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앉은뱅이로 살았던 이유는 ...
그가 앉은뱅이로 살았던 이유는 ...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8.11.0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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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설교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사도행전 3:6~7)

 

왜 이 사람을 오랫동안 앉은뱅이로 살게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들은 정말 놀랍다. 우리는 그냥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의 귀한 일꾼으로 이끌고 계시며, 우리를 돕고 계신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가 성전에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만났다. 이 앉은뱅이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기 때문에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베드로가 그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일어나 걸었다.
단순한 줄거리의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에서 놀라운 부분은, ‘다른 사람은 건강하게 사는데, 하나님께서 왜 이 사람을 오랫동안 앉은뱅이로 살게 하셨을까?’라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이 앉은뱅이를 통해서 정말 귀한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때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셨다
베드로도 앉은뱅이를 걷게 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고, 그 일로 마음에 깊이 가책을 받아 예수님의 제자라는 자리를 버리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갈릴리 바다로 갔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로 가셔서 베드로를 위해 숯불을 피워 놓고 밤새도록 기다리셨다가, 새벽에 베드로를 만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에게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여 고기를 많이 잡게 하셨다.
베드로가 뭍으로 올라왔을 때, 예수님은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숯불을 피워 그 위에 물고기와 떡을 구워 놓고 계셨다. 그리고 고기를 잡던 제자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으라’고 하셨다. 아침을 먹은 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다.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세 번을 물으셨고 베드로는 세 번을 그와 같이 대답했는데, 그때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셨다.
베드로는 너무 놀랐다.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는데, 자기는 예수님과 함께 있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서 다시 어부가 되려고 했는데, 거기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는 그렇게 주님의 은혜를 입어서 다시 복음을 위해 나섰고,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수님을 증거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그 뒤 성전에 올라가면서 앉은뱅이를 만났을 때, 옛날에는 그의 마음에 자신이 살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살아 계시니까 그를 일으키고 싶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며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고, 큰 능력이 나타났다.

걷고 뛰었을 뿐 아니라, 오천 명이 구원받는 일이…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연약함과 부족함을 알고 계신다. 그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해 예수님을 의지하게 하신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큰 일을 예수님을 의지하여,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게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이나 부족함은 예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힘입었을 때 능력의 일꾼이 되는 것이다.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살았던 사람이 베드로를 만나서 일어섰다. 그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행 3:7~8)
그때 성전에 있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그가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을 보고,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는 심히 기이히 여겼다. 사람들이 다 그를 쳐다보고 있는데, 이 사람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베드로와 요한을 잡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전부 ‘솔로몬의 행각’이라고 불리는 행각에 모였고, 거기서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앉은뱅이가 걸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사도행전 4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행 4:3~4)
오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가 전한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루에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베드로가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만났고, 그를 일으킨 일로 말미암아 그처럼 귀한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건강하게 걷는데, 난 왜 못 걷지? 하나님이 왜 나에게는 이런 어려움을 주셨지?’
이 사람은 40여 년 동안 앉은뱅이로 고생했다. 그런데 베드로를 만나 병이 나아서 걷고 뛰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일로 말미암아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구원받는 놀라운 일이 이루어졌다. 앉은뱅이는 그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기쁘고 감사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나에게 이처럼 귀한 일을 하시지?’ 말할 수 없이 놀라웠을 것이다.

연약할 때, 힘이 없을 때, 왜 그렇게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하시는 것이 전부 그와 같다. 우리는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왜 겪는지,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을 왜 당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려고 모든 준비를 하고 계시는 것이다.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 와스디가 왕의 부름을 받고도 가지 않았다. 그로 말미암아 와스디가 폐위되고, 에스더가 왕비가 되었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장차 하만이 유대인을 멸하려고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계략을 바꾸는 일에 에스더를 사용하시기 위해 이루어진 일이었다. 와스디가 그냥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에스더를 세우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이다. 에스더가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유대인을 전부 멸하려고 한 하만의 계획을 무너뜨릴 수 있었고, 유대인들이 그 나라에서 존귀를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신 것이다.
우리는 앞날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준비하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가 때로 앉은뱅이로 있을 때, 연약할 때, 힘이 없을 때, 왜 그렇게 있는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능치 못하신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될 줄을 확실히 믿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 아래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어려운 것이 아니고 고통스럽다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실 크고 놀라운 계획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잠시 당하는 어려움 때문에 불평하지 말자. 하나님이 큰 일을 이루려고 하시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으로 마친다면, 지금 겪는 어려움은 어려움으로 끝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쁨으로 받는다면, 그 어려움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광스러운 일이 될 줄로 확실히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