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골짝에서 만난 어느 아저씨
깊은 산골짝에서 만난 어느 아저씨
  • 정근창 (기쁜소식벌교교회 목사)
  • 승인 2014.02.04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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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전도여행 이야기

돈 없이 떠나는 전도여행. 기쁜소식선교회의 사역자들은 한번씩 무전전도여행을 떠난다. 그것도 날씨가 제법 쌀쌀할 때. 잠은 어디서 자고, 밥은 어떻게 먹을지? 하루의 잠자리와 한 끼의 식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리고 전도여행 중 어느 곳에서 만난 마음이 가난한 사람. 그가 복음을 받아들여서 구원받아 기쁨과 감사를 쏟아낼 때 전도자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를 함께 느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사역자들의 무전전도여행기(記)를 연재로 소개한다.


내가 구원받은 이야기
무전전도여행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주님 안에 들어온 일을 짧게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 이대로 술을 계속 먹으면 3년 안에 죽어요!” 구원받기 전 내 몸은 술로 인해 간경화에 걸려 있었다. 서른 갓 넘은 때였다. 인생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술이나 실컷 마시고 죽자’ 하고 더 많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위에서 출혈이 생겨 피를 토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지어다 주신 약을 오기로 먹지 않고 다 버렸다. 그렇게 살다가 가족의 인도로 여름 수양회에 참석했고,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읽었으며, 전도집회에 참석해서 말씀을 듣던 중 구원을 받았다. 1987년의 일이다.

무전전도여행 출발

 
몇 년 전, 기쁜소식의정부교회에서 사역할 때 아내와 함께 떠난 무전전도여행.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굶는 건 몰라도 잠은 어디서 자지?’ 하고 걱정이 되었다. 우리 부부의 전도여행 여정은 서울에서 출발해 전주까지 가서 인근 시골에서 전도하는 것이었다.
첫날, 한없이 걷다가 차를 얻어 타고 가다가 하다 보니 어느덧 깊은 밤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마을도 없는 허허벌판을 걷고 있었다. 11시가 넘어서 차 한 대가 지나가는데 손을 들었더니 태워 주었다. 전주 아무 곳에나 내려 달라고 부탁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무 피곤해서 졸기 시작했다. 운전하던 청년이 흔들어 눈을 떠보니 전북대병원 장례식장 앞이었다.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가라며, 초코파이와 초콜릿과 과자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건넸다. 조카 주려고 산 건데 전도여행 하는 우리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따뜻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기도회를 가진 후 하나님이 왜 우리를 장례식장으로 인도하셨는지 생각했다. 우리 부부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다 죽은 것이니 그것 의지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어떤 아저씨가 우리를 이 산골짜기에 내려 주고 갔습니다.”
병원을 나와 임실군에 도착해서 어느 동네의 마을회관에 들어가 15명의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두 시간 가량 복음을 전하면서 마음이 참 행복했다. 그날 밤은 옆 동네 마을회관에서 이장님의 배려로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와 총각김치에 저녁을 잘 먹고 따뜻하게 잤다.
다음날 아침,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아침을 맛있게 먹고 기도회를 가진 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주님이 어느 곳으로 인도하실지…?
이 마을 저 마을 찾아다니면서 전도하다 보니 어느새 또 저녁이 찾아왔다. 그 밤을 어떻게 보낼지 막막했지만 ‘하나님이 또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두셨을 것이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밤이 깊어 가지만 우리 부부는 계속 걷기 시작했다. 얼마 후 자동차가 지나가기에 얻어 타고 어디에든 내려 달라고 했는데, 어느 산골짜기에 우리 부부를 내려 주었다. 너무 막막했다.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마냥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10시가 조금 넘은 때였다.
한참 걷고 있는데 차 불빛이 보여서 무조건 세웠고, 무조건 올라탔다. 여자 분이 운전하고 남편 분은 옆에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 어디까지 가시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무전전도여행을 하고 있는 부부인데 어떤 아저씨가 우리를 이 산골짜기에 내려 주고 갔습니다.”
아주머니는 ‘누가 이 깊은 산골짜기에 내려 주고 갔냐?’고 하며 잘 곳은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자 ‘이 밤중에 어디를 가느냐?’며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아주머니는 암에 걸린 남편 치료를 위해 딸 집에 갔다가 두 달 만에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때 마침 구제역이 발생해서 집으로 오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소를 키우던 마을에서는 구제역 발병을 막기 위해 외부 사람이나 외부에 나간 마을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마을 이장님이 와도 된다고 연락해서 두 달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산골짝에서 우리 부부를 만난 것이다.
아주머니는 우리를 만났던 곳보다 더 깊고 높은 산골짜기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도착해서 보니 조립식 집이 한 채 세워져 있었다. 두 달 동안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아 보일러도 얼어 있었는데, 극적으로 가동되었다. 바로 밥을 하고 찌개를 끓여서 아주 맛있는 김치와 함께 깊은 밤에 저녁을 먹었다.

“하나님이 목사님 부부를 우리 집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따뜻하게 잠을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우리 부부는 기도회를 가졌다. 아주머니 부부도 일어나 아침밥을 해서 먹은 후, 우리 부부는 그 부부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암에 걸린 아저씨가 구원을 받았다.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암에 걸린 후 공기 좋은 곳에 가서 휴양을 하면 좋다고 해서 이 산골짜기까지 들어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장로교회를 16년 동안 다녔는데 이런 말씀은 처음 들었습니다. 제가 암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하나님이 목사님 부부를 우리 집까지 보내 주셔서 복음을 듣게 하여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저씨는 감사한 마음을 뜨겁게 우리에게 전했다.
아주 깊은 산골짝에 있는 그 집을 나서면서

 
나도 하나님 앞에 뜨겁게 감사했다. 암에 걸린 아저씨를 생각 하셔서 우리를 그 산골짝으로 보내시고, 두 달 만에 집으로 돌아가던 그 부부와 만나게 하신 하나님! 그리고 아저씨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여서 구원받게 하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싶었다.

아주머니는 우리 부부를 임실읍까지 태워다 주었다. 그 후로도 하나님은 전도여행 기간 내내 우리 부부와 동행해 주셨다. 전도여행 마지막 날, 전주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면서 우리 부부의 마음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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