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하신 말씀 안에서 여행을 시작하다
약속하신 말씀 안에서 여행을 시작하다
  • 우승윤 (기쁜소식잠비아루사카교회)
  • 승인 2017.02.2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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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수기(제2화)

2001년에 시작된 월드캠프에서 하나님은 ‘내일 이맘때에’라는 약속을 하나님의 종에게 보이시며 소망 없던 우승윤 형제에게 ‘단기선교사’라는 이름을 주시고 교회와 말씀의 인도를 받는 복된 삶을 허락하셨다.

 

 

2001년에 월드캠프가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4주 일정이었는데, 마지막 주에 대덕 수련원에서 들었던 박옥수 목사님이 전하신 말씀이 지금도 내 마음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아무 소망도 없고, 인생에 대한 계획도 없던 나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열왕기하 7장에서, 양식이 다 떨어져 아무 소망도 없는 사마리아 성을 향해 하나님께서 ‘내일 이맘때에’라고 말씀하십니다. 현재 여러분의 모습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과 계획대로 여러분을 이끄셔서 1년 후 이맘때에, 5년 후 이맘때에, 10년 후 이맘때에 여러분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대통령도 나오고, 훌륭한 의사도 나오고, 세계 곳곳에 복음을 가지고 나가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선교사도 나올 것입니다.”

 

단기선교사가 되자
검은 피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웃으면 하얗게 드러나는 치아, 가로등 없는 밤거리를 걷다 보면 하얀 옷이 공중에 날아다니는 것 같아 깜짝 놀라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하얀 윗옷을 입고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사람…. 바로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2001년 겨울, 그때 처음 생긴 단기선교를 지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회에서 생활한 지 2년이 지났을 때였다. 케냐로 가기로 정하고 준비하면서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것이 워낙 없었기에 말라리아, 장티푸스 등의 많은 질병과 열악한 환경과 더운 날씨 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 가지고 있었다. 단기선교 1기였기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막연했지만, 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이 나를 이끄실 것이 말씀 안에서 분명해졌다.
단기선교 훈련은, 54명의 지원자들이 한밭중앙교회(현, 기쁜소식한밭교회)에 모여서 여러 목사님들과 함께
3일 동안 훈련받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매일 성경을 읽고, 오전에는 박옥수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말씀을 듣고 이어서 간증하고 그룹교제를 나누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다. 무엇보다, 정말 행복했다. 훈련 후 단기선교를 나갈 사람 14명이 결정되었지만, 그 뒤로도 54명이 다 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공연에 동행하며 계속 교제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여러 목사님들에게서 말씀을 듣고 교제를 나누었다.

 

칸타타 순회공연이 끝난 후에는 14명이 각자 집에 잠시 들러서 짐만 챙겨 나와 다시 한밭중앙교회에 모여서 숙식하며 훈련을 받았다. 처음으로 교회를 제대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 전에는 엄하고 꾸중을 듣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하는 재미없는 곳이 교회라고 여겼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세밀하게 가르쳐 주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통해 일하고 싶어하시는 마음을 가르쳐 주는 곳이 교회였다. 영적으로 어렸던 14명 모두 성도의 삶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다.
하루는 모두 모여 이구동성으로 치킨과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냥 했던 이야기였는데, ‘우리가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겠냐?’라는 마음이 들어 둘러앉아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던 중 한 형제는
“하나님, 저는 피자를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이전에는 다 그렇게 산 적이 없었는데, 우리 모두 어느새 기도하는 것이 친숙한 사람들로 바뀌어 있었다.
그날 오후, 갑자기 박옥수 목사님과 함께 지방 교회를 방문해서 예배를 드리고 온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그 교회에 도착하니 저녁 식사를 하라고 하는데, 메뉴가 자장면과 치킨이었다. 예배를 마치고는 그 교회 목사님이 우리를 사택으로 불러 간식으로 피자를 주셨다. 우리가 드린 작은 기도도 들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마음에 기쁨이 가득했다.
밤하늘에 가득한 별 같았던
초롱초롱한 눈망울들

2002년 3월,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케냐에 도착했다. 그 후 9개월 동안 하나님은 내 마음을 단련하시고, 약속하신 말씀대로 막연한 삶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해 주셨다.
처음 케냐에 갔을 때에는 영어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매일 현지 선교학생과 함께 전도를 나가 더듬거리며 전도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만나면 “당신은 죄인입니까?”라고 묻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You… sinner(당신, 죄인)?”이라고 했다. 상대가 “예,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죄인은 지옥에 갑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Sinner…, go to hell(죄인, 지옥에나 가라)!”는 심한 욕설을 퍼붓고 말았다. 그러면 상대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할 말을 잃었다. 희한한 영어를 구사했지만, 하나님은 마치 사도행전에서 성도들의 입에서 방언이 터져나왔듯이 당신의 지혜로 나를 가르치셨다. 그리고 내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일어나게 하셨다.
하나님은 단기선교 기간에 나에게 전에 없었던 새로운 마음을 주셨고, 아프리카를 마음으로 품게 하셨다. 무엇보다 학창시절에 세상에 빠져 잊고 지냈던,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마음속에서 깊이 차오르게 하셨다. 불편한 부분도 여러 가지 있었지만 아프리카에서 마음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것이 신기해 하나님께 깊이 감사했다. 어두운 밤, 호롱불을 의지해 복음을 전하는 나를 바라보던 케냐 사람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은 마치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는 것 같았고,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군대는 조금 있다가 가고
먼저 선교학교에 들어오게

단기선교를 마치고 귀국해 공항에서 집으로 가지 않고 박옥수 목사님이 계시던 한밭중앙교회로 갔다.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바로 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공연에 동행했고, 이어서 대학생 캠프에 참석했다. 그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계속 새롭게 하여 주셨다. 예레미야 10장 말씀과 잠언 16장 9절 말씀이 힘있게 내 마음을 이끌어 갔다. ‘앞으로 뭘 해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내가 스스로 인생을 계획하는 것이 허무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교회의 인도를 받아서 살 때 가장 행복하다는 마음이 들고,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앞으로 내 삶을 이끌어 주시겠다는 마음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형성되었다.
1기 단기선교사 14명이 모두 귀국해 하루는 박 목사님 사택에 모였는데, 목사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케냐 우승윤,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지?”라고 물으셨다. “계획은 없고, 나이가 되었으니 군대는 가야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목사님이 “군대는 조금 있다가 가고 먼저 선교학교에 들어와라.” 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이끄신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나 같은 자가 복음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온전히 은혜를 베푸셨다.
하나님은 나를 선교학교에 그냥 보내시지 않고 약속을 주셨다. 마가복음 11장에 ‘아무도 태워 보지 않았던 매여 있는 나귀새끼’가 나오는데, 꼭 내 모습이었다. 복음의 멍에를 메어 본 적 없이 내 생각에 묶여 있던 나를 예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보내 풀어서 당신과 동행하는 일에 쓰고자 하셨다. 이 말씀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학교로 이끄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기를 원하시는구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광의 길에 참여하겠구나!’

우 형제가 가는 부대가 복을 받고, 부대장이 복을 받고…
선교학교에 입학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5개월 후 갑자기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얼마 후, 입대하기 전에 드린 마지막 주일 예배 때였다. 예배를 시작하면서 박 목사님이 “이번에 우승윤 형제가 군대에 입대합니다. 우 형제가 가는 군부대가 복을 받고, 그 부대장이 복을 받고, 그곳의 모든 군인들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마음에 군대에 가는 것에 대해 막연히 두려운 생각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당신의 종을 통해 내 군생활을 다 보이시고, 그렇게 예비하셨구나’라는 마음이 들어 평안했다.
2003년 8월, 입대할 때 선교학교 선배들이 군복 주머니에 들어가는 성경을 선물해 주어 훈련소에서부터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성경을 보았다. 성령이 내 마음을 강하게 이끌어 가시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하루는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라는 사도행전 19장 21절 말씀을 대하면서 내가 서울에서 복무하게 될 것을 알았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 받고 보니, 일반적인 부대와 많이 다른 부대였다. 군복이나 군가도 다르고, 부대 이름도 ‘OO건설회사’였다. 처음에는 생소한 환경과 강한 군기로 인해 주눅이 들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 깊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했다. 적응 기간을 보낸 후에는 혼자서 경계근무를 하는 시간이 많아 그 시간에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주 없이 실수만 하는 가치가 없는 이 몸…”이라는 찬송을 하루에 수백 번은 불렀던 것 같다.
그렇게 지내던 중 박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우 형제가 가는 군부대가 복을 받고, 그 부대장이 복을 받고…” 어떻게 하면 내가 속한 부대와 부대장이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니, 답은 간단했다. ‘하나님의 종이 오시면 되겠구나. 복음이 전해지면 부대원 모두 복을 받겠구나.’ 하지만 이등병으로서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매일 그 일을 위해 기도했다.
매주 부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부대원에게 복음을 전하자 군종병들이 내가 기쁜소식선교회 소속인 것을 알고 내 주위 사람들에게 나를 멀리하라고 종용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끊임없이 소망을 불어넣어 주셨다. 밤에 잠을 자도, 종일 근무를 서도 하나님은 내 마음에 꿈을 주셨다. 날마다 꿈을 꾸게 하셨다.

아, 하나님! 어찌 이런 일이…!
매일 새벽 다섯 시부터 한 시간 가량, 부대장님이 초소들을 돌며 근무하는 병사들과 만나 짧게 인사하고 격려하는 시간이 있었다. 보통 만나면 경례하고 악수한 뒤, 부대장님이 “수고한다.” 하면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루는 부대장님이 내가 근무하던 초소에 와서 말을 건네셨다. “네가 우승윤이구나. 수고한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군에 입대했다면서?” “곧 있으면 형 결혼식이 있다던데, 휴가는 나가나?” 부대장님이 이것저것 묻다가 “형과 결혼할 형수는 뭐하는 사람이지?”라고 하셨다.
“그라시아스합창단의 단원입니다.”
“아, 그래? 그라시아스합창단은 어떤 합창단이지?”
“네, 세계 최고의 합창단입니다.”
“오! 그러면 이야기해서 우리 부대에서 위문공연을 해줄 수 있나?”
“예, 가능합니다!”
부대장님은 옆에 서 있던 중대장님에게 “바로 추진해 보지.”라고 지시한 후 가시고, 중대장님이 나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관계자에게 바로 전화해 보라고 하셨다.
‘아, 하나님! 어찌 이런 일이…!’
하나님이 내 마음에 당신만을 심기 원하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위문공연이 추진되면서 부대에서 난리가 났다. 상부의 허가를 받은 일이지만 기쁜소식선교회와 박옥수 목사님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수도방위사령부 본부의 군목까지 와서 예배 시간에 우리 선교회와 박 목사님을 비방하는 이야기를 했다. 부대장님도 많이 언짢아하셨다. 부대원들을 위해 행사는 하지만 박 목사님은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셨다. 그래도 ‘이번 행사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통해 나타내신 뜻을 분명히 이루시겠다!’는 마음이 계속 들었다.
드디어 위문공연을 하는 날이 되었다. 저녁에 행사를 갖는데, 오후에 부대가 어수선하더니 “우승윤 일병은 복장을 바로 하고 빨리 부대 앞으로 나와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급히 달려가니 부대장님을 포함해 많은 장교들이 줄지어 서 있고, 어디에서인지 본 듯한 분이 보였다. 내가 서울제일교회에서 훈련받을 때 나이 많으신 어느 부인 자매님의 부탁으로 집에서만 지내던 아들을 만나 같이 밥도 먹고 잠시 교제도 했는데, 그분이 청와대 대변인이 되어 박 목사님을 뵈러 우리 부대에 오신 것이었다. 그분이 장교들과 부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나와 개인적으로 악수하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인사과 본부에서 나를 따로 불러서 물었다.
“너, 청와대 대변인과 어떤 사이지?”
“그냥 아는 사이입니다.”
“솔직히 말해 봐.”
“전에 식사도 했고, 가족들과도 아는 사이입니다.”
그날부터 모든 장교들이 나를 다른 눈으로 보고 아주 잘 대해 주었다.
청와대 대변인과 만나고 얼마 후, 100명이 넘는 합창단원과 스태프들, 박옥수 목사님과 동행한 분들, 그리고 우리 부모님, 모두 신원조회를 거쳐 부대에 들어오셨다. 무대를 준비하는 동안 부대장님께서 “그래도 손님인데, 공연 시작 20분 전에 만나 인사하겠다.”라고 하셨다. 박 목사님이 몇 분과 함께 부대장실로 가셨다. 하나님의 종을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리 강퍅하거나 거만하거나 어떤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더라도 말씀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다 바뀐다. 목사님이 10분 남짓 복음을 전하시는 동안 부대장님이 복음을 받아들이셨다. 나머지 10분은 양육의 말씀까지 들으셨는데, 한없이 감격스러웠다.
부대장님은 공연 시간에 맞춰 목사님과 함께 입장하셨고, 공연을 보고 목사님의 메시지를 들은 후 감탄을 하셨다. 하만의 조서로 인해 생겨난 죽음이 모르드개의 조서로 인해 기쁨으로 바뀌었듯이,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약속대로 부대와 부대장님을 복되게 하셨다. 그 모든 광경들이 내가 매일 반복해서 꾸었던 꿈 속의 장면을 보는 듯했다.

 

하나님이 나를 강건케 하시고
군대에서 복무한 2년 동안 하나님의 포상휴가를 많이 받아서 모두 16번 휴가를 나왔다. 그때마다 대전도집회, 월드캠프, 수양회 등 선교회의 모든 행사에 함께할 수 있었다. 한번은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면도칼로 팔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한 후임을 내가 발견해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온 부대와 부대원이 복을 입도록 많은 일들을 하셨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모든 부분에서 도우셨다. 애굽 왕 바로 앞에 서는 것이 부담스러운 모세 앞에 매일 기적을 보이셔서 모세를 담대하게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그렇게 일하셔서 나로 담대하게 하셨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도우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구나!’
부대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하신 수많은 일들을 다 간증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마음 깊이 경험하면서 평생을 복음을 위해 드릴 수 있도록 마음을 정하게 해주셨다. 여리고 약한 나에게 하나님은 계속하여 당신의 신실하심을 보이시고, 말씀을 이루어 나가셔서 나를 강건케 하시고 복음의 길로 인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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