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수양회를 마치며
가나 수양회를 마치며
  • 김용환
  • 승인 2004.09.1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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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서부 아프리카 수양회를 마치며

수양회는 금요일에서 주일저녁까지 3일간인데, 금방 가 버렸다. 현지인 800여 명(그 중 복음반은 300여 명, 주일학생들은 150여 명)에 한국인 100명 가량이 참석했다. 목사님은 하루 3차례 말씀을 전하셨다. 아침 7시부터 한 시간,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 그리고 저녁 8시부터 한 시간, 그래서 3일 동안 총 8시간 말씀을 전하셨다. 누가복음 5장, 10장, 15장 말씀을 차례로 전하셨다.

기사를 수준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쓰고 싶은 유혹은 모든 기자가 받는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목사님의 말씀에 기자의 마음이 끌려서 쓰면 쓸수록 글이 딱딱해지는 것 같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목사님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이 자꾸 기자를 괴롭히는 까닭이다. 특히 누가복음 10장, 15장 말씀은 내 마음을 건드렸다.

이곳에서 생활은 한국에서 온 형제자매들과 선교사들, 단기선교사들, 그리고 현지인들로 구분된다. 무엇보다 잠자리와 음식이 다르다. 나는 ‘우리가 저들보다 더 잘 먹는 것 아니냐, 더 좋은 잠자리에서 자는 것 아니냐? 물도 우리가 더 많이 쓰는 것 아니냐?’ 하는 마음이 좀 들었다. 물론 그건 당연한 일이다. 짧은 여행기간 중에 우리가 현지에 적응하는 것은 사실 한계가 있다. 물도 아무 물이나 마시면 안 되고, 음식이나 잠자리도 현지인식으로 갖는다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또, 장거리 여행으로 인하여 피곤해지면 즉시 말라리아에 걸릴 위험이 높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거기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과 우리가 평상시 먹는 수준으로 먹는다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마음이 흐르는 데에 지장이 없는가?’ 그런 의문이 기자에게 있었다. 대개 한 접시로 끝나는 아프리카 음식과 밥, 국, 반찬 등 종류가 많은 한국 음식은 우리 보기에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그런데 말씀을 들으면서 기자가 지극히 인간적(!)임을 알게 되었다.

어제 누가복음 10장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을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말씀이 있었는데, 약간 졸다가 노트에 적질 못했다. 마치 꿈꾸고 나서 번민하는 바로 왕이나 느부갓네살 왕처럼 나 역시 그 적지 못한 구절로 인하여 번민했다. 그러다 이 사람 저 사람 노트를 빌려봤는데, 기자인 내 기준으로 보면 판단(?)이 되는 수준으로 메모를 했더라. 다행히 내 아내와 아비장 사모님 노트를 보면서 그 기억을 살릴 수 있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입기를 원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다 은혜 입는 것이 아닙니다. 강도 만난 자가 쓰러져 있을 때에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들에게도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지만, 자기를 지키려는 마음이 더 컸기에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 같은 사람들을 소망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소망을 갖는 사람들이어서 구원의 은혜에 이를 수 없습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자기를 지키려는 마음보다 더 컸기에 자기의 것들을 버리고,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버리면서 그를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제 절망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젠 끝장이다” 내 마음의 위치가 거기에 이르러야만 주님이 일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은 바로 이 사람입니다. 자기가 더 이상 자기를 위할 수 없어서 예수님이 위해줘야만 하는 사람, 하나에서 열까지 예수님이 긍휼을 베풀어야만 하는 사람을 오늘도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평상시 늘 듣는 말씀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기자는 이 내용을 찾아내 메모한 것이 너무 큰 수확이었고, 기쁨과 감사가 되었다. 목사님은 한 시간 동안 예수님의 마음을 쏟아냈던 것이다. 그런데도 감히 졸았던 것이 이렇게 부끄러워보기도 처음이었다. 오늘 종일 그 말씀을 더듬다가 못 찾아서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이 짧은 글을 읽는 사람들은 복이 있을 찌어다!
그렇다! 목사님은 홈페이지 전도여행 타이틀에 나온 글처럼, 그들을 잘 살게 해주기를 원하시는 것도, 그들의 악한 풍습을 버리게 하시려는 것도 아니라, 다만 그들에게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증거해 주시려는 것뿐이다. 우리가 돈으로 도와준다면 몇 푼이나 도와주겠는가? 음식으로 돕는다면 얼마나 돕겠는가? 만일 그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을 넣어줄 수 있다면, 그건 모든 것을 준 것과 같은 일이다. 물질적이고 인간적인 도움을 크게 생각한다면 그는 하나님과 마음이 먼 사람, 말씀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오늘은 아침 8시부터 ICGC라는 가나인들 기성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테마 교회에서 걸어서 5분 떨어진 이웃 교회였다. 주일 주차장에 자동차가 100대가 넘을 만큼 큰 교회고 또 부유한 사람들이 주축인 교회다. 단기선교사 박성득 형제가 종의 마음을 받아 그 교회 목사를 찾아가 이야기해서 성사된 일이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공연은 그들의 넋을 빼앗은 듯했고, 목사님이 전하신 복음의 말씀은 그들을 놀랍게 했다. 수백 명의 심령들 가슴에 목사님이 복음을 꽂아 넣을 때에 참으로 통쾌하면서 그렇게 소망스러울 수 없었다. 당회장 목사가 내일부터 가지는 우리 대전도집회 광고까지 해줬다.

오후에는 자동차로 30분을 달려 해수욕장에 갔다. 전에 사진으로 봤던 바위가 많은 세례식 장소가 아니라 부드러운 모래가 깔린 해수욕장이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갔다. 대서양과 만났다. 전에 탄자니아에서는 인도양에 발을 담그고 조개껍질을 줍곤 했었는데, 이번에 대서양까지 진출한 것이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바닷가에만 가면 악당(?)으로 돌변한다(형제들보다 자매들이 더함, 이건 1급 비밀!). 사람들을 습격해서 떠 매고 가서 바다에 빠뜨린다. 물론 지난 번 탄자니아에서도 그랬고(그때는 불쌍한 영주와 그의 짝 나래가 당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박 목사님까지 노렸지만, 목사님은 도망가 버리셨다(목사님의 도망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기자는 처음부터 아예 반바지 차림으로 바다에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beach soccer를 했다. 그래서 희생자 명단에서 빠졌다. 여러분도 혹시 그라시아스와 바닷가에 가거든 이 사실을 참고하기 바란다. 흑인들로 북적거리는 해수욕장, 그리고 대서양, 시종일관 먹이를 잡는 자칼이나 하이에나처럼 사람들을 잡아서 바다에 빠뜨리는 그라시아스 일당,... 즐거운 시간이었다.

저녁에는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를 전하셨다. 어제 일도 있고 해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다. 나는 기자가 된 걸 감사하게 여긴다. 사실은 말씀을 사모해서가 아니라 기사를 쓰기 위해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떡 방앗간 사람들이 떡 한 개를 더 집어먹을 수 있는 것처럼, 혜택이 하나 있다. 그게 짐인지 혜택인지 잘 모를 때가 많지만! 다른 사람들은 말씀을 잘 들었건 어쨌건 그냥 넘어가지만, 기자는 온종일 어제 노트 메모 제대로 한 사람을 찾아야 했다. 한두 사람 메모한 것으로 성이 차지 않아 몇 사람 노트를 대조해 보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오늘은 두 번 다시 어제와 같은 그런 일이 없으리.

“둘째아들이 아버지 집을 떠나 돼지우리에서 굶고 있을 때에 그는 정말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자기를 미워하여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위치를 포기하고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떠했습니까? 오랫동안, 동네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려 왔습니다. ‘돌아와, 돌아와!’ 이게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품꾼들도 그렇게 잘 먹이는데 하물며 아들을...”
목사님은 외치셨다. 아니, 오늘 내 귀에는 “절규”로 들린다. 여호와의 말씀을 강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언하는 이사야, 예레미야의 마음이 이 마음이었을까?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 그건 선지자의 절규였다. 술 취하지 않았으면서 술 취한 사람처럼 가슴으로 토해내는 말씀! 오늘 밤에는 하나님이 테마 교회에 임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슴에 봉한 포도주를 터뜨리셨다.
“어느 날 거지가 오는데 발걸음을 보니 아들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자세히 보니 아들이었습니다. 뛰어가서 아들의 목을 안았습니다. 옷에 묻은 돼지똥이나 악취는 아버지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게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아들은 한번도 이 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날 이후로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살았습니다. 추측으로 알았던 아버지의 마음을 버리고 실제 아버지의 마음을 본 것입니다. 저는 가나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앞으로 우리는 아프리카와 전 세계에 복음의 꽃을 피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가장 영광스러운 일에 가장 부족한 우리를 쓰실 겁니다. 아들이 상상할 수 없는 말을 아버지가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성경 속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 같은 더러운 죄인을 온전한 의인이라고 하셨고, 우리 같이 불충한 사람들을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돼지우리에 있지 말고 아버지 집으로 와서 아버지의 사랑을 입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더러운 옷이 벗겨지고 좋은 옷이 입혀질 때, 손에 가락지가 끼워질 때, 살진 송아지를 먹을 때 아버지는 만족스러워하십니다. 이 모든 일들은 아버지의 기쁨과 함께 진행됩니다. 우리가 충성되고 잘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우리를 위해 당신이 일하실 수 있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기쁨입니다”

말씀이 기자의 마음까지 흘러들어왔다. 사실 나는 가장 무디고 뻣뻣한 사람이다. 내가 말씀에 젖었다면 모든 사람이 말씀에 젖었을 것이다, 틀림없다. 조경원 목사님이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더 듣기 원하시는 분들은 손을 드십시오” 했을 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말씀이 모두를 사로잡아 버린 성령의 밤이었다.
오늘로 수양회를 마치고 내일부터는 시티 홀에서 서부 아프리카 대전도집회를 갖는다. 밤늦은 시간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 장소에 준비하러 갔다. 하나님은 그들의 접시를 푸짐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심령을 풍성하게 하신다. 잠자리나 식사하는 것 등등, 다소 불편하고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그들은 하늘로부터 엄청난 것을 받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자들은 하늘에 계신 자가 보기에 가장 복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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