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본도 되네요
이제 일본도 되네요
  • 월간 기쁜소식
  • 승인 2017.04.2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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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일본 귀국발표회

매년 2월 국내 10여 개 도시에서 열리던 단기선교사 귀국발표회가 올해 처음으로 일본 후쿠오카와 히로시마에서 열렸다. 이 일은 일본 선교사史에 큰 획을 그었다. ‘일본은 안 돼!’라는 생각이 빠지고 ‘일본도 되네요!’가 성도들의 마음에 가득 채워져 모두 행복했다.

후쿠오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

_이진호(큐슈교회 선교사)

나의 가장 큰 재산은 실패
2016년 9월 초에 <라이쳐스 스타즈>가 나고야에서 축제에 참가한 후 돌아가는 길에 오사카에 들러 같이 식사를 했다. 그때 박정영 목사님이 “박옥수 목사님이 해외에 가서도 귀국발표회를 하자고 했습니다. 오사카에서 귀국발표회를 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오사카에서 귀국발표회를 하려면 경비도 많이 들고 이동하기도 어려워 틀림없이 후쿠오카에서 하게 될 텐데, 어떻게 하지?’ 갑자기 부담이 밀려왔다. 10월 말, 예상대로 후쿠오카와 히로시마에서 귀국발표회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17년 간 일본에서 선교하며 주님은 실패를 통해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무능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임을 가르쳐 주셨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다 ‘지금까지 실패했는데 한 번 더 실패한다고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주님이 귀국발표회를 기뻐하시니 해보자. 아무것도 안 하고 실패하느니 차라리 귀국발표회를 해보고 실패하자’ 하고 기쁜 마음으로 귀국발표회를 준비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셔!
2017년 새해가 시작되고 현장 답사를 위해 한국에서 김성은 목사님과 이경호 목사님이 일본에 오셨다. 목사님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박옥수 목사님의 마음을 전달해 주었다.
김성은 목사님이 처음 귀국발표회를 담당할 때 마음이 어려워서 박 목사님을 찾아가자, 목사님이 “책을 출판할 때 하나님이 도와주셨고, 선교사를 보낼 때 하나님이 도와주셨고, 그라시아스합창단을 만들 때 하나님이 도와주셨어. 귀국발표회도 하나님이 도와주셔!”라고 하셨다며, 나에게 “매일 아침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를 30번씩 외치세요. 하나님이 반드시 일하십니다.”라고 하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매일 아침 그렇게 외쳤다. 외치자 마음에 믿어졌고, 그 말씀이 모든 부담과 어려움을 이기게 해주었다.

후원 명의를 받게 하신 하나님
하루는, 인도에서 12만 명에게 말씀이 전해진 놀라운 일이 생각나 인도의 김수연 목사님께 전화했다.
“인도에서는 어떻게 사람들을 초청해 12만 명이 모일 수 있었습니까?”
“다른 방법은 없어. 높은 사람을 많이 만나. 그러면 그분들이 사람을 모아줘.”
김수연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마음에 자리를 잡아, 주일 예배 때 “하나님이 높은 사람들을 만나라고 하십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높은 사람을 만납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아오야마 집사님 마음에 믿음이 일어나 시의원, 현의원, 국회의원 가릴 것 없이 전화하고 약속을 잡았다. 나는 집사님과 함께 후쿠오카 시와 후쿠오카 현의 여러 정치계 인사들을 만나 후원을 부탁하고 각 기관에 홍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던 중 1월 9일 한국에서 온 귀국발표회 준비팀과 함께 국회의원 오니키 마코토를 만났다. 그분은 해외봉사활동을 통해 마음이 바뀐 단원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이런 단체라면 후원 명의를 내줘도 된다.”며 바로 후쿠오카 시와 연결해 주셨다. 후원 명의를 신청하면 심사하는 데에만 10일 정도 걸리는데, 우리는 1시간 만에 후원 명의를 받았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라고 하신 말씀이 우리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기쁨을 금할 길이 없었다. 후쿠오카 시의 후원 명의를 받은 이후로 하나님께서 계속 길을 열어 주셨다. 후쿠오카 시교육위원회, NHK 후쿠오카방송국, 주 후쿠오카 대한민국총영사관, 후쿠오카 문화예술진흥재단으로부터도 후원을 받았다.

 

후원 명의를 받은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몰랐다

5개 기관에서 얻은 후원 명의로 전단지를 만들고 손편지를 썼다. 그리고 학교, 공민관(주민센터), 자치회, 기업 등 단체를 찾아다니며 홍보를 시작했다. 후쿠오카 시에는 산하기관으로는 공민관이 147개 있고, 공민관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6개 있다. 관리 사무실에 인쇄물을 가져다주고 다음 날 가니 147개 공민관에 우리 인쇄물을 다 넣었다고 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아주 쉽고 즐거웠다.
한번은 전단지를 들고 학교에 찾아가 “후쿠오카 교육위원회의 후원을 받았는데 학생들과 학부모, 선생님들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이 학교 학생들이 몇 명입니까?”라고 묻자 “850명입니다.”라고 하여 전단지 850장을 주고 왔다. 그렇게 학교에 다니며 하루에 수 만 장의 전단지를 돌렸다. 나중에는 전단지가 모자랐다. 매일 저녁,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홍보를 마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오늘 이렇게 일하셨습니다.”라고 간증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일한 게 없다
일본 사역자들은 귀국발표회를 위하여 일한 게 없었다. 이런 큰 행사를 치러 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한국에서 격주로 목사님들이 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고 이끌어 주셨다. 임민철 목사님은 “우리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불신을 누가 넣어 주었습니까? 근거 없이 올라오는 생각을 왜 용납해 주고 처리하지 않고 삽니까? 귀국발표회는 마음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된다고 믿으면 되고, 안 된다고 믿으면 안 됩니다.”라고 하며 우리 마음에 믿음을 심어 주셨다. 이헌목 목사님은 어떻게 VIP를 만나고 어떻게 마인드강연을 하는지 일본 선교사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 주셨다.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들과 지내며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하나님이 이미 일본 선교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 된다’는 생각에 갇혀 아무것도 못 하고 살았던 것이다.

우리도 행복하다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복음의 소식을 들으면 ‘나도 다른 나라 선교사들처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며 씁쓸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귀국발표회를 준비하는 두 달 동안 즐겁고 행복했다. 공연 당일 저녁 6시, 상파레스 홀 로비에 나가 보았다. 공연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공연을 보려고 줄을 서 있었다. “일본은 복음 전하기 좋은 나라야.”라고 하신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날 1천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즐거워했다. 어느 새 내 가슴도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우리도 행복하다.’ 마음에서 주님께 감사했고, 이렇게 이끌어 주신 목사님께 감사했다. 행사를 준비한 형제 자매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흘렀다.

마인드 강연이 일본을 바꾼다
박옥수 목사님은 귀국발표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떠나시기 전, 선교사들에게 진지하게 교제해 주셨다.
“삼성 제품과 애플 제품이 호환되면 아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고 많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호환되고 하나님의 종과 내가 호환되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과 호환되게 하셨습니다. 일본에는 마인드강연이 정말 필요합니다. 마인드강연이 일본을 바꿀 것입니다.”
목사님은 앞으로 일본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일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셨다. 우울증, 이지메 등으로 마음이 상한 사람들이 마인드강연을 통해 복음을 듣게 하실 주님의 계획을 생각하니 마음이 뜨거워진다.
두 도시에서의 공연이 끝나고 일본에 남아 계셨던 이헌목 목사님이 “그라시아스음악학교 학생들이 오후에 공연할 수 있는 장소를 알아보라.”고 하셨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안 될 것 같았다. 하나님은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짓밟고 대적하는 악한 마음’인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래, 물러서지 말고 종의 음성을 받아 발걸음을 내디뎌 보자.’ 
공연에 오셨던 나카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 전화했다. 그분은 오후에 행사가 있어서 안 되겠다고 하며 “이번 공연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이런 공연인 줄 몰랐습니다. 아주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셨다. 무척 감사했다. 다시 우리를 도와주셨던 노다메 공민관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두 사람밖에 없는데 오시겠습니까?”라고 하여 “한 분만 있어도 갑니다.” 하고 달려가니, 네 명이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과 강연을 들으신 관장님이 “이렇게 좋은 공연을 넓은 곳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며 앞으로 기회가 되면 공연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하나님께서 귀국발표회를 본 인사들과 마인드교육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다. 마지막까지 마음을 이끌어 주신 하나님과 한국의 목사님들께 감사했다. 내년에는 더 많은 도시에서 공연할 것을 소망한다.

 

10년 전에도 이렇게 일하고 싶으셨을 텐데

_김점희 (큐슈교회 사모)

일본에서 귀국발표회를 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왜 하필이면 후쿠오카야? 일본은 사람들이 안 모여서 힘들어!’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귀국발표회 준비가 시작되고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과 교제하던 중 지금까지 내 생각과 싸우지 않고 받아들인 것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고 말씀을 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신다. 하나님이 일본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여 주겠다.” 하신 박옥수 목사님의 마음을 받아들이자, 우리는 쉬고 말씀이 일하는 것을 보며 한없이 행복하고 감사했다.
하루는 국회의원을 통하여 후쿠오카 시의 후원 명의를 받았고, 그 후 교육위원회의 후원 명의를 얻었다. 국회의원은 우리 전단지를 손에 들고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이렇게 훌륭한 공연이라면 후쿠오카 시가 후원하겠습니다.”라고 하셨다. 마음에 정한 대로 역사한다는 종의 말씀대로 우리는 홀이 가득 찰 것을 믿고 홍보하기 시작했다. 매일 소망스러웠다. 학교, 관공서, 자치회, 정내회, 어디든 들어갔고 시간이 부족해서 학교를 다 찾아가지 못하는 행복을 맛보았다. 전단지를 받은 선생님들이 “자리가 부족하면 어쩌지요?”라고 같이 걱정하며 웃었다. ‘하나님은 정말 일본에 일하고 싶으셨구나!’ 하는 사실을 알았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니까 일이 쉽고 아름다웠다.
온 마음으로 식사 준비를 하면서 행복해하던 자매님들, VIP를 만나며 행복해하던 집사님들, 멀리서 기도와 물품과 후원금으로 함께한 형제 자매님들, 자신의 집을 식사를 준비하는 데 쓰라고 기쁨으로 내주신 자매님 등, 이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행사 준비를 해본 적이 없었다.
2월 27일 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로 가득 찬 홀을 보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하나님이 10년 전에도 이렇게 일하고 싶으셨을 텐데, 정말 감격스러웠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귀국발표회를 준비하는 동안 교회의 이끌림을 받는 행복 속에 지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앞으로 하나님이 마인드강연을 통해 일하실 것이 기대된다.

 

히로시마

일본 열도가 복음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_신진호(일본, 히로시마교회 선교사)

일본에서 귀국발표회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박옥수 목사님이 “귀국발표회는 히로시마에서 하면 좋아. 그곳에 사는 내 사촌동생들이 아는 분들을 초청해서 하면 돼.”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내 마음을 그 한마디가 깨끗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래, 맞다. 하나님께서 히로시마에서 귀국발표회 하는 것을 기뻐하시는구나!’
행사 준비를 위해 가장 시급한 문제는 좁은 히로시마 예배당을 넓은 곳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어느 날 인터넷에 합당한 건물이 나와 있어서 연락해 보니, 이미 심의 중이며 팔기로 결정되었다고 했다. 우리에게 꼭 맞는 건물이었기에 직접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주소를 들고 찾아갔다. 건물 1층 유리창에 ‘세 놓습니다’라는 문구가 아직 있어서 연락해 보니 아직 아무와도 계약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날 바로 접수하고 심사를 거쳐 3개월 뒤인 1월 30일에 이사할 수 있었다. 귀국발표회를 위해 더 크고 좋은 건물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한 부분 한 부분 섬세한 손길로 이끌어 주신 것이 무척 감사했다. 또한 히로시마의 상징과도 같은 평화공원에 있는 국제회의장의 피닉스 홀이 우리가 원했던
2월 28일에 공연 일정이 비어 있었던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들이 “뭐라도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하며 박 목사님의 마음을 전해 주신 것이 매우 감사하다. 형제 자매들과 단기선교사들이 오전에 홍보하러 나설 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를 외치며 히로시마 시민들을 향해 당당히 나아갔다. 그리고 저녁에 돌아와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간증하고,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31) 말씀으로 새 힘을 얻었다.
여기저기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일본 교회들이 다 감사와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 찼다. 하나님께서 박 목사님의 사촌동생들을 통해서 일을 시작하셨다. 아라이종홍, 아라이종철, 아라이종익 세 분을 통해서 히로시마 시의원인 후지타 히로유키를 만났고, 의원님의 소개로 부시장인 타케우치 이사오를 만나 면담하며 히로시마 시와 교육위원회의 명의 후원을 얻어 학교에 홍보하는 데 큰 힘을 얻었다. 그리고 아라이종익 형제님과 친분이 있는 토미나가 켄죠 현의회 의원님을 통해서 현의 교육위원회 명의 후원도 받았다.
순차적으로 현의 명의 후원도 받아 시와 현에 속한 학교는 어디든지 찾아가서 귀국발표회를 알렸다. 그리고 청소년 육성 일을 하는 이시바시 린타로 현의회 의원님을 통해서 현 부지사님과 이헌목 목사님과의 만남도 이루어졌다.
우리가 학교마다 전달한 전단지를 우리 교회의 주일학생들과 중학생들이 학교에서 받아들고 올 때마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한 어머니는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가져온 전단지를 보았다며, 영어학원 선생님과 꼭 가겠다고 일부러 전화를 주셨다.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무료 초대권을 보내 달라고 연락이 왔다. 히로시마 TV의 생방송에 출연하는 은혜도 입었다. 단기선교사들은 상점과 가정집을 방문하며 홍보했는데, 여러 가게에서 1천엔, 2천엔, 1만엔씩 후원도 하고, 음료수와 생라면도 후원해 주었다. 식당에 음식을 먹던 어느 손님은 귀국발표회 홍보를 듣고 카레 600인 분을 후원해 주기도 했다. 
박옥수 목사님이 우리 안에 넣어 주고 싶으셨던, 발을 내디디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믿음. 이번에 우리는 한국에서 온 여러 목사님들과 지내며 그 믿음에 연결되었고, 연결된 마음으로 힘있게 일할 수 있었다. 그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이제 일본은 믿음의 날갯짓을 힘차게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귀국발표회가 일본에서 시작되어 무척 기쁘고 감사하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하나님이 일본 열도를 복음으로 가득 채워 주실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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