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전할 때 가장 행복했어요
복음 전할 때 가장 행복했어요
  • 송태수 이지희 김건영 이영선 긴혜진
  • 승인 2017.03.2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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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기 단기선교사 간증

 

“제가 구원받고 나니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었어요.”
“저 같은 사람이 전해도 하나님이 일하셨어요.” “서툰 영어로 전해도 사람들이 구원받아 신기했어요.” 단기선교사 활동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일을 물으면 자신이 복음 전한 사람이 구원받아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들의 간증 속에 가득한 행복이
우리의 가슴도 뭉클하게 한다.

 

 

 

잠비아에 역사하시기 위해
나를 도구로 보내신 거야

송태수 | 잠비아 단기선교사

나는 불교 집안에서 자랐다. 군대를 제대한 후 대학에 다니다 봉사하며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해외봉사에 지원했다. 파견에 필요한 훈련을 받으며 처음으로 성경 말씀을 들었다. 교회에 다닌 적이 없다보니 출국하기 전까지 내 마음에 남은 말씀은 별로 없었다.
잠비아에 도착하자 이런 나를 위해 선교사님이 마음을 많이 써주셨지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9월 어느 날이었다. 현지인 집사님이 수요예배를 인도하실 때 내가 구원이 헷갈린다고 하자 집사님이 에베소서 2장 8~9절을 읽고 말씀을 전해주셨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막혔던 구멍이 뻥 뚫리듯 속이 시원했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내가 원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예수님을 통해 우리 죄를 씻으신 사실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구원은 나의 선한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죄 사함을 선물로 받는 것이었다. 구원을 확신하고 나니 내가 받은 구원을 잠비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11월 경에 잠비아 제 3의 도시인 은돌라 지역으로 전도여행을 갔다. 해질 무렵 마을에 도착해 같이 간 단기선교사와 처음으로 찾아간 집에서 돌카스를 만났다. 그는 고등학생으로 여동생과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는 다음 날 오신다고 했다. 돌카스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싶어 조심스럽게 “말씀을 전해도 될까?”라고 물었다. 갑자기 백인 두 사람이 성경을 들고 와서 묻자 돌카스는 무척 신기해 하면서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복음은 정말 귀한 것인데, 네가 복음을 잘못 알면 잘못된 음식을 먹는 것과 같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 죄가 이미 다 씻어졌어.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우리는 의인이 된 거야. 네가 잘못된 행위를 한다 해도 다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야. 죄를 씻기 위해 회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다 씻으신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거야.”
내가 말씀을 전할 때 돌카스가 내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행복했다. 돌카스는 질문도 많이 했다. 성경에는 우리가 회개하고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쓰여 있는데 그 말씀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다시 설명해 주었다.

 

“율법은 인간이 지킬 수 없는 법이야. 하나님은 그걸 이미 알고 율법을 주신 거야.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진정한 이유는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야. 하나님이 악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가 의인이 될 수 있었던 거야.”
설명을 듣고 돌카스가 굉장히 좋아했다. 복음을 다 전하고 난 뒤 “돌카스, 너는 의인이야 죄인이야?”라고 묻자 자신있게 “의인이에요.”라고 외쳤다. 정말 고맙고 행복했다.
돌스카는 우리 교회에도 가고 싶다며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말씀을 또 듣고 싶다며 다시 와달라고 했다. 복음을 듣고 난 뒤 그동안 자신이 잘못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돌스카의 모습이 무척 인상에 남았다. 우리는 전도여행 중에 하나님이 주신 돈으로 바나나와 먹을 것을 사가지고 돌카스를 다시 찾아갔다. 돌카스는 학교에 가고 없어 아쉬웠지만 대신 어머니에게 우리의 마음을 전해 주고 왔다.
나는 구원받은 후로 내가 받은 은혜를 전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100여 명에게 복음을 전한 것 같다. 전도하러 나가면 복음을 전하는 내가 더 신이 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복음을 전할 때도 많았다. ‘이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야.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하시는 거야. 잠비아에 역사하시기 위해 나를 도구로 보내신 거야.’하는 마음이 들며 무척 감사했다.
기근으로 죽어가는 사마리아 성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은 네 명의 문둥병자를 아람진에 보내 그들의 작은 발걸음으로 큰 울림이 되게 하셨다. 그처럼 하나님은 잠비아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나의 작은 발걸음이 잠비아에서 큰 울림이 되게 하셨다.
잠비아 리빙스턴교회의 김상빈 선교사님은 평소에는 무뚝뚝한데 말씀을 전하실 때에는 다른 분으로 변하신다. ‘대체 무엇이 선교사님을 저렇게 신나게 만드는 걸까?’ 하고 궁금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구원받고 나니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선교사님은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하시며 틈만 나면 단기선교사들을 복음을 전하라며 밖으로 보내셨는데, 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잠비아에서 많은 활동을 했지만 그 무엇보다 잠비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가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영어를 못하기에 복음을
못 전한다는 건 내 생각이었구나

이지희 | 미국 단기선교사

나는 어릴 때부터 일본에서 살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친구가 구원받아 교회에 나오는 것을 보고 기뻐서 복음을 많이 전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아 크게 실망한 후로는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됐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내가 좋아 보이는 것을 좇아 살았다. 그런 나에게 변화가 필요한 것을 아신 엄마의 권유로 미국으로 단기선교를 갔다.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미국에 가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미국 공항에 도착한 날, 교회로 가는 길에 사모님이 이제 막 미국에 도착한 나에게 복음을 전하고 오라며 차를 세우셨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순간 ‘내가 왜 여기에 왔지?’ 하며 잠시 후회가 됐지만 일본에서 게으르게 지내는 것보다 이곳에서 고생하면서 1년을 보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시 잡았다.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선교사님은 항상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행10:15)라는 말씀을 하시며, 계속 우리에게 온전하다고 하셨다. 이 말씀 안에는 영어도 들어 있고 복음도 들어 있고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하셨다. 그때 내 마음에서 ‘아멘’이 되었다. ‘내가 영어를 못하지만 말씀 안에 벌써 영어가 들어있으니 담대하게 복음도 전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전도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전도사님들이 “이 학생이 당신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일본에서 왔으니 이야기를 들어줘라.” 하며 나에게 사람들을 소개해 주셨다. 나는 영어를 할 줄 몰라 사모님이 가르쳐 주신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 말씀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Read. Read.(읽어보세요)”라고 하고, 또 “Nothing. Nothing.
(죄가 없어요.)”라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손가락으로 짚어주는 로마서 말씀을 읽고는 사람들이 “Ah(아하)”라고 하며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내가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복음을 못 전한다는 건 내 생각이었구나!’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부터 영어를 못해도 복음을 전하자고 결심했다.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 말씀만 말하며 다녀도 사람들이 구원받고 고맙다고 했다. 무척 신기했다. ‘내가 왜 이런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했지? 일본에서도 이렇게 복음을 전했더라면 일본 사람들이 구원받았을 텐데, 내가 이 귀한 복음을 귀한 줄을 모르고 살았구나.’ 하며 무척 후회했다.
그후 캐나다에서 열린 성경세미나에도 갔다. 성경세미나 마지막 날 전도를 나갔을 때 마지막으로 만난 분이 있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한 손에는 콜라를 들고 다니던 분으로, 우리를 따라 교회에 오셨다. 그후로 그분 소식을 모르고 지냈는데, 캐나다 교회 선교사님이 미국에 오셨을 때 그분의 근황을 이야기해 주셨다. 지금은 지팡이를 짚지 않고 교회에 나오고 계시며, “이제 허리가 다 나았어요.”라고 간증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콜라 대신 물을 드신다며 “그 형제님은 너희들이 너무 고맙고, 너희들을 너무 보고 싶다고 하셔.”라고 하셨다. 선교사님이 전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굉장히 감사했다.
당시 우리 단기선교사들은 성경세미나를 하루 앞두고 가장 바쁠 때 생각도 없이 빨래를 해서 사모님께 무척 혼이 났었다. 사모님은 꾸중하시고는 마지막에 “그래도 하나님은 너희에게도 500배로 일하신다고 하셨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죄송하면서도 감사했다. 생각이 모자란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크게 일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니 성경세미나를 홍보하는 내내 눈물이 났다. ‘나 같은 자에게도 하나님이 일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감사할 뿐이었다. 바로 그날 앞에서 언급한 콜라들고 다니던 아저씨를 만났고, 그분이 교회와 연결돼 구원받고 허리까지 나으신 것이다.
말이 서툰 단기선교사들이지만 그런 우리가 전도해도 사람들이 구원받았고, 불평불만이 많고 복음을 위해 살 마음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살게 하시며 모든 것을 이루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이미 닦아 놓고 인도하시기에 우리는 그냥 그 길을 가면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 무척 감사했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홍보할 때 이웃에게 쓴 편지를 들고 한 집 한 집 찾아다녔다. 하루 종일 걸어서 집들을 방문하다 보면 지치고 힘들 때가 많았다. ‘이렇게 땀 흘리며 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공연하는 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 편지를 누가 돌렸나요? 어떻게 우리 집에 주고 갔나요? 우리를 초청해 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라고 하고, “너희들이 초청장을 보내 줘서 좋은 공연을 볼 수 있었어. 내년에는 나도 꼭 기부를 하고 싶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어느 집을 방문했는지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불평하며 했든지 기뻐하며 했든지, 하나님이 그 많은 사람들을 보내주신 것이 놀랍고 감사했다.
2015년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관람하고 주소를 남긴 분들을 찾아가서 2016년에 갖는 공연에 다시 초청하고 성경세미나에도 초청해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나는 영어가 서툴기에 영어를 잘하는 분과 함께 집집마다 방문하여 미국에서 단기선교사로 활동한 이야기도 하며 복음을 전했다. 신기한 것은, 그분들이 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기뻐하며 칸타타에 꼭 참석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성경세미나에 참석해 구원받은 분도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여자인데 겉모습은 남자 같고, 마약도 하고 교회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았다. 집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무척 어두워 주춤했다. ‘이런 분이 칸타타에 오셨다니? 이분은 복음을 전해도 안 듣겠다.’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자 우리 생각과 달랐다. 자신의 모습과 죄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고 하며 복음을 받아들이고 무척 감사해 하셨다. 앞으로 성경공부를 하자고 하자 굉장히 좋아하며 빨리 시작하고 싶다고 하셨다. 놀라웠다.
복음 때문에 행복을 찾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한없이 기쁘고 더 행복했다. 미국에서 보낸 1년 동안 하나님은 내게 믿음을 하나 심어 주셨다. 바로 행복하다고 말하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무척 힘들 때도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하면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다. 복음을 전할 때 행복하고, 사람들이 구원받을 때 진정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은 내 삶을 맡아주시고

김건영 | 레소토 단기선교사

 

나는 어릴 때 교회에 잘 다녔지만 중학생이 되면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았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로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우리 집안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갈 때는 가족의 건강도 돌보고 안정되게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은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생활은 내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죽어라 공부했지만 성적은 쉽사리 오르지 않았다. 간호학과에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바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곳에 취업이 된다 해도 삶은 고통의 연속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며 삶이 무의미해지고 술을 마시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그러던 중 대만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고모부님에게 내 심정을 토로하자 대만에 한번 오라고 하셨다. 그때 대만에서 만난 단기선교사들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단기선교사들은 하나님과 늘 함께하는 선교사님의 삶이 정말 부럽다고 했다. ‘그런 삶이 어떤 삶일까?’ 내 마음에 고모부의 삶이 궁금해지며 단기선교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학교생활을 잘하려고 할 때는 되는 일이 없었는데 단기선교를 가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삶이 바뀌었다. 생각지도 않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고 레소토에 가는 비용도 하나님이 다 채워주시는 것을 보았다.
레소토에 가서 처음 전도할 때는 영어를 못해 자존심이 상하고 낙심이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복음을 받아들여 기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신이 나기 시작했다.
무전전도여행을 가서는 감사와 행복을 배웠다. 첫날 하테자니라는 동네에 도착해 방문한 첫 번째 집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기가 심하게 들었다. 레소토는 6월부터 8월까지가 겨울이다. 그때는 밖에 있는 것보다 집안에 있는 것이 훨씬 춥다. 감기가 점점 심해지자 ‘나 때문에 모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해는 지고 잘 집도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몸까지 심하게 아프다 보니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에서 길을 헤매다 집 하나를 찾았다.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룻밤을 묵었다. 그날 밤 나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복음을 전하러 길을 나섰는데 내일은 제 몸이 깨끗이 낫게 해주세요.” 다음날 아침 신기하게도 언제 아팠냐는 듯이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신기했다.

 

그 뒤로 나는 기쁘게 복음을 전했다. 몸이 지치고 걱정에 빠질 때도 있었지만 복음을 전하는 순간만은 어려움이 사라졌다. 그 시간만큼은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믿음이 커져 소망스러웠다.
하테자니에서 복음을 전하다 음포라는 고등학생을 만났다. 그가 우리를 자기 집에서 머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여 무척 고마웠다. 음포의 집에 가 보니 음포는 어린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아이의 아빠는 도망갔고, 음포는 자신을 정죄하며 살고 있었다.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내 손에 들려있는 성경 속의 복음이 그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했다.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음포는 자신의 가족에게도 복음을 전해 달라고 하며 가족들을 데려오고, 친구도 데려왔다. 복음을 들은 친구도 자신의 가족에게 복음을 전해 달라고 하며 데리고 와 마을 사람들이 거의 복음을 들었다.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행복했다.
한번은 한국에 계신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할머니는 내게 아주 소중하고 특별한 분이셨다. 내가 할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너무 괴로워 사모님과 교제를 했다. 사모님은 사르밧 과부의 가루 한 움큼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우리가 가진 것은 가루 한 움큼이지만 하나님은 끊이지 않는 가루와 기름을 준비해 놓으셨다고 했다. 우리가 가진 가루 한 움큼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 내 마음에 그대로 들어왔다.
하나님께 할머니의 건강을 맡기고 나는 단기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몇 달 후, 할머니가 건강을 되찾으셨고 집도 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이사한 집에 가 보니 지금까지 살았던 집 가운데 가장 좋은 집이었다. 지난 한 해 복음을 위해 사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 가족을 지키시고 좋은 집도 주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은 내 삶의 모든 부분을 맡아주시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복되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성경세미나 강사가 되어
행복했던 시간들

이영선 | 코트디부아르 단기선교사

 

나는 성경세미나 강사로 세 차례 말씀을 전하며 큰 은혜를 입었다. 현지에 도착한 지 두 달도 안 됐을 때, 선교사님은 나에게 지역 교회에 가서 성경세미나를 열어 강사로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하고 있지만 기초 알파벳만 아는 실력으로 갔기 때문에 강사로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는 선교사님께 “저는 못 합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면 구원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예요. 저는 안 됩니다.” 하고 계속 울며 말씀드렸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아, 내가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미나를 주셨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능히 이 일을 하게 하시겠구나.’ 하는 마음을 들었다. 지역 교회에 가서 청년 자매들과 같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성경세미나를 홍보했다.

 

드디어 세미나를 하는 날,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날 내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덜덜덜 떨다가 30분도 채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끝냈다. 너무 부끄러웠다. 같이 준비해 준 청년들에게 미안해 계속 울기만 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지만 결국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구원받는 사람도 없었다고 생각하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하나님은 왜 나에게 세미나를 하게 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한동안 마음이 무척 어려웠다. 나중에는 ‘첫 번째 성경세미나 때문에 두 번째 성경세미나에서 다시 강사로 설 수 있었지!’ 하고 감사한 일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 뒤 12월에 세 번째 성경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을 때, 첫 번째 성경세미나를 열었던 지역 교회의 현지 목사님과 이야기하다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나는 첫 번째 세미나를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오신 한 분이 지금까지 교회에 나온다는 것이다. 8개월 만에 그 소식을 들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게 떨며 복음을 전했는데, 그런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한 사람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분을 사랑하셔서 나 같은 사람이 전한 말씀을 듣고 구원받게 하셨구나!’ 하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세 번째 성경세미나를 준비하는 마음이 더욱 감격스러웠다. 이번에는 내 얼굴이 실린 전단지도 만들어 사람들에게 뿌렸다. 야외 장소에 천막을 치고 단상도 준비하고 의자도 깔고 마이크와 스피커도 설치하고 칠판도 세웠다. 나의 단기선교 활동 중에 가장 큰 성경세미나를 준비했다. 그리고 내 간증으로 말씀을 시작했다.
“제가 코트디부아르에 온 지 두 달도 안 되었을 때 처음으로 성경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불어를 잘 못했지만 그런 제가 전한 말씀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일하시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더라도 이 시간에 마음을 열고 들으시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담대하게 간증하면서 말씀을 전했다. 불어 실력이 더 형편없을 때에도 하나님이 일하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하나님이 일하시면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날 참석한 30여 명 가운데 여섯 사람이 구원받았다. 그 가운데 세 사람은 성경세미나 내내 일찍 와서 의자를 정렬하는 것도 도우며 맨 앞자리에 앉아 말씀을 들었다. ‘박옥수 목사님께서 이런 맛으로 복음을 전하며 사시는 구나.’ 하며 무척 행복했다.

 

나는 중학생 때 구원받았지만 복음 전도에는 관심이 없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단기선교를 와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니 어떤 말씀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몰라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불어판을 읽으며 공부했다. 복음 전할 때 때로는 책 내용을 그대로 읽어주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 ‘이 말씀이 이런 내용이었구나. 이 말씀이 여기 있었네. 이게 이런 의미였구나.’ 하며 ‘사람들이 이 내용만 제대로 알면 다 구원받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성경세미나 때에는 내가 다 망쳤다는 좌절감에 헤맸지만, 두 번째 성경세미나에서는 내가 복음을 새로 듣는 것 같았고, 세 번째 성경세미나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다 사하고 구원을 완벽하게 이루어 놓으신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어 말씀을 전하는 내가 오히려 더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모국어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감사했다. 하나님이 올해 내게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행 13:47)라는 신년사 말씀을 주셨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얻은 귀한 복음을 이제는 모국어로 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 같은 사람이 복음을 전해도
하나님이 일하시는구나

김혜진 | 잠비아 단기선교사

 

잠비아에 도착한 지 두 달쯤 됐을 때다. 컴퓨터 수업 중이었는데 한 학생이 컴퓨터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왔다. 다른 단원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내가 그와 이야기했다. 어디서 왔고 이름이 뭐고 가족은 몇 명인지 물어보고 나니 무슨 이야기를 더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사모님이 ‘아카데미 친구들과 친해져서 집에도 찾아가고 복음도 전해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아, 복음을 전해야겠다’ 하고 성경을 가지고 나왔다.
“에멜다, 죄가 있어요?”
“예. 있어요.”
“왜 죄가 있어요?”
“죄를 지으니까요. 하지만 회개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내 죄를 잊어버리세요. 또 죄를 지으면 다시 회개해요.”
나는 어릴 때부터 죄 사함의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에멜다의 말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아 성경을 펴놓고, 잠비아에 오기 전 아버지가 마련해 주신 복음이 담긴 영어 성경 구절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다 가지고 가신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에멜다는 또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했다. 내가 다시 여러 예화를 들어 설명하자 에멜다가 죄가 없다고 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에멜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가져가신 사실을 기억하면 돼.”
마음이 울컥했다. 나는 어릴 때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죄 사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에멜다가 답답했다. ‘이렇게 쉬운 이야기를 왜 모르는 거지? 아, 잠비아에 이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겠구나.’ 나는 복음 아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잠비아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잠비아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복음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사모님이 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고 복음을 전하면 기쁘다고 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엄청난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입을 다물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 많은 집 문을 두드리고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할 때쯤 선교사님이 무전전도여행을 보내셨다. 막상 무전전도여행을 간다고 생각하니 여러 가지 걱정이 올라왔다. 한 언니에게 그런 내 마음을 말하자, 언니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한 후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다시 감사하다고 기도하라고 일러주었다. 사모님께도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사모님은 “너는 새로운 피조물이야. 모든 문제는 너를 위해 살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야. 너는 예수님을 위해 살 수 있는 사람이야. 네가 예수님을 위해 살면 예수님이 너의 모든 것을 채워주실 거야. 무전전도여행을 가서도 복음을 많이 전하고 와.”라고 교제해 주셨다. 나는 두 분의 교제를 마음에 품고 무전전도여행을 떠났다.
히치하이킹으로 7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하니 오후 5시였다. 걱정이 올라와 언니가 가르쳐준 대로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들이 잘 곳이 없는데 잘 곳을 주세요. 감사합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는 마음으로 걸어가다가 한 교회가 보여 들어가니, 기도회 모임 중이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러 온 단기선교사라고 소개하자 말씀을 전하라고 하여 고린도후서 말씀을 펴고 간증하며 말씀을 전했다. 말씀을 마치자 장로님이 우리를 목사님 댁에 데려다 주셨고, 목사님은 한 집사님 댁으로 안내해 주셨다. 집사님 댁은 생각보다 좋은 집이었다. 가족도 많았는데, 할머니는 우리가 전도하는 동안 계속 그 집에 머물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머물 좋은 집을 주셔서 감사했다.
그런데 내가 처음부터 너무 편한 집에서 지내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하자, 다른 선기선교사들과 갈등이 생겼다. 우리끼리 이야기해서는 결론이 나지 않아 선교사님께 연락해 여쭈었더니, 선교사님이 어려운 길로 가라고 하셨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을 먹고 그 집에서 나와 온 종일 복음을 전하러 다녔다.

 

선교사님은 4일간 사람들을 모아서 성경세미나를 하라고 하셨기에, 처음 방문했던 교회와 마을에서 즉석으로 성경세미나를 가졌다. 전도하다가 시간을 정해 사람들을 초청해서 복음을 전했다. 다음날에도 그렇게 했다.
마지막 날 아침에는 처음 우리를 영접해 주신 할머니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 우리에게 밥과 잠자리를 주신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간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다른 단기선교사들은 아들과 딸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는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 가운데 딸이 구원을 받았다. 할머니는 구원받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할머니에게 말씀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길 기도하며 나왔다.
우리는 전도여행 중 마지막으로 성경세미나를 가질 장소로 갔다. 2시부터 홍보하여 오후 3시에 세미나를 시작했다. 그런데 3시가 다 됐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우리는 복음 들을 사람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잠시 후 빨래터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정장 차림으로 성경을 들고 오셨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리가 처음에 방문했던 교회 사람들도 오고, 상점 사람들도 오고, 우리가 처음 머물렀던 집의 아들 등등. 너무 놀라웠다.
내가 복음을 전하고 나서 “여러분, 의인입니까?” 하고 묻자, 교회 목사님의 아들과 빨래터에 만난 아주머니가 의인이라고 손을 들었다. “맞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때문에 의인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신기하게 영어가 막힘없이 술술 나왔다. 영어를 잘하려면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사모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복음을 전할 때는 하나님이 내 부족함을 채우시는 것이 보였다.
성경세미나를 마치니 저녁 7시가 넘었다. 머물 곳이 없어 걸어가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친구 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밥도 먹었다. 밤 11시가 다 되었는데, 같이 간 자매님이 나에게 주인 아저씨께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 너무 피곤했지만 ‘하나님이 주신 집에서 잠만 잘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다. 아저씨는 시의원 출신이었는데, 얼마 전에 면직당했다며 자신도 하나님을 믿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하는지 괴롭다고 했다. 나는 아저씨에게 내 간증을 하고 복음을 전했다. 아저씨가 말씀을 받아들이고 무척 고마워하셨다.
그날 밤 잠을 자려고 누워 생각하니, 힘들면 쉬고 싶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내가 4일 동안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무전전도여행을 올 때 들었던 두 가지 말씀이 나를 지켜주신 것 또한 감사했다. 사람을 만나면 복음 전하고,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고 문제를 아뢰었을 뿐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셨다.
한국에서는 복음의 ‘복’자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아프리카에 가서 부족한 영어로 복음을 전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구원받고 고마워하고 먹을 것도 주는 것이 감사했다.
‘내가 가진 복음이 능력이구나. 나 같은 사람이 복음을 전해도 하나님이 일하시는구나.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시는구나.’
내가 복음을 전해 구원받은 사람과 무전전도여행에서 복음만을 전할 수 있었던 시간을 떠올릴 때면 그 어느 때보다 기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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