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영 손인자 부부 이야기
노시영 손인자 부부 이야기
  • 노시영, 손인자(기쁜소식강남교회)
  • 승인 2016.04.26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년 세월, 무너진 마음에 뿌려진 그리스도의 피
_ 노시영

나는 팔 남매 중 일곱째였다. 우리 집은 증조할머니부터 4대가 한 집에서 생활했고, 제사도 많고 손님도 많아 예의를 굉장히 중요시했다. 초등학생 시절엔 큰누나가 선생님이어서 모범생이 되어야 했다. 4학년 겨울방학 때 큰누나가 결혼한 후 잠시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지냈으나, 이듬해 3월에 작은누나가 교대를 졸업하고 우리 학교에 발령받아 오면서 일거수일투족을 통제받았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대학에서는 건축을 전공했다. 건설 현장에서는 술을 많이 마셔야 했기에,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체질인 나는 현장에서 일하기보다 건축 공무원이 되면 좋을 것 같아 시험을 봐서 공무원이 되었다. 대구 수성구청에서 근무하던 중 1987년 1월에 아버지께서 갑자기 혈압으로 돌아가셨다. 고향에 어머니 혼자 계시기에 내가 모시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함양 군청으로 이동해 근무했다. 그 후 고등학교 교사였던 매형의 소개로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지금의 아내와 1991년 9월에 결혼해 아들 둘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무조건 못 가게 막아야겠다
1994년 5월, 장인어른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는 일을 당했다. 아내는 무척 힘들어했다. 그 해 여름방학 때 아내가 청주 교원대학교로 연수를 가게 되어, 휴가를 내어 데려다 주었다. 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이번에 같이 연수받는 교사들 가운데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 선배가 있어.”라고 했다. 아내가 전도될까 봐 은근히 걱정되어 ‘쓸데없이 교회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말해 주려다가, 아내가 교회에 다니는 친정 큰오빠를 싫어했기에 ‘이 사람은 교회에 갈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우리 집은 윗대 어른들부터 교회에 다니는 것 자체를 굉장히 싫어했다. 내가 아내와 결혼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아내가 무신론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제목도 이상한 책을 보고, 성경도 몰래 보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 온 나라가 오대양 사건으로, 휴거 소동으로 시끄러웠다. 군청에 근무하는 동료들에게 확인해 보니, 현황보고 리스트에 아내가 나가기 시작한 교회가 그런 부류의 교회라고 되어 있다며 그 교회에 다니면 큰일 난다고 했다. 아내가 교회에 가는 것 자체도 싫은데 이상한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나까지 이상하게 생각하고, 내가 계획했던 인생의 모든 꿈들이 수포로 돌아가 행복한 삶이 끝날 것만 같았다.
 아내에게 프로포즈할 때 포부를 밝힌 적이 있는데, 내게는 나름 꿈이 있었다. 고향에서 공무원으로 인정받고 있었기에 쭉 승진하여 군수까지 될 계획이었다. 승산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어떤 혐의에도 걸리지 않게 청렴결백하게 생활하며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오던 터였다. 그런데 아내가 이상한 교회에 빠졌다니…. 무조건 못 가게 막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성경을 찢고,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불태우고, 온갖 방법으로 협박하고, 달래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 불행이 아내 때문이라는 생각에…
1994년 10월 20일, 부서 직원들의 인사 이동이 있어서 회식 자리에서 불가피하게 술을 한잔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냈다. 86세 되신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공무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주위에서 ‘이단 교회에 다니는 마누라 때문에 네가 정신이 팔려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온 식구가 아내를 더욱 핍박했고, 나 또한 이 모든 불행이 아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교회에 다니려거든 헤어지자고 하면서 두 아이를 내가 데리고 갔다. 아내가 아이들 때문에 교회를 포기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후 가끔 아내가 변했나 찾아가서 보면, 교회에 더 열심히 나가며 평안해 보여 포기하고 살았다.
 그 동안 큰애는 할머니 손에, 작은아이는 고모 손에 맡겨져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어차피 망가진 인생, 아이들이라도 엄마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아내와 다시 합쳤다. 나에게 절대로 교회에 가자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이후 우리 가족은 잘 지냈다. 가끔 아내가 교회에 가자고 하면 화를 버럭 냈다. 받아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일부러 고함을 질렀다.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교회에 가면 혼을 냈다.

 40억 원이 넘는 돈을 다 날렸다
2006년에 동업자 말만 믿고 집을 팔고, 형님과 누나들에게 돈을 빌리고, 은행에서도 돈을 빌려 부산에 땅을 사서 아파트 건축 사업을 시작했다. 일이 순조롭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현지에서 일을 돕던 사람이 자살하면서 사업이 더욱 꼬였다. 결국 부도가 나서 40억 원이 넘는 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세상은 돈이 있어야 사람들이 모이지, 돈이 없으니 모두 떠났다. 같이 근무하던 직원들도 모두 떠나고 혼자 사무실에 외롭게 앉아 생각에 잠길수록 돈이 아깝고, 후회스러웠다. ‘차라리 그 돈을 실컷 썼더라면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살 수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켰더라면 후회라도 없을 것 같았다.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고스란히 날려버린 것이 너무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자살도 여러 번 생각하며 유서도 써보았지만 처자식과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아파 실행하지 못하고 혼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아내에게 이야기해 보았자 힘들기만 할 것이기에 혼자서 그 시간들을 견디고 있었다. 이후 큰형이 퇴직하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 경험이 있는 내가 일들을 돕다가 자연스럽게 직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죽고 나면 내 영혼은 어떻게 될까?
지지난 해 10월, 고향에서 아버지 산소를 이장하면서 인부들이 아버지 유골을 건성으로 대하는 것이 마땅치 않아 직접 내 손으로 닦고 옮겼다. 그때 문득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의 육체는 이렇게 한 줌의 흙으로 남았는데, 영혼은 어디로 가셨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 아내가 옆에서 지겹도록 이야기해서인지, ‘나도 죽고 나면 내 영혼은 어떻게 될까? 정말 천국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는 교회에 가게 되겠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래도 교회에 가면 삶을 즐길 수 없기에 나이 들어 할 일이 없을 때 교회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요일이면 등산이나 골프를 치러 가거나 향우회나 동창회 모임에 나가 시간을 보냈다.
 지난 7월, 갑자기 허리디스크가 생기더니 악화되어 다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병원에 다녀도 별 차도가 없어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 하루는 아내가 ‘하나님이 당신 마음을 돌이키려고 그리하셨으니, 제발 한 번만 박옥수 목사님을 만나 뵙고 안수기도를 받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끌려가서 박 목사님을 뵈었다.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해주시고, IYF 활동과 해외 선교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교회에 와서 성경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제 주일 예배에 참석하시면 좋겠습니다.” 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예” 하고 대답이 나왔다. 목사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즈음에 기쁜소식강남교회에서 마인드 교육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와 계속 참석하여 강의를 들으면서 ‘그동안 내가 마음을 너무 나누지 않고 살았구나. 아내가 다니는 이 교회를 많이 오해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나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죄를 씻어 주셨구나!
8월 20일, 그날은 조규윤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목사님께서 이 말씀을 보여 주며 인간의 마음을 구정물에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그동안 나를 착하고 반듯하며 모범적이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구정물이구나. 건드리지 않으면 맑고 깨끗해 보이지만 밑에 가라앉아 있는 것들은 아주 더럽고 추한 것들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죄를 씻어 주셨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
 구원받은 후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가며 서로 성경 말씀도 나누고 아이들 장래 이야기도 하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어 매우 행복하다. 오래 전엔 박 목사님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는데, 이제는 주일마다 설교 말씀을 듣는 것이 좋고 감사하며 기다려진다. 성경도 보고, 전에 아내가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읽어 보라고 주면 던져버리곤 했지만 지금은 두 번째 읽고 있다. 틈이 날 때마다 우리 선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복음 강해도 듣는다.
 요즘은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형제님들과 지하철 역에 신문전도를 나간다. 먼저 함께 기도하고 주간 기쁜소식을 돌린 후, 간단히 아침식사도 같이 하면서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아주 기쁘고 즐겁다. 허리디스크 통증도 ‘아프지만 나았다’는 박 목사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많이 건강해졌다. 형편과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사는 법을 교회를 통해 배우는 것 또한 아주 감사하다.
 얼마 전 주일 예배 때 사도행전 9장 34절 말씀을 들었다. 중풍병으로 8년 동안 누워있었던 애니아에게 ‘이제는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라’고 하셨던 것처럼 오랜동안 육신을 섬기며 살아온 나에게도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라고 말씀하고 계셨다. 이제는 친구와 친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 ‘나는 구원받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부족해’ 라고 생각했는데,말씀은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자”라고 하셨다. 베드로 같은 믿음의 종을 나에게 주셔서, 말씀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하나님이 내 인생과 우리 가정을 어떻게 이끌어 주실지 소망스럽다.

 

20년 동안 바랐던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_손인자

친정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돌아가시는 것을 보며 인생에 허무를 느꼈던 나를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이끄셨다. 두 아이의 엄마로 교직에 있었던 나는 교회에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연수를 받으러 간 청주교원대학에서 구원받은 선배를 만나 난생처음 성경 말씀을 접했고, 그 후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읽으며 복음을 깨달았다.
 유교적 가풍이 남달리 짙은 시댁에서 종갓집 맏며느리인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시어머니는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네가 교회에 못 간다!” 하며 노발대발하셨다. 시댁 어른들과 남편으로부터 핍박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지내던 중 남편이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내 서울로 올라왔다. 나도 교편을 놓고 서울로 올라와 ‘이젠 아이들도 잘 키우고 신앙생활도 잘해서 남편도 빨리 구원받게 해야지!’ 하는 의욕에 차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는 팽팽하게 맞섰다. 본래 옳은 게 많았던 내가 복음을 만난 후 나의 옳음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져서 누구도 못 말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탄의 짓이라고만 여겨, 남편의 마음을 헤아릴 만한 마음의 눈이 없었다. 당시 다니던 기쁜소식노원교회 가까이로 남편이 없을 때 이사했는데, 그것이 남편의 노를 격발시켜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리고 어느 날, 이혼소장이 교회로 날아왔다. 교회의 인도를 좇아 산다고 생각했기에 황당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꼭 합당해서 허락하신 일이었다.
 이혼은 잠시 큰 절망을 안겨 주었다. 눈물을 흘리며 ‘모든 것이 끝났어!’ 하고 절망과 슬픔에 잠겼다. 그때 갑자기 마음 중심에서 ‘내가 있잖아’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마음에 변화가 찾아왔다. ‘아, 하나님이 계셨구나!’ 마음에 이유 없이 기쁨이 샘솟았다.
그 후로, 마치 마른 논에 물이 들어가 그득해지듯 말씀이 마음에 계속 들어왔다. 나는 어느덧 말씀을 품고 사는 사람이 되어 갔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인다’는 찬송가 가사가 나의 간증이 되었다.
 “…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사 49:14~17)
 내가 내 아이를 잊지 못하듯,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인 나를 잊지 않으시고 긍휼히이 여기셨다.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내 마음에 전해지면서 큰 평안이 찾아왔다.
 “…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같이 되었고…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겔 36:34~36)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이루겠구나! 무너진 곳을 건축하듯 우리 가정을 다시 세워 주시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며 소망스러웠다.
 말씀이 마음에 임한 후로도 형편은 바뀌지 않았다. 그 형편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내 안에 들어온 말씀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2년 반 만에 아이들과 남편이 내 곁으로 돌아왔다. 가정이 합쳐지고, 핍박이 사라지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믿음은 없었다. 교회에 가는 일에 있어서는 남편이 여전히 완강했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이 구원받는 것을 포기하고 살았다. 다만 ‘하나님이 가정을 다시 합하게 하셨으니 언젠가는 남편을 구원하시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뿐이었다.
 하루는 빚쟁이가 찾아왔다. 남편 사업이 부도나고 오랜 시간이 지나 불거진 일이었다. 남편은 나름 정당한 이유를 대고 그 사람을 피해 내가 만나야 했다. 그 일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조규윤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했다. 상담하는 동안 “목사님, 저는 남편이 구원받겠다는 믿음이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목사님께서 “믿음이 없으면 그냥 하나님께 남편을 맡기세요. 남편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겁니다.” 하셨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부부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세세히 마음으로 교제해 주시는 목사님이 고마웠다. 그 후에도 남편의 문제를 들고 목사님께 찾아가고 또 찾아갔다. 그때마다 목사님의 인도를 좇아 행했는데, 남편이 점점 이끌려 오는 것이 신기했다. 마침내 남편이 그토록 싫어했던 박 목사님을 만나 뵈었다. 목사님 이야기를 듣고 남편 마음이 활짝 열려, 목사님이 주일에 아내와 함께 교회에 오라고 하시자 순한 양처럼 “예” 하고 대답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20년 동안 바랐던 소망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마음으로 대접하는 것이 가장 크게 대접하는 거예요.”
 그간 서로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 부부에게 목사님이 낮고 조용한 음성으로 들려주신 이 말이 지금도 가슴속에 남아 있다.
 그 후 남편은 조규윤 목사님과 신앙상담을 나누던 중에 구원을 확신했다.  요즘 남편의 모습을 보면 ‘교회 간다는 이유로 나를 핍박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 것을 본다. ‘하나님이 하시면 이렇게 쉽구나! 말씀이 들어가니 사람이 저렇게 바뀌는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면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고, 허리 디스크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걷기 운동할 때도 꼭 이어폰을 끼고 말씀을 듣는다. 예배 시간에는 찬송가를 잘 몰라도 얼마나 크게 부르는지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면 다소 귀엽기까지 한다. 말씀시간에 내가 졸면 깨워주기도 한다. 예배가 끝난 후에는 형제 자매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귐을 갖고 싶어 한다. 지체에게 교제 받는 것을 즐거워하고, 교회와 종에게 인도 받고 싶어 마음을 열고 다가가고, 말씀 들은 것을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은 묻기도 한다.
 예전에 각종 세상 모임에 다 참석하고 세상을 즐기던 사람이 이젠 갖가지 교회모임에 다 참석한다. 주일 예배, 수요 예배, 기도회, 구역 예배, 장년회, 새신자반 등. 특별한 이유없이는 빠지는 법이 없고 토요일 새벽 신문전도 때도 늘 함께한다. 내가 설거지 하느라 예배 시간에 늦겠다 싶으면 오히려 채근한다. 이젠 나 혼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 교회 가는 발걸음이 무척 기쁘고 즐겁다. 남편으로 말미암아 헌금하는 부분도 은혜를 입는다. 남편의 마음을 붙들고 계시고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큰아들은 복무 중에 휴가를 나와 아버지와 함께 마인드 강연도 듣고, 예배에도 함께 참석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구원받은 게 꿈만 같아요. 어릴 때부터 우리 네 식구가 손잡고 나란히 교회에 가는 것이 꿈이었는데….”라고 한다. 아버지는 구원받지 않을 분이라고 여겼기에 현재의 행복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의 장래, 우리 부부의 모든 문제도 책임져 주실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이 교회 안에 거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