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유두고를 살리시겠다!
예수님이 유두고를 살리시겠다!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7.03.2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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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설교
 

예수님이 유두고를 살리시겠다!

사도들 속에 계셨던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때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성령이 구원받은 우리 안에도 동일하게 있는데, 사도들에게 나타났던 그런 역사들이 오늘 우리 가운데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구원받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실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 계시던 하나님이 동일하게 우리 안에 계신다. 베드로나 바울처럼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들 속에 살아 역사하셨던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 안에 동일하게 살아 일하신다.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마음에 예수님이 함께하고 계신다.
그런데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기에 언뜻 볼 때에는 계시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우리만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2천 년 전에 사도들 속에 살아 역사하셨던 예수님이 동일하게 우리 안에 살아 일하고 계신다.

바울의 눈으로 볼 때에는 살아 있었다
사도행전 20장은 사도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에 참예할 수 있었는지 잘 이야기해 주고 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드로아에 잠시 머물다가, 다음날 떠나기 위해 그날 밤에 늦게까지 3층 다락에서 말씀을 전했다. 그때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서 말씀을 들으며 졸다가, 바울이 계속해서 말씀을 전하자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3층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행 20:9)
성경에서 분명히 유두고가 죽었다고 했다. 숨이 멎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유두고를 보고는 다르게 말했다.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행 20:10)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분명히 죽은 사람인데, 바울의 눈으로 볼 때에는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우리는 보통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들을 가지고 어떤 일이나 현상을 판단하거나 결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지는 않는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누구나 있다고 믿으며, 공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도 알고 있다. 예수님도 우리 손으로 만지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구원받은 성도의 마음 안에 분명히 계시며, 실제로 살아 일하신다.
유두고가 죽었을 때 바울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정말 어렵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바울은 죽은 유두고에게 작은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 자리에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를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바울이 예수님을 생각하다 보니, 예수님이라면 죽은 유두고를 살리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 마음에 ‘예수님이 이 사람을 살리시겠구나!’라는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형제를 못 본 척하지 않고 살리시겠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여러 일들을 만나고 겪는다. 우리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일을 만나기도 한다. 나도 어느 형제가 아파서 죽어가는 일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내 안에서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내 안에 분명히 주님이 계시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주님은 하신다. 만일 주님이 이곳에 오셔서 죽어가는 저 형제를 보신다면 어떻게 하셨겠는가? 형제를 못 본 척하며 그냥 지나가시지 않고 살리시겠다!’
마음에 믿음이 생겨서 형제에게 이야기했다.
“형제, 전기는 전선을 타고 흘러가고, 하나님의 역사는 마음을 타고 흘러가요. 형제 마음에서 예수님께서 형제를 능히 살리실 것이라고 믿으면, 그 믿음대로 예수님이 살아서 일을 해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예수님께서 그 형제를 살리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분명히 형제를 살리실 것이라고 믿는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예수님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형제에게 설명해 주었다. 형제가 예수님이 자신을 살리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형제는 내가 하는 말을 마음에 받아들였다. 예수님이 자신을 낫게 하실 것을 믿었다. 나는 형제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그리고 병실 문을 나가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형제, 빨리 일어나. 나, 갈게.”
열흘쯤 후에 형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저, 퇴원합니다. 어제 검사를 받았는데, 몸 어디에도 암세포가 없다고 결과가 나왔습니다. 완전하게 나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퇴원합니다.”
나는 한없이 기뻐하는 형제를 볼 수 있었다.

그 믿음대로 유두고는 다시 살아났다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사실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믿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참 믿음이다. 예수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살아 일하고 계신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예수님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이 이 형제가 아픈 것을 보고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이 못 본 체하고 지나가실까?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능히 형제를 고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믿음을 갖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유두고가 죽은 것을 보았다.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있던 형제들이 유두고가 3층 누에서 떨어진 것을 보고 내려가서 유두고를 일으켜 보니 분명히 숨이 끊어져 있었다. 바울은 생각했다
‘유두고가 죽었다. 그런데 예수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이 형제를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은 능히 유두고를 살리시겠다. 그래, 예수님이 살리시는 것을 믿자.’
바울은 예수님이 유두고를 살리실 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유두고는 다시 살아났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모든 일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도둑질을 하든 거짓말을 하든 죄를 짓는 것도 마음에서 시작되고, 선을 행하는 것도 마음에서 시작된다. 전에 우리는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들을 중심으로 일했고, 살아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는 마음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우리 삶은 달라졌다.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 속에 역사하시는 것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일을 계산할 때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가지고 계산하지 않고, 형편이 어떻든지 예수님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면 이 일을 하실까, 못 하실까? 하신다! 예수님이 이 형제가 병에서 낫는 것을 싫어하실까?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형제를 고치실 것이다!’
이렇게 믿음을 가질 때, 믿음대로 나음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것을 믿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 등장하시는 예수님이 지금도 그대로 살아 일하시는 것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베드로 속에 역사하신 예수님, 바울 속에 역사하신 예수님이 오늘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예수님이 우리 삶 속에서 일하실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면, 그때부터 예수님이 그 안에서 능력으로 행하신다. 그래서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예수님은 오늘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실 만한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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