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내딛기만 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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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 김현정 기자
  • 승인 2018.03.07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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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골라 루안다 교회
 

이리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글 | 오정환(기쁜소식성북교회 목사)

가만히 있지 말고 설쳐라
2016년의 일이다. 어느 날 교회 청년들과 같이 모임을 갖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아프리카 사람

 

둘이 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종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지 말고 설치고 다니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고, 평소에 길에서 만나는 모든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곤 했기 때문에 얼른 가서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대화해 보니, 두 사람은 앙골라 대사관 직원이었다. 그들과 명함을 주고받으며 대사관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는데, 그 뒤로 그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달 뒤, 코아펙KOAFEC이라는 경제장관 회의가 있었다. ‘2016 코아펙’에 아프리카 장관들 50명이 들어와서 우리나라와 무역을 논의하는 행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사전에 접수하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데, 우리는 앙골라 대사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뚫고 들어갔다. 그때 앙골라 영사를 만났고, 내가 앙골라 대사관을 방문하고 싶다고 하자 오라고 했다. 일주일 뒤 우리는 앙골라 대사관을 찾아가 대사를 만났다.
그때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대사님이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에게 갑자기 화를 냈다. 당신들은 거짓말쟁이라고 하면서, 책상 서랍에서 사진을 하나 꺼내서 보여 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2012년에 굿뉴스코해외봉사단 귀국 페스티벌에 참석했어요. 그때 페스티벌 관계자가 우리 대사관을 방문하겠다고 해서, 그때 찍은 기념사진을 바로 어제까지 4년 동안 내 책상 위에 두었어요. 나는 주한 대사 직을 마지막으로 공인의 삶을 마치는데, 앙골라에 좋은 청소년 단체를 세우고 싶어서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오지 않다가 왜 이제 왔어요?”
우리를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바로 전날 사진을 서랍 속에 집어던져 놓았는데, 그날 아침에 우리가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후, 대사님에게 IYF에 대해 설명하며 우리가 앙골라를 방문하고 싶다고 하자 다녀오라고 했다.

 

무작정 “앙골라!”라고 외쳤다
한 달 후인 2016년 11월, 앙골라를 방문하기로 했다. 나미비아를 경유해서 앙골라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앙골라는 비자 받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앙골라는 포르투칼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브라질 교회에서 통역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통역해 줄 분이 비자 문제로 제 날짜에 오지 못해서 나미비아의 홍기용 선교사님과 우리 부부만 앙골라에 들어가야 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현지에서 우리를 마중 나올 사람도 당연히 없었다. 브라질 팀이 먼저 들어와야 일이 진행될 텐데, 앙골라로 들어가기 전날까지 우리를 반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미비아로 가기 전날 밤에 차를 타고 가는데, 젊은이들이 길에 서서 아무리 비키라고 해도 비켜 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의 발음이 조금 이상했다. 그들을 겨우 비켜서 지나갔는데, 차를 타고 가다가 그들이 아무래도 앙골라 사람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밤에 그들을 찾아다녔다. 찾을 방도가 없어서 그냥 “앙골라!” “앙골라!”라고 무작정 외치면서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앙골라!!!” 하고 외치자 한 사람이 술에 취해 나와서는 왜 우리나라를 찾느냐고 물었다. 그가 나온 장소를 보니, 파티 중이었는지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발음이 꼬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들은 앙골라에서 온 유학생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앙골라에 방문하기 위해 머나먼 한국에서 왔는데 혹시 아는 사람이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청년들이 종이에 무엇인가를 적어서 주었다. 한 청년은 자신의 아버지가 공군 대령이고 큰 교회의 목사라고 했다.
그들과 헤어져 늦은 밤에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를 타는데, 통역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영어를 포르투갈어로 통역해줄 사람을 찾는다고 소리치며 다녔다. 그러니까 주위에서 조용히 하라고 난리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가운데 마침내 한 사람을 찾게 되었고, 그가 우리가 영어로 말하면 포르투갈어로 통역해 주어서 출국장을 통과할 수 있었다.

앙골라에서 만난 하나님의 도우심
앙골라에 도착한 후, 나미비아에서 구원받고 앙골라로 돌아간 앙골라 사람인 자매가 있었는데 그 자매와 연락이 닿아 만날 수 있었다. 그 자매에게 전날 유학생 청년들이 써준 쪽지를 보여 주자, 쪽지에 적힌 한 이름을 보고 “이 목사님을 한 시간 전에 만났어요.”라고 했다.
그분의 이름은 ‘순고’였다. 순고 목사님은 성도가 500~600명인 교회의 목회자로, 자매가 잘 안다며 바로 전화를 걸었다. 자매가 순고 목사님에게 우리를 소개하자 목사님이 아들에게서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오는지 몰라서 도울 수 없었다고 했다. 순고 목사님은 시간을 내 우리와 동행하며 여러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리는 청소년부와 교육부를 방문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2017년 여름에  청소년부 차관이 한국에서 열린 월드문화캠프에 참석했으며, 강연도 했다.
그 후 선교회 본부에서 앙골라에 교회를 세우기로 했고, 2017년 10월에 브라질에서 선교하던 오정원 목사가 파송되어 교회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앙골라를 사랑하셔서 앙골라에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놀라웠다. 복음이 아직 들어가지 않은 나라에도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기대와 소망이 넘친다.

 

 

복음과 마인드교육으로
앙골라를 덮고 싶다

글 | 오정원(기쁜소식앙골라교회 선교사)

나는 2005년에 브라질로 단기선교를 갔다. 그곳에서 1년 동안 사랑을 받고, 브라질 교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한국에 돌아갈 때에는 브라질로 다시 와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교회의 은혜로 마하나임신학교에 입학하고, 2006년 11월에 다시 브라질에 파송되었다. 이후 11년을 브라질에서 살았다. 이제는 브라질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더 편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의 앙골라로 파송이 결정되었다. 처음에는 싫은 마음밖에 없었다. 그런데 앙골라로 파송이 결정되기 직전에 참석한 멕시코 월드캠프에서 박옥수 목사님께서 사역자들에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분은 선하시기에 그분이 하시는 일은 모두 선한 일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 그 마음을 가지고 앙골라에 왔다.
우리가 앙골라로 출발하기 전에 한국에서 마인드 강사가 앙골라에 올 것이라는 소식을 이미 들었기에, 10월 4일 앙골라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곳을 다니며 마인드교육을 소개하고 일정을 잡았다.
11월 21일에 앙골라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아고스찡뉴 네또 대학교’에서 마인드 강연을 했다. 학장님과 부학장님이 마인드 강연을 무척 좋아해서 새학기가 시작되면 지속적으로 마인드교육을 할 예정이다.
하루는 청소년부 차관과 만났는데, IYF의 프로젝트는 아주 좋지만 정부 기관에 등록되지 않아 일할 수 없다고 하여 IYF를 NGO 단체로 등록하는 일을 준비하고 있다.
앙골라에 와서 보니, 국민들이 너무 힘들게 살고 있었다. ‘이들은 무슨 소망을 갖고 살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국민들은 2017년 8월에 선출된 대통령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변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 시기가 마인드교육을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인 것이다.
최근 박옥수 목사님께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대통령을 만나 복음을 전하시는데, 앙골라에서도 이런 일이 성사될 줄로 믿는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하며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아프리카로 보내 한 번도 꾸어본 적이 없는 큰 꿈을 주셨다. 복음과 마인드교육으로 앙골라를 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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