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라이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 글 | 이용국(기쁜소식부천교회)
  • 승인 2023.10.16 14: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3년 10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나름 열정적으로 살았고, 천주교를 믿으며 예의 바른 신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마음을 낮추어 당신의 말씀 그대로를 믿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셨다. 우리 죄를 다 씻어놓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신 말씀이 비로소 내 마음에 그대로 들어왔다. 기쁜소식선교회를 만난 지 10년 만에 일어난 일을 간증한다.

 

나와 기쁜소식선교회와 인연은 2014년에 대안 학교인 링컨하우스부천스쿨(현 경인링컨학교)에서 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시작됐다. 당시 나는 경기도 일산에서 영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수학 선생님의 권유로 이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영어 학원을 하면서 많은 학생을 보아왔기 때문에 처음에 학교를 소개받았을 때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도 태도가 안 좋은데 대안 학교 아이들이야 오죽하겠나?’라고 생각했다. 
막상 학생들을 가르쳐보니 ‘요즘 세상에 이런 아이들이 다 있나?’ 하고 의아할 정도로 학생들이 너무 순수하고 착했다.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고 학생들과 지내는 생활이 너무 즐거웠다. 한편으로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학교다 보니 학생들을 기독교 교리와 규범에 너무 옭아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답답한 부분도 있었지만, 학생들이 정말 좋아서 6년을 그들과 함께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대안 학교와 인접한 기쁜소식부천교회의 식구들과 교류도 생겼다. 그러나 나는 성당에 다니고 있었고, 기독교와 교회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굉장히 심했던 터라 교회 분들에게는 마음을 전혀 열지 못했다. 나는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대건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천주교 문화가 익숙했다. 천주교는 우리나라 토속신앙이나 생활방식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다 보니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특별한 제재도 없고 부담도 없었다. 미사를 드리는 것 자체가 제사를 드리는 방식과 같아, 장손으로서 조상님에게 깊은 예의를 표하는 제사 문화 속에 자란 내가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교회에는 마음이 열렸지만
내가 생각한 기독교는 아주 엄격한 종교이고, 교회는 아주 부정적인 곳이었다. 목사는 온갖 더러운 짓을 일삼으며, 기름지고 탐욕스럽고 신도들은 폐쇄적이어서 그들끼리만 선하고 교회에 속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탄으로 본다고 생각했다. 교회 밖에서는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도 교회에 가서 잘못을 회개하고 헌금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또 다시 선한 척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교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 교회는 돈을 주고 죄를 거래하는 죄의 세탁소 같았다. 
그러나 대안 학교에 다니며 내가 만난 기쁜소식선교회의 사역자와 성도들은 내가 생각했던 기독교인들과는 전혀 다른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특히 기쁜소식선교회의 목사님들은 탐욕도 사치도 군림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검소하고 성실하고 믿음만으로 사는, 진정 사심 없는 목회자였다. 신도들도 정말 맑고 순수하고 믿음이 깊었다. 몇 년 동안 교회를 보면서 느낀 것은 한결같은 순수함과 한결같은 믿음이었다. 
나는 성당에 다닌 지 오래되었지만, 나의 신앙심은 친목회를 다니는 정도밖에 안 됐는데, 이분들은 어디서 이렇게 깊은 믿음이 나오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 마음이 교회를 향해 조금씩 열리면서 기쁜소식선교회에서 하는 월드캠프와 대전도집회와 그라시아스합창단의 공연 등에 초대받아 함께했다.
교회와 신자들을 향해서는 서서히 마음이 열리고 있었지만, 교회에서 전하는 말씀은 여전히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천주교에서 말하는 원죄 의식만 갖고 있었다. 인간은 모두 아담과 하와로 말미암아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알았다. 그랬기에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씻으셨다는 말씀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았고, 지금까지 지은 죄뿐 아니라 앞으로 지을 죄도 사해주셨다는 말씀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죄의식으로 괴로워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인간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내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 있는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 하고, 걷다가 나도 모르게 생명체를 밟아 죽일 수밖에 없으니, 숨쉬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죄이다.’라는 지극히 원초적인 죄의식밖에 없었고, 특별히 지은 죄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죄책감에 시달릴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릴 때 늘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라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암송했으니 나는 그냥 죄책감은 없는 형식상 죄인이었다. 

길고 긴 방황을 끝내고
2020년, 고교 과정의 대안 학교가 중학교 과정으로 바뀌면서 6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학교와는 인간적인 관계말고는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기에 그 뒤로 다시 만날 인연은 없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그만둔 후, 운영하던 학원도 정리하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 평소에 나는 산과 바다를 좋아해서 자연환경 해설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가야산과 월악산 국립공원에서 근무했다. 처음에는 휴양지에 가듯 신나게 갔는데, 나중에는 혼자 유배지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년 만에 일을 접었다. 
가장으로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다른 직업을 찾다가 충청도에 있는 정신병원에 취직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과 색다른 사람들과 생활하는 것이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알코올 중독자, 치매 환자, 정신분열병 환자 등을 상대하다 보니 전에는 상상도 못할 별의별 일을 다 만났다. 인간의 온갖 더럽고 추악하고 못되고 야비한 꼴을 다 봐야 했다. 남자 환자를 상대하다가 갈비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고, 폭행죄로 고소당해 평생 처음으로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도 써보았다. 
객지 생활에 지쳐서 너무 힘들 때, 대안 학교에서 같이 영어를 가르치던 반광웅 집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대안 학교를 그만둔 후에도 집사님은 나와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연락을 주셨다. 집사님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자 교회로 오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기쁜소식선교회와 만난 지 10년 만인 2023년 5월에 윤종수 목사님과 상담하며, 길고 긴 방황을 끝내고 구원받았다. 그날, 윤종수 목사님에게 들은 ‘예수님의 피로 죄에서 구원받는다’는 말씀은, 이해의 차원도 아니고, 받아들이고 말고 선택의 차원도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원래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인정하는 것이었다. 

성경에 쓰여 있는 그대로 그냥 믿으면 되었다
나는 성당에 다니면서 기도할 때, 한 번도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빌어본 적도, 용서를 구해본 적도 없었다. 상당히 무례한 생각이겠지만 나는 살면서 죄를 지은 적이 거의 없으니 용서를 빌 것도 없고, 죄책감에 시달린 적도 없다. 나에게 죄의식이란 그냥 사람으로 태어난 만큼의 원죄 의식, ‘그냥 숨쉬고 살아가는 자체가 죄’라는 숙명으로 타고난 원죄 의식밖에는 없었으니 어찌 죄책감으로 괴로워했겠는가. 게다가 인간인 내가 어떻게 존엄한 신과 거래할 수 있는가? 나의 신과 조건을 달고 거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나름 예의 있고 반듯한 신자라고 생각했다. 죄의식은 없었지만, 그냥 죄인인가 보다 하고 살았다.
그런데 성경 곳곳에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다 씻어서 의롭게 했다. 그러니 죄인으로 살지 말고 의인으로 살라.’는 말씀이 있었다. 성당에서는 이런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여태까지 허상을 믿고 있었다.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사 인간이 살면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미리 다 아시고 다 씻어주셨다고 성경에서 명확하게 말해놓으셨다. 가톨릭에서는 이 사실을 호도했고, 기독교 단체들 또한 오랫동안 묵시적으로 동조해 왔다. 
박옥수 목사님이 온갖 비난과 협박을 무릅쓰고 이 진리를 전파해 오신 사실이 그제야 보였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쓰여 있는 그대로 그냥 믿으면 되었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사실을 이제 비로소 당연히 믿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구원받은 순간 진리를 크게 깨달아서 흥분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데, 나는 감흥도 없고 밋밋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기에 밋밋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하나님이 믿게 하셨다
구원이란 참 간단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왜 그리 어려웠던가? 그건 받아들일 생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사로잡히고 내 생각이 옳다고 여겨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동안 다닌 성당이 익숙하니 다른 이야기는 그냥 듣기도 싫었다. 그동안 반광웅 집사님의 초청으로 전도 집회나 여러 모임에 갈 때마다 여러 목사님과 상담하도록 해주셔서 거의 열 분의 목사님을 만났지만, 그때 나는 아예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 목사님들이 말씀을 잘 전하고 못 전하고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말씀이 들렸고, 정말 신기하게도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세상 죄를 담당하셨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구원받았다. 내가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그냥 들렸다. 왜 그날은 들렸을까? 그때는 내 마음이 힘들었기에 나를 구원해 주는 이야기가 들렸다. 어려움은 곧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축복이었다.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게 하셨다. 

몸은 파김치가 되어도 마음은 평온했다
죄 사함을 받고 다시 근무지인 병원으로 갔다. 병원 근무는 교대 근무를 하고 밤샘 근무가 많아서 토요일도 밤샘 근무를 하고 일요일 아침에 퇴근하면 기숙사에 가서 잔다. 그런데 구원받은 뒤로는, 근무를 마치고 기숙사로 가지 않고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말씀이 듣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병원에서 가까운 교회를 알아보니, 기쁜소식천안교회가 있었다. 병원에서 가려면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꽤 긴 거리를 걸어야 했다. 거의 2시간이 걸렸다. 그런데도 졸린 눈을 비비며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갔다. 
그날 처음 들은 말씀은 ‘육신의 욕망인 세바의 목을 치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라’였다. 어떻게 내 마음 상태를 알고 딱 맞는 말씀을 하시는지 신기했다. 2시간 동안 한 번도 졸지 않고 말씀을 들었다. 전에는 1시간만 넘어도 몸을 꼬던 내게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다음 주에는 예배에 참석해서 간증도 했다. 주말마다 몸이 피곤해도 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오가며 예배를 드렸다. 몸은 파김치가 되어도 마음은 정말 평온했다. 직장에서 환자들이 거칠게 해도 내 마음은 전과 다르게 여유로웠다.
 

어려움은 곧 축복
구원받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집에 있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상시에 아들과 살가운 전화를 하지 않았던 터라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었다. 아내가 길을 걷다가 넘어졌는데 많이 다쳤다고 했다. 왼쪽 다리 슬개골이 부서지고 왼손 척골이 부서져 몸의 반쪽을 못 쓴다고 했다. ‘그냥 건널목 건너다가 넘어졌는데 그렇게 많이 다치다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너무 당혹스럽고, 분노가 일어났다. ‘하나님과 함께하면 좋은 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게 뭐지? 길을 걷다가 그냥 넘어졌는데 팔다리를 부러뜨리시다니….’
그런데 생각이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 ‘머리가 깨진 것이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구나.’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머리를 다쳤으면 어떡할 뻔했나….’ 하며 팔다리 부러진 건 시간이 지나면 정상이 되니까 그 정도 다친 것이 오히려 감사했다. 
그 주일 예배에서 ‘어려움은 곧 축복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아내를 간병하느라 일산 집과 천안을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왔다. 혼자 힘들었던 정신병원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바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여름에는 수양회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을 보며 신앙의 힘은 정말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다. 오직 믿음 하나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한국까지 이끌리다니. 수양관에서 만난 코트디부아르 형제와 밤늦도록 이야기꽃도 피웠다.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인과 한국인이 서로 외국어인 영어로 버벅대며 같은 곳을 보는 믿음의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8월에는 마인드교육 워크숍에도 참석했다. 박옥수 목사님 말씀을 듣고 목사님을 바로 앞에서 직접 뵙는 기회도 있었다. 아내를 간병하는 동안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들을 기회도 자주 있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아내가 아프면서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이 생각났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이 말씀만 기억했는데, 그 다음 29절과 30절 말씀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그늘에서 편히 쉴 생각만 했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에게 배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이 잘해주실 때는 하나님을 칭송하지만 조금만 안 좋은 일을 겪으면 하늘에 대고 온갖 원망과 불평을 퍼붓는 정말 이기적이고 못된 존재였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일찍이 아시고 우리를 너무 사랑하사 우리가 살며 평생 저지를 죄까지 이미 다 아시고, 모두 사해주시기 위해 예수님의 고결한 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고
나는 평소에 짜릿함을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에 심취해 바다 수영·산악자전거·암벽 등반·마라톤 등을 정신없이 찾아다니며 나름대로 바쁘게 열심히 살았다. 지극히 단순하고 열정적으로. 그렇게 사는 나에게 반광웅 집사님은 “이제 세상 일은 그만하고 그 열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 좋을 텐데,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거야.” 하며 내가 대안 학교를 그만둔 뒤에도 끊임없이 연락해주셨다.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신 선배님이 감사하다.
박옥수 목사님이 한번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하나님을 본 적도, 직접 접촉해 본 적도 없습니다. 나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평생 성경을 읽고 성경을 보고 살았고, 말씀을 믿고 따랐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쓰신 것이고, 성경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여러분보다 못한 하찮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놀랄 만한 큰일을 해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함께했을 뿐입니다.”
순수한 믿음의 힘을 몸소 보여주시는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이제 나도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고 주의 멍에를 지고 주께서 나를 쓰시길 바란다.

내게 일하신 하나님
몇 달간 아내를 간병하다가 아내가 혼자 몸을 추스를 수 있을 때쯤, 감사하게도 설악산에서 임시 일자리가 생겨서 강원도 양양으로 갔다. 우연히 속초에 갔다가 기쁜소식속초교회가 있는 것을 보고 수요 예배에 참석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인데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하신 것이 이렇듯 자연스레 이루어지는구나.’
그날 속초교회 정영복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신앙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마련해주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나에게 복을 안 주시는 걸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 놓으셨는데 우리가 못 보고 부인하고 안 받았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복을 다 준비해 놓으셨으니 우리는 그대로 받으면 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설교 말씀이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미리 다 준비해 놓으셨구나.’ 나는 감사히 받기만 하면 되었다. 
신앙은 참으로 쉽고 고마운 것이라는 사실을 점점 깊이 느낀다. 구원의 말씀을 믿을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내게 일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가족에게도 동일하게 일해주시길 기도한다. 또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복음을 전혀 모르 채,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