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인간 창조의 법칙과 죄
[설교] 인간 창조의 법칙과 죄
  • 글 | 홍오윤(기쁜소식대구교회 목사)
  • 승인 2023.07.17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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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호 기쁜소식
CLF 강연 | 진정한 회개와 자백(제2강)

 

 

전 시간에 이어 죄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죄의 시작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타락하기 전에 천사 루시퍼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기 전에 천사들을 만드셨고, 그 가운데 가장 높은 존재가 루시퍼였습니다. 이사야 14장과 에스겔 28장을 보면, 하나님은 루시퍼를 영화롭게 만드셨습니다. 굉장히 지혜로웠고, 온전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만해졌습니다. ‘나도 얼마든지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그 교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렸습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인데 루시퍼는 스스로 뛰어나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사탄, 그리고 인간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겔 28:12) 에스겔 28장 12절에서 두로라는 나라는 무역을 잘해서 굉장히 부유하고 강성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두로 왕이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실제 두로 왕이 아니라 그 마음에 역사하고 있는 사탄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두로 왕 속에 역사하고 있는 악한 생각의 정체에 대해 밝혀 주고 있습니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겔 28:13)
이 말씀은 루시퍼가 얼마나 영화로웠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5절에 루시퍼가 타락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5)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사야 14장을 찾아보겠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2~14)
루시퍼가 자신을 높여 하나님과 비기겠다고 했습니다. 사탄의 욕심은,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인간에게 들어가면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가장 천한 흙이요 먼지로 만드셨습니다. 영화롭게 지음을 받은 루시퍼가 타락하는 것을 보고 인간은 어떤 피조물보다 연약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저는 지혜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충만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제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이처럼 고백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인간을 가장 가치없고 천한 흙이요 먼지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존재로 있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사탄이 인간의 마음에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에게 속한 인간의 특징이 하나님을 흉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고, 생명이고, 선하고, 지혜로우십니다. 인간이 스스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강도 만난 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강도가 그를 때린 뒤 모든 것을 빼앗고 입고 있던 옷도 벗겨서 가져갔습니다. 이 사람은 외형적인 건강과 돈을 다 빼앗겼을 뿐 아니라, 그 마음에 가지고 있던 꿈이나 소망까지도 다 빼앗겼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벌거벗겨진 채 죽어가고 있는 상태, 이것이 인간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 위치에서 우리가 자신이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위치로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루시퍼를 지혜롭고 아름답게 창조하셨을 때, 루시퍼는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과 연합한 것이 아니라 독립하려는 마음을 가져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빌립보서에는, 사탄의 마음과 전혀 다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나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셨고, 낮추셨으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사탄은 채우려고 했고, 높아지려고 했으며, 독립하려고 했습니다. 그 사탄의 영향을 받은 인간 또한 자신을 낮추고 따르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어떤 법칙 아래 만드셨습니다. 물질적인 이 세상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옵니다. 모든 물건은 땅으로 떨어집니다. 사람이 손에 컵을 들고 있다가 그냥 놓지 않습니다. 모든 물건은 밑으로 떨어진다는 중력의 법칙을 알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인 법칙도 있습니다. 벌이나 나비가 여러 꽃을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묻혀도, 호박꽃의 암술은 호박꽃의 수술에 있는 꽃가루만 받아들여서 수정이 이루어집니다. 장미꽃의 암술은 장미꽃의 수술에 있는 꽃가루만 받아들여서 수정이 이루어집니다. 만약 이런 법칙이 존재하지 않으면 생태계가 파괴될 것입니다. 
마음에도 법칙이 있어서 사람들이 심리학을 공부합니다. 운동에도 스포츠심리가 있어서  마음이 안정되고 강한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더 좋은 성적을 냅니다. 아이들이 갖는 심리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좋은 음식이나 좋은 옷에 만족하지만, 온전히 자신을 보호해 줄 부모 곁에 있을 때 아주 평안해합니다. 부모가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이러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법칙으로 인간을 만드셨습니까? 요한복음 15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가지에 열매가 달리는 것은 나무가 가지에게 수액과 영양을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모든 일을 하고 가지는 붙어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무에서 끊어진 순간부터 말라비틀어지고, 결국 땔감이 될 뿐입니다. 가전제품들은 전기가 없으면 가치를 잃고 맙니다. 전기 없는 집의 냉장고는 그냥 박스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그와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이 창조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한몸을 이루게 만드셨습니다. 여자의 몸은 남자의 씨를 받아들여서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몸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가르쳐주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명을, 사랑을, 지혜와 능력을 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만물은 그냥 만드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양말은 발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장갑은 손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들어가시면 딱 맞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과 연합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성경은 여자가 생리하는 기간을 불결기, 즉 부정한 기간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 있는 단순한 생리현상인데 왜 그렇게 말씀하실까요?  여자의 난자가 남자의 씨를 만나 생명으로 만들지 못하고 죽은 피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세계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씨,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삶으로 나타낼 때 가치가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씨를 받아서 잉태하고 있다가 출산할 때 아름답습니다. 그것처럼 어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도 마음에 받아들인 적이 없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보실 때 평생을 부정하게 불결기로 보낸 것입니다. 그가 나름대로 엄청난 일을 했다 해도 하나님의 기준에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도 선하게 사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사탄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연합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고, 인간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 하나님과 연합하면 하나님의 것이 다 인간의 것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혜롭고 선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법칙을 깨뜨린 것입니다. 물질세계에서는 나무에서 끊어진 가지가 말라비틀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마음의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을 인간에게 넣은 존재가 사탄입니다. 사탄은 자신이 먼저 창조의 섭리를 거스르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사탄에게 속아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했습니까? 사탄이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에게 속해서 살아? 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 독립해서 사는 존재가 되는 거야!” 그렇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하와가 뱀과 대화하면서 그의 마음에 사탄의 성품이 들어왔습니다. ‘나도 하나님이 될 거야. 나도 스스로 할 수 있어.’ 
인간이 스스로 잘하려고 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기준의 선악과 인간 기준의 선악은 다릅니다. 인간은 타인을 위하면 선하고 해를 끼치면 악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은 인간이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고 악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도 얼마든지 도덕적, 윤리적으로 선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탄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 종교입니다. 종교적인 사람은 선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 같은 종교인들은 선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을 향해 뭐라고 하셨습니까? 독사의 새끼라고 하셨고,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외형적인 삶은 반듯했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했던 그들에 의해 죽음에 넘겨졌습니다. 사탄은 지혜로워서 인간을 다 속이고도 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선하게 산다는 것으로 실제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시는 연합을 방해하는 것이 사탄이 만들어낸 지혜입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 빛을 반사합니다. 인간이 그와 같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라는 말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인간인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언제나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통해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지만, 어떤 사람을 통해서는 그렇게 하시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사울은 자기 뜻이 세워져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을 찾을 때,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따를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래서 일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만 영광과 찬송을 받으십니다. 

아, 인간의 모든 문제가 하나님을 떠난 데에서 시작되었구나!
사탄에게 속으면, 스스로 선하려고 합니다. 스스로 능력 있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기대하는 데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사탄은 인간이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고 자신을 주목하게 만듭니다. 인간은 누구도 스스로 지혜롭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연합될 때 지혜롭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말씀의 씨를 심으시고,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덕적, 윤리적으로 바르게 사는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서 그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게 되길 바라십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기독교가 종교화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지만, 스스로 선하게 살고 남을 위해 희생하려고 합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아, 인간의 모든 문제가 하나님을 떠난 데에서 시작되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잘하려는 마음은 하나님과 연합한 마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으로부터 온 마음, 하나님이 되고 싶은 대적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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