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그래 씨앗과 싫어싫어 씨앗
그래그래 씨앗과 싫어싫어 씨앗
  • 송근영
  • 승인 2020.06.16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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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키즈마인드
생각하는 동화

햇볕이 제법 뜨겁게 내리쬐는 어느 날이에요. 한참을 날아 가던 종다리 두 마리가 잎이 무성한 그래그래 나무의 가지에 잠시 내려앉았어요. 나무 안으로 들어가자 뜨거운 태양빛 대신 시원한 바람이 날개 사이사이를 지나가며 땀을 식혀주었지요.
“아, 시원해. 나무야, 고마워.”
“그래그래. 오래 앉아서 푹 쉬다가렴. 난 그래그래 나무라고 해.”
“넌 어디 가지도 못하고 혼자 지내기 심심하겠다.”
“괜찮아, 너희 같은 친구들이 자주 찾아오거든. 그래도 함께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나도 예전엔 너희들처럼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어디 갔는데?”
그래그래 나무는 잠시 땅을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어요.
“내가 아직 땅속에 있었을 때 이야기야.”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계절, 봄비가 깊은 잠을 자고 있던 그래그래 씨앗과 싫어싫어 씨앗을 깨웠어요. “얘들아, 이제 일어나야지. 아직도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해? 파란 하늘이 기다리는 땅 위로 가야지.”
물방울은 씨앗들을 깨우며 아래로 흘러 내려갔어요.
“앗, 차가워! 잠이 확 깨네.”
잠에서 깬 그래그래 씨앗은 쉴 새 없이 흘러 지나가는 물방울들에게 물었어요.
“물방울들아, 땅 위는 어떤 곳이니? 나도 빨리 땅 위로 올라가고 싶어.”
“멋진 곳이지! 신선한 바람, 따스한 햇볕! 너희들이 좋아하는 건 다 있는 곳이란다.”
“정말? 와, 어서 쑥쑥 키가 커서 땅 위로 가고 싶어.”
그래그래 씨앗과 싫어싫어 씨앗은 물방울들의 이야기를 듣자 신이 났어요. 

그런데 지나가던 다른 물방울이 말했어요.
“하지만 땅 위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 비바람이 치는 날도 있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네가 밟힐 수도 있고, 다 자라기 전에 동물들에게 뜯어 먹힐 수도 있는 걸!”
그 말을 들은 씨앗들은 깜짝 놀랐어요.
“뭐? 밟히고 뜯어 먹힐 수도 있다고?”

그날 밤, 두 씨앗은 잠이 오지 않았어요. 말똥말똥한 두 눈을 끔벅거리던 싫어싫어 씨앗이 말했지요.
“땅 위로 올라가면 좋을 줄 알았는데….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겁이 난다.”
“나도….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여기 있을 순 없잖아.”
“난 위로 올라가기 싫어. 그냥 땅속에 있을래.”
“뭐? 말도 안 돼. 혹시 위험한 일을 만나더라도 우리는 땅 위에 가야 살 수 있어. 땅속에 있으면 죽는다고.” 그래그래 씨앗이, 결심한 듯 말하는 싫어싫어 씨앗을 말렸어요. 

그때 지나가다 씨앗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지렁이가 한마디했어요.
“얘들아, 나 같은 지렁이나 땅속에서 살지 너희 씨앗은 땅 위로 올라가야 해.”
“그래, 지렁이 말이 맞아. 싫어싫어야, 우린 땅속에 머물러 있으면 안 돼.”
“싫어, 싫다고! 그런 무서운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아!  지금도 잘 지내고 있는데 뭘? 난 땅 위로 가지 않을 거야!”  
싫어싫어 씨앗은 그래그래 씨앗 몰래 싹이 돋아나는 방향을 위에서 아래로 살짝 바꾸었어요.

며칠이 지나자 두 씨앗 모두 싹이 텄어요. 그래그래 씨앗은 누르고 있던 흙을 힘껏 들어 올리며 땅 위로 고개를 내밀었지요. “끄응차!” 땅속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상쾌한 바람이 그래그래 씨앗의 가슴속으로 들어왔어요. 하지만 싫어싫어 씨앗은 여전히 땅속에 있었어요. 맑은 공기를 들이마신 그래그래 씨앗은 아래를 바라보며 소리쳤어요.
“싫어싫어야. 고개를 조금만 들어봐! 땅 위는 정말 멋진 곳이야!”
“잠깐은 좋을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밟히고 뜯길 거야!  그땐 피할 수도 없다고! 난 싫어!”
싫어싫어 씨앗은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싫어싫어 씨앗이 말한 것처럼 그래그래가 맞이한 환경은 평탄하지만은 않았어요. 강한 바람도 불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기도 했지요. 동물들이 지나가면 그래그래는 행여나 물어뜯길까봐  달달 떨기도 했어요.
“바, 바람이 너무 세서 뽑혀 날아갈 것 같아!”
그래그래가 소리치면 땅속에서 싫어싫어가 대답했어요.
“그것 봐! 난 올라가지 않을 테야! 난 땅 위가 싫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래그래는 양분을 더욱더 쭉쭉 빨아들이고 잎사귀를 활짝 펴서 햇빛을 받아들였어요. 

날씨가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며 시간이 흘렀어요. 그래그래는 어느덧 조그마한 풀만큼 자랐지요. 그래그래는 여전히 땅속에 있는 싫어싫어를 보면 안타까웠어요.
“싫어싫어야! 제발 고개를 들고 나와 봐! 나 좀 봐.  벌써 이만큼 자랐어!”
“….”  
“싫어싫어야!”
아무리 소리쳐도 싫어싫어는 대답이 없었어요.
그래그래가 바람과 싸우고 태양빛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동안, 땅속에서 움츠리고 있던 싫어싫어는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죽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혼자 지내게 되었어.”
“세상에….”
그래그래 나무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던 종다리들이 눈물을 훔쳤어요.
“그래그래 나무야, 많이 슬펐겠구나. 앞으로 우리가 자주 놀러올게!”
“나도 땅속에서 땅 위를 생각하면 무서웠지만 오히려 당당하게 맞서니까 이렇게 듬직한 나무가 되었더라고. 너희 같은 좋은 친구들도 생기고 말이야. 자주 놀러와.”
“그래그래!”
그래그래 나무는 종다리들과 한참 동안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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