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종도 생각의 종도 아니요 오직 말씀의 종으로
사람의 종도 생각의 종도 아니요 오직 말씀의 종으로
  • 김현정
  • 승인 2014.02.0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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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간증

 

신앙의 첫걸음
나는 1992년 전주에서 있었던 대전도집회에 참석해서 복음을 들었다. 그 후 우리 선교회를 비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교회에 나가지 않은 채 방황하면서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 어느 토요일, 집에 혼자 있으면서 ‘내일이 주일인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위경련이 일어났다. 사경을 헤매면서 “주님, 살려 주세요! 너무 고통스러워요!” 하면서 주님을 불렀다. 눈도 돌아가고 손발도 돌아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위액까지 토해낸 후에야 숨을 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난 후, 서전주교회(현, 기쁜소식전주교회)의 어느 형제님이 전화를 해서 “교회에 한번 오세요” 하였다.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 교회에 나갈 수 있었다.
주님의 은혜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후 목사님의 말씀대로 엄마가 구원받았다. 그 일은 교회와 목사님을 향해 마음을 열게 해주었다. 교회에서 지내는 것이 감사했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구원받은 청년 자매들이 결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잔뜩 고민에 빠졌다. 나도 구원받은 사람과 결혼해야 하겠지만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지 못할까봐 마음이 어두워졌다. 마음이 점점 세상으로 기울어졌다.

뇌하수체에 종양이…
교회를 한 번씩 빠지다가 점점 자주 빠지면서 마음이 세상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마음이 전혀 즐겁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두려웠다.
어느 날, 머리가 심하게 아파서 큰 병원을 찾아가 MRI 검사를 받았다. 뇌하수체 쪽에 종양이 있다고 했다.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되며, 수술을 해도 산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수술이 성공한다 해도 뇌하수체는 호르몬을 관장하는 곳이기에 아기를 낳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의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죽음 앞에 세워 보았다. ‘내가 지금 주님 앞에 간다면 무엇을 들고 갈까? 교회를 떠나서 살았는데 주님이 나에게 뭐라고 하실까?’ 부끄러운 반면에 내가 받은 구원이 너무 크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길로 교회로 돌아가 목사님께 모든 일을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박옥수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을 수 있게 해주셨다. 대덕 수양관에서 박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목사님은 “하나님, 이 청년 자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셨다.
솔직히 나는 병을 낫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구원받고 살아오면서 죽음 앞에 나를 세워본 그때만큼 주님과 가깝고 행복했던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다가 주님 앞에 서고 싶었다. 그런데 주님은 놀랍게도 숨쉬기도 힘들었던 두통에서 나를 건져 주셨다. 그리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절뚝발이 형제를 신랑으로 준다 해도 받을 수 있어. 그렇지?’
나이 서른이 넘어서자, 집에서는 결혼을 못 하고 있는 나를 집안 부끄럽게 한다며 괄시하기 시작했다. 그런 수모를 받는 게 싫어서 명절이 되어도 집에 가지 않고 구원받은 자매들이 함께 생활하던 자취방에서 뒹굴뒹굴하며 신세 한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대전도집회에 참석해서 말씀을 듣는데, 강사 목사님이 “여러분,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세요”라고 외치셨다. 그 말씀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결혼인데, 내가 이 문제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길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가운데 말씀을 듣기 시작했지만,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작아지고 주님은 커졌다.
집회 마지막 날, 나는 마음으로 주님과 약속을 맺었다. ‘주님, 저는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주님이 이렇게 살려 주셨습니다. 제 인생, 이제 주님께 맡기고 살겠습니다. 제 인생 전부를 당신에게 걸겠습니다.’ 그러자 마음에서 주님이 ‘네가 정녕 나를 믿는다면 내가 너에게 절뚝발이 형제를 신랑으로 준다 해도 받을 수 있어. 그렇지?’ 하고 물으셨다. 나는 ‘예, 주님. 누군가가 나에게 독이 든 물을 준다 해도 내가 그 사람을 믿는다면 그 물을 받아 마실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남편과 선을 보았다. 절뚝발이가 아니어서 정말 감사했다. 그런데 당시 나는, 뇌하수체 쪽에 있었던 종양의 영향인지 경도가 일정치 않아 1년에 두어 번 정도 했고, 생리통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결혼을 앞두고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남의 집 대를 끊어 놓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런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는데, 여호와를 바라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잉태케 하셨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나의 어려움을 주님이 돌아봐 주신 것이다. 나는 잉태할 수 없는 조건이었는데, 하나님은 내게 말씀대로 역사해 주셨다.

네 남편의 능력은 보리떡 다섯 개밖에 안 되지만

 
남편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기에 우리 가정에는 일정한 수입원이 없었다. 둘이 사는 동안에는 생활이 어려운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첫애를 낳고 아이가 배가 고파서 울 때면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남편은 공부를 그만두고 직장을 알아 보러 다녔다. 세일즈 일을 하겠다고 했다. 내가 아는 남편은 누군가를 설득해서 뭔가를 팔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어려운 중에 월드캠프 교사로 참석했는데, 예수님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말씀을 들었다. 주님이 나에게 ‘네 남편의 능력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안 되지만 내가 축사하면 오천 명을 먹이고 남는 능력을 갖게 돼. 내가 축사할게’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절망 속에 있던 나에게 그 말씀은 소망이 되어 자리를 잡았다.
캠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더듬어 찾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다 보니,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구분해서 주시는데, 그 땅에는 성도 있고 들도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할 집도 주시고, 양식을 얻을 들도 함께 준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직장도 주시고 집도 주시겠다’는 마음이 들어왔다. 내 안에서는 그렇게 주님의 마음이 커 가는데, 형편은 여전히 아이 분유 값이 없어서 절절맸다.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고, 남편은 교수님의 추천으로 어느 회사에 입사 원서를 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조건과 남편의 학력이 맞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결국 남편은 임시직으로 KAI(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한 달 정도 근무했을 때 회사 경영진이 개편되면서 임시직을 다 정리하기로 했다. 임시직의 90%는 퇴사 처리하고, 10%만 정규직원으로 전환시키기로 한 것이다. 남편은 어떻게 될 것인지? 남편은 학력이 10%에 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가정에 양식 얻을 들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남편을 정규직원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대로 사원아파트도 허락해 주셨다.
이 일은 내 마음에 큰 흔적을 남겼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려진 후,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더듬어 찾아가는 법을 배웠다. 문설주에 귀를 대고 주인의 음성을 기다리는 종의 마음, 주님의 말씀이 삶 속에 나타나기까지 주님만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인내를 하나님은 나에게 가르치셨다.

메뚜기처럼 뛰어오르자
시간이 흘러 광주로 이사를 왔다. 교회 안에서 1년 정도 살았는데, 새벽에 일어나 방문을 열면 예배당에서 갖는 새벽 모임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말씀을 듣고는 식당으로 내려가서 자매님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지낸 날들은 복잡하고 잔가지가 많았던 내 생활을 단순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나그네의 삶이 어떤 삶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후 셋째 출산을 앞두고 목사님께서 집을 사라고 하셨다. 가진 돈이라고는 5백만 원뿐이었다. 아파트 값은 1억 6천만 원이었다.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 일에 동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데, 우리 가정은 시댁이나 친정이나 도움을 얻을 만한 곳이 없었다. 우리 부부는 얼굴을 쳐다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가운데 있었다.
그때 미국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성경세미나가 있었다. 미국의 형제 자매들에게 들려진 말씀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메뚜기는 어디에 착지할지 모르지만 일단 뛰어오릅니다. 하나님은 그 메뚜기를 정하다고 하십니다.” 우리 부부는 그 말씀 앞에서 마음을 정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계약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메뚜기처럼 뛰어오를 때 하나님이 도우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마음을 정하자, 남편 회사에서 그때까지 없었던 ‘퇴직금 중간 정산 제도’를 시행했다. 그 돈으로 아파트를 계약했다. 그리고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한 사람이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세로 주었다. 산울로 두르고 망대와 즙 짜는 구유가 만들어진 포도원이었다. 그 포도원처럼 하나님은 내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셨다. 나는 그렇게 주님이 쳐주신 울타리 안에서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나님, 아들이 죽으면 저도 죽습니다!”
2009년,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겨울에 신종플루가 유행했다. 하루는 학교에 다녀온 아들이 머리가 심하게 아프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열이 끓고 얼굴이 새카맣게 변했다.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갔는데, 전염성이 강한 병이라 병동에서 따로 떨어진 조립식 건물에서 진료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통증이 심한 아들은 대기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흙바닥에 누워 고통을 호소했다. 약이 부족해서 약도 주지 않으려는 걸 사정사정해서 ‘타미플루’를 얻어서 나오는데, 의사가 뒤에서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약을 먹이면 내성이 생기니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1주일을 기다려야 해요” 하였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열이 40도로 올랐다가 갑자기 34도로 떨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얼굴색은 점점 까매지고, 머리는 깨질 것처럼 아프다고 연신 고통을 호소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뉴스에서는 20대 여자가 신종플루로 사망했다는 등 연일 무서운 이야기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고통하며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하나님, 우리 아들을 살려 주세요! 아들이 죽으면 저도 죽습니다! 저 좀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때 나에겐 하나님이 아들을 지켜 주시겠다는 믿음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믿음을 가져서 내 마음에 있는 두려운 마음을 쫓아내고 싶은데, 아들 상태가 조금 좋아진 것 같으면 믿음이 생기는 것 같다가 급격히 안 좋아지면 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믿음의 사람처럼 의연하고 담대하게 서 있고 싶은데, 형편이 주는 두려움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내가 너무 싫고 한심했다.
나는 두려움 앞에서 떨고 있었지만 주님은 아들을 신실하게 지켜 주셨다. 1주일 후 아들이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확진 판정이 나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약을 복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이러스를 다 이겨내고 거의 다 나아 있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약을 먹어야 한다는 병원의 지시가 있어서, 우리 아들은 다 나은 후에 타미플루를 복용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 후 “우리는 엔진이 고장난 배와 같아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합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나는 내 안에서 믿음을 내고 싶었지만 나 자체는 믿음을 만들어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었다. 온전하신 예수님의 마음과 연결되는 것, 어떤 형편에서도 변치 않는 주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나에게 길이었다.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자인지 가르쳐 주시고, 나에게서 돌아서서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다. 그 일은 내 신앙생활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그 후로는 어떤 일을 만날 때마다 내 속에서는 올라오는 마음 말고 ‘주님의 마음은 어떠할까?’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사람의 종도 아니요, 생각의 종도 아니요, 오직 말씀의 종으로
1년이 흐른 후, 큰아들이 학교에서 또 쓰러지는 일이 있었다. 검사 결과 부정맥 판정을 받았다. 나의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지병을 아들에게 물려준 것이다.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더 이상 지킬 수 없어서 갈상자에 넣어 하수에 버리듯, 하나님은 내가 잘 키워 보고 싶었던 자식들을 주님 손에 내려놓게 하셨다. 그렇게 나의 마음을 이끌어 주셔서 주님 안에서 사는 행복을 하나씩 가르쳐 주셨다.
삶 속에서, 교회 안에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나는 고통스러워했지만, 그 일들은 다 나에게 주님의 세계를 가르쳐 주는 도구들이었다. 얼마 전에는 내가 왕궁의 안락한 삶에 젖어서 지냈던 에스더와 같음을 주님이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로 즐거움에 빠져서 지낸 것이다. 에스더가 생명을 얻기 위해 왕 앞에 나갔던 것처럼 나 또한 살기 위해 주님 앞에 나갔으며, 주님은 성경공부를 할 수 있게 이끌어 주셨다.
오랜 시간 이 땅에서 살면서 내 속에 형성된 생각이나 관념들이 얼마나 나를 해롭게 하고 망하게 하는 것인지를 주님은 여러 일들을 통해서 보여 주셨다. 그래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지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와 같아서 그 속에는 하나님의 모든 능력이 담겨 있다. 내 마음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도 살아서 내 생각의 껍질들을 벗겨내고 있다. 그 말씀이 나를 사람들의 종도 아니요, 나 자신의 종도 아니요, 내 생각의 종도 아니요, 오직 말씀의 종으로 살도록 인도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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