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삶이 신기하고 행복해요
내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삶이 신기하고 행복해요
  • 홍지영(기쁜소식합천교회)
  • 승인 2019.02.03 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쁜소식 2019년 2월호
보배와 질그릇

 

피부병과 앞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이삼십 대를 보내야 했던 홍지영 자매.

의사는 절망적인 상황을 말했지만 홍 자매는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마음에 담았고, 그 소망이 빛을 보게 했다.

그는 지금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눈으로 보며 살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실까?
나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에서 한 약품 회사에서 경리일을 하며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했다. 그때 나는 몸이 뚱뚱했고 예쁘지도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부모님을 원망했다. 살을 빼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체중은 늘 그대로였고, 항상 스트레스 속에서 살았다. 어느 날 과장님이 약국에서 반품된, 살을 빼는 약을 주셨다. 반가운 마음에 그날부터 바로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달쯤 뒤부터 얼굴에 물집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물집이 터지면서 얼굴 전체로 번지고 차츰차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얼굴과 두피는 머리카락으로 최대한 가리고 몸은 옷으로 가리며 회사를 다녔다.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고, 피부과 전문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까지 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5년 정도 회사에 다니다 그만두고 부모님이 계시는 합천으로 왔다. 부모님은 직장에 다니셨기에 나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외출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책과 라디오 방송이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럼 예수님께서 제 병도 다 낫게 하셨네요
부모님은 절실한 불교 신자였다. 나 역시 부모님을 따라 절에 다녔고, 교회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찾아오셨다.  내가 아프기 전에 기쁜소식창원교회에 다니시는 외숙모가 ‘기쁜소식’과 신앙 서적을 많이 가져다 주셨는데, 나는 교회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책을 구석에 던져놓고 보지 않았다. 그런데 몸이 아프니까 구석에 처박혀 있던 책들에 손이 갔다. 한 번 두 번 읽으면서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실까?’ 하고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 외숙모가 창원에 놀러오라고 하셨다. 나는 외숙모가 믿는 하나님이 궁금해서 옷을 몇 벌 챙겨 창원으로 갔다.
내 몸과 얼굴은 온통 진물 투성이었고 붉은 반점으로 덮여 있었다. 머리는 진물로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었고 냄새도 심했다. 그런데 외숙모는 그런 나를 전혀 더럽다고 하지 않고 머리카락을 한 가닥 한 가닥 넘겨가며 약을 발라주고 사촌동생과 밤마다 기도해 주셨다. 부모님께 느꼈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숙모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런 마음을 갖고 계실까?’ 그때부터 말씀을 듣고, 마음껏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쁜소식창원교회 부인회에도 참석하고 목사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목사님은 내게 “아가씨, 마음이 많이 어렵죠?”라고 물어보며 복음을 전해주셨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 착하고 성실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목사님은 내가 죄인이고 악하고 거짓된 자라고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는지 정확히 말씀해 주셨다. 내 죄와 질병과 고통을 모두 십자가에 못 박으셔서 내 죄가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졌다고 하셨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동안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이 내 마음에 그대로 들어왔다. 그 순간 굉장히 평안하고 좋았다. 교제 후 목사님께서 말씀이 믿어지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예. 그럼 예수님께서 제 병도 다 낫게 하셨네요. 저는 이제 아픈 사람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이네요.”라고 했다. 그때 나는 스물 네 살이었다.
나는 그렇게 교회의 가족이 되었다. 어느 누구도 흉하게 변해 있는 내 모습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오히려 따뜻하게 감싸주셨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마음을 교회 형제 자매님들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특송도 하고, 온 마음으로 교회와 함께했다. 그리고 외숙모와 함께 처음으로 겨울 수양회에 갔고, 복음반에서 히브리서 10장
14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말씀을 듣고 다시 한 번 구원을 확신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도 잠시
수양회 후에 합천 집으로 왔다. 외숙모의 부탁으로 기쁜소식합천교회의 목사님이 우리 집에 오셨고, 나는 합천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교회에 다니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신 부모님은 내가 교회에 가는 것을 찬성하셨다. 신기하게도 그 후로 진물로 뒤덮여 있던 피부도 깨끗해지고 머리카락도 자라나고,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직장도 갖고 운전면허증도 취득하고 차도 생겼다. 파마도 하고 예쁜 옷도 사 입고 화장도 하며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얼마 뒤 교회에서 예배당을 건축한다고 했다. 교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컸기에 나도 건축을 위해 헌금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도 잠시,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은 것처럼 나에게도 생각 하나가 들어왔다. ‘그 돈이면 예쁜 옷도 사고 예쁜 신발도 사고, 영화도 볼 수 있는데, 너무 아깝다.’ 난 결국 그 생각을 따라갔고, 그때부터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것을 사먹고, 영화도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며 살았다. 합천읍에 나가면 교회의 형제 자매님들을 만날까봐 늘 피해 다녔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어서 좋았다. 가끔 예배당 건축 현장 근처에 가서 몰래 보고 돌아오곤 했다.

시력을 완전히 잃어서 혼자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느 날 퇴근하는데 내가 운전하는 차가 중앙선을 넘어 반대차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눈앞이 뿌옇고 흐리게 보였다. 간신히 집에 돌아와서 다음날 합천에 있는 안과를 찾아가서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나는 의사로부터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 안압이 너무 높아서 약으로도 낮출 수 없고 녹내장이 의심된다고 했다. 소견서를 적어 주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나는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큰 병원에 가지 않고 부모님에게도 그 사실을 숨겼다.
3일 정도 지나자, 회사에서 글씨를 적는 것도 읽는 것도 힘들었다. 눈이 점점 이상했다. 그날 점심을 먹고 소화가 되지 않아 합천에 있는 한의원에 갔다. 의사는 내 피부를 보고 아토피가 있는 것 같다며 같이 치료하자고 했다. 나는 녹내장도 치료해 줄 수 있냐고 물었고, 의사는 가능하다고 했다. 그때부터 눈에 침을 맞으며 한약도 함께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눈이 안 좋으면 안과에 가야 하는데 그때 내가 왜 미련하게 한의원에서 치료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눈은 점점 보이지 않고 피부에서 다시 진물이 나서 결국 직장도 그만두었다. 나는 다시 혼자 집에 있었다. 온 몸에 수건을 감싸고 머리에도 수건을 뒤집어쓰고 지냈다. 또 다시 내 얼굴은 괴물로 변했고 머리카락은 다 빠져 흉측했다. 시력을 완전히 잃어서 혼자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부모님께 걱정만 안겨주는 딸이 되어버렸다. 부모님과 난 웃음을 잃어갔다. 부모님은 나를 위해 헌신적인 사랑으로 위해 주셨다.
그런 나에게 교회 자매님들이 찾아와 주시고 교제해 주시고 말씀을 전해주셨다. 그러나 그때 나는 ‘하나님은 무슨 하나님? 하나님은 없어.’ 하며 마음에는 원망밖에 없었다. 눈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교회 사모님이 서울에 장로님이 운영하시는 한의원에 가보길 권유하셨다.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교회와 관련된 병원은 싫다고 하셨다. 나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 주냐?’며 부모님께 짜증을 냈다. 결국 부모님은 병원에 진료를 예약하셨다.
온몸에서 진물이 나고 피부가 갈라져서 5시간 동안 앉아서 간다는 것은 무리였다. 아빠 차의 좌석을 침대로 만들어 누워서 갔다. 그렇게 가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한의원에 들어서는 순간, 병이 다 나은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살이 점점 깨끗해졌다. 한 달에 한 번씩 한의원에 갔고, 6년 동안 치료를 받았다. 원장님은 내가 빠르게 호전되는 것을 보고 “지영아, 다 나으면 아프리카에 봉사 다니자.” 하셨다. 무척 감사했다.
나에게 감기는 최고의 적이었다. 면역력이 많이 약했기에 감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결국 무서운 감기가 나에게 찾아왔고, 나는 감기를 이길 수 없었다. 점점 밥을 먹지 못했다. 약도 몸에 흡수되지 않았다. 또 다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또 부모님의 마음을 울렸다. 밥을 먹지 못해 몸은 말라 갔고, 먹으면 토할 것 같은 생각에 음식을 전혀 씹어 삼킬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사모님은 ‘생각을 버리고 먹어야 된다’며 ‘하나님이 사람은 다 먹을 수 있게 해놓으셨다’고 하면서, 내 옆에 쓰레기통을 놓더니 토해도 먹으라고 하셨다. 억지로 먹으라고 하시는 사모님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모님의 말씀이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밥 한 숟가락 입에 넣지 않았다. 먹는 거라고는 물과 음료 정도였다.

하나님이 반드시 자매 눈을 뜨게 하실 거야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이런 나를 다 아시고 박옥수 목사님을 기쁜소식거창교회에 방문하게 하셨다. 2015년경이었다. 나는 새벽 말씀을 전하신다는 박 목사님을 만나러 새벽 3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교회로 갔다. 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새벽 말씀이 끝난 후 목사님과 상담했다. 박 목사님은 내가 구원받았는지를 먼저 물으셨다. 그러고는 말씀을 시작하셨다.
“자매, 우리 몸은 감옥에 가둘 수 있지만 마음은 몸과 달라서 어디든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하나님은 어떠한 일도 불행으로 끝나게 하시지 않고 모든 것을 행복으로 바꾸시는 분이야.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져. 하나님이 자매 눈을 반드시 뜨게 하실 거야. 밥도 많이 먹고, 지팡이 짚고 교회에 가서 말씀도 듣고 교제도 하고, 방안에 가만히 누워 있지만 말고 지팡이 짚고 여기저기 다녀.” 그렇게 말씀하고는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그때 아버지가 박 목사님의 손을 붙잡고 ‘우리 딸만 살려주시면 교회도 다니고 하나님도 믿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바로 교회에 나오시지는 않고 나를 교회까지 태워다 주기만 하셨다.

그때 나는 30대였지만 몸의 나이는 어린 아기였다
박 목사님과 교제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내 생각 속에 갇혀서 밥을 먹지 않았고, 결국 탈수현상으로 합천병원에 입원했다. 하루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설사를 했고, 결국에는 기저귀에 대소변을 해결해야만 했다.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보고 가족들도 포기하고 교회 형제 자매님들도 포기했다고 했다. 내 상태는 더 심해져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병원에 실려 가고 입원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모님 말씀으로 그때 나는 죽은 사람과 다름없었다고 한다.
병원에 입원해서 많은 검사를 한 결과 간수치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헤모글로빈 수치도 3이고, 심장도 불안정하고, 신장 투석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약물치료 후 결과를 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그때 난 산소호흡기와 심장박동기도 착용하고 있었다. 피가 부족해서 팔에는 링거 바늘 5개로 수혈을 받았다. 조금씩 차도가 있어서 신장 투석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여전히 음식을 섭취하지 못해 수액으로 영양 공급을 대신했다.
15일 동안 입원한 후 추석이 되어 퇴원했다. 나는 기저귀를 차고 휠체어에 몸을 옮겼다. 움직일 수 없어서 아버지가 나를 업고 휠체어에서 내려 방으로 옮겨 주셨다. 엄마는 밤마다 내 기저귀를 갈아 주느라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다. 그때 나는 30대였지만 몸의 나이는 어린 아기였다. 부모님은 내가 욕창이 생길까봐 내 몸을 늘 움직여 주셨다. 가족들이 모인 추석은 정말 슬픈 날이었다.
며칠 뒤 기침이 심해서 새벽에 다시 병원에 갔다. 폐에 물이 찼고, 맥박이 계속 떨어지고 혈압도 떨어진다고 했다. 다시 산소호흡기와 심장박동기를 착용했고, 중환자 병동에 입원했다. 그때 나는 시간과 날짜 개념이 전혀 없었고 내가 기억하는 것은 심장박동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삐...” 소리뿐이었다. 내 팔에는 여전히 링거 바늘이 여러 개 꽂혀 있었다. 바늘을 꽂을 때마다 간호사의 한숨소리가 먼저 들렸다.

38년 된 병자에게 은혜 입혀주신 예수님이 나도 일어나 걸어가게 하시겠구나
그때 난 정말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링거 바늘만 없으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바늘을 뽑고 싶었지만 팔을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 후로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휴대폰이 울려도 받을 힘조차 없었다. 모든 것이 귀찮았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신이 전혀 없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합천교회 목사님의 전화는 받았다. 그때마다 목사님은 잠언 18장의 14절의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말씀으로 교제해 주셨다. 그러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죽고 싶어서 링거 바늘을 뽑으려고 했지만 힘이 없었다. 그래도 목사님은 계속 전화를 주셨다.
어느 순간, 잠언 18장 14절 말씀이 생각나면서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그래 38년 된 병자에게 은혜를 입혀주신 예수님이 나도 일어나 걸어가게 하시겠구나.’ 죽고 싶은 마음에서 살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면서 내 마음에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말씀에 의지해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침대를 반듯하게 세우고, 손이 떨렸지만 있는 힘껏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입에 넣기 시작했다. 반은 바닥에 흘리고 반은 입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양푼에 밥과 나물을 넣고 고추장과 된장을 넣어서 비벼먹기 시작했다. 먹는 양이 점점 늘어가고 안전 보호대를 의지하여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키가 168㎝에 몸무게가 32㎏이었다.

 

가족들 모두 기적이라고 했다
며칠 후 퇴원해서 집에 왔다. 탁자를 짚고 일어나서 벽을 짚고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다리에 조금씩 근육이 생기고 힘이 생겨 걷기가 한층 수월했다. 내가 밥을 먹기 위해, 걷기 위해 노력한 것은 없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은 것밖에는 없었다. 나는 매일 양푼에 밥을 비벼 먹었다. 어느새 피부도 깨끗해지고 머리카락도 많이 자랐다. 가족들 모두 기적이라고 했다. 아빠는 우리 딸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하신다. 눈물과 울음으로 가득 차 있었던 집에 웃음이 대신했다. 몸무게가 32㎏에서 60㎏까지 늘었다. 내 얼굴은 큰 보름달이 되었다.
죽다가 살아난 후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 형제 자매님들이 내가 변하여 돌아온 것을 보고 무척 놀라워했다. 나는 눈 상태가 어떤지 알기 위해 서울에 있는 안과에 찾아갔다. 의사는 “죽은 사람을 데려와서 살려 달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전기가 끊어진 집에 스위치를 켜서 불이 들어오길 바라는 것과 같다. 신경이 다 죽어 있어서 이식 수술도 불가능하다. 이건 약도 없다. 그냥 이대로 살아야 된다.” 했다.
가족들은 또 다시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그 안에 소망이 있었다. 나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내 눈도 반드시 보이게 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박 목사님의 믿음을 받아 가족들에게 그대로 이야기했다. “박 목사님이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홍 자매의 눈을 뜨게 하실 거야. 하나님은 반드시 자매 눈을 뜨게 하시고 자유롭게 다니게 하실 거야’라고 말씀하셨어.” 나는 나에게서 나오는 절망을 먹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친구하면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소망만 가졌다.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본 부모님이 내년에도 보자고 하셨다
지금 나는 하나님이 주신 눈으로 보며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사시던 부모님은 딸이 밝게 사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 궁금해 하셨다. ‘우리 딸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 딸이 저렇게 밝게 사나?’ 하며 아버지가 박옥수 목사님을 무척 만나 뵙고 싶어 하셨다. 마침 2018년에 진주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한다고 했다. 장소가 정해지지 않아 모든 성도들이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12월 3일 월요일을 허락해주셨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의 쉬는 날이 매주 월요일이기에, 공연 날짜가 부모님을 초청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해주신 날짜 같았다.
기쁜소식합천교회 목사님에게 아버지가 박 목사님을 뵙고 싶어하신다고 말씀드렸다. 공연일 오전, 기쁜소식진주교회에서 부모님과 함께 박 목사님을 만나 교제할 수 있었다. 목사님은 거의 두 시간 동안 복음을 전해주셨다. 목사님이 많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가운데 간음 중에 잡힌 여자의 말씀이 내 마음에 크게 들렸다. 여자의 마음에 1차적으로 음란한 마음이 들어와서 간음했고, 그 뒤로는 죽을 거라는 두려운 마음에 갇혀 있었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 앞에서 생명을 건짐 받아 여자의 마음에 감사가 들어왔다. 그후 여자는 음란한 마음이 찾아와도 예수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그 마음을 이길 수 있었다.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나를 한 번도 망하게 하지 않고, 불행하게도 아니하고 행복으로 이끄셨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나도 행복으로 이끄셨다. 지금 나는 간음한 여자처럼 어떠한 어려움도 두려움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기며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은 박 목사님과 교제한 후 무척 기뻐하셨다. 나는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고 부모님과 함께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관람했다. 부모님은 공연을 보고 무척 행복해하셨고, 내년에 또 보자고 하셨다. 그후 부모님은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음식도 만들고 호떡도 직접 구워주셨다. 사먹는 호떡보다 열 배, 아니 백 배는 더 맛있었다. 형제 자매님들도 무척 좋아하셨다.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그려왔던 그림
하나님이나 수양회는 말도 못 꺼내게 하셨던 부모님이 겨울 수양회에 참석하셨다. 하나님께서 부모님이 수양회에 참석할 수 있게 일하셨다. 부모님이 하시던 식당의 계약 기간이 끝나 12월 31일부터 특별한 계획 없이 쉬고 계셨다. 그래서 2차 수양회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지금까지 식당을 하시면서 여행이라고는 한 번도 가신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3박 4일 간 보낼 짐을 싸면서 어린아이처럼 무척 좋아하셨다.
대덕 수양관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혼자 이곳저곳 다니셨다. 적응도 무척 잘하셨다. 그리고 복음반에서 말씀을 듣고 두 분이 다 구원을 받으셨다. 요한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하신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이미 다 이루어주셨네. 내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네.” 하면서 기뻐하셨다.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그려왔던 그림을 하나님이 수양회를 통해 내 삶에 나타내 주셨다. 부모님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가운데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세상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행복의 비밀이 내게 있다
요즘 부모님은 아침에 일어나면 성경을 보시고, 아침을 기도로 시작하고 하루를 기도로 마무리하신다.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삶이 무척 놀랍고 행복하다.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노후를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다.
나는 요즘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작은 계집아이의 삶을 살고 있다. 나 역시 작은 계집아이처럼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행한 것처럼 보였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행복의 비밀이 내게 있다. 그건 바로 하나님의 눈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기 전에 나는 육신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늘 원망하며 살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면서 내가 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았다. 내 눈은 하나님이 주신 보석이다. 나에게 이런 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허락된 것이고, 그 뜻은 부모님의 구원이었다. 나는 요즘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계셔서 행복하다.
의사는 내게 절망만을 말했지만 박 목사님이 교제해 주신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온 후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서, 지금은 불빛도 감지하고 흰색과 검정색을 구분할 수 있고 내 앞에 사람이나 사물이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요즘은 방 청소도 하고, 빨래도 개고, 라면도 끓여 먹고, 휴대폰으로 문자도 보내고 있다. 나를 보면 부족한데 이런 부족한 나를 사랑하고 아끼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계셔서 불행보다 행복이 더 크고, 원망보다 감사가 더 큰 가운데 살고 있다. 아버지는 우리 딸이 우리 집의 복덩이라고 하신다.
그동안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끌어주신 기쁜소식합천교회에서 사역하신 목사님들께 감사하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셔서 귀한 목사님들을 내게 보내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