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의 형통과 평안을 구하지 말라
모압의 형통과 평안을 구하지 말라
  • 이헌목(기쁜소식양천교회 목사)
  • 승인 2017.03.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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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삶
 

모압으로 내려간 엘리멜렉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던 때에 엘리멜렉의 가족이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내려가는 이야기가 룻기 1장에 나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떡집, 교회를 의미)에 흉년이 들자 그 어려움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이끌고 모압(세상)으로 내려간 엘리멜렉은 얼마 안 되어 죽고, 10년쯤 지났을 때에는 두 아들마저 죽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어떤 경우에도 모압으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의 평생에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지니라.”(신 23:6) 그런데 엘리멜렉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채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행복을 얻으려고 모압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평생에’ 그것도 ‘영영히’ 구하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모압으로 내려간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얼마나 큰 시련과 고통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라도 주의 몸 된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눈으로 교회와 종을 판단하고, 세상의 평안과 형통을 얻으려고 생명보다 귀한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내려가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을 성경은 엄중히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이며, 그 아내 나오미는 ‘희락, 즐거움’입니다. 이들의 아들 말론은 ‘병든 자’이며, 기룐은
‘낭비하다’입니다. 이들이 베들레헴을 떠난 결과 두 아들은 그들의 이름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의 몸도 마음도 다 병들고, 모압에서 지낸 10년의 세월을 허비하고 낭비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고난을 피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으로 내려갔는데, 모압에 대한 교훈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 23:3)
모압 자손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집안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딸 사이에서 나온 족속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을 받는데, 롯은 아브라함을 떠나서 평안과 형통을 얻으려고 물이 넉넉하여 목축을 하기에 적합한 요단 평지를 택하여 갔습니다.
얼마 후, 롯은 소돔 성으로 옮겨가 살면서 그곳 사람들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했고, 날마다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심령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그 성에서 나올 줄 몰랐습니다. 결국 소돔 성이 멸망할 때 나왔는데, 그때 두 딸을 통해서 부끄러운 저주의 자손인 모압과 암몬 족속이 시작되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압은 구원받았지만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을 떠난 롯에게서 나왔으며, 이 모압의 경고는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주는 교훈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오는 평안이나 행복에 마음을 조금도 두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의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치 아니하였도다.”(렘 48:11)

모압이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않았다는 말은, 어려움도 없고 고난과 역경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정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곳처럼 보입니다. 모압은 포로가 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포로(종)는 자기 뜻을 내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늘 자기를 비우고 꺾어야 합니다. 모압은 포로(종)가 된 적이 없기에 순종하거나 복종해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자신의 뜻을 세우며 살아왔습니다.
또한, 모압은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다’고 했습니다. 술을 담은 그릇은 위가 맑아 보여도 아랫부분에는 찌끼가 있습니다. 그 찌끼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맑은 술을 다른 그릇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때 많은 찌끼가 제거되지만, 술을 옮겨 부을 때 함께 들어간 찌끼가 있어서 다시 아랫부분에 가라앉습니다. 그 찌끼를 제거하기 위해 다시 술을 옮겨 담습니다. 이처럼 옮겨 담는 과정을 통해 찌끼가 다 걸러지고 맑은 술이 됩니다.
모압은 이처럼 찌끼를 제거하지 않고 거만하게 살아온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모압처럼 육신의 찌끼를 제거하지 않고 지냅니다. 이 육신의 찌끼들은 교회에서 마음을 꺾는 여러 일들을 통해서, 교제하거나 책망을 받으면서, 혹은 고난을 받으면서 주님이 제거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
모압은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아 그 맛이 남아 있고 그 냄새가 변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압의 맛과 냄새를 싫어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의 원래 맛과 냄새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술의 찌끼가 제거되지 않아서 맛과 냄새가 남아 있는 것같이, 교회 안에서 자신이 꺾이지 않아서 자기 모양 그대로 자신의 냄새를 풍기면서 교회를 어지럽게 만듭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자신의 성격이나 판단과 주장 등 자신의 맛과 냄새가 사라지고 삶에서 바로 그리스도의 냄새를 나타냅니다. 그와 반대로 어떤 성도는 구원받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원래 성격이나 습관, 사고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압을 저주하셨듯이 그런 성도를 악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나오는 인간적인 생각과 삶의 방식을 다 제하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인간의 찌끼를 제하셔서 모압(세상)의 맛과 냄새를 없애고 그리스도의 맛과 냄새만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 그리스도의 향기니 …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고후 2:15~16)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그릇을 기울여 찌끼를 제하심으로 우리의 맛과 냄새를 없애 우리를 모압의 길에서 옮겨 주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 우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도록 우리를 이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찌끼가 다 제해지고 우리의 원래 맛이 없어지며 그 냄새가 변하기까지 오늘도 우리의 그릇을 기울이시고, 내일도 기울이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서 생명에 이르는 냄새를 온 세상에 풍기길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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