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 박영준(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17.01.0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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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길(제1강)

제1강 하늘나라 성전에 피를 바르신 예수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복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신앙의 시작이자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바로 죄 사함입니다.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의인이 되었는가?
하늘나라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었는가?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성경에 담겨 있는 복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사했다는 사실 정도를 알고 있는데,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정확히 알면 우리 마음이 하늘나라로 옮겨집니다.
저는 요즘 ‘내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자주 생각해 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떤 곳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고 오직 나를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게 해 준 복음만이 나에게 행복을 준다는 사실을 깊이 느낍니다. 그 행복은 누가복음 15장에서 둘째 아들이 찾은 행복과 같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첫 번째 분깃을 가지고 아버지를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후 두 번째 분깃을 받아 아버지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었습니다.
살면 살수록 복음의 소중함이 점점 커집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단순히 죄가 사해졌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다는 것,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것, 이제 하나님의 영향을 받으며 산다는 것 등이 그 안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
비행기를 만든 목적은 자동차처럼 땅에서 달리기 위함이 아니라 하늘을 날기 위함이기에, 착륙해 있는 비행기는 하늘을 날 때를 기다리며 땅에 잠시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구원받은 사람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사람이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구약시대 때부터 여러 그림자를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흐르는 속죄의 물줄기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게 해주는 속죄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복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속죄하는 길이 큰 물줄기를 이루어 흐르고 있습니다.
속죄하는 길은 먼저, 속죄 받는 대상에 따라 ‘평민의 제사, 민족의 제사, 온 세상을 위한 제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평민의 제사는 흠 없는 암염소를 잡아 죄를 씻는 제사로, 그 제사법이 레위기 4장에 나옵니다. 레위기 16장에는 개인이 아니라 한 민족이 함께 죄를 사함 받는 제사법이 나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상 죄를 넘겨받으신 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온 세상의 죄가 씻어지는 제사법이 등장합니다. 속죄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속죄제사가 어디에서 이루어졌느냐에 따라 ‘시간계에서의 속죄’와 ‘영원계에서의 속죄’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 땅에 있는 성막에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에 반해 영원계에 속한 하늘나라에서 드리는 제사는, 그 제사의 효력이 영원하기 때문에 한 번 속죄제사를 드리면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를 가지고 하늘나라 성전에 바름으로써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음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한시적인 속죄를 이루는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앞으로 생길 부정을 정결케 하는 속죄제사에 대한 법을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받는 구원이 우리 행위나 조건과 상관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그림자들도 구약 성경에 많이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유월절 이야기, 여호수아 2장에 나오는 라합이 자기 집 창문에 매단 붉은 줄 이야기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개인의 속죄
성경에 나오는 죄 사함에 대한 큰 흐름을 중심으로 구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속죄제사는 레위기 4장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 이스라엘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 족장이 죄를 지었을 때, 평민이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제사를 드려서 죄를 사함 받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평민이 죄를 지었을 때 속죄 받는 길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레 4:27~31)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즉, 죄를 없애기 위해서 내야 하는 값은 사망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그가 지은 죄를 씻으려면 그 값으로 죽음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죽을 수 없기에 대신 암염소를 끌고 성막으로 갑니다. 제사장은 그 염소에게 흠이 없는지 살핍니다. 흠이 없어야 죄를 지은 사람 대신 죽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흠 없는 암염소는 죄를 짓지 않으신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구약에 소개된 그림자의 진짜 형상인 속죄제사에서는 예수님이 속죄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염소에게 흠이 없는 것이 확인되면 죄를 지은 사람이 염소의 머리에 안수합니다. 안수로 죄를 넘기는 것입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레 16:21) 안수를 마치면 죄를 지은 사람의 죄가 염소에게 넘어갑니다.
이제 염소는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 죽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염소의 목을 찔러 그 피를 받은 후 손가락으로 찍어 번제단 뿔에 바릅니다.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는 이유는 예레미야 17장에 나옵니다.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렘 17:1) 피로 죄의 기록을 칠해서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후에 예수님이 당신의 피를 하늘나라 성전에 있는 번제단 뿔에 발라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는 일의 그림자입니다.
단 뿔에 새겨진 죄는 피를 칠해 없애고, 인간의 마음판에 새겨진 죄는 ‘속죄제사를 드렸으니 죄가 사해졌다’는 믿음으로 없어집니다. 물론 지은 죄에 대한 기억이 나겠지만,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그 죄가 사해졌기에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시대에 한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사함 받는 방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죄제사의 규례를 받은 후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이나 염소 등의 제물을 가지고 성막으로 가서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민족의 속죄
레위기 16장에서 하나님이 새로운 속죄제사의 규례를 말씀하십니다.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 16:8~10)
해마다 7월 10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 년 동안 지은 모든 죄를 한 번에 사함 받는 제사법이었습니다. 그 규례가 레위기 16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수염소 두 마리를 준비한 후 제비를 뽑아서 한 염소는 ‘여호와를 위한 속죄제물’로 삼고, 다른 염소는 ‘아사셀을 위한 속죄제물’로 삼습니다. 여호와를 위한 속죄제물은 죽인 후 그 피를 받아 지성소에 들어가서 법궤 위에 있는 속죄소와 속죄소 앞에 뿌립니다. 그리고 지성소에서 나와 단 뿔에 피를 바릅니다. 이로써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가 사해졌습니다.
이제 아사셀은 위한 속죄제물이 남았습니다. 아사셀(Azazel)이란 ‘떠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아잘’과 ‘염소’라는 뜻의 ‘에즈’가 결합된 단어로,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떠나는 염소를 가리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둔 후,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염소를 광야로 보냅니다. 염소가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면 그 사람은 염소를 광야에 놓고 돌아옵니다(레 16:21~22).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짊어진 염소가 저 멀리 광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죄가 사라지고 자신들에게 임할 저주와 심판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
아사셀을 위한 속죄제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에게서 멀어지는 염소를 바라보면서 그처럼 죄가 떠났다는 사실을 믿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제사법이었습니다.

인류의 속죄
구약시대에 드려진 모든 속죄제사는 ‘하나님의 어린양’인 예수님의 그림자들입니다. 이제 길고 긴 예고편이 끝나고 진짜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속죄제사에서 죄를 지은 사람이 흠 없는 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서 죄를 넘겼듯,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에 세상의 죄를 넘겨받아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예비된 사람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때 세상의 모든 죄가 예수님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외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예수님이 지고 가신 ‘세상 죄’ 속에는 우리 모두의 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 죄를 넘겨받은 예수님은 속죄제사의 규례에 따라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우리가 지은 죄의 대가로 지불해야 할 죽음, 원래는 우리가 죽어야 했지만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셨기에 예수님이 우리 대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죄의 값을 지불해 우리 죄를 다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시간계에서의 속죄, 영원계에서의 속죄
출애굽기 24장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40일간 하늘나라에 있는 성막을 자세히 보여 주셨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성막을 마음에 새긴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그 모양 그대로 이 땅에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부터 성막에서 속죄제사를 드려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죄로 인해 근심하고 두려워하던 사람도 성막에 와서 제사를 지내면 죄가 사해져 기쁘게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기쁨이 오래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죄를 지으면 죄인이 되어 다시 제사를 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덮고 있는 가장 큰 제한이 바로 시간입니다. 속죄제를 드려서 죄를 사함 받아도 시간이 흐르면 그 효력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죄를 지으면 또 죄인이 됩니다.
구약시대에 드렸던 속죄제사는 그 효력이 영원하지 않고 이미 지은 죄만 사함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19장에는 앞으로 지을 죄를 위한 속죄제가 나옵니다. 그 제사법은 이렇습니다. 흠 없고 멍에를 메지 않은 붉은 암송아지를 죽여서 백향목, 우슬초, 홍색실과 함께 불태운 후, 그 재를 거두어서 간직합니다. 그리고 부정한 일이 생기면 그 재를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은 후 우슬초로 찍어서 부정한 사람이나 장막이나 기구에 뿌려서 정결케 합니다. 앞으로 지을 죄를 위해 미리 준비한 속죄제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물인 흠 없는 붉은 암송아지는 역시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백향목, 우슬초, 홍색실은 세상의 모든 죄를 나타냅니다. 백향목은 곧고 높게 자라는 나무요 우슬초는 돌 틈이나 담벼락에서 자라는 풀로, 백향목과 우슬초는 세상의 높은 곳에서 낮고 천한 곳까지를, 즉 세상 전체를 의미합니다. 홍색실은 죄를 의미합니다. “…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8)라는 말씀에서 보듯, 성경은 죄를 붉은 색에 비유했습니다. 그러니까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합하면 ‘세상의 모든 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은 죄를 사함 받는 제사든 앞으로 지을 죄를 위해 준비한 제사든, 구약시대에 성막에서 드려진 모든 제사는 시간계에서 드려진 제사이기 때문에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하늘나라에 가신 예수님은 창조에 속한 이 세상에 있는 성막이 아닌 하늘나라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제단 뿔에 당신이 피를 바르고 속죄소에 피를 뿌려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속하셨습니다.
시간계인 이 세상에서는 속죄제사를 드릴 때까지의 죄만 사했지만, 영원한 천국에서 드린 속죄제사는 죄를 영원히 사했습니다. 죄를 사함 받는 대상도 모든 사람이며, 죄를 사함 받는 시점도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영원히 모든 죄를 완벽하게 사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 하늘나라에 속한 삶이 시작됩니다.

 


박영준 목사

현 부산대연교회 담임 목사.
1978년 구원받은 후 마하나임신학교에 입학해 복음 전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국내외 전도 집회와 수양회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마하나임바이블트레이닝센터에서 ‘창세기 강해’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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