상위였다.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높아갔다. 나는 생각했다. ‘명문대에 들어가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겠지? 그러면 돈도 많이 벌고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을 거야. 그럼 행복할 거야.’
 열심히 공부해 스탠퍼드대학교 항공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기계를 연구하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나는 틈틈이 언어, 과학, 역사, 문화, 철학, 고전, 음악, 예술 분야에 관한 지식들을 두루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에서도 내 성적은 언제나 최상위였고, 때때로 교수님들에게서 칭찬도 받았다. 명문대학에 들어가면 뭔가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마음은 공허하고 외로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 마음 안에 비어있는 큰 공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공간은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교수님, 행복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제가 행복하려면 제 삶의 목적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왜 살까요?” 유명한 교수님들께 질문했지만 정답을 말씀해 주시지 못했다.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주말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놀았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은 다시 허탈했다. 잠도 자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왜 공부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기계처럼 기계를 연구하는 것도 힘들었다. 나도 점점 기계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점점 전공에 흥미를 잃어갔다. 결국 전공을 국제관계학으로 바꾸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돈과 술과 친구들도 내 마음을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만약 내가 친구처럼 죽는다면
나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절친했던, 하버드대학교에 다니는 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내 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우리는 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고민도 함께하고 파티도 함께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사고 나기 바로 전날, 우리는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 하버드대학교보다 더 멋진 학교를 세우자고 밤새도록 이야기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병원에 가서 친구에게 “넌 괜찮을 거야”라고 위로하고 나온 지 3분 뒤 친구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금도 친구를 생각하면 깊은 슬픔과 그리움이 함께 밀려온다.
 친구 장례식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친구는 죽었고, 죽음과 동시에 그의 꿈과 자존심과 명성, 시기와 증오도 모두 함께 사라졌다. 우리도 결국 그와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죽음 앞에서 인생은 너무 허무했다.
 ‘내가 만약 친구처럼 죽어서 관 속에 있다면 주변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죽음 앞에서 내가 배워온 지식들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내 마음에 우월감과 교만을 키워주는 것 외에 없었다.

나는 왜 태어났지? 인생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 12:20)
 친구가 죽기 전까지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 고민했다. 그런데 친구의 죽음은 언제 다가올지 모를 죽음 앞에 설 준비를 나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친구가 죽은 후 몇 달 동안 계속 우울하게 지냈다. 내 마음에는 더 많은 의문과 갈등이 찾아왔다. ‘나는 왜 태어났지? 나는 왜 여기 있지? 인생은 무엇인가?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어떤 책을 봐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종교에서 진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다양한 종교 교리를 공부하고 사원과 성전을 찾아 다녔다. 그 결과 모든 종교가 거의 비슷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은 선하게 살고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신을 기쁘게 해야 내세에 천국이나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가르침들과 계율을 알면 알수록 너무 부담스러웠다. 왜냐하면 나에게 완전한 선善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고, 착하지 않으며, 그렇게 살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리면 안 돼요. 이건 복음이에요.”
진로를 고민하던 중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어 유엔UN에서 일하기로 결정했다. 교수님은 유엔에서 일하려면 아시아 명문대학 외교학과 대학원을 나와야 한다고 하시며 한국에 있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추천하셨다. 아시아의 많고 많은 나라 중에 교수님이 왜 한국을 이야기하셨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해 다니면서 김태희 같은 예쁜 한국 여학생을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나는 늘 그런 여학생을 만나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학생이 나에게 전단지를 주었다.
 “버리면 안 돼요. 이건 복음이에요.”
 한국어가 서툴렀던 나는 ‘볶음밥’에 대한 전단지인 줄 알고 그냥 찢어버렸다. 그런데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이상하게도 그가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버리면 안 돼요. 이건 복음이에요.”
 둘째 날, 다시 전단지를 받아서 내용을 확인했다. 전 세계 대학생들이 참가한다는 IYF 월드문화캠프 홍보물이었다. 나는 문득 캠프에 가면 예쁜 여자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2011년, 그렇게 나는 월드문화캠프에 참가했다. 하지만 캠프의 메시지나 프로그램보다 그저 예쁜 여학생을 찾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하루는 한 교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자신을 서울에 있는 ‘링컨학교’라는 대안학교의 체육 교사라고 소개하며 원어민 영어 선생님이 필요한데 혹시 봉사활동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봉사라는 말에 관심이 생겨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선생님의 소개로 처음 링컨학교에 갔을 때 실망이 컸다. 그때 당시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이나 학교 시설이 형편없어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링컨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말씀 하나로 모든 문제가 단번에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자 나 같은 인재가 이곳에서 계속 일하면 인생을 망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교장 선생님이신 이한규 목사님께 인사드리며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목사님은 이야기를 들으시고 성경을 펴셨다.
 ‘아니, 내가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는데 왜 성경을 펴고 이야기하시지? 난 이미 성경에 대해 잘 알고 있잖아? 목사님이 무슨 학벌이 있다고 나를 전도하시려는 거야?’ 듣고 싶지 않았지만 매너를 지키기 위해 참고 목사님 말씀을 들었다.
 목사님은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 말씀을 보여주셨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목사님은 이 말씀으로 예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과 나를 향한 약속을 설명하셨다. 한 시간 동안 말씀을 들으며 나는 놀랍게도 내 죄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죄 때문에 겪었던 갈등이 말씀 하나로 단번에 사라졌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나는 의로워졌다. 신기했다. 나는 비로소 내가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죽음과 운명에 대해 명확한 답을 얻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이 들어온 순간 모든 것이 명쾌하게 풀어졌다.
 나는 원래 남의 말을 쉽게 믿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것을 분명히 확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날 후로 도서관에 가서 기독교 역사에 나온 마르틴 루터, 존 캘빈, 존 번연, 존 웨슬리, 조나단 에드워즈, 찰스 스펄전, D.L. 무디에 관한 책을 모조리 읽어보았다.
 ‘맞다! 예수님이 내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단번에 사하셨다는 것이 사실이구나.’ 정말 감사했다.
 ‘아, 나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죄와 공허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진리가 바로 예수님이었구나. 나는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나 때문에 나를 위해 죽어주신 분이 계셨구나.’
 그날 나는 예수님을 위해 내 인생 전부를 바치기로 했다. 구원받은 다음날 캐나다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저에게 새 아버지가 한 분 생겼어요.” 어머니는 어리둥절해 하셨다. “저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구원받은 후 나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이 싫어지고, 전에 즐겨하던 일들이 무의미하고 지루해졌다. 예쁜 여자들을 만나러 클럽에 놀러 가는 일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이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복음만 이야기했다. 학생들과 가족과 친척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한국에 온 유학생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나는 5개 언어를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만나는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스위스에 간 지 두 달 만에 다시 한국으로
구원받은 후 링컨학교 학생들을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져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자원봉사로 가르치다 보니 보수가 적어 생활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계획하고 있던 스위스에 있는 유럽 유엔UN 본부에 직장을 알아보았다. 나는 바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고, 얼마 후 정식직원 채용 제안도 받았다. 스위스에 가고 싶다고 하자 목사님은 한국에서 신앙을 배우라고 하셨다. 하지만 내 생각을 따라 2014년 스위스로 떠났다.
 스위스에 가니 처음에는 내 집과 차가 있고, 월급도 넉넉히 받아 모든 것이 풍족해서 좋았다. 그런데 그 즐거움은 오래 가지 못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공허할 뿐이었다. 침대에 누우면 눈물이 났다. 외로웠고 행복하지 않았다.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구원받은 형제 자매가 그리웠다.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 산다는 것은 겉으로 화려해 보여도 절대로 기쁘지도, 편하지도 않았다.
 하루는 몹시 우울해서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 우연히 들어갔다. 예배 시간에 그 교회 사람들이 모두 바닥에서 울며 뒹굴고 있었다. 너무 이상했다. ‘아, 여기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구나.’ 바로 교회를 나왔다.
 그때 마침 벤치에서 울고 계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그분은 엑스선 사진을 찍으러 병원에 갔다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슬퍼하고 계셨다. 교회에 20년을 다녔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았는데, 막상 죽음 앞에 서자 천국에 갈 자신이 없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너무 불쌍하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이분은 하나님이 나에게 보낸 사람이구나.’ 나는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다. 할머니는 내가 전한 말씀을 듣고 너무 기뻐하시면서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났다. 복음을 전했을 때 그분도 기뻐하셨지만 이상하게 내 마음에도 기쁨이 찾아왔다. 아름다운 스위스의 풍경이나 멋지고 화려한 만찬이 줄 수 없는 행복이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한국 교회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스위스에 있으면 내 영혼이 빛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엔 본부 팀장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그분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분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팀장은 나에게 언제라도 다시 유엔에 오는 것을 허락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스위스에 간 지 2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비자가 꼭 나오게 해 주세요
학교에 다시 돌아오자 학생들이 기쁘게 나를 맞아주었다. 교회 형제 자매님들도 무척 반겨주셨다. 내 집에 돌아온 것 같았다. 내가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작은 학교에서 일하는 것을 부모님과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기쁨을 되찾을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다.
 그런데 비자에 문제가 있었다. 외국인인 내가 한국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취업비자가 필요했다. 스위스에 가기 전에는 건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었기에 비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링컨학교에서는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어 수입이 적기 때문에 비자를 받을 만한 조건이 조금도 없었다. 나는 기도했다. ‘제가 링컨학교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비자가 꼭 나오게 해 주세요’라고.
 나는 목사님의 인도를 따라 이민국 직원에게 내 상황을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비자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민국 직원은 모든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미국 명문대를 나와 유엔에서 일하던 사람이 한국의 대안학교에서 일하며 취업 비자를 받으려는 외국인은 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올해 외국인 언어 강사법이 바뀌어 인가형 대안학교에서는 외국인도 일할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하나님은 내가 링컨학교에 있는 것을 기뻐하셔서 놀랍게 역사하셨다.

이미 세계 최고의 학교다
한국에 돌아온 후 링컨학교에 대한 내 마음도 변했다. 이제 학생들은 더 이상 볼품없는 학생들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는 미래의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에게 단순히 영어만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함께 그림도 감상하고 책도 읽고 작문도 하고 발표도 하는 등 다양한 수업을 통해 이 시대의 리더가 가져야 하는 마인드를 가르치고 싶었다. 이제는 학생들을 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볼 수 있었다.
 때론 풍요로운 캐나다의 집과 안락한 삶이 그립기도 하다. 외국계 기업이나 한국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들도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해 온다. 하지만 나는 다른 모든 일을 접고 링컨학교에서만 일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아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시며 작년에 한국에 오셨다. 학교를 둘러보신 아버지는 이런 곳에서 일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내게 월급은 얼마나 받냐고 물으셔서 700만 원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명문대를 나온 아들이 작은 학교에서 봉사한다면 아주 노여워하실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사님은 사실 그대로 말씀드리라고 하셨다. 돈이나 지식으로도 얻지 못했던 행복을 얻었다고 이야기하라고 하셨다. 마침 작년에 아버지가 업무차 제주도에 오셨을 때 내 마음의 행복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월급도 적고 차도 없고 집도 없지만 하나님이 계시고, 서로 마음이 흐르는 학생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미친놈아. 네 마음대로 해라.” 하시면서 용돈을 주고 미국으로 가셨다. 그래도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감사했다.
 지난 여름방학 때는 캐나다 집에 다녀왔다. 대학 동창들에게 연락해 보니 다들 나름대로 성공하여 잘 지내고 있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행복하니?”라고 물어보았다. 그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성공하고 많은 것을 가져도 그들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만드신 하나님만이 우리 마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링컨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분명 아주 멋진 일이다. 내 이름을 부르며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학생들이 예쁘고 감사하다. 무엇보다 그들과 마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한다. 내 꿈은 세계 최고의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학교, 하나님이 기뻐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내 마음에 링컨학교는 이미 세계 최고의 학교가 되어 있다. 하버드대학교나 스탠퍼드대학교보다 더 좋은 학교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계신 학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한국으로 이끄셔서 링컨학교를 만나게 하시고 말씀을 듣게 하신 것을 생각하면 놀랍고 감사하다.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돌아가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내 죄가 사해졌고, 그 예수님이 나를 바꾸셨다. 진정한 행복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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