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Siloam
실로암 Siloam
  • 관리자
  • 승인 2014.04.0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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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실로암의 현재 모습
실로암은 옛 예루살렘 성 동남쪽에 있던 인공 못이다. 히스기야 왕이 ‘기혼의 샘’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암반을 파서 수로를 만들고, 그 수로 끝에 실로암 못을 만들었다. 지금은 실로암이 옛 모습을 다 잃고 단지 옛날의 터와 흔적만 조금 남겨 놓고 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실로암의 한 부분에서는 히스기야가 만든 수로를 통해 물이 흘러와서 아직도 작은 못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기혼의 샘과 실로암
실로암은 성경 여러 곳에 나오는데, 구약에서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사 8:6), ‘왕의 동산 근처 셀라못’(느 3:15), 그리고 앗수르 왕 산헤립과 히스기야의 전쟁에서 히스기야가 수로를 만든 이야기에서 ‘아래 못’으로 등장한다.
옛 예루살렘 성에는 물을 공급받는 길이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성 밖에 있는 ‘기혼의 샘’에서 물을 공급받는 것이었다. 기혼의 샘은 예루살렘 성의 존립 여부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그래서 ‘다윗 성’이라 불리는 옛 예루살렘 성은 기혼의 샘을 기준으로 샘 근처에 세워졌다. 다윗이 여부스 족속이 이전에 예루살렘 땅에 쌓은 성을 정복할 때에도 기혼의 샘을 먼저 점령하고, 그 물길을 통해서 공격을 감행했다. 그리고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는 영적인 의식을 행할 때 기혼의 샘이 그 장소로 많이 쓰였다. 예를 들면, 솔로몬이 이곳에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때,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군사들이 물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기혼의 샘을 비롯해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수로(터널)를 만들어서 그 수로를 통해 기혼의 샘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여 물을 공급받았다. 그렇게 판 히스기야 터널의 끝이 실로암 못이다.

히스기야 터널

히스기야 터널은 어른 걸음으로 30분 가량 걸어야 터널을 다 통과할 수 있다. 터널의 높이는 2m 정도 되며, 폭은 한두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터널은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터널 안으로 물도 흐르는데, 무척 차갑다. 그래서 주로 여름에 이스라엘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18세기 중반부터 고고학자들에 의해 히스기야 터널과 실로암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고, 18세기 말에 한 아랍 소년이 돌에 새겨진 비문을 발견하면서 모든 것이 밝혀졌다. 이 비문을 ‘실로암 비문’이라고 하는데, 비문에는 수로가 어떻게 파여졌는지 당시의 상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히스기야 터널은 남쪽과 북쪽 양쪽에서 꼬불꼬불하게 파들어 갔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중간 지점에서 양쪽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정확하게 만난다. 전체 길이는 무려 533m에 이른다. 공사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실로암 비문에서 당시 공사자들의 증언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3규빗을 남겨두고 상대쪽의 목소리가 들렸다. 터널이 뚫렸고 우리는 서로 껴안고 철도끼(혹은 곡괭이)를 서로 부딪치게 했다. 샘에서부터 일천이백 규빗의 물이 흘러나왔다.”
히스기야 터널을 지나가 보려고 옛 다윗 성 지역을 방문했을 때, 마침 수학여행을 온 이스라엘의 중학생들이 있어서 함께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깜빡하고 손전등을 가져가지 않았다. 동행한 중학생들 가운데에도 손전등을 가지고 온 학생이 아무도 없어서 터널 속 물길을 걸으면서 애를 먹었다. 어느 지점에 이르자 물이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불빛이 없는 터널 속은 암흑 그 자체여서 물건을 떨어뜨리면 찾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실감했다. 터널을 판 옛날 유대인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작업을 했나?’ 하고 생각하는 동안 터널의 마지막 부분인 실로암에 도착했다. 정확하게 34분이 걸렸다. 물론, 실로암으로 갔던 날 때부터 소경 되었던 사람은 터널이 아닌 다른 길로 갔으리라.

 

실로암 못
실로암은 ‘아래 못’으로 불렸는데(사 22:9), 왕의 처소와 가까이 있었기에 당시에는 ‘왕들의 연못’으로 불리기도 했다. 옛 실로암은 길이 17.4m, 폭 5.4m, 깊이 5.7m의 돌로 된 인공 못이었다. 지금은 옛날 모습은 없고 그 형체만 조금 남아 있다. 신약 성경에는 실로암 망대 사건이 나오는데(눅 13:4), 무너졌다고 추정되는 망대는 실로암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유적 발굴팀에서 망대의 아랫부분을 발견했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예수님 시대에 실로암의 물은 침례와 같은 유대교인들의 종교의식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한 가지 아는 것은…
실로암을 둘러보면서 마음에 가장 떠오르는 이야기는, 히스기야와 산헤립의 이야기도 아니고 실로암 망대 이야기도 아니었다. 바로 예수님과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의 이야기였다.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기독교 순례자들은 저마다 요한복음 9장 이야기를 떠올리며 가이드의 인도로 실로암을 찾을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9장 이야기 속에는 여러 복음의 비밀이 숨겨 있다.

당시에 소경이나 절름발이 같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 사이에서 죄로 인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말미암은 것인지를 예수님께 물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통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고 하셨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도구인 것이다.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바로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는데,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어 그의 눈에 바른 후 그를 실로암으로 보내셨다. 그리고 얼마 후,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로암에 내려간 소경은 눈이 온전히 나아서 돌아왔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말했던 소경의 이야기가 굉장히 감사하다. 그의 부모도 유대교인들이 두려워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그는 유대교인들을 예수님이 죄인이라고 거세게 몰아세울 때 담대히 이렇게 말했다.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 9:25)
이 말은 소경이 된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간증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아만 장군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엘리사 선지자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담가 문둥병에 걸렸던 몸이 깨끗해졌다. 아마 나아만도 사람들에게 “내가 전에는 문둥병자였으나 지금은 깨끗해졌나이다” 하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간증을 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 값을 갚으셨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 내가 거듭났다. 그 후로 나도 소경이었던 자나 나아만처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전에는 더러운 죄인이었으나 지금은 깨끗한 의인이 되었습니다.”
소경이었던 사람은 성경도 잘 모르고, 유대 종교인들만큼 신학적인 지식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는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종교지도자들이 가진 모든 사상과 이론을 이기고도 남았다. 우리도 거듭난 후 우리를 깨끗하게 한 예수님의 피가 우리 마음에 있어서, 우리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모든 지식과 이론을 깨뜨리고 이기는 것을 본다. 이런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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