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디부아르 선교사로
코트디부아르 선교사로
  • 이정도(코트디부아르 선교사)
  • 승인 2016.02.2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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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수기

 

 

“형편에 영향받지 말고 목사님 말씀에 영향 좀 받아 봐요!”
진천에서 사역한 지 6개월이 채 안 되었을 때 전도자 이동 공문이 발표되었다. 내가 코트디부아르 선교사로 파송받는다고 되어 있었다. 코트디부아르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가나에 머물 수 있는 비자부터 준비해야 했다. 당시 가나 1년 비자를 받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옥수 목사님은 내게 1년 비자를 받으라고 하셨다.
 그 주 주일예배 때 박옥수 목사님이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에 대해 설교하셨다. 헤롯의 삶에 영향을 주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헤로디아와 요한이다. 헤롯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만 두 사람의 의견을 한꺼번에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헤로디아를 선택하면 요한을 버려야 하고, 요한을 선택하면 헤로디아를 버려야 한다. 헤롯은 헤로디아를 사랑했기 때문에 결국 요한을 가두고 죽였다. 요한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가두고 죽였기 때문이다. 내가 육신을 용납하고 사는 동안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목사님을 내 생각 속에 가두고 죽인 것이기에 목사님을 존경했느냐 무시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비자를 받기 위해 여행사에 근무하는 형제님과 함께 가나 대사관에 갔다. 형제님은 가나 1년 비자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고, 은혜를 입으면 3개월 비자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형제님에게 주일에 들었던 헤롯에 대한 말씀을 이야기하며 1년 비자를 받게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가나 영사를 만나서 우리 선교회가 아프리카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왜 내가 1년 비자를 받아야 하는지 등을 설명하기 위해 준비한 자료들을 검토했다.
 가나 대사관에 들어섰는데 마침 한국인 아가씨가 안내하고 있어서 다가갔다. “아가씨, 저는 선교사로 가나에 가야 합니다. 1년 비자를 받기 위해 영사님께 설명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저를 위해 통역 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가씨는 그러겠노라고 했고, 나는 대사관 2층 대기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잠시 후 영사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영사가 나와서 영어로 나에게 뭐라고 말하는데,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 것 같아서 “Visa! Visa! 1 year!(비자! 1년 비자요!)” 하고 대답했다. 영사는 내 말을 듣고 웃으면서 내려가라고 했다. 나는 준비한 서류를 보여주면서 좀 더 설명하고 싶었는데, 영사가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려서 할 수 없이 그냥 내려왔다.
 통역해 주겠다고 했던 한국인 아가씨가 원망스러워서 1층에 내려와 따지듯이 물었다. “도와주시기로 해놓고 왜 저를 안 따라오셨어요?” “선교사님, 여기에서는 1년 비자는 안 줘요.” 아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사무실 안쪽 문이 열리면서 한 직원이 나왔다. 아가씨는 그 직원을 가리키면서 “저분에게 부탁하면 비자를 받을 수도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 직원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말했다.
 “Good morning! I want visa. 1 year! 1 year! Help me!
 (안녕하세요? 1년 비자가 필요해요. 1년요. 도와주세요.)”
 “Ok. Ok.”(알겠어요.)
 “Thank you very much!”(고맙습니다.)
이야기가 잘된 것 같아 안내하는 아가씨에게 돌아가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더니 아가씨가 이렇게 물었다.
 “선교사님, 1년 복수라고 말씀하셨어요?”
 “복수가 영어로 뭐지요?”
 “Multiple, multiple이에요.”
 나는 좀 전에 이야기했던 직원을 다시 찾아가 “Visa! 1 year multiple!(비자요! 1년 복수 비자요!)” 하고 외쳤다. 그분은 웃으면서 “Ok. Ok.(알겠어요.)” 하였다. 정말 기뻤다. 기쁘고 감사해서 여행사 형제님에게 “형제님, 내가 말했죠? 1년 비자 받는다고 그랬죠?”라고 했더니, 형제님이 “전도사님,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저렇게 쉽게 말해요. 여기는 대사관이고 서류를 보고 일합니다. 제가 이미 3개월 복수 비자를 신청해 놓았습니다. 1년 비자는 절대로 안 나옵니다”라고 했다. 나는 형제님에게 “왜 말씀을 안 믿으세요? 형편에 영향받지 말고 목사님 말씀에 영향을 좀 받아 봐요. 아무튼 다음 주에 비자가 나오면 꼭 받아주세요”라고 말하고 돌아왔다. 1주일 뒤 형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도사님, 비자가 나왔습니다.”
 “1년 복수 비자 맞지요?”
 “예.”

나를 보내시기 전에 내게 필요한 마음을 만들어 주셨다
가나로 떠나는 날이 가까워 오던 12월 중순에 감기에 걸렸다. 하루 종일 먹지도 못하고 토했고, 열이 났다. 아침마다 박옥수 목사님과 여러 목사님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며 교제하는데, 그날은 박 목사님이 아침식사를 마친 후 대덕수양관에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하시더니 ‘모두 대덕에 가서 건축 공사 일을 돕자’고 하셨다.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나서다가 박 목사님에게 가서 몸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다. 목사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차를 타고 대덕에 가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하니 대덕에 도착해서 쉬라’고 하셨다.
 박옥수 목사님은 버스가 출발하자 버스의 앞자리에서 바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셨고, 대덕에 도착할 무렵에 말씀을 마치셨다. 대덕에서 목사님들이 모두 공사 현장으로 가시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목사님들을 따라 갔다. 건축 일을 지시하는 목사님이 내 몸 상태가 안 좋은 걸 알고는 쉬고 있으라고 하셨는데, 잠시 후 박 목사님이 오시더니 그날 진행해야 할 일들에 대해 물으셨다. 담당 목사님이 “오늘 3층 H빔 위에 철판을 깔아야 합니다.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덩치 크고 힘 좋은 사람 네 명이 필요합니다.” 하셨다. 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빔 위에 철판을 깔 네 사람을 뽑으셨는데, 그 네 명 안에 내가 들어 있었다. 얼떨결에 뽑혀 3층으로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목사님은 내가 아픈 걸 아시는데, 왜 나를 뽑으셨을까?’ 아침부터 오후까지 계속 생각하다 보니 목사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눅 19:12~13)
 누가복음 19장에 왕위를 받아오려고 먼 나라로 떠나면서 열 명의 종에게 한 므나씩 나누어주며 장사하라고 하는 어떤 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귀인을 중심으로 본다면 귀인이 먼 나라로 가는 게 아니라 종들을 보내는 이야기다. 이 귀인은 바로 나를 먼 나라 코트디부아르로 보내는 교회와 하나님의 종의 마음이었다. 이 말씀 안에 주인의 므나를 받아 주인의 마음으로 장사하는 종들이 나오는가 하면, 주인의 므나는 받았지만 그것을 쓰지 않고 자기 마음으로 싸두었다가 받은 것마저 모두 빼앗기는 종도 나온다. 주인이 장사하라고 나눠주는 므나 안에는 주인의 마음도 들어 있는데, 그것을 쓰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결국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의 결정권을 잡고 내 마음대로 살았더라면 그날 대덕에서 절대로 일할 수 없었다. 일하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결정권이 목사님에게 있었기에 목사님의 마음이 나로 하여금 일할 수 있게 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날 날씨가 무척 추웠는데도 나는 저녁 늦게까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해도 괜찮았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살다 보면 더 이상 못 하겠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을 텐데, 그때 내 마음을 따라 내가 결정한다면 교회가 나에게 맡겨주신 므나를 결국 다 빼앗기고 말 것이다. 하지만 한계를 만날 때마다 교회의 마음으로 산다면 교회가 나에게 맡기신 것들을 지키고 또 많은 것을 남기는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이 나를 코트디부아르로 보내시기 전에 이 일을 통해서 내게 필요한 마음을 만들어 주셨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은혜를 입어야 할 자
2001년 12월 18일, 교회의 은혜를 입어 가나로 가기 전에 독일을 거쳐 형이 선교하고 있는 헝가리에 들렀다. 헝가리 교회에 도착해서 형을 만났는데, 삶이 무척 힘들어보였다. 한겨울이었는데도 난방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나를 위해 준비한 저녁 식사는 특별 메뉴였을 텐데 정성만 보일 뿐이었다. 헝가리를 떠나면서 가지고 있던 얼마 되지 않는 돈을 형에게 모두 주고 독일로 갔다.
 독일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 수속을 하는데, 짐이 문제였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짐의 무게가 규정을 초과한 상태였지만 담당자가 배려해 주어서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런데 독일에서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면서 초과되는 무게에 해당하는 비용 100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돈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딸 도희가 한 흑인 신사의 품에 안겨 나타났다. 아내와 내가 짐 문제로 항공사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도희가 공항 안에서 혼자 돌아다녔고, 혼자 돌아다니는 도희를 본 흑인 신사가 부모님을 찾아주려고 도희를 안고 다니다 우리에게 왔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도희가 그 흑인 신사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무서워하기는커녕 그분의 볼을 만지며 편안하게 놀고 있었다.
 도희를 안고 온 흑인 신사는 가나 사람이었고, 내가 이야기를 나누던 항공사 직원과 친구 사이였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며 잠시 대화했는데, 흑인 신사가 항공사 직원에게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들었다. 그분은 그 자리에서 초과 수화물 비용 100달러를 지불해 주었고, 가나에 가면 돈이 필요할 거라고 하면서 지갑에서 돈을 한 움큼 꺼내어 도희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내가 가진 것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주러 가는 것이 ‘아프리카 선교’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내가 그들의 은혜를 입어야 할 자임을 보여 주셨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가나에 도착해서 한 달 가량 지내다가 토고의 이준현 선교사님과 코트디부아르에 방을 구하러 갔다. 토고 교회 자매님의 여동생 ‘아멜리인’의 전화번호 하나만 들고 무작정 떠났는데, 첫째 날에는 타고 간 버스 정류장 옆에 텐트를 치고 잤다. 이튿날 아멜리인을 만났다. 아멜리인은 우리를 자기가 살고 있는 이모 집으로 데려갔다. 그날은 그곳에서 잤지만 아멜리인의 이모가 불편해 하셔서 다음날에는 그 집 옥상에 텐트를 치고 자기로 했다. 그런데 셋째 날에 내가 말라리아에 걸려 드러눕는 바람에 그 집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말았다. 가나에 도착해서 한 달 간 전지훈련을 했지만 토고 선교사님과 같은 보조로 이틀 동안 집을 구하러 다니다 보니 완전히 뻗어버린 것이다. 난생처음 말라리아에 걸려 며칠을 누워 있는데, 살아갈 일이 막막하기만 했다.
 다행히 머물던 집 근처에서 방을 구해 1주일 뒤에 아내와 도희가 코트디부아르로 왔다. 시작은 정말 쉽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반지하 집인데다가 집 앞에 쓰레기장이 있어서 각종 벌레들이 너무 많았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창문과 대문에 모기장을 설치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시장에서 망치머리와 방충망을 사고 나무를 구하기 위해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나무로 된 무너진 술집에서 나무와 못을 구해서 집을 수리했고 버려진 나무를 모아 만든 나무판과 공사장에서 쓰다 남은 페인트를 얻어 교회 간판을 만들었다. 녹색과 빨간색 페인트밖에 구할 수 없어서 간판 색은 선택의 여지 없이 녹색 바탕에 빨간 글씨가 되었다. 간혹 교회 간판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생각지 못했던 동네 아이들이 와서 나에게 말을 가르쳐 주었다. 코트디부아르에 간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동네 아이들과 함께 불어로 주일예배를 드렸다.
 한번은 저녁 무렵에 동네 사람들이 우리 교회 앞에서 웅성거렸고, 한 아가씨가 흙투성이가 되어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귀신 들려 고함을 지르며 돌아다니는 아가씨를 사람들이 붙잡아 교회에 데리고 온 것이었다. 나는 당시 불어를 거의 못했기 때문에 일단 아가씨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한국말로 기도했다. 다행히 저항하던 아가씨가 차분해져서 청년 자매가 데리고 가서 씻기고 자기 옷을 입혀서 나왔다. 나는 서툴지만 불어로 말씀을 전했는데, 아가씨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교회 간판만 달았지 불어도 못 하고 가진 것도 없고 무시당할 수밖에 없는 선교사였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를 목사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무시당할 조건밖에 없는 므비보셋이 요나단으로 인해 왕의 상에 앉아 왕의 아들의 대우를 받듯이 아무것도 아닌 내가 복음 때문에 존귀한 자로 살 수 있음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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