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50 자폐성 발달장애 2급 민섭이는 정상이었다
IQ 50 자폐성 발달장애 2급 민섭이는 정상이었다
  • 이상훈(기쁜소식원주교회)
  • 승인 2015.12.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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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자녀 기르기 1

나는 강원도 양구에서 아내와 함께 부부 교사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 아들 민섭이가 말을 잘 하지 못했고, 주변에서는 청력검사를 받아 보라고 권했다. 강원도에 있는 병원에서 검사하니, 40%를 듣지 못한다고 했다. 검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어서 서울의 큰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했다. 결과는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소아정신과 진료도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믿을 수 없고 너무 속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서울과 강원도 양구를 오가며 몇 개월에 걸친 검사 결과 민섭이는 IQ 50에 사회성, 언어 능력 등이 정상보다 발달이 한참 늦은 ‘자폐성 발달장애 2급’이었다. 많이 배워야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의 공부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에서 장애인이었다
그때부터 민섭이는 내 마음에서 장애인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민섭이를 이상하게 보면 자폐아라고, 장애인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될 수 있으면 밖에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집에서는 고정된 자기 패턴대로 사니까 별 어려움이 없는데, 밖에 나가기만 하면 갑자기 길바닥에 뒹굴고 소리를 지르고 아무거나 만지고 잡히는 대로 던지곤 했다. 더욱이 위험한 것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찻길로 그냥 뛰어들어 운전자들을 놀라게 해 내가 죄송하다고 허리를 굽신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론 그냥 차에 치여 죽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민섭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한번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어떤 아이가 과자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밟은 것을 먹으라고 하자 그걸 주어먹는 아들을 보았다. 너무 속상해 아이를 데리고 가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작은 개미들이 바글바글 붙어 있는, 누가 먹다 버린 사탕을 주워 먹는 모습을 목격한 적도 있었다. 아이 입에서 사탕을 빼서 개미들을 떨어내고 다시 사탕을 물려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난동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아들과 동반 자살을 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절망에서 구원받게 하시다
그러던 중 아내가 자신이 고등학생 때 구원받았는데 나를 만나 교회를 그만 다녔다며 하나님이 자기를 찾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집안은 불교 집안인지라 1년이 넘게 종교 전쟁을 했다. 아내를 막을 수 없었다. 장애아를 키우는 것으로도 힘들어 부부사이가 악화된 상황인데 종교 문제까지 합세해 불화는 더욱 심해졌다. 나는 술로 하루를 마감하고 집에는 새벽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래도 아내는 두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열심히 나갔다.
 내가 이혼까지 생각할 때쯤 아내가 강권하여 원주에서 열린 성경세미나에 참석했다. 억지로 가서 말씀을 몇 번 듣던 중에, ‘내가 왜 성경을 알아 보려고도 하지 않았지?’ 하는 마음이 들더니 자연스럽게 성경 말씀이 그대로 내 마음에 들어와 믿어졌다. 그날, 아들을 그토록 미워했던 죄에서 벗어났다. 당시 강사로 오셨던 박옥수 목사님께 아들 민섭이에 대해 말씀드리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시며, 예수님을 통해 다 해결하셨다고 기도해 주셨다.
 그 뒤 우리 가족은 원주로 이사를 왔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기도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기도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춘천에서 박옥수 목사님을 모시고 강원도 지역 연합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박 목사님 마음에 민섭이가 있으면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를 데리고 춘천으로 가서 박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부탁드렸다. 목사님은 기도를 마치시고 “민섭이 다 나았네요.” 하셨다. 그 후부터 하나님이 내 마음을 먼저 고치시고 아들 문제도 하나하나 해결하기 시작하셨다.

 

 
   

내 생각 안에 갇혀 있는 내가 자폐아
한번은 민섭이가 갑자기 사라진 일이 일어났다. 실종신고까지 하고 사방팔방으로 찾다가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했다. 민섭이는 5살 아이가 가기에는 위험한 길을 지나, 다른 아파트 단지 경비실에서 경비아저씨의 점심 도시락을 배부르게 먹고 안전하게 있었다.
 그 일이 내 마음에 큰 선을 긋게 했다. 민섭이가 장애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섭이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나는 민섭이를 내가 지키려고 했다. ‘민섭이는 장애아니까 뭘 해도 안 된다’는 내 생각에 민섭이를 가두어 놓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하나님과 함께라면 가장 안전한 곳에서 민섭이를 배부르게 먹이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민섭이가 자폐아가 아니라, 내 생각에 갇혀 있는 내가 바로 자폐아구나! 민섭이가 장애인이 아니라 내 생각에 갇혀 있는 내가 장애인이구나. 난 민섭이를 지킬 수도 없고 보호할 수도 없는 사람인데, 내가 민섭이를 잡고 있었구나. 그래, 이제 생각을 바꾸자! 민섭이는 내가 아니라도 뭐든지 잘할 수 있어. 민섭이는 하나님이 지키고 보호해 주고 계시잖아. 그러면 나는 빠져야지. 하나님이 민섭이를 잡고 계시면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아이야. 이제 형편에 속지 말자. 이제 말씀에 의지하자!’
 그 후 요한복음 15장 3절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는 말씀을 보았다. 민섭이는 하나님이 일러 주신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박옥수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러 주신 말은 “다 나았네”였다. ‘그렇다면 민섭이는 다 나았다. 이미 깨끗해졌다. 그래서 정상아다. 정상아!’

 

 

고집을 안 꺾어 줘서 그래
나는 더 이상 민섭이가 장애아라고, 자폐아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 마음에서 말씀과 종의 음성으로 아이가 정상이 되었기 때문에 정상아와 똑같이 대했다. 집안일도 시키고, 심부름도 시키고, 공부도 첫째 혜림이와 똑같이 시켰다.
 그랬더니 내 마음과 똑같이 대해 주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행여 민섭이를 장애아라고 배려해 주고 자폐아라고 이해해 주는 분들이 계시면, 오히려 내가 민섭이에게 할 일을 끝까지 시키고 책임지게 했다. 민섭이를 배려해 주는 것이 절대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더 단호하게 선을 그을 수 있었다.
 민섭이는 유치원 과정을 마치고 한 해 늦은 9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쯤 되자 사춘기가 왔는지, 선생님의 말도 부모의 말도 듣지 않았다. 교회 주일학교에도 가기 싫어 했고, 하지 말라는 말이나 행동을 일부러 더 하는 것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꾸중하고 훈계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그 즈음 박옥수 목사님이 원주에 오셔서 예배를 드리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배가 끝나자 민섭이를 데리고 목사님을 뵈었다.
 “목사님, 민섭이가 요즘 누구의 말도 안 듣고 자기 멋대로 합니다.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아이들, 그 나이엔 다 그래요, 내가 보기엔 정상인데 고집을 안 꺾어 줘서 그래요. 고집을 꺾으면 삶이 쉬워져요.”
 그랬다. 민섭이가 싫다고 버티고 안 하겠다고 하면 그냥 놔두었다. 한편으로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다. 부모에게 대드는 것도, 친구들과 장난하고 사고를 좀 치고 다니는 것도 감사했다. 유치원에 다닐 때를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집을 안 꺾어 줘서 그래요’라는 목사님 말씀을 계속 생각해 보니, 내 편에서 좋은 마음으로 민섭이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민섭이의 고집을 꺾어 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가 옆에서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내가 또 속았구나!’

 

 나는 여전히 민섭이를 장애인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목사님의 말씀에 마음을 싣고 민섭이와 마음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때마다 ‘고집을 안 꺾어 줘서 그렇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민섭이가 하기 싫어하는 일도 끝까지 시키고 하고 싶어 하는 일도 끝까지 못하게 했다.
 하루는 민섭이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누나는 학습지 다 하고 텔레비전 보는데 민섭이도 다 하고 보는 거야?”
 “아니오.”
 “그럼 방에 들어가서 다 하고 나와.”
 “싫어요. 이것만 보고 할게요.”
 “안 돼. 다 하고 봐.”
 “이것만 보고 한다니까요. 이거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그러면 방송 시작하기 전에 할 일을 미리 다 했어야지. 다음 주부터는 미리 다 하고 보렴. 하지만 오늘은 안 돼. 들어가서 다 하고 나와서 봐.”
 “다 하고 나오면 끝난다고요. 왜 나를 못 살게 해요. 아이, 짜증나!”
 “짜증나도 안 돼. 당장 들어가서 하고 나와.”
 “에이 씨, 들어가면 될 거 아니에요.”
 작은 것부터 싸우기 시작했다. 고집을 꺾고 살면 사는 것이 편하다는 말씀에 힘을 얻어 민섭이와 마음의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싸움이 민섭이만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온 가족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민섭이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른 아이들에게는 소홀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첫째 혜림이도, 셋째 은섭이도 자기가 할 일을 알아서 미리 했다. 민섭이와의 싸움이 우리 가정을 바꾸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민섭이는 할 일을 알아서 하는 학생으로 변했다. 집에서 민섭이가 담당하는 일은 빨래 개기와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인데, 알아서 잘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정해진 과제를 먼저 하는 습관이 잡혔다. 그리고 셋째 은섭이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안 하면 훈계하며 공부를 가르쳐 주는 멋진 형이 되었다.
 “고집을 안 꺾어줘서 그래요”라고 하신 박옥수 목사님 말씀이 처음에는 민섭이를 짜증나게 하는 것 같았지만, 민섭이의 삶을 복되게 만들어 준 길라잡이였다.

절망이 아름다운 이유는
나는 학교에서 체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민섭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수영을 배울 수 있었다. 운동신경이 부족하고 기능을 이해하는 속도가 늦어 힘들어했지만, ‘조금 늦을 뿐이지 다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수영을 시켰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니 각종 수영대회에 나가 금·은·동 메달을 휩쓰는 멋진 수영선수가 되었다.
 학교에 영어체험센터가 있어서 민섭이를 매일 한 시간 이상씩 꾸준히 영어를 공부하게 했다. 영어를 아주 즐겁게 공부하더니, EBS에서 주관하는 TOSEL 영어 능력 시험에서 높은 등급을 받았다. 컴퓨터 ITQ 자격증도 땄다. 6학년 때는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에 출마해서 50%가 넘게 득표해 당당히 회장이 되었다. ‘IQ 50인 자폐성 발달장애 2급이 전교 어린이 회장이 되다니, 이것이 과연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있는 일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박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에요.’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민섭이는 교육장 표창 외 다섯 개의 상과 한 개의 장학금을 받았다. 졸업한 후에는 기숙형 국제중학교에 진학했다. 80명을 선발하는데, 시험을 보아 당당히 합격했다. 그리고 중졸 검정고시에서 평균 83점을 받아 합격증서를 받았다. 1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 소아정신과 의사는 ‘민섭이가 4학년 이상의 공부는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 그 이상의 공부를 하고 있다.
 구원받기 전에, 그리고 구원받은 후에도 내 생각에 갇혀 있었을 때에는 민섭이도 힘들고 나도 힘든 생활을 계속 해야 했다. 감사하게도, 아이가 실종된 일을 겪으면서 내 생각이 완전히 무너졌다. 하나님이 민섭이와 함께하신다는 마음이 요한복음 15장 3절 말씀과 박옥수 목사님이 해주신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내 생각의 테두리 안에 갇혀서 괴로워하던 민섭이도, 안타까워하던 나도, 하나님 안에서 편히 쉴 수 있었다.
 절망이 아름다운 이유는 희망을 엮어가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정에 웃음을 찾아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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