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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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준(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17.03.2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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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길(제3강)
 

제3강 부활(復活)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복음에 대해 이야기한 말씀을 읽어 보면, 복음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 그리고 부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돌아가셨지만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하늘나라에 속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예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누리고 계시는 안식이 우리에게도 찾아옵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나라로 옮겨진 사실을 발견하면 영원하고 완벽한 쉼을 삶 속에서도 누릴 수 있습니다.


죽음과 부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가 심판 받을 죄가 전혀 남아 있지 않도록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 우리 죄를 도말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누구의 죄라도, 단 한 사람의 죄도 빠짐없이 씻어지도록 인간의 죄를 직접 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볼 때에는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을 믿으면 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이삭 앞에 나아가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리브가를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의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게 해주신 일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셨다는 것은 사망을 이기고 승리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사망을 이겼다는 것은 곧 죄를 이겼다는 것입니다. 사망을 이기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죽은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망이 지상 최대의 정복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망을 정복한 정복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다른 이름은 ‘이김’입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은 그 큰 능력으로 우리 삶도 돕고 인도하십니다.


부활하심으로 얻은 이 세상
창세기에서 요셉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보디발의 아내가 누명을 덮어씌워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에 갇힌 요셉에게는 소망도 없고, 감옥에서 나갈 방법도 없었습니다. 요셉이 스스로는 감옥에서 나갈 수 없었지만 바로 왕이 나오게 해주자 쉽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지은 죄가 없었지만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옥에서 나온 요셉을 애굽의 총리를 삼아 가족을 살리시고 애굽의 모든 사람들을 살리신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도 이 세상을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하게 하셔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만드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자신에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말을 듣고 그에게 경배해서 이 세상을 얻으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권세를 깨트리고 이 세상을 얻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4~15) 이 말씀대로 마귀는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잡은 마귀의 머리를 밟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실패하신 것처럼 보였겠지만,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세상을 다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얻으신 이유는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 말씀에서 이러한 사실을 발견한 후, 저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발을 내딛어 모든 곳에서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구원받은 우리를 송사할 수 없고,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다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활의 목적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5)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피조물로서 주님을 위해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미 새롭게 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이미 끝내셨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주를 위해 살 수 있는 사람들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네시모가 감옥에 있었지만,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구원받은 그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오랫동안 교회와 복음을 핍박했던 사람이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은 사도바울의 모습을 보시지 않고 그를 이방인의 빛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것을 말씀에서 발견하여 받아들이면 우리 마음이 하늘로 옮겨지며 주님의 일꾼으로 살게 됩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3~4)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소망을 주셨고 변하지 않는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잇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하늘에 간직해 놓으신 소망과 기업을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복음의 도구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데 아무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만드신 것, 그것이 예수님의 부활이 갖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 이김
2016년 여름에 저는 제 아내가 암에 걸린 것을 알았습니다. 아내의 몸이 좋지 않아 부산에 있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니, 췌장암 말기이며 암이 십이지장과 담도까지 전이되어 약 3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도 똑같은 진단을 내렸습니다.
아내의 몸에 심한 황달이 나타나고 몸이 죽어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 아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30년 넘게 주님만을 섬겨온 제가 아내를 위해 줄 수 있는 것은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예수님, 복음뿐이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데리고 거제에 있는 조용한 펜션으로 가서 몇 주 머물면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성경은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면 죽을 몸도 산다고 되어 있다. 당신 마음 안에 성령이 계시냐? 당신이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갈 때 예수님께서 당신의 손을 잡아 주시냐? 예수님과 함께 그 강을 건너갈 수 있냐?”
죽음 앞에 서 있는 아내에게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생각하며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아내의 마음에 분명한 복음과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풀밭에 앉아 한여름의 뙤약볕을 쬐면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저 나무와 풀들이 나보다 더 건강하구나. 나는 이렇게 생명이 꺼져 가는데, 한낱 피조물인 저 나무와 풀들은 무슨 권세로 푸른 생명력을 뽐낼까? 하늘의 저 새들은 무슨 권세로 저렇게 힘 있게 날갯짓을 하는 걸까? 아, 그것은 말씀의 힘이구나!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지금까지도 저들을 붙들고 있구나! 나 또한 말씀의 능력으로 아버지 나라인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고, 수정 강물 가에서 아버지와 함께 거닐 수 있는 권세를 얻었지!”
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으로서 아내의 마음에 계시며, 그 주님이 병을 고치신다는 약속을 받아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아내를 볼 때 감사합니다.
비행기가 땅에 있지만 그것은 하늘을 날기 위한 준비입니다. 잠시 후면 하늘을 날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이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이 세상을 얻으셨고, 이 세상의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찾아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모든 것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다윗의 삶에는 늘 죽음이 가까이 있었습니다. 고난과 환란과 핍박이 그의 삶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들로 인해 다윗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이 그를 지키고 보호하셨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아무리 거센 강물과 뜨거운 불꽃이라도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하는 사람들을 해할 수 없습니다. 노아가 온 땅을 덮은 홍수 속에서 살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는 길에서 살았으며,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가 되시고,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부활에 참예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행복입니다.

부활이 주는 소망
매미, 잠자리, 나비 등과 같은 곤충들은 애벌레로 살다가 하늘을 나는 성충이 됩니다. 애벌레로 살아가는 세계와 날개를 가지고 하늘에 속해 살아가는 세계는 완전히 다릅니다. 매미가 벗어놓은 허물을 보면 껍데기만 있고 실체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매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매미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해서 높은 가지 위에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세상에 속한 세계가 있고, 하늘에 속한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외세의 지배를 받던 때에도 마음이 새로운 세상에 속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세의 힘에 굴복하며 살았지만 가슴에 새로운 나라를 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망과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당장의 영광과 출세에 관심을 두지 않고 어려움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9~20)
성경은 마음에 부활이 없이 이 세상의 것을 전부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은 불쌍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하박국 선지자는 악하고 타락한 바벨론의 갈대아인들이 형통하는 것처럼 보이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옮겨 주셨고, 하박국은 자신이 보는 것과 이 세상에서 마음이 떠나 형편과 상관없이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세계가 옮겨진 사람이 가지는 소망이자 행복입니다. 여러분 모두 눈에 보이는 일이나 나타나는 것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펼쳐져 있는 새로운 세계에서 행복을 누리며 하늘나라의 상을 위해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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