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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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윤숙 (기쁜소식도봉교회)
  • 승인 2013.12.1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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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길의 빛

 
사는 게 힘들어 죽은 후엔 천국에 가고 싶어서
어릴 적 아주 부유하게 살다가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 사업이 부도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부모님은 빚쟁이를 피해 숨으셨고, 우리 5남매는 큰아버지 댁에서 살아야 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했지만 눈치가 보였다. 우리는 공장을 다니며 공부하던 시대는 아니었지만, 나는 야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하면서 3교대 일을 한다는 것이 참 힘들었다. 밤새 일하고 아침에 학교에 갈 때와 시험 기간이어서 잠을 자지 않고 야간 근무를 할 때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기에 죽음 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반드시 천국에 가고 싶어서 한 달에 두 번밖에 없는 쉬는 날에 교회를 다녔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애썼지만 이상하게 죄가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하루는 교회에서 기숙사로 가는 길에 지하철역에서 전도하던 분을 만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천국에 예수님이 나를 들어가게 해주신 것이다. 나에게 복음을 전해준 형제님의 인도로 부산에서 교회를 다니다가, 얼마 후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도 교회를 나갔지만, 얼마 후 내 생각을 따라서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꽤 오랜 세월을 교회 밖에서 살았다.

진행성 위암이라는 판정을 받고
결혼하고 두 딸을 낳은 후 진행성 위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암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교회를 떠나서 생긴 병이라는 생각이 들어 담담했다. 병실에 있는데, 호주에 계시는 남편의 이모가 전화해서 수술하기 전에 이모님이 아는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고 들어가면 좋겠다’고 했다. 기성 교회 목사님에게 안수받고 싶지 않아서 괜찮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이모님은 기쁜소식선교회 소속 교회에 다니고 계셨다.
수술을 받고 기쁜소식도봉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1년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항암치료는 끔찍하고 힘들었다. 3개월쯤 치료를 받고 목사님을 찾아가서 치료를 중단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목사님도 같은 생각이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자고 하셨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요 11:4)
이 말씀이 나에게 약속이 되었다. 남편과 가족의 반대가 심했지만 내 의견을 따라주었다. 치료를 담당한 교수님을 만나 나의 의사를 밝히자 교수님은 후회하지 않을 수 있냐고 물으셨다. 자신있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때 갑자기 궁금한 점이 있어서 교수님께 물었다.
“교수님, 만약 5년 안에 재발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런 일은 상상하지도 말고, 묻지도 마세요.”
세 번을 물은 다음에야 교수님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해 주셨다.
“만약 5년 안에 재발되면 이 세상에는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다는 말에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세상에 길이 없다면 예수님이 길이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교회에서 말씀을 듣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고, 그 시간이 늘 사모되었다.

“병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사실이에요.”
2년쯤 지나, 어느 목사님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시는 것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목사님보다 믿음이 좋지도 않고, 목사님처럼 복음을 위해 산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살려 주실 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 구원받지 않은 가족에게도, 교회에서도 불안한 마음을 숨겼다. 나는 예배 때 점점 뒷자리에 앉기 시작했고, 졸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모했던 말씀이 지겨운 말씀으로 변해 갔다. 1년이란 세월을 그렇게 보내면서, 내가 숨기고 있는 불안한 마음 때문에 말씀을 듣는 것이 지겹고 싫은 마음이 든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해에 있었던 대전도집회 때 말씀이 마음에 들리기 시작했다. 강사인 박옥수 목사님께서 설교 도중에 암 환자 이야기를 하는데,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우리 교회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모님, 암 이야기만 나오면 미칠 것 같아요. 너무 불안하고 무서워요. 왜 이렇게 암 때문에 죽는 사람이 많아요?”
“자매님은 하는 행동이 의인다워서 의인이라고 말합니까?”
사모님의 뜬금없는 질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경 말씀에서 우리를 의롭다고 했기에 우리가 당당하게 죄가 없다고 말하잖아요. 자매님, 병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사실이에요.”
“사모님, 이제 알겠습니다. 성경 말씀이 진실입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에요.”
5분 동안 나눈 이야기가 1년이란 긴 세월 동안 시달렸던 고통과 두려움을 단숨에 꿀꺽 삼켜버렸다.
 
폐경을 막아 주시고 아이도 갖게 하셨는데, 왜 딸을 주셨을까?
얼마 후,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교수님과 임신을 해도 되는지 상담했다. 교수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다시 4개월 뒤 병원에 갔을 때였다. 내가 치료받은 대학병원에서는 앞의 환자가 의사와 나누는 대화를 대기하면서 다 들을 수 있었다. 내 앞에서 진료받은 분은 암을 치료받은 후 4년 8개월 만에 재발한 상태였다.

 
내가 진료실에 들어섰을 때 교수님은 한참을 심각한 상태로 있다가 입을 여셨다. 앞에 진료받은 환자가 나와 같은 상태였는데 완치를 몇 개월 앞두고 죽게 되었다며, 그럴 때가 의사로서 가장 힘들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암 수술을 받고 5년 이내에 아이를 낳으면 면역력이 약해지고, 그러면 암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아이를 가지려는 나를 미련하다고 말했지만, 내게는 아이를 가져야 할 이유가 있었다. 아들을 바라시는 시부모님의 원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인공수정도 안 되어 시험관 아이라도 낳고 싶었다. 남편은 “당신이 건강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는지 듣고 싶었다. 수양회 기간에 김동성 목사님이 전하신 말씀을 들었다. 목사님은 8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 자매님 이야기를 하셨다. 자매님이 몇 가지 방법으로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데,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으러 온 것이다. 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다고 한다.
“자매님, 그 방법으로 임신한다고 합시다. 열 달 동안 자매님 방법으로 아이를 지킬 수 있습니까? 지켰다고 합시다. 학교에 들어가기까지는 아이를 지킬 수 있습니까? 학생이 되어서는요? 그 아이의 평생을 자매님의 방법으로 지킬 수 있습니까?”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내 방법을 따라 살아서 고통을 당했던 지난 삶을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남편에게 ‘하나님이 아이를 주실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2개월 후 임신이 되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무척 놀라워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묻지도 않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딸이라고 했다. 아들이 아니라는 말에, 벚꽃이 흩날리는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받은 항암치료는 한 번만 받아도 폐경이 되는데, 나는 3개월을 받았는데도 폐경이 되지 않아 나를 치료한 교수님은 논문을 다시 써야겠다고 하셨다. 그처럼 폐경을 막아 주시고, 목숨 걸고 아이도 갖게 하셨는데, ‘왜 딸을 주셨을까?’를 생각했다. 딸 셋이 필요하다면 셋째 딸도 감사하게 받을 마음을 주시라고 기도했다. 갑자기 ‘아들, 아들’ 하는 내가 한심하고 미련해 보였다.
셋째가 태어났을 때 간호사가 바로 아이를 내 배 위에 올려 주었다. 그런데 얼굴이 아니라 엉덩이가 내 얼굴을 향하게 올려 주었다. 의사 선생님이 간호사에게 “탯줄이 짧아서 그래?” 하고 물으니 간호사가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엉덩이 사이로 고환이 보였다. 하나님이 “믿음 없는 최윤숙, 봐라. 아들이다, 아들!” 하시는 것 같았다. 상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때의 기쁨이란…!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방주 안으로 이끌어 들이기를 기뻐하시기에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남편에게 교회를 나갈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그동안 남편은 나와 함께 수양회에도 참석했다. 구원은 받지 않았지만 우리 교회를 비방하는 소리가 거짓임을 알고 ‘이런 교회라면 다녀도 되겠다’며 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은 완전히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교회에 행사가 있을 때면 늘 참석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에는 가족 장기자랑 대회에서 1등도 하고, 교회에서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교회에 조금씩 마음을 들여놓게 하시는 주님께서 남편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줄 믿는다.
우리 친정 식구들은 5남매 가운데 큰언니와 막내 동생이 구원을 받았다. 부모님과 남은 형제들도 주님이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 7:1)
짐승들은 노아의 방주에 본성을 거스르며 들어갔다.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그렇게 방주 안으로 이끌어 들이기를 기뻐하시기에, 나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쉬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날들을 소망 가운데 기다린다.
뒤돌아보면 암은 하나님이 내 인생에 주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암 때문에 교회로 돌아갈 수 있었고, 하나님을 믿는 삶을 시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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