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아프리카 베냉) 진정한 아프리카를 체험하다
(서부 아프리카 베냉) 진정한 아프리카를 체험하다
  • 김정은
  • 승인 2006.08.25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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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월중 베냉 단기 8명은 소찬훼라는 마을의 지역교회로 전도를 다녀왔다. 각 4명씩 두팀을 이루어서 7월 11일-21일, 8월 1일-11일 열하루동안 베냉단기선교사 8명(이진완, 강부승, 김정은, 최정인, 김은혜, 안지영, 김보배, 권가영)은 지역교회가 세워져 있는 소찬훼라는 마을에 다녀왔다. 출발하기 전, 많은 현지 형제, 자매님들은 “소찬훼를 다녀와야 진정 아프리카를 다녀왔다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진정 아프리카의 이미지가 그곳에 고농축 되어있기 때문이다. 더럽고, 열악하고, 부족하고, 못먹는 형편... 그리고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마음이 그렇다.
16일 아침, 우리는 설래는 마음으로 소찬훼로 한걸음씩 옮겼다. 강을 타고 수로로 가야하기 때문에 배에 올랐고 2~3시간의 항로 중에 하나님께서 영혼들에게 복음도 전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허락하셨다.
배가 마을에 닻자 수많은 꼬맹이들이 여보! 여보! 하며 모여들었다. 여보는 백인이라는 의미의 현지말이다. 이때부터 우리의 소찬훼, 아프리카 생활이 시작되었다.






             [소찬훼 마을 전경]



우리가 본 소찬훼 마을은 이랬다. 거의 모든 집이 방부라고 부르는 나무로 만든 오두막 같은 집이다. 크기가 다섯평 정도 되는 조그만한 집에 화장실도 따로 없다. 집은 방부와 방부를 엮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소변을 눌때는 방부 사이사이로 잘~ 조준해서 누고 대변은 공중화장실이 있지만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보통 밤에 밖에서 일을 보고 무언가로 싸서 강물에 버리거나 그냥 놔둔다. 그래서 강가에는 사람 똥이 떠다니는 진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지내는 11일 동안에 몇몇은 새벽에 뒤가 급해지자 공중화장실에 갔지만 문이 닫혀있는 바람에 현지인과 동일하게 어둠 가운데 길에 싸서 버리는 체험을 할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마을에는 돼지떼, 양떼, 닭떼 그리고 먹을 게 부족해 말라빠진 몇몇 개들이 사람과 어울려 살고 있다. 그만큼 길가에는 동물똥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특히 조그맣고 딱딱한 염소똥이 길에 널려있기 때문에 전도를 가는 걸음동안 똥을 한 번도 안 밟는다는 것은 확률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수도시설이 없어 아침마다 배로 싣고 오는 그나마 깨끗한 물을 옮겨 담아 양동이에 보관하며 조금씩 쓴다. 한번은 필자가 4일 동안 샤워를 두 번씩이나 하는 바람에 한 자매에게 약간의 질책을 받고 회개를 한 후 남은 일주일 동안 단 한 번의 샤워로 “말끔한 지역교회 체험”을 보내야 했다. 아마 어떤 자매들은 11일 내내 한번도 샤워를 안하는 인내의 체험을 했으리라 추측된다. 전기가 없어서 해가 지면 호롱불로 잠자는 시간을 좀 늦추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잔다. 그리고 아침에 해 뜨는 시간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상시간이 된다.
그곳에는 가난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사실 모든 물과 전기와 음식, 모든 부분에 부족한 마을이기 때문에 가난을 염두하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실상인 듯 하다. 그래서인지 전도를 하는 도중 많이 느꼈던 점은 그곳 소찬훼 사람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질이 충족이 되면 자신들이 행복해질 줄로 착각하고 산다. 할아버지에서부터 걸을만한 나이가 되는 꼬마아이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물질의 종이 되어 있었다.







                            [ 이런 모습은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다 ]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때가 기억이 난다. 그때 그곳의 아이들은 큰 무리를 지어 우리 뒤를 좆아 왔다. 우리가 그들이 보기에 백인이고 신기해서 그런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우리가 무언가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줄 뒤늦게야 알았다. 인사말은 불어로 “Bon Jour~(아침인사)”, 혹은 “Bon soir(오후인사)” 이지만 그것보다 더 많이 듣는 말은 “Donne moi l`argent (돈 줘~)” 이다. 가난과 질병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사람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여기고 살아왔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마음에 소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난이 모든 눈을 가려 이미 영적 맹인이 되어버렸다. 사단이 이미 가난이라는 무기로 그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루는 백인 관광객들이 마을에서 떠날 때 팬을 한 상자 가득 사람들에게 뿌렸다. 그러자 너나없이 자기 일을 제쳐두고 팬을 줍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들었다. 원주민들이 생각하기에는 선의의 천사로 보이겠지만, 복음의 일 앞에서 오히려 물질에 더 마음을 빼앗기게 하는, 광명의 빛으로 가장한 사단이라는 생각에 너무 안타까웠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곳에 있으면서 3일간 아이들을 위한 이동집회를 가졌다. 배를 타서 강을 건너고 드넓은 초원도 지나며 하루하루 새로운 장소에서 구름 떼같은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 앞에 IYF댄스를 선보이고 찬송과 함께 율동도 가르치고 말씀도 전할 수 있었다. 집회동안 환하고 순수한 웃음을 마음껏 보여준 아이들.. 이런 아이들의 웃음이 가난으로, 형편으로 인해 빼앗겨 버릴까 염려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능히 이 웃음을 지키시리라!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복음을 우리를 통해 증거되기를 허락하신 하나님이 감사했다. 세상에 수많은 봉사 프로그램이 있지만 자신의 거짓된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참된 마음으로 봉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고, 이런 시간들이 행복하게 여겨졌다













    [ 소창훼 어린이 집회시간 좁은 예배당이 아이들로 꽉 찼다 ]





그곳을 떠나기 전날까지 우리는 저녁마다 교회에서 집회를 가졌다. 하지만 참석하는 대부분이 13살 정도 되는 꼬마아이들이다. 마을에 아이들이 워낙 많고 어른들이 있다고 해도 이미 영적 맹인이 되어 있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한편 실망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 있을 때 들은 옛 선교회 얘기가 생각난다. 한국의 선교회도 오래 전에는 주부들과 아이들만 많아 타교회로부터 쓴소리를 들었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아이들도 커서 단기선교사도 나가고 사회에도 나가 힘있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그 이야기를 회상하며 소찬훼를 향한 큰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 이곳에 왔을 때 아이들이 우리를 보면 “par la loi(율법으로~)”라고 외쳤다.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단기선교사 활동 중에 우리는 그들에게 “par la foi(믿음으로~)”라고 외쳤고, 이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우리를 보며 인사말처럼 “par la foi(믿음으로~)”라고 외친다.
아직 작은 교회이지만 약속편에서 미래의 소찬훼는 이미 복음을 들었던 아이들이 힘있게 복음의 일 앞에 쓰임 받는 복음의 마을이 될 것이다.
11일의 지역교회전도를 마치고 많은 아쉬움을 안고 돌아왔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그들과 같은 열악한 형편에서 생활을 했던 11일 동안 형편으로 인해 절망을 바라봐야 하는 그들과 달리, 복음이라는 단 하나의 조건으로 인해 소망을 바라보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에게도 형편을 능히 이기시는 예수님이 마음에 임하실 날을 소망해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많은 불뱀에 물려 고통하고 있을 때 마을 중심에 하나님이 놋뱀을 달게 하셔서 구원의 빛을 나타내신 것처럼 가난이 소찬훼 마을 사람들을 물어 소망에 눈멀게 했지만 단 하나의 소찬훼 선교회가 마을 중심에 빛으로 나타나 많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할 날이 얼마 안남은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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