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도 저처럼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 글 김양미 기자
  • 승인 2015.07.01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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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을 죄 속에서 방황하며 16년이라는 긴 세월을 교도소에서 지냈고,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읽고 구원받았으며, 출소 후 마하나임신학교에 입학해 목회자가 되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김기성 목사. 최근에는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한 인성교육 강사로 전국의 교도소를 누비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를 지금까지 어떻게 이끄셨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그의 마음을 따라가 보았다.

교도소 인성교육 강사로 활동하시느라 바쁘시죠? 어떻게 교도소 강연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 계기를 말하려면, 작년 하반기 서울 성경세미나 때 박옥수 목사님이 사역자들에게 교제해 주셨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박 목사님이 목회자들에게 신앙의 비밀을 가르쳐 주시겠다며 짚신 파는 부자父子 이야기를 하셨어요. 아버지가 만든 짚신은 아주 잘 팔리는데 아들이 만든 짚신은 안 팔리는 겁니다. 아들이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는데 아버지 것은 왜 잘 팔리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아버지가 임종하실 때 짚신의 비밀을 알려 달라고 묻자 아버지가 힘이 없어 ‘털 털 털’ 하고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하신 ‘털’의 의미를 아들이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짚신을 엮은 후 삐져나온 지푸라기 털들을 깨끗하게 제거하고 팔았던 거예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털을 제거하느냐 그냥 두느냐의 차이가 짚신 판매를 좌우한 거죠.
 신앙도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가르쳐 주는 대로 따라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조금씩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고 하며 목사님은 두 가지를 강조하셨어요. “어떤 일을 할 때 ‘안 될 거야. 잘못될 거야. 힘들어질 거야’라는 절망적인 생각이 올라오면 왜 바보처럼 당합니까? 사탄이 한 방 치면 반격하고 싸워야 합니다. 내 마음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받아쳐서 싸워야 합니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이 있을 때 그것을 반복해서 간증하고 또 간증하라고 하셨어요. 그러면 내 생각이 머물 틈이 없이 마음에 말씀이 차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다 이길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이 아주 특별하게 들렸어요. 집에 가서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간증을 계속 했어요. 그리고 내 생각과 싸움도 해보았어요. 아침에 일어날 때 ‘5분만 더 자자’라는 생각이 올라오면 ‘아니야, 일찍 일어나는 것은 좋은 거잖아. 지금 일어나자’ 하고 반격했어요. 성경 읽는 것이 지루하다고 생각될 때는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면 감사한 것처럼 말씀은 우리 마음의 양식인데 내가 왜 지루해 할까?’ 하고 반격했어요. 또 일을 하다 절망적인 생각이 날 때도 싸웠어요. 내 생각과 싸우니까 삶이 점점 행복해지더라고요.
 하루는 박 목사님께서 한국 청소년들의 정신세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교도소가 생각났어요.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이 파노라마처럼 보였습니다. 목사님이 하고 싶은 일을 그려 주시는 것 같았어요. ‘학교, 군부대, 교도소에 있는 이들의 정신세계를 이끌 사람은 우리밖에 없구나. 그럼 교도소에서도 인성교육을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도관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재소자들이 출소한 후 재범해서 다시 교도소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거예요. 제가 그 일에 꼭 필요한 강의를 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번 부딪쳐 보자고 생각했죠.

뜻한 대로 일이 잘 진행되셨습니까?
그런데 막상 교도소 문을 두드리려고 생각하니 마인드 강사 자격증을 따 고등학교에서 몇 차례 강연도 했지만 좀더 배워야 하겠더라고요. 하루는 IYF 교육국에 계신 선생님께 전화해서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물었어요. 제 마음이 뻣뻣해서 ‘좀 가르쳐 주십시오’라는 말이 잘 안 나왔어요. 제가 말을 뱅뱅 돌리니까 그분이 눈치채시고 ‘배우고 싶으면 와서 청소도 하고 운행도 하면서 배우면 되지, 왜 그러십니까?’라고 하셨어요. 마침 전국 IYF 교사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저에게 20분의 시간을 주며 고등학교 강연 사례를 발표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막상 강단에 서니까 너무 두렵고 떨리는 거예요. 그날 강의를 완전히 망쳤어요. 강단에서 내려오며 ‘나는 도저히 강사하면 안 되겠다. 누가 하라고 해도 절대 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때 박 목사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이 생각났어요. ‘아니지. 절망적인 생각이 들면 반드시 반격해야 한다. 나는 강단에 서는 것이 너무 두렵다. 하지만 나는 강의를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부담을 즐기는 사람이야’라고 생각을 바꿨어요. 굉장히 힘이 났어요.
 그러고 나서 교도소 문을 두드렸어요. 교도소에 전화해 재소자를 위해 강의를 하고 싶다고 하자 안 된다고 했어요.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계속 전화했는데, 안 된대요. 절망스럽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나는 일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에요. 20번 정도 전화했을 때 안양교도소에서 처음으로 강연 일정을 잡아주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3월에 첫 강연을 했어요.

첫 강연 때 반응이 어땠습니까?
안양교도소 교도관이 “강사님, 재소자들은 강의를 잘 안 듣습니다. 재소자들이 잠을 안 자게 하는 강사가 명강사입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첫날 가서 제가 살아온 이야기와 재소자 시절에 어떤 마음으로 지냈고, 모든 재소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출소하는지에 관해 5시간 정도 강연했어요. 아무도 안 자고 제 이야기를 듣더라고요. 교도관도 제 강의를 듣고는 깜짝 놀라며 이게 바로 재소자들에게 꼭 필요한 인성교육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날 바로 1년 강의 계약을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하는 조건으로요. 그게 소문이 나서 서울 구치소, 성동 구치소 등에서도 연락이 오고, 지금은 서울, 논산, 목포 등 전국 25곳에서 강의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셨기에 반응이 좋았습니까?
어떤 사람이 교도소에 가는지, 교도소에 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제 경우를 들어 이야기해요. 저는 어릴 적에 한두 번 도둑질한 것이 성공하다 보니 점점 재미가 붙더라고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마늘을 훔친 일로 경찰에 잡혔고, 내가 주동했다고 책임을 지고 나왔더니 마을 이장님이 ‘기성이는 크게 될 놈이여!’라며 칭찬하셨어요. 심하게 혼날 줄 알았는데 칭찬을 받으니까 ‘내가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가 총대를 메는 안 좋은 버릇이 생겼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선생님이 학생들을 혼내면 항상 제가 정의의 사자처럼 나타나 선생님께 대들고 싸웠어요. 고등학교 3년 동안 아홉 번이나 정학을 당했으니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졸업한 거죠. 친구들은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다 자격증을 따서 회사에 취직하는데, 저는 갈 곳이 없는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싱 공장에서 실밥을 따거나 청소하는 일인데, ‘크게 될 놈’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아 있으니까 그런 일은 부끄럽고 창피해서 못 하는 사람이 된 거지요. 빨리 돈을 벌어 금의환향할 생각에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찾아다녔고, 결국은 강도짓을 하며 크게 한탕하려다가 교도소에 들어갔어요. 쉽고 편한 길을 가려는 사람들이 교도소에 가는 거지요.
 제가 만약 도둑질하고 나왔을 때 동네 어르신들이 저를 강하게 야단을 치셨다면 미싱 공장에서 실밥을 따고 청소하는 것이 당연했을 거예요. 칭찬을 듣고 나니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인 줄 알고 나 자신을 믿으니까 사지가 멀쩡한 건강한 사람이 실밥도 못 따고 비질도 못하게 되더라고요. 자신을 믿는 마음이 철저하게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간다는 것을 몰랐죠.
 그리고 교도소에 들어가서도 ‘내가 대단한 놈’이라는 마음이 여전히 있어서 교도관 인질극을 하고 난동을 부리며 문제를 아주 많이 일으켰어요. 그래서 1년 6개월 동안은 전국 교도소에서 가장 문제 많은 재소자들이 가는 청송 제2교도소에 보내졌습니다. 청송에 가서 ‘내가 왜 여기 와야 하냐’고 따지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얼마나 맞았는지 모릅니다. 기어서 연병장에 갔더니 교도관들이 ‘너희들은 인간쓰레기다. 오늘부터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며 새벽 3시까지 팼어요. 거기서는 무조건 ‘예’를 해야 하는 거예요. 방에 들어가니까 재소자 교육헌장과 국민교육헌장을 다음날까지 다 외우라고 했어요. 아무리 머리 나쁜 사람도 그 상황에서는 긴 내용을 다 외우더라고요. 한 기수가 33명이었고, 이동할 때 3명씩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이고 가야 했어요. 우리는 하늘을 볼 자격도 없다고 해서요. 옆 사람에게 눈인사만 해도 발각되면 바로 짓밟혔어요. 아주 강하고 혹독하게 훈련하니까 무조건 ‘예’가 되고, 불평이 끝나버리더라고요. 일반 교도소에 가는 게 소원일 정도였어요. 1년 6개월 후 일반교도소에 가니까 천국이 따로 없더라고요.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행복했어요.
 청송교도소에 있으며 내가 정말 야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일반 교도소에서는 늘 불평하고 원망하고 싸우기 일쑤였는데, 청송교도소에서는 절대 짜증을 낼 수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그때까지 내가 보기에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불평하고 원망하고 그들을 짓밟고 살았던 거지요. 그런 저의 모습을 숨김없이 이야기하니까 재소자들이 경청해요.

 
목사님은 교도소에서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급성 간염으로 독방에서 지낼 때였어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들어가니까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건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죽음 앞에 서니까 ‘인생이 이렇게 쉽게 가는구나. 안개처럼 사라지는구나’ 하며 몹시 공허했어요. 그동안 내가 잘못하고 죄 지은 것이 비로소 생각났어요. ‘하나님 나를 한 번만 살려주시면 다시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하고 처음으로 하나님을 찾았어요. 신기하게 서서히 몸이 좋아졌고, 독방에서 나온 후 같은 방에 있었던 재소자가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책을 주어서 읽고 구원받게 된 거예요.

강연을 들은 재소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어떤 것들입니까?
재소자들은 제가 어떻게 재범하지 않고 살았는지 궁금해 합니다. 출소할 때 대부분의 재소자들이 갖는 마음이 있어요. ‘나는 절대 다시 죄를 범하지 말아야지’ 하며 각오해요. 자기가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고, 나가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교도소에 온 것은 ‘나를 믿는 마음’ 때문입니다. 자기를 믿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다시 교도소에 들어옵니다” 하고요. 그리고 자기를 믿는 마음이 어떻게 재범하게 하는지 설명합니다.
 제가 잘 아는, 교도소를 서너 번 갔다 온 마약 중독자가 있어요. 그가 출소할 때마다 “형님, 제가 마약을 끊었어요. 이제 손 씻었어요” 해요. 그러면 제가 “너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너 그 생각 갖고 있으면 6개월 안에 다시 들어가”라고 말해줍니다. 마약 끊었다는데 왜 악담을 하냐며 자기는 요즘 너무 행복해서 전도하러 다닌다고 해요. 예전에 마약하던 여자 친구가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복음을 전하러 가겠다고 하기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가더라고요. 그날 가서 마약 하고 다시 붙잡혔어요. 그 사람이 만약
‘나는 유혹에 약해. 나는 100%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이야. 나는 바람 불면 넘어져’라고 생각했다면 마약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울 거예요. 자기를 못 믿으니까요. 그런데 자기를 믿는 사람은 마약 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우습게 생각해요. 재소자들이 ‘나는 다시는 교도소 안 들어갈 거야!’ 하고 두부 밟고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 술집에 가다 보면 100퍼센트 교도소에 다시 들어가는 겁니다.
 제 경우에는, 16년 간 교도소에 있으면서 나보다 훨씬 성실하게 살았던 기독교회장, 불교회장, 천주교회장이 재범해서 교도소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어요. 그들을 보니까 ‘나는 다시 범죄하지 말아야지’라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나는 죄악을 이길 수 있는 기능이 없더라고요. 출소할 날이 가까워지자 세상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어요. 아버지도 뵙고 싶었지만 아버지께 갈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가면 친구들이 찾아올 것이고, 친구들을 만나면 술도 한 잔 해야 하고, 술을 먹다보면 다시 유혹에 넘어가는 거죠. 아버지께는 나중에 찾아뵙겠다며 죄송하다고 편지를 보냈어요. 친구들한테는 출소 날이 변경됐으니 오지 말라고 하고요. 그리고 박옥수 목사님께 ‘제가 갈 곳이 없습니다. 저는 죄악의 유혹을 스스로 이길 수 없습니다.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하고 편지를 보냈어요. 그리고 16년 간 교도소에서 주고받았던 수백 명의 연락처를 다 버리고 출소하자마자 교회로 왔어요. 그 후로 줄곧 교회가 나를 잡아주고 이끌어 줘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심각한 알코올, 마약, 도박 중독자라도 교도소에서는 술 못 먹고, 마약 못 하고, 도박 못 해요. 교도소라는 울타리가 잡아주고 강하게 다스려주니까요. 모든 재소자들이 출소하면 자유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교도소를 나올 때 제 마음의 울타리를 무너뜨리지 않았어요. 제 마음에 두었던 울타리가 모든 죄악에서 나를 지켜 준 것이죠. 그 울타리는 바로 교회와 종이였어요. 지금까지 제가 행복한 곳에 서 있는 이유죠.

교도소에서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깊이 배운 것이 ‘나는 인도자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군요?
청송교도소에서 일반 교도소로 갔을 때 일반 교도소가 천국이었는데, 그 마음이 6개월을 못가고 ‘나는 청송 제2교도소 출신이야’ 하며 어깨에 힘이 들어갔어요. 구원받고 너무 좋았지만 그 마음도 얼마 못 가더라고요. 출소 후부터 교회의 인도를 받았는데, 교회 안에서 기반을 잡고 나니까 그 마음이 또한 오래 못 가서 또 교만해졌어요. 마음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수없이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나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나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밭은 스스로 자갈을 골라내거나 잡초를 뽑지 못하잖아요. 아무리 황폐한 밭도 경작자가 돌을 골라내고 엉겅퀴를 제거하고 씨를 뿌리면 싹이 나고 열매를 맺고, 아무리 좋은 옥토라도 경작자가 없으면 황폐한 땅이 되는 거죠. ‘밭은 경작자가 있어야 하듯 나는 교회와 인도자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나는 인도자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내가 잘못된 길을 간다는 사실을 나는 모르니까 교회와 하나님의 종이 나를 보고 다스려주는 거예요. 하나님이 제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교회와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해요.

 
재소자가 즐겨 듣는 이야기가 또 있는지 묻자 김기성 목사는 자녀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기성 목사에게는 발달장애가 있는 두 아들이 있다.
제가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재소자들이 제일 좋아해요. 큰아들이 12살이고 둘째가 6살인데, 그동안 대소변을 못 가려서 너무 힘들었어요. 청송교도소에 있을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거예요. 밖에서 복음 전하고 다니면 행복하다가도 집에 와서 문고리를 잡는 순간부터 절망스러웠어요.
그런데 박옥수 목사님은 예전부터 “자네 아이들은 정상이야”라고 하셨어요. 작년에 기쁜소식도봉교회 헌당예배에 오셨을 때도 제 아이들이 정상이라고 하셨어요. 방에서 화장실까지 거리가 3미터도 안 되는데 아이들이 그냥 옷에 똥을 싸는 것은 귀찮은 마음을 꺾기 싫어서라고 하시며 부모가 아이들과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당부하셨어요. 저도 나름대로 아이들을 가르쳐 봤지만 고쳐지지 않으니까 우리 아이들은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다시 회초리를 들고 싸우기 시작했어요. 몇 개월 동안 싸웠는데도 달라질 기미가 1퍼센트도 안 보였어요. 회초리로 때리고 나면 애들이 너무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니까 제 마음이 백 배 더 아팠어요.
 그후 기쁜소식강북교회에서 가진 연합예배에서 박 목사님이 미국에서 피아노 콩굴 대회에 나가 1등한 석승환 형제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다른 학생들보다 피아노를 늦게 시작했는데 어떻게 큰 상을 탈 수 있었냐고 형제에게 물으셨대요. 형제가 대답하길 피아노를 연습하다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실력이 늘지 않는대요.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실력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고 포기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 한계를 넘어 계속 연습하다 보면 실력이 눈에 띄게 는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도 다시 힘을 얻어 아이들과 계속 싸웠습니다.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어요. 두 아들이 아침에 일어나더니 화장실에 가서 대소변을 보고 나온 거예요. 너무 기뻐서 아내와 함께 애들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어요. 12년 동안 아내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아이들의 마음과 싸우면서 박 목사님의 마음을 알게 됐어요. ‘나는 쉽고 편하게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데, 목사님이 지금까지 그런 우리 마음과 싸워오셨구나’ 하고요. 그동안 저도 아이들처럼 장애자로 산 거죠. 재소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굉장히 좋아합니다.

출소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재소자들을 만나면 남다를 것 같습니다.
강연할 때 저는 재소자들에게 먼저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줍니다. 교도관이 깜짝 놀라며 못 하게 해요. “강사님, 재소자들은 여기서 만나는 걸로 만족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과 밖에서 만나면 절대 안 됩니다. 반드시 뒤통수를 치고 문제를 일으킵니다”라고 말해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저는 이 사람들보다 더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죄를 짓고도 미안한 마음이 1퍼센트도 없는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런 저를 지금까지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보듬으며 이끌어 준 멘토가 있기에 제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재소자들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하면 교도관들이 아무 말을 못 하시더라고요.

 
지금까지 4개월 정도 강연을 다녔는데 반응은 어떻습니까?
강연을 하고 오면 편지가 많이 오는데, 제가 다 답장을 해줍니다. 출소하면 찾아오겠다는 사람도 있고, 벌써 찾아온 사람도 한 분 있습니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서울 성경세미나 때 같이 다니며 말씀을 들었어요. 박 목사님께 이분에 대해 이야기하자 재소자들이 출소하면 관리할 수 있는 갱생보호소를 만들자고 하셨어요. 이미 오신 분이 계셔서 기쁜소식도봉교회에 갱생보호소가 시작되었어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박옥수 목사님이 인성교육뿐 아니라 출소자들을 관리할 수 있는 갱생보호소도 하고 민영 교도소도 하자고 하셔서 할 일이 많습니다. 출소자들이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복음도 전하고, 훈련도 하고, 신학교도 보내고, 결혼도 시켜서 복음을 섬기며 살게 하려고요. 내년부터는 재소자들뿐 아니라 교도소 직원들을 위한 교육도 준비할 계획입니다. 박 목사님을 만나면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제가 감당하려고 하면 힘들 텐데, 목사님과 마음을 같이 해 발걸음을 옮기면 하나님이 지혜도 주시고 행복한 마음도 주셔서 무척 좋습니다.

최근에는 남미에 전도여행도 갔다 오셨지요?
예. 5월에 아이티, 멕시코, 코스타리카 전도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제가 해외로 전도를 간다고 박 목사님께 말씀드리니까 한국 교도소만 가지 말고 전 세계 교도소에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이티의 이한솔 선교사가 교도소 강연 일정을 잡아놓아서 강연도 하고 복음도 전했어요. 사람들의 마음이 순수해서 말씀을 잘 듣더라고요.

그동안 목회자로서 말씀을 전하다가 교도소 인성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소감이 궁금합니다.
강연을 다니며 평소 설교하던 내용을 토대로 강연했을 뿐인데, 교도관들이 자신들의 상식을 뒤집는 재소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내용이라며 깜짝 놀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도소에 가정상담, 웃음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 등의 프로그램이 있지만 재소자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한다는 거죠.
박 목사님이 우리 선교회 목회자들을 세계 최고의 목사로 만들겠다고 자주 말씀하셨을 때, 저는 ‘우리가 무슨 최고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부담스런 일에 뛰어들어 보니 이미 우리가 최고의 복음을 가졌고, 최고의 마인드를 가진 목사더라고요. 하나님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과 지혜와 행복을 이미 주셨어요.
 박 목사님이 내 생각과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신 것이 이렇게 큰 힘을 나타낼 줄 몰랐습니다. 파도 타기 선수가 파도 타는 기술을 배우지 못하면 파도가 두렵지만 기술을 배우면 파도를 즐길 수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부담스러운 일과 싸우고 부딪치니까 어려움이 어려움이 아니라 귀한 보석으로 나타났어요. 지금까지 제가 절망적인 생각을 받아줘서 많은 것을 잃었는데, 이제는 아주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어요. 목사님의 가르침이 제 역량도 키워주고 제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며 예수님의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었어요. ‘장관을 한들 대통령을 한들 이렇게 행복할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재소자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요?
사람이 불행해지려면 불행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만들어져야 하고 행복하려면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나를 믿는 마음이 교도소에 다시 가게 합니다. 나를 불신하면 그 마음이 나를 아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내가 내 인생을 이끌지 못하기에 하나님께 맡기고 교회와 하나님의 종의 인도를 받으면 그때 가장 행복하고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짚신 장수가 삐져나온 털을 제거했을 때 장사가 잘 된 것처럼, 하나님은 김기성 목사 마음에 있던 '자기 생각'이라는 '털'들을 제거하시며 하나님이 준비하신 더 큰 복음 전도의 길을 가게 하셨다. 남을 해하던 사람이 구원받은 뒤 생명을 살리는 목회자가 되었고, 그동안 받은 사랑을 이제 교도소의 재소자들에게 돌려주기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강연을 시작할 때 “여러분도 저처럼 행복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는 김기성 목사. 김기성 목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많은 재소자들이 김 목사의 인도를 받아 행복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는 날이 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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