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를 뿌리고 열매를 기다리는 농부의 즐거움
씨를 뿌리고 열매를 기다리는 농부의 즐거움
  • 이가희 기자
  • 승인 2018.08.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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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시작    배고파도 내일을 위해 

 

먼 옛날, 사람들은 야생에서 자란 밀을 채집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어요. 그리고 먹다 남은 밀알을 버렸지요. 그런데 얼마 뒤, 밀을 버린 곳에서 밀 싹이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 때까지 야생밀이나 곡식이 있는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며 살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씨를 뿌려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양식을 발견해서 몇 끼는 배부르게 먹을 수 있지만 얼마 안 되어 다시 먹을 것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나야해. 지금 배불리 먹는 것보다 조금 배고프더라도 덜 먹고 밀알을 땅에 뿌리면 나중에 훨씬 많은 양식을 거둘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농사를 시작한 사람들은 살기 좋고 비옥한 땅을 찾기 시작했어요. 지중해 동쪽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주변은 땅이 좋고 물을 쉽게 끌어올 수 있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지요. 그런데 비가 내리면 두 강이 넘쳐흘러서 홍수가 잦았어요. 자연스럽게 물을 관리하는 관개시설이 발달했고 나중에는 밀 수확량이 크게 늘어나서 남은 양식을 저장할 창고가 필요할 정도였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한 곳에서 잘 먹고 잘 살면서 인구도 빠르게 늘어나 도시가 생겨났어요. 세계 최초의 문명이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우연히 버린 밀 알갱이 하나로 발견한 농사’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어요.
메소포타미아에는 풍부한 식량 말고는 자원이 없었기 때문에 둥그런 바퀴가 달린 수레를 만들어 운송수단을 발전시켰어요. 사람들은 인근 지역의 물건과 식량을 교환하며 활발히 교역했어요. 교역을 하면서 거래 내역을 기록해야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림문자, 기호 등을 만들었고 문자가 빠르게 발달했어요. 이 문명을 이룬 사람들을 ‘수메르인’이라고 불러요. 여러 도시들이 발달하면서 도시들끼리 전쟁이 자주 일어났고 수메르인들은 회의를 열어 왕을 뽑았어요. 하지만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땅은 잦은 농사로 인해 더 이상 기름지지 않았고 건조한 날씨로 인해 강에서 끌어온 물이 증발되면서 땅에 소금기가 남았어요. 소금기가 있는 땅에서는 더 이상 밀을 수확할 수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굶주려 목숨을 잃었지요. 결국 기원전 2350년 경 메소포타미아 북쪽에 생긴 아카드의 사르곤 왕이 수메르인들의 땅을 빼앗았고 농사로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결국 잦은 농사로 인해 망하고 말았어요.

 

 

 

 

농부들의 생각 엿보기    좋은 열매를 더 많이 얻기 위해

 

땅이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죠.
땅을 다스리며 어떻게 농사가 발전했는지 알아봐요.

 

철제 농기구의 발전
쇠로 만든 농기구를 사용하기 전, 돌이나 나무, 청동으로 농기구를 만들어 쓸 때에는 한번 농사를 지으면 그 땅은 5~10년은 지나야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었어요. 땅이 힘을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철제 농기구를 쓰기 시작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어요. 농기구가 튼튼해 땅을 깊이 팔 수 있게 되었거든요. 땅을 깊게 파면 공기가 잘 통해서 땅이 숨을 잘 쉬고 땅을 갈아엎을 때 잡초도 함께 땅속에 묻혀 거름이 되어 땅이 더 기름지고 이전보다 잡초도 덜 올라와요. 철제 농기구를 쓴 뒤로는 한번 농사를 지은 뒤, 2~3년 정도만 땅을 묵히면 다시 새로 농사를 지을 수 있었어요.
가축의 이용
하지만 철제 농기구를 이용해 땅을 뒤집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어요. 보통 농작물의 뿌리는 20cm까지 뻗는데 철제 농기구만으로는 흙을 깊이 파헤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가축을 이용하기 시작했어요. 동양에서는 주로 소를, 동남아시아에서는 물소를, 서양에서는 말을 이용했어요. 가축을 이용하면서부터는 땅을 1년만 쉬게 해도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었어요.

다양한 농사법의 발전
더 좋은 열매를 더 많이 얻기 위해 사람들은 땅을 연구를 했어요. 유럽에서는 가축의 똥으로 비료를 만들어 쓰고, 동양에서는 가축이 귀했기 때문에 사람의 똥을 모아 비료를 만들어 썼어요. 그래서 동양에서는 똥을 모으는 화장실 문화가 발전했고 서양에서는 중세 시대 내내 화장실을 모르고 살았어요. 대신 동양인들은 인분을 비료로 사용해서 기생충에 시달려야 했지요.
1840년 독일의 과학자인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질소, 인산, 칼륨이 식물의 성장을 돕는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는 이 세 가지 요소로 화학비료를 만들려고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1908년 프릿츠 하버라는 과학자가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화학비료를 만들었고 그 덕분에 같은 넓이의 땅에 훨씬 많은 작물을 키울 수 있었어요. 이렇게 농업의 발전은 ‘땅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활용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해온 과정이에요.

 

날씨

비와 햇빛, 바람 등 날씨를 예측하지 못하면 농사를 망쳐요.

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농부의 지혜를 알아봐요.

 

 

 

지혜로운 농부    바보농부 기무라 아키노리
“농사는 자연이 짓고 농부는 그 시중을 든다”

‘아삭!’ 하고 베어 물면 입안에 상큼한 과즙이 퍼지는 사과!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죠? 그런데 이 사과가 19세기 전에는 너무 맛이 없어서 주스를 만들어 먹거나 관상용으로 썼다는 걸 알고 있나요? 19세기에 농약이 개발된 뒤로 지금 우리가 먹는 맛있는 사과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어요. 그 후로 농약과 비료 없이 맛있는 사과를 생산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에 도전한 농부가 있었어요. 그는 바로 일본인 기무라 아키노리. 그는 1949년 아오모리현에서 대대로 사과를 재배해온 농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는 29세가 되던 해에 사과 재배를 시작했어요. 그는 우연히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업>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농사는 자연이 짓고 농부는 그 시중을 드는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농법입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풀잎 하나도 만들 수 없어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드는 겁니다.”라고 했어요. 그는 큰 깨달음을 얻고 농약과 비료 없이 사과를 재배하기로 결심했어요. 하지만 농약을 끊은 첫해 수확량이 10% 밑으로 떨어졌고, 이듬해에는 꽃도 피우지 못하고 사과를 한 알도 얻지 못했어요. 결국 그의 사과밭은 벌레천국이 되었고 사과나무들은 하나, 둘 죽어가기 시작했어요.
기무라 씨와 그의 아내, 장인, 장모 넷이서 해가 뜰 때부터 저물 때까지 열심히 벌레를 잡고 잡초를 뽑았지만 사과나무는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했어요. 4년 뒤, 가족들을 먹일 음식조차 구하지 못했어요. 그는 결국 도쿄로 가서 막노동을 하고 공원에서 잠을 자며 사과농사를 이어가려고 노력했어요. 결국 그의 부모님조차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그와 인연을 끊었어요. 사람들은 그를 불가능한 일을 계속하는 바보라고 생각했어요. 6년째가 되자 나무가 반으로 줄어 400그루만 남았어요. 그는 너무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산으로 올라갔어요. 그가 나뭇가지에 밧줄을 던지는 찰나 밧줄이 엉뚱한 곳으로 떨어졌고 순간 그는  야생의 나무들을 바라봤어요.

 

 

‘저 나무들은 돌보는 사람도 없는데 저렇게 튼튼할 수 있을까? 벼에 낟알을 맺게 하는 것은 벼이고,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게 하는 것은 사과나무야. 인간은 그저 자연의 심부름을 할 뿐이야.’
그는 자연이 사과나무를 키울 것을 믿었어요. 그리고 10년 만에 ‘무농약 · 무비료 사과 재배’에 성공했어요. 지금 기무라 씨의 사과는 온라인에서 3분 만에 품절되고 이 사과로 만든 수프를 먹으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해졌어요.
그의 가족들조차 그를 미련한 바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잔꾀를 부리지 않고 비료, 농약이 없어도 사과가 열릴 것을 믿으며 한 걸음씩 내디뎠어요. 그리고 그 기다림의 결과로 ‘기적의 사과’라고 불리는 열매를 얻었어요. 그는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농부였답니다.

 

 

 

 

마음 농부    마음을 경작하는 농부

농부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 먼저 씨앗을 심을 수 있게 땅을 정리해요. 잡초를 뽑고, 돌멩이들을 모두 없애지요. 그리고 흙덩이들을 부숴서 공기가 잘 통하게 한 뒤 미생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줘요. 그 땅에 곡식, 채소, 과일 나무 등을 심고 열매를 수확하는 것이 농부의 가장 큰 기쁨이에요. 땅을 경작하는 농부도 있지만 성경 속에는 우리의 마음을 경작하는 농부가 나와요. 바로 예수님이시지요.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나사로가 아프다는 소식을 전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예수님은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뒤에 마르다와 마리아를 찾아오셨어요. 마르다는 빨리 나사로를 고치러 오시지 않은 예수님을 원망했어요.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또 “네 오라비가 살리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며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예수님은 마르다의 마음에 심겨진 ‘나사로는 죽었어’라는 절망을 뽑고 ‘나사로가 산다’는 소망을 심으려고 하셨어요.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만나자마자 소망의 말씀을 전하셨지만 둘 다 믿지 않았지요.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도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지만 그때도 마르다는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며 끝까지 자기 생각을 말했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귀로는 듣지만 마음으로 받지 못하던 마르다는 ‘아, 오빠가 산다고 하는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일하시고 오빠가 살아나는 영광을 보겠구나. 그래, 내 생각을 버리고 돌을 옮겨보자’라는 마음이 들면서 돌을 옮겨 놨어요. 그리고 나사로가 무덤 밖으로 살아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지요.

 

 


농부들이 들에 씨앗을 심고, 논에 모내기를 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뽑아내고 하나님의 마음을 심으세요. ‘이건 안 돼. 불가능해’라는 생각이 뽑히고 하나님이 심은 마음이 싹이 트고 잎사귀가 올라오면 하나님은 정말 기뻐하십니다.
여러분도 예수님께 “난 못해요. 전도도 못하고 기도도 못해요. 난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노는 게 더 좋아요.”라고 할 때가 많지 않나요? 그 마음 그대로 예수님께 말하세요. 그러면 예수님은 그 마음을 뽑아내시고 여러분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마음을 심으십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 영광, 소망이 열매 맺기를 기쁨으로 기다리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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