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 이 사람은 나의 택한 그릇이라
가라, 이 사람은 나의 택한 그릇이라
  • 박옥수 (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3.11.1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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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신 주님

 

기쁨 가운데 가장 큰 기쁨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누리는 것 같은 기쁨이 없다. 물론, 세상을 살다 보면 물질적으로 어렵기도 하고, 가정에 문제가 생길 때도 있으며, 자녀들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성령이 일하셔서 기쁨을 주시면, 그 기쁨이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우리로 하여금 복되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해 준다.
신앙생활 속에서 누리는 기쁨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해서 한 사람이 거듭나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축복이다. 나는 내가 복음을 전해서 아버지가 구원받으셨을 때 감격스러웠고, 그 기쁨을 평생 잊을 수 없다. 우리 딸이 구원받았을 때를 생각해도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그리고 일본에 살던 작은아버지와 사촌동생들이 구원받았을 때나 주위의 형제 자매들이 구원받고 변화되었을 때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전해서 역사가 일어나려고 하면 사탄은 반대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문제를 주고 부담스럽게 한다.

직가로 가서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아라
사도행전 9장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특별히 말씀에 깊이를 가진 사람도 아니고, 이름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섬기는 평범한 제자였다.
어느 날,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일어나 직가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아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아나니아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큰 부담이 생겼다. 다소 사람 사울이라면, 스데반을 죽일 때 가편 투표를 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잔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수없이 핍박하고 이제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어떻게 가서 복음을 전해? 그러다가 잡혀서 죽을지 몰라. 또 내가 잡혀서 형제 자매들이 어디에 있는지 고하라고 고문을 당하면 그걸 어떻게 견디지?’
아나니아의 마음에 이런 생각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주님께 “이 사람에 대해서 여러 사람에게 들었는데,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고 하고,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받아서 왔습니다.” 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있고, 우리가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려고 할 때 부담과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일을 이미 계획해 놓으셨다.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다시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에서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라고 간증했다.

사탄이 사울을 복음 전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하려고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심하게 핍박하고 잡아서 죽이고 할 때,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많은 사람을 두고 복음을 가장 대적했던 사울을 통해서 복음 전하길 기뻐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수많은 성도를 해한 저 사람을 들어서 내 증인이 되게 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 사울을 그의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택하셨다. 그처럼 사울은 하나님이 택하신 일꾼인데,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꾼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예수님을 대적하고 핍박하는 위치에 서서 일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사울을 복음 전도자로 세우려고 하니까, 사탄이 사울을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하려고 어떻게든 그의 마음에 복음을 가리고 복음을 듣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어느 날,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사울의 마음에서 ‘이것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이들은 선량한 사람들을 미혹해서 어둠에 빠지게 하는 범죄 집단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악이니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어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잡힌 그리스도인들이 옥에 갇히면서 “예수님이 사흘 만에 살아나셨어요.” 하면 사울은 “시끄러워!” 하고 배척했다. 사탄이 ‘저들은 진짜 나쁜 사람들이니 저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 돼!’ 하는 생각을 사울에게 넣어 줘서 사울로 하여금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들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울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그는 마음을 닫고 아예 듣지 않았다.
우리도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본다. 사탄이 사울에게처럼 그들 속에 단순하게 생각 하나를 넣어서, “이 교회는 하나님을 잘못 섬기는 교회야.” 하는 말을 한번 들으면 그 후로는 아무 말도 듣지 않고 그 소리만 따라서 우리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사람이 많다.

“주님, 그 사람에게 가라고 하시다니요?”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수많은 성도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고,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웬만큼 정리됐다고 여겨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갔다. 그런데 가던 길에 갑자기 밝은 빛이 그를 환하게 비취면서 그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때 소리가 들리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사울은 깜짝 놀랐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누구시기에 내가 당신을 핍박했다고 하십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하고 말씀하셨다. 사울은 크게 놀랐다. ‘예수님이 사신 게 맞구나!’ 그때부터 사울의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사울은 밝은 빛을 보아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로 다메섹에 들어갔다. 하나님은 그런 사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아나니아를 보내셨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모르는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주님, 이 사람이 올까봐 우리는 다 피하고 도망가고 숨고 있는데요, 그 사람에게 가라고 하시다니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준비하신 사울 같은 사람, 아니면 구스 내시 같은 사람을 붙여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그때 사람들은 대부분 부담스럽게 여겨서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
아나니아는 정말 사울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고 말씀하셨다. 아나니아의 생각에는 사울에게  가면 잡혀서 감옥에 갈 것 같고 죽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나니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직가로 갈 때까지도 그의 마음이 갈팡질팡했을 것이다. 그런데 직가에 가서 사울을 만나 기도하고 있던 그에게 안수하니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고, 그와 교제하면서 사울이 성령이 충만해졌다. 그 후 사울은 교회와 연결되어 다메섹 교회의 형제로 지내면서 매일 변해 갔다.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면
우리가 보기에는 아나니아가 복음을 전해서 사울이 구원받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복음을 전해서 어느 장관이 구원받고 어느 유명한 의사가 구원받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다. 우리는 그냥 가서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닥치는 크고 작은 어떤 일이든지, 모든 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날 사람을 두려워해야 할 필요가 없다. 담대히 가서 복음을 전하면 오늘도 사울 같은 대적도 돌아서게 되고, 구스 내시 같은 사람도 구원을 받는 것이다.
한국에 구스 내시 같은 사람이 정말 많다.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면 처음에는 자신을 지키려고 하고 자신이 잘난 것처럼 말해도, 이야기를 계속해 가면 그 마음이 낮고 복음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된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 앞에서 사탄이 주는 부담스럽다는 음성을 듣지, 주님이 하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나니아는 처음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사울에 대한 굉장한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는 말씀을 듣고 갔을 때 하나님이 그를 통해 일하셨다. 그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을 만나 그가 구원받는 큰 기쁨을 얻게 될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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