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과 은혜로 가는 길
긍휼과 은혜로 가는 길
  • 박영준 (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14.01.27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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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우리 죄를 드러내시는 예수님
에베소서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예수님에게 넣으신 후 그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 한 분만 있으면 우리가 아무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우리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하셔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눅 2:35) 예수님은 우리의 악한 생각을 드러내십니다. 우리 눈에는 균이 보이지 않지만 적절한 온도와 습도로 균을 배양하여 현미경으로 보면 꿈틀거리는 균을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우리 속에 있는 죄의 균을 배양해서 죄를 드러내는 일을 하십니다.

은혜에서 떠나 있는 에서의 마음을 드러내시는 하나님
야곱과 에서에 관한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속에 있는 자신감을 드러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 이삭이 에서에게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오면 그걸 먹고 너를 마음껏 축복하겠다’고 합니다. 에서는 기뻐하며 서둘러 나가 사냥하여 잡은 짐승으로 별미를 만들어 옵니다. 하지만 결국 저주를 받습니다. 에서에게는 아내도 있고, 어머니도 있었지만 그는 별미를 만드는 일에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일 앞에서 에서는 은혜를 입어야 했는데, 그는 스스로 잘할 수 있었기에 은혜를 입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축복 앞에서 은혜에서 떠나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 에서의 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은혜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나를 믿을 수 없다.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균을 배양하듯 속에 있는 마음을 확대시켜 보면 자신을 믿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다 버렸다고 이야기하지만 인정해 주고 세워 주고 높여 주면 주님의 은혜에서 떠나는 마음들이 나타납니다. 마음에 있는 것들을 배양시켰을 때 끝까지 은혜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마음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건과 환경만 갖춰지면 사람들은 얼마든지 죄를 짓습니다. 자신을 악한 데에 내줍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21~23)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 모두가 더럽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악한 마음을 알 수 있도록 죄를 배양시켜서 보여 주십니다. “이것 봐. 너는 더러운 사람이야. 너는 악한 사람이야.” 하고 말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에게는 은혜가 필요했다
사람들은 죄인으로 드러나지 않고 바르게 살려고 합니다. 은혜는 죄인에게 필요한 것인데, 율법을 지켜서 선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2장에서는 우리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아래 있다고 말씀합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탄 아래 있는 우리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진노를 받는 위치에 있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는 모든 사람들 앞에 죄가 드러나서 죽을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은혜가 필요했습니다. 시글락을 불태우고 다윗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가족을 잡아간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던 애굽 소년은 분명히 다윗의 원수입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다윗과 한편이 되어서 싸우러 갔습니까? 사울의 손자요, 두 발이 절뚝발이였던 므비보셋은 어떻게 다윗과 한 상에서 먹었습니까? 다 은혜로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사람, 진노를 받아야 할 사람 들이 주의 긍휼 앞에 나아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사람들을 살립니다. 긍휼은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는 교회의 가장 큰 대적자였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요, 교회를 대적하는 자임을 볼 때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조건 없는 사랑, 그 사랑이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경건치 않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려고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4~5)
성경은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사는 사람은 받을 빚을 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수고도 하지 않았지만 경건치 않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경건치 않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의 악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죄를 배양시켜 악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부끄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은혜를 입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과 죄가 드러나면 실족하는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악한 나를 드러내시고 당신의 긍휼 앞으로 이끌어 가신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오랫동안 우리 자신을 가리면서 살았습니다. 이제 나의 악함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악이 드러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입어 하늘의 것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라며
우리 육체 안에는 또 다른 ‘내’가 있습니다. 껍데기인 육체는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지만 또 다른 나는 하늘의 것으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가 돌아왔는데, 돌아온 둘째 아들은 떠날 때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육체는 다 망하고 참 둘째 아들이 돌아온 것입니다. 하늘의 것을 얻을 때 우리 마음에 행복이 찾아옵니다. 그 하늘의 것은 우리 행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는 세계입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은혜를 입어서 하늘의 것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우리를 통해서 육체의 즐거움이 아닌 영혼의 만족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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