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여호와 이레’, 하나님은 다 아시고 미리 준비하셨다
[라이프] ‘여호와 이레’, 하나님은 다 아시고 미리 준비하셨다
  • 글 | 김범섭(브라질, 기쁜소식상파울루교회 선교사)
  • 승인 2024.03.0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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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 3편_브라질 선교 시작
1998년 1월 15일, 브라질에 처음 도착한 날 상파울루 공항에 마중 나온 조용진 씨와

나는 전도자가 될 소명도 약속도 없었고, 사역자가 된 뒤에도 선교사가 되기를 사모하는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교회의 인도와 당신의 약속을 통해 내 마음을 만들어 가셨고,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 주셨다. 그 ‘여호와 이레’의 약속 안에서 나는 브라질 선교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인도자의 이끄심을 좇아 간 선교학교
직업 군인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김 형제는 선교학교 안 가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그럴 때 나는 항상 ‘지금 말고 나중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간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지금도 부대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임을 가지고 있고, 또 복음도 전하며 살고 있잖아? 머지않아 진급도 될 텐데.’
하루는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이 교제하자며 나를 부르셨다. 목사님에게 갔더니 에스더 성경에 나오는 와스디 이야기를 해주시며 ‘김 형제가 선교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다. 나는 나 자신과 형편을 보며 ‘아직은 때가 아니지’ 하며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그날 나를 인도해 주시는 목사님의 교제를 받은 뒤, 하나님이 내가 믿음으로 말씀에 의지해서 선교학교 입학을 결정하길 원하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에스더 성경을 통해, 왕의 부름을 받고도 나름대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있기에 왕의 명을 좇지 않은 와스디와 같은 내 모습을 보여 주셨다. 결국 와스디가 왕후의 자리에서 폐위되고 버림받은 것처럼, 나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으면 내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아이가 많이 어린 것도, 직장에서 진급을 앞둔 것도 하나님의 결정하심 앞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내가 내린 결정에 따라 나는 와스디로 살 수도 있고, 형편과 규례를 무시하고 인도자의 음성을 따라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달려나간 에스더의 삶을 살 수도 있었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 믿음의 결정을 따라간 에스더의 마음을 넣어주셨고,  바로 전역 신청을 하고 선교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하셨다. 개인적으로는 소명도 약속도 없었고, 그저 나를 이끄시는 인도자의 이끄심을 따라 내린 결정이었다. 

복음만을 위해 사는 삶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선교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당시 서울제일교회 사택 거실에 시편 23편 말씀이 적힌 큰 액자가 벽에 걸려 있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 말씀대로 여호와가 나의 목자요 주인이시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그동안 내 안에서 올라왔던 두려움과 염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느껴 감사했다. 특히 선교학교에 입학한 후 첫 주에는 금식하며 성경만 읽는 시간을 가졌는데, 하나님은 약속도 소명도 없던 내 마음에 민수기 24장 말씀을 약속으로 주시면서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보여주셨다.  
“…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그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씨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 …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민 24:5~8)
하나님은 내가 복음만을 위해서 사는 삶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강가의 동산 같고 물가의 백향목 같도다. 그 물통에는 물이 넘치겠고, 그 힘이 들소 같도다’라고 하셨다. 내가 나를 쳐다보면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되지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은 흔들리지 않는 닻이 되어 내 마음을 붙들어 주었다.
나중에 부대 동료들을 통해서 부대 소식을 들었다. 내가 선교학교에 들어오고 얼마 뒤에 부대에 큰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 직원 모두가 가족 동반으로 버스를 타고 단풍 구경을 갔다. 그런데 버스가 절벽에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고 크게 다치는 대형 사고가 난 것이다. 나도 그 부대에서 계속 근무했더라면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이 그 재앙을 피하게 하시고 우리 가족을 가장 안전한 선교학교로 옮기셔서 아무도 다치거나 상하지 않게 지켜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역을 하며 마음에 새긴 한 가지, ‘무엇보다 우선순위는 복음’
선교학교를 졸업할 즈음 의정부에 교회가 개척되면서 우리 가족이 그곳으로 파송받았다. 파송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쁜소식의정부교회에서 집회가 열렸다. 첫 사역지에서 처음으로 갖는 집회였고, 집회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사람이 연결되었다. 그때 우리 선교회에서는 지역 교회에서 집회를 하면 첫날은 박옥수 목사님이 방문하셨다. 나는 새로운 사람에게 충분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지만, 집회 때 초청의 시간에 그분이 손을 들고 나와 박 목사님과 상담하고 구원받게 하려고 마음밭을 갈기만 한 채 집회를 기다렸다. 그런데 집회 하루 전날 주일 예배를 마치고 보니 한 장년 형제가 그분을 앉혀놓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복음 전할 줄 몰라서 여태까지 그냥 둔 게 아닌데…. 저 형제는 왜 오늘따라 저렇게 주책을 떠는 거야?’
창문 밖으로 그 모습을 쳐다보며 형제를 판단하고 있는데, 방에서 자고 있던 어린 딸의 비명이 들려왔다. 순간 복음 앞에서 순수치 못한 내 마음이 하나님께 발각된 것 같았고,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평안해졌다. 
방으로 뛰어들어가 보니, 딸과 함께 자고 있던 아들이 앉아 있는데 손에는 볼펜이 들려 있고, 딸의 눈가에서는 심장이 뛸 때마다 피가 솟구쳐 나왔다. 손으로 두루마리 화장지를 확 잡아당겨서 피가 고여 있는 딸의 눈 위에 올려놓았다. 아들은 자기도 너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충분히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는데도 내 입장 하나 세우려고 미루어왔던 악한 내 모습이 드러나면서, ‘하나님이 형제를 판단하고 있는 내 눈을 찌르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딸이 다친 곳은 하나님의 은혜로 다행히 눈동자를 살짝 피해서 눈 옆에 핏줄이 터진 것이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앞으로 내가 복음 전도자로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마음에 새겨 주셨다. 그 어떤 것도 복음보다 우선순위에 있어서는 안 됨을 각인시켜 주신 것이다. 그렇게 의정부에서 지내는 동안 하나님은 복음으로 말미암은 삶을 살게 하셨고, 여수와 북부산으로 사역지를 옮기면서 당신의 깊은 영적 세계를 배워나가게 하셨다. 

내 의지나 믿음과 상관 없이 선교사의 마음으로 이끄시고
사역을 하면서 가끔 해외로 전도여행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지만, 다른 나라로 선교를 나가는 부분에 관하여는 특별한 믿음이 없었다. 한번은 사역자들을 대상으로 ‘언제 어느 나라로 선교를 가고 싶은지’를 적어 내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도 나는 하나님이 선교를 향해 주신 분명한 마음이나 확신이 없어서 ‘Anytime, Anywhere(언제 어디든)’이라고 적었을 따름이다. 
그러던 중 여름 수양회가 다가왔는데, 오전 시간에 ‘선교’를 주제로 사흘 연속 말씀을 전할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 세 시간이나 말씀을 전해야 했기에 성경에 나타난 선교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했고, 기도하면서 은혜를 입어 말씀을 준비해 전할 수 있었다. 문제는, 말씀을 다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면 몇몇 사역자님들이 다가오셔서 ‘선교에 대해 말씀만 실컷 전하고 정작 선교를 나가지 않는다면, 그건 다 이론일 뿐이지…’라고 찔러 주셨다.  
나도 처음에는 선교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가끔 선교지를 방문해서도 복음을 위해 어렵게 사시는 선교사님들의 삶이 사모되지도 않았다. 그런 내게 하나님은 최초의 선교사였던 모세와 사마리아 성의 네 문둥이 말씀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모세가 애굽에서 40년을 자라며 배운 모든 것을 비우기 위해, 그를 40년간 광야에 두셨다. 80세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모세를, 하나님은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일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아닌 내가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리라’고 하셨기에 그가 늙은 것도,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것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세는 그가 잡고 있던 지팡이처럼, 누군가에게 잡혀 있어야만 서 있을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다.  
열왕기하 7장에서 사마리아 성으로부터 버림받은 네 문둥이는, 거기 있어도 아람 진으로 가도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는 믿음을 넣어 아람 진으로 향하게 하셨고, 그 발걸음으로 큰 군대의 소리를 내게 하셔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마리아 성을 구원하고 풍성한 세계로 이끌어 가셨다. 문둥이 네 명과 같았던 우리 가족을, 하나님은 ‘내’ 의지나 믿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해외에 선교사로 갈 수 있도록 먼저 마음을 만들어 주셨고 이끌어 주셨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다 아시고 친히 준비하신다
“어이, 김 목사. 이번에 머~얼리 가데?” 사역자 이동 공문이 뜨기 전, 내가 선교를 가게 되었다는 것을 전해 들으신 어느 목사님이 나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이제는 국내가 아닌 바다 건너 해외로 선교를 간다는 사실이 직감되었다. “제가 갈 곳이 어딥니까?”라고 묻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선교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이동 공문을 보니 내가 갈 선교지는 ‘브라질 상파울루’였다. 
선교를 나가는 경우라면 적어도 박 목사님과 먼저 상담과 교제를 한 뒤에 파송 여부가 결정될 것 같았는데, 아무 예고 없이 공문을 보고서야 선교를 가게 된 사실을 알았기에 좀 의아한 마음은 들었다. 박 목사님은 나를 부르셔서 ‘브라질에 갈 때는 대한항공편 비행기 표를 구입하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인천에서 출발해 미국 LA를 거쳐 상파울루로 가는 대한항공편이 있었다. 연고자도 없고, 브라질어를 한 마디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그곳에 박 목사님은 오로지 당신의 믿음으로 선교를 시작하길 바라시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게 하신 것이다. 우리 가족은 마치 네 명의 문둥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약속만 의지해서 갈 수밖에 없었다. 옆에 계시던 목사님 한 분이 박 목사님에게 제안을 드렸다. 
“목사님, 저와 김 목사가 먼저 브라질에 가서 살 집도 얻어놓고 난 뒤에 가족들이 들어가면 어떨는지요?”
“고맙지만 그렇게는 하지 말게.”
박 목사님의 마음은 단호하고 분명하셨다.
“김 목사, 비행기를 타고 상파울루로 가면서 함께 탑승한 브라질 교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그러면 그 사람들이 자네를 도와줄 걸세.”
그즈음 선교학교 수업에 참석하는 동안, 하나님은 내게 “여호와 이레”(창 22:14)라는 말씀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약속으로 마음에 담아주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수양을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셨듯,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약속 안에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덤덤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만나며 시작한 브라질 선교
브라질로 들어가기 전, 박 목사님과 동행하여 미국 수양회에 참석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반에서 강사로 말씀을 전했다. 그때 앨버커키에서 오신 자매님 한 분이 ‘브라질에 아무 연고자 없이 선교를 가게 되었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가셨다. 
하루는 자매님이 미장원에 갔다가 상파울루에서 오신 할아버지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할아버지, 어디 사세요?”
“나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살아.”
“상파울루에 사는 분이 여기는 어떤 일로 오셨어요?”
“큰아들이 여기 살고 있어서 잠깐 다니러 왔어.”
“언제 상파울루로 돌아가세요? 상파울루에는 누가 살고 있나요?”
마침 상파울루에서 오셨다는 할아버지를 만난 자매님은 아무 연고자 없이 상파울루로 가는 우리 가족을 기억하고, 하다못해 할아버지의 주소나 전화번호라도 받아서 우리를 도와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다행히 자매님은 할아버지로부터 상파울루에 사는 그분 딸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고, 그 딸과 통화하면서 ‘김 목사님이 오시면 우리 남동생을 공항으로 보내 마중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셨다. 
우리 가족이 공항으로 출발하려고 밴에 짐을 싣고 있는데, 갑자기 자매님으로부터 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자매님은 다짜고짜 “상파울루에 도착하시면 공항에서 나갈 때 오른손에 <기쁜소식>지 같은 책자를 하나 들고 나가세요.”라고 하셨다.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우리 가족은 LA에서 상파울루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안에는 상파울루에 사는 교민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에게서 브라질어로 숫자 세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약속을 품고 상파울루에 도착해보니, 자매님이 말씀하신 대로 할아버지의 아들이 우리 가족을 위해 공항에 나와 있었다. 우리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할아버지를 통해 우리가 머물 집도, 우리가 복음을 전할 한인 가족도 준비해 놓으셨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딸은 자신의 집 안방을 우리 가족에게 내어주었다. 우리를 마중 나온 할아버지의 작은아들 조용진 씨는 한인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우리를 만나 복음을 듣고 교민 중에서 제일 먼저 구원받은 형제가 되어 우리의 발이 되고, 입이 되고, 귀가 되어 주었다. 새로 집을 얻어 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 집에서 가족처럼 함께 지냈고, 주일이면 함께 예배도 드리면서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것을 하나하나 만나는 삶을 시작했다. 우리 선교회는 아무것도 갖추어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뜻이면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쁜소식선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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