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간증
나는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우리 집은 조상 대대로 유교 집안이었고, 아버지는 기독교를 매우 배척하셨다. 동네에 성결교회가 하나 있어서 어릴 때는 먹을 것을 주는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때 한 번씩 가곤 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그마저도 교회에 가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가톨릭 신자였다. 내가 청혼하자 아내는 성당에 다니겠다고 약속해야 결혼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결혼했다. 신혼여행을 갔다온 후 처음 맞이하는 주일부터 아내는 성당에 가자고 했다. 몇 번 같이 갔는데 교회와 분위기가 너무나 달라서 더는 가지 않았다. 주말이 되면 아내는 내가 약속을 안 지킨다며 잔소리를 했다. 심지어 성당에 안 가면 밥도 차려주지 않았다. 성당에 가느니 차라리 교회에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 인생에 최대 위기
아이들이 초등학생 무렵 시골에서 대전으로 이사했다.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도시로 이사했는데 중학교에 진학한 큰딸이 조금씩 삐뚤어지면서 평온하던 가정은 위기의 가정이 되었다. 매일 힘들고 위태로운 날이었고, 큰딸이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대전에서 큰딸이 진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는 없었다.
우리 부부가 절망하고 있을 때 아내가 우연히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서로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에게서 대안학교를 소개받았다. 우리 부부는 아이 문제로 기쁜소식한밭교회에 갔고, 목사님에게 상담을 받으며 우리 가정이 기쁜소식선교회와 연결되었다. 그때부터 온 가족이 한밭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목사님의 인도로 큰딸은 청주에 있는 대안학교에 진학했지만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사고를 쳤다. 우리 부부는 자주 학교에 불려갔다. 작은딸이 김천에 있는 링컨중학교에 진학했다.
시간이 지나고 큰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가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그는 무서운 사기꾼이었다. 그 사람에게 우리 집 전 재산을 사기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내 인생에서 최대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나는 아내와 큰딸을 원망했고, 이혼하려고 법원을 찾기까지 했다. 우리 가정은 고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 병은 하나님밖에는 고칠 수 있는 분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단기선교를 다녀와서 대학에 복학하여 잘 지내던 작은딸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혈액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슬퍼서 많이 울었지만, 자식이 큰 병에 걸렸다는 진단 앞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 충격과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약 2주 정도를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매일 울며 지냈다. 그러나 조금씩 정신을 차리면서 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서야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큰딸이 탈선했을 때에도, 30여 년간 모은 전 재산을 사기당했을 때에도 하나님께 굽히지 않았던 내가 작은딸의 위중한 질병 진단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 그동안 문제가 발생할 때면 나 자신에게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능력과 의지로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큰딸이 문제가 있을 때에도 ‘나는 문제가 없고 큰딸과 아내가 문제다. 나 정도만 돼도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잘하는 거다.’라고 생각했다. 나의 영적 구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작은딸이 중한 병을 앓으면서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불쌍한 나에게 구원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 전에 큰딸 문제와 사기당한 일로 박옥수 목사님에게 상담을 받았는데, 그때 목사님이 왜 나에게 구원받았는지 물어보고 나에게 중점적으로 교제하셨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목사님의 안수기도
그때부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종의 말씀과 성경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다. 올해 5월경, 박 목사님이 기쁜소식한밭교회에 오셔서 성경세미나를 하셨다. 그때 목사님이 작은딸에게 안수기도를 해주시고 교제해주셨다.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
박 목사님이 작은딸에게 안수기도를 해주셨을 때 기도 내용이 의외였다. 중한 병에 걸려서 안수기도를 받는 것인데, 목사님은 “교회에 더욱더 쓰임을 받는 자매가 되고, 좋은 배필도 만나서 아이들도 낳고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라고 기도해주셨기 때문이다. 박 목사님이 작은딸의 병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시고 앞으로의 일에 중점을 두시고 기도해 주시는 것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목사님의 마음 안에서는 아이의 병이 이미 끝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앞으로 딸의 미래의 일에 복 주실 것을 기도해 주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딸의 병은 분명히 완치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의인이다! 나는 거룩해졌다!”고 큰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내가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는 삐뚤어져 가는 큰딸을 구제하고자 하는 급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동안 여러 목사님들과 상담하고, 목사님들이 “구원은 받았나요? 죄가 없습니까? 거룩해졌나요?”라고 물으실 때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예!”라고 말하거나, 죄가 조금은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답을 흐지부지하곤 했다. 그런데 박 목사님이 작은딸에게 안수해주신 그날은 달랐다. 목사님은 다시 나에게 교제해 주시면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심으로 우리 죄가 다 씻어졌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내 마음속에 그대로 들어와 큰 울림이 되었다. ‘아, 내 모든 죄가 예수님의 피로 다 씻어졌구나.’ 이후로 “나는 의인이다! 나는 거룩해졌다!”고 큰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요즘 새로운 세상을 사는 것 같다
그 뒤 놀랍게도 작은아이는 병에서 나아 지금은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일요일 낮 예배만 겨우 나가던 내가 저녁 예배, 구역 예배, 장년 모임에 나가고 때때로 새벽 예배까지 기쁨으로 참석하고 있다. 요즘은 ‘행복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며 교회에 갈 때면 마음이 설레고 감사와 기쁨이 마음에 가득하다. 직장에서도 불평이 아닌 기쁨으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성경은 일반 책들보다 좀 더 엄숙한 책 정도로 생각했고, 설교 말씀은 인간들이 좀 더 착하게 살아가라는 훈계의 말씀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부터 성경 말씀과 설교 말씀이 내게 힘이 되고 소망이 되었다. 단지 복음이 내 마음에 들어온 것뿐인데 내 생각과 생활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요즘 아내가 행복하다고 한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던 남편이 복음 앞에 함께하는 것이 기쁘다고 한다. 내가 나를 봐도 변한 것 같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나를 앞세우기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나는 요즘 새로운 세상을 사는 것 같다.
하나님도 모르고 세상적으로 살던 내가 교회에 가는 것이 이토록 즐겁고 기뻐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일하심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을 교회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이 우리 가족과 함께하고 계심을 느끼며, 한없는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