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라는 육신을 끝내고 하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자기’라는 육신을 끝내고 하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 조규윤 (기쁜소식한밭교회 목사)
  • 승인 2017.01.0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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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다리

‘자기’라는 육신을 끝내고
        하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14)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고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를 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을 겪으며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모세를 인도자로 세우셨고, 열 가지 재앙과 유월절을 지나게 하여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다.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고, 제 칠일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출 13:6) 
하나님은 유월절을 지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을 지키게 하셨다. 그들에게 누룩 없는 빵을 먹게 하신 것은 지금까지 애굽에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좇아 육신에 기대를 두고 살았던 모든 것을 비우고,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가나안에 소망을 두고 광야 길을 행하길 바라신 것이다.

몸은 애굽에서 나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애굽에
무교절이 지나고 광야 길이 시작되었다. 가나안으로 가는 가까운 길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가나안에 바로 들어가 전쟁을 보면 애굽에서 나온 것을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광야 길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은 얼마 후 홍해를 만났다. 눈앞에 홍해가 있고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쫒아오는 상황에서 그들은 두려워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 14:11~12)
이스라엘 백성이 몸은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왔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애굽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열 가지 재앙을 행하시며 기적을 베푸시고 애굽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믿었다면 홍해가 앞에 있고 바로의 군대가 쫓아올지라도 담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것은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게 하려 하신 것이 아니야.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어. 우리 열조에게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가나안으로 이끄실 거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라고 담대히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어디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가나안을 향한 소망을 찾아볼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홍해를 지나게 하신 것은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야기하셨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14)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바다를 갈라지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하셨다. 그리고 쫓아오던 바로의 군대를 물로 다 덮으시며 말씀대로 그들을 수장시키셨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 14:30~3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애굽에서 떠나 가나안을 소망하길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 마음에는 하나님도, 하나님의 종도, 약속도, 소망도 없었다. 무교절이 마음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여전히 자신을 믿고 자기 생각을 좇아 살면 삶이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구원은 받았지만 자기 생각 속에 갇혀 곤고하게 사는 형제 자매들이 많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홍해를 지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큰일을 보게 하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에서 애굽의 삶을 끝내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 모세를 믿길 바라셨다.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길을 행할 때 마음에서 애굽이 끝나지 않은 사람들은 작은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끊임없이 끌려갔다. 반대로 마음에서 애굽이 끝난 사람들은 가나안을 소망하기 때문에 어떤 형편에도 굴하지 않고 가나안을 향하여 달려갔다.

십자가에서 ‘나’라는 육신도 처리해주셨다
우리가 죄를 사함 받았어도 ‘자기’라는 육신을 끝내지 않으면 여전히 사탄이 주는 생각에 속아서 세상에 미련을 두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어리석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영적인 무교절을 주시기 원하신다. 그 일을 위하여 우리를 홍해와 같이 내 방법과 지혜와 어떤 인간적인 방법으로도 넘어갈 수 없는 암담하고 절박한 형편 앞에 세우셔서 자기를 믿는 마음을 제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신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나를 믿는 데에서 떠나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된 회개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의 삶을 끝내고 가나안을 향하여 소망을 가지는 것처럼, 오늘날 성도들의 마음속에서도 ‘자기’라는 육신을 끝내고 우리의 본향인 하늘을 향한 소망을 갖고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하나님은 우리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만 사하신 것이 아니라 ‘나’라는 육신도 처리해주셨다. 이제 구원받은 성도들이 ‘자기’를 벗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발걸음을 내딛는 삶을 살기 바란다.

 

<야곱의 사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주제별로 세 명의 필진이 기고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로 사는 삶’과 ‘기도’를 주제로 4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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