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온전케 하신 주님과 함께 다시 미국으로 간다
나를 온전케 하신 주님과 함께 다시 미국으로 간다
  • 신한빛솔
  • 승인 2013.07.11 1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길의 빛

2007년, 미국 LA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이후 하나님은 나에게 미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 모든 단기선교사가 그렇듯 나 역시 미국을 떠난 그 순간부터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2008년 여름 나는 학생 비자를 품에 안고 다시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유학생 신분으로 새로운 미국 생활을 시작했고, 2010년에는 다니던 2년제 대학에서 주립대학으로 편입을 시도했다. 안타깝게도 LA소재 대학교에 모두 불합격해, 떠나고 싶지 않았던 정든 LA를 떠나 오하이오 주(州)로 학교를 옮겼다.
오하이오는 학교 생활에서 주변 환경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LA와 달랐다. ‘이제 유학생활에 좀 익숙해지겠구나.’ 싶었는데, 처음 미국에 발을 디뎠을 때의 어색함과 막막함이 다시 나를 짓눌렀다. 미국이 얼마나 넓은 나라인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다른 나라에서 새로 유학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 불면증이 찾아왔다. 차분하고 재치가 많은 내가 불면증에 걸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세는 심해졌다. 교회가 너무 멀어서 가지 못하고, 결국 나는 약간의 술기운을 빌려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알코올이 섞인 독한 감기약과 함께 마셔야 잠에 빠지곤 했다. 불면증 자체보다도, 불면증이라는 바위에 깔려 버둥대고 있는 무능력한 나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아무리 고민해봐도 이 불면증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찾을 수 없었다.
그 즈음 군 입대 시기를 결정해야 했다. 주위 사람들은 더 늦기 전에 군대를 가라고 권유했지만, 나는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다. 2011년 6월, 부모님의 강권에 못 이겨 졸업을 1년 남겨두고 떠밀리듯 귀국해 입대했다.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간 군대였지만, 겪어보니 단기선교에 비해 아주 쉬웠다. ‘잘하면’ 인정받을 수 있으니 ‘못할’ 것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잘하면 그만인 군생활은 내게 식은 죽 먹기였다. 마음의 세계를 배울 때는 늘 뒤처지던 나를 사람들이 인정해주기 시작했고, 군 생활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휴가를 나와 교회에 가면 복음을 전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속에는 ‘나는 복음 못 전해. 내가 이제 와서 하나님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비웃을 거야’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어느 날, 내가 가장 아끼던 후임의 어머니가 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다. 나를 인생의 선배로 여기며 조언을 구했던 녀석은 내 앞에서 오열했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명언집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건네고 돌아섰다. 기분이 묘했다. 생각해줘서 고맙다는 후임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비참했다. 내가 과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맞는지,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생각은 내가 들어온 모든 말씀보다 강하게 나를 이끌었다. 나의 옳음은 무서우리만큼 강퍅했다.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사망의 생각을 품고 사는 나. 불면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제대가 임박하자 두려움이 찾아왔다. 미국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쁘다가도 미국에서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 어두움만 내 마음을 채웠다. 결국 나는 목사님을 찾아갔다.  
“목사님, 저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믿고 싶은데 사단이 나를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목사님은 더 묻지 않고 내 마음에 말씀을 세워주셨다. 하나님은 목사님을 통해 내 마음에 정확한 선을 그어주셨다. 언제나 나는 나를 보며 안심하고 싶었다. 좋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내 안에서 찾고 있었다. 과연 내가 생각에 빠지지 않고 밤에 숙면을 취할 수 있는지 스스로 자신을 체크했다.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좋다가도 나빠지고 나쁘다가도 좋아지고, 혼란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말씀 안에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말씀 바깥에 있는 나’와 ‘말씀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이 정확하게 나눠지면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말씀 안에 있는 나는 이미 온전케 되어 있었다. 구원받을 때 나의 행실을 보고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하신 이를 믿는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것처럼, 나는 약하지만 나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 안에서 편히 쉴 수 있다.
불뱀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망으로 몰아넣었을 때, 하나님은 불뱀을 없애지 않고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게 하셨다. 나는 지금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던 많은 밤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이제 나는 예수님 안에서만 발견되길 원한다. 예수님 밖에서 스스로 지혜로워지려고 했던 모든 시간들 동안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를 온전케 하신 주님과 함께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8~9)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