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당신의 은혜로 이 자리에 섰기에
다만 당신의 은혜로 이 자리에 섰기에
  • 김전태(중국 선교사)
  • 승인 2015.06.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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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간증

지난 4월 초, 홍콩에서 가진 수양회에 박옥수 목사님이 오셔서 ‘번제단이 있는 교회와 번제단이 없는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만일 내가 죄를 씻는 번제단이 없는 교회에 있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행 7:20~21)
 몇 년 전, 중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말도 유창하게 하고 전도도 잘하려는 생각이 컸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낙망에 빠졌다. 잘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너무나 힘들었다. 물질적인 어려움이 찾아올 때면 이길 수 있는 힘이 마음에 없었다. 자주 ‘내가 사역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보내다 보니 1년 만에 나는 결국 사역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6년 전, 박옥수 목사님이 홍콩에 오셨을 때 목사님이 나를 보고 “자네가 아직 사역을 하는가?” 하셨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나도 잘못하는 거 아는데….’ 잘하고 싶지만 안 되는 나를 목사님이 알아주시지 않고 내치시는 것만 같았다.
 얼마 후, 나는 목회를 그만두고 직장을 찾아야 했다. 박 목사님이 나에게 하셨던, 아직도 사역을 하느냐는 이야기가 머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 이야기를 생각할수록 나는 열등감에 사로잡혔고, 이어서 목사님을 향한 원망과 불신이 일어났다. 원망이 커지자 대적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결국 나는 교회를 대적하면서 살았다. 나는 나를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알았지만 정반대였다. 내 안에는 원망하고 대적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그 속에서 2년을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게 살았다. 내가 무얼 이루어 보려고 애썼지만 괴로울 뿐이었다. 하루는 어느 목사님이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다.
 “다윗도 왕의 자리에서 내려왔는데, 자네도 자네 자리에서 내려와. 그 자리에 있으면 고통스럽잖아. 하나님이 자네에게서 전도자의 직분을 빼앗으셨어. 그러나 복음 전하는 직분을 빼앗으시지는 않았어.”
 내가 목회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는 목회자가 되고 싶었기에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2년 동안 아주 힘들게 지내면서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서 목회자가 되려는 마음을 버리게 하셨다.
 성경에 보면,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석 달 기른 후 그를 강가에 버린다. 모세는 버려진 자였다. 내 모습과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세상에서 버림받고 고통 속에서 지낼 때가 있었다. 그때 교회가 나를 받아 주었고, 복음을 위해 살게 해 주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변했다. 어느 순간 버려진 자의 위치를 떠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치를 떠나 왕의 위치에 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무얼 하려고 했다. 그렇게 살았던 나의 지난 날들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모세를 광야로 보내 그곳에서 40년을 지내는 동안 그의 마음을 비우셨던 것처럼, 어려움을 겪었던 2년 동안 나의 마음도 비워 주셨다. 아무것도 아닌 본디 내 위치로 내려가 보니, 내가 잘하고 못하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음에 자유가 찾아왔다. ‘내가 다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하셨던 말씀, 박 목사님은 항상 이 말씀을 통해 나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자리를 들고 일어나 복음을 외치라고 하셨다.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후 나는 교회의 인도를 받아 사천성으로 무전전도여행을 가고, 다시 운남성으로 무전전도여행을 갔다. 마지막으로 호남성으로 무전전도여행을 갔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 8:8)는 말씀을 주셨다. 호남성에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 굶기도 했고, 길에서 자며 추위에 떨기도 했으며, 병에 걸려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가 보는 눈을 내려놓고 당신의 눈으로 보게 하셨다. 그것은 고통이나 낙망이 아니고, 말씀대로 큰 기쁨이 있을 소망이었다. 마음에 기쁨이 솟아올랐다.
 ‘이 성에서 많은 사람이 구원받겠구나! 하나님이 많은 사람을 나에게 붙여 주시겠구나!’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복음을 전했다. 말씀대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그 일 후 교회에서 나를 호남성으로 파송하여 지금까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 후로도 사탄은 순간순간 내 마음에 찾아와서 내가 무얼 할 수 있다는 위치로 나를 올려놓으려 한다. 그때마다 박옥수 목사님이 하신 이야기가 배의 닻처럼 내 마음을 잡아 준다. “자네가 아직 사역을 하는가?” 목회자의 자격이 없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인 나. 나는 그런 사람이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요즘 박 목사님이 중국에 자주 오시는데, 오실 때마다 전해주시는 말씀이 마음에 큰 힘을 준다. 지난 4월 홍콩 수양회 때에는 ‘사르밧 과부와 엘리야’ 말씀이 마음에 들어왔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형편을 보는 눈만 가지고 있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 있었다. 엘리야의 눈에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 있는 가루통의 가루가 다하지 않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게 보였다. 먹고 나서 죽을 수밖에 없는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 우리 눈으로 보면 그곳은 절망의 자리다. 우리 눈으로 보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은 우리와 다른 눈을 가지고 있다.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종이 계시는 교회가 좋다. 번제단이 있어서 우리 허물을 도말하고 우리 죄를 씻어 주는 교회가 감사하다. 이 교회 안에서 복음을 전하며 살기에 소망스럽다. 번제단이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눈을 가진 하나님의 종, 이 안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나는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의 종이 보고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에, 나도 종이 가진 눈으로 보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입혀 주신다. 나도 엘리야가 거하는 세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감사하다.
 홍콩 수양회 기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그런 나를 하나님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다만 당신의 은혜로 이 자리에 섰기에, 앞으로도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소망이 있다.
 호남성은 6,800만 명이 사는 아주 넓은 곳이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일하셔야 한다. 하나님이 중국 각지에서 일하고 계시는 것을 보며 마음에 소망이 넘친다.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기에, 결코 무너지지 않을 소망 가운데에서 복음을 전하며 오늘도 감사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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