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글/김성훈 그림/이가희
  • 승인 2015.07.15 2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 세계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불리는 이곳에서 가장 바삐 돌아가는 곳 중 하나는 경찰청일 겁니다.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만큼 하루에도 수십 건의 범죄가 일어나니까요. 3만 명이 넘는 뉴욕 경찰들 중 수사반장 ‘피트 로치스’ 경감에 대해 들어봤나요? 노련한 베테랑 형사 여럿이 달려들어 쩔쩔매던 사건도, 피트 반장이 한 번 스윽 훑고 나면 척척 해결됩니다. 다른 경찰들은 그런 그를 ‘귀신 잡는 피트 반장’이라고 부릅니다. 후줄근한 코트에 어눌한 말투를 보노라면 ‘이 사람 정말 경찰 맞아?’ 싶을 정도지만, 사건 현장만 가면 그의 눈은 ‘번쩍’ 빛이 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신참 ‘짐 몰러’ 형사가 피트 반장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졸라댔습니다.
“반장님, 어려운 사건을 척척 해결하는 비법 좀 알려주십시오.”
그럴 때면 피트 반장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허허허, 그건 알려줘서 되는 게 아니라네.”
그렇게 밀고 당기길 한 달, 마침내 반장은 두 손을 들었습니다.
“좋아, 자네가 한턱낸다면 기꺼이 가르쳐 주지! 8번가에 있는 식당으로 가세나.”
“감사합니다, 반장님.”
 
 
두 사람은 짐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시내에 있는 큰 식당으로 향했어요.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마치자마자 짐이 입을 열었어요.
“자, 이제 비법을 가르쳐 주셔야죠?”
“원, 성미 한번 급하기는…, 알겠네. 자네 혹시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
“그게 무슨 뜻이죠?”
“사람에게는 누구나 죄를 지었을 때 가지는 마음의 모양이 있다네. 입으로는 아무리 죄를 짓지 않은 척 거짓말을 해도 자기도 모르게 드러나는 마음까지 감출 순 없지. 전에 내가 우연히 승용차 도둑을 잡은 일 기억하나?”
“기억하다마다요. 음주운전 단속을 하다 잡으신 것 말이죠?”
“그래. 한밤중에 음주단속을 하는데 내 앞에 고급차가 한 대 서더군. 갓 뽑은 듯 번쩍번쩍한 새 차였지.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어.”
“뭐가 이상했습니까?”
“담배를 피던 운전자가 담뱃재를 차 안에 털지 뭔가. 생각해 보게. 누가 새로 산 차 안에 담뱃재를 털겠나. 깨끗이 오래오래 쓰려고 애지중지하지. 그걸 보고 ‘저 사람, 자기 차가 아닌 것 아닐까?’ 싶더군. 경찰청에 보고했더니 도난차량이라지 뭔가.”
“아하, 그랬군요!”
짐은 절로 손뼉을 치며 탄성을 질렀고, 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왔습니다. 반장은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넣고 맛있게 우물거렸어요. 하지만 이야기에 폭 빠진 짐은 먹는 것도 잊은 채 이야기를 더 해 달라고 보챘습니다.
“아, 맞다. 뉴욕은행 위조수표 범인은 어떻게 알아내셨나요? 수표가 하도 감쪽같아 은행직원도 깜빡 속았다는데요.”
“아, 그 사건 말인가. 내가 볼일이 있어 은행에 들렀는데, 한 아가씨가와서 고액수표를 내밀며 현금으로 바꿔달라고 하더군. 우선 가냘픈 아가씨 혼자 그 많은 금액을 찾으러 온 것이 수상했네. 또 한 가지, 직원이 내주는 지폐뭉치를 세지도 않고 황급히 가방에 집어넣더라고.”
“제가 봐도 수상하네요. 보통 사람들은 돈을 받자마자 일일이 액수를 확인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내가 다가가서 신분증을 보여주며 ‘저는 뉴욕경찰청의 피트 로치스 경감입니다. 보아하니 꽤 많은 돈을 찾으신 것 같은데, 제가 가시는 곳까지 모셔다 드릴까요?’라고 물었네. 그러자 그 아가씨가 흠칫 놀라더니 은행 밖을 살피더군. 어떻게든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기색이 역력했어.”
“음….”
“창밖을 내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유리창까지 온통 검은 승합차가 서 있었지. 곧바로 주위 경찰들을 불러 범인들을 모조리 잡을 수 있었네.”
“정말 대단하십니다. 얼마 전에는 ‘크리스 핸더슨’ 회장님 댁 석류나무 도둑도 잡으셨죠?”
“그깟 좀도둑을 잡은 거야 이야깃거리도 못 되지. 나는 도둑이 틀림없이 내부에 있다고 생각했어. 그 저택은 경비견만 다섯 마리나 될 정도로 경비가 철저하거든. 석류가 고급 과일이긴 하지만, 고작 과일을 노리고 거기까지 뛰어들 도둑은 없지.”
“그래서 어떻게 범인을 찾아내셨나요?”
“그 집에 가서 사람들을 모두 모아놓고 ‘회장님이 석류나무를 베어내라고 하셨으니 톱과 도끼를 가져오라’고 말했지. 그런데 심부름하는 사환 녀석이 무심코 ‘맛있는 석류가 열리는 나무를 왜 베려는지 모르
겠네’라고 중얼대더군. 그래서 내가 말했지. ‘자네는 이 석류 맛을 잘 아는 모양이군’ 하고 말이야. 하하하.”
“푸하하하! 아주 제대로 자백을 한 셈이네요.”
짐은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오기 힘든 비싼 식당이었지만 식사비가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대를 잡은 짐이 골목길로 차를 꺾는데 별안간 ‘쿵’ 소리와 함께 뭔가가 차에 부딪혔습니다.
“으악, 무슨 일이지?”
짐이 나가 보니 웬 여자가 무릎을 감싸 쥔 채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죄송해요, 많이 다치셨어요?”
그때 청년 하나가 달려와 짐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습니다.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당신이 내 애인을 쳤잖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죄송이고 뭐고,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청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습니다. 당황한 짐이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을 때, 피트 반장이 미소를 지으며 나섰어요.
“아이고, 제 후배가 그만 큰 실수를 저질렀군요.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사과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이렇게 다쳤는데 어떻게 보상할 거야?”
“다쳤다면 당연히 병원으로 모셔야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친구가 선생의 애인을 친 것이 확실한가요?”
“그럼,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걸.”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사랑하는 애인이 차에 치었으면 얼마나 다쳤는지부터 살피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 그건 부딪치는 소리가….”
기세등등하던 청년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쓰러진 애인은 살피지도 않고 다짜고짜 운전자의 멱살부터 잡기 바쁘시더군요. 마치 일부러 차에 부딪친 뒤 다친 것처럼 속여서 돈을 뜯어내는 협잡꾼처럼 말입니다.”
피트 반장의 이야기에 청년은 말문이 막혀 버렸어요. 황급히 멱살을 풀고 고개를 푹 숙이며 용서를 빌었어요.
“저희가 돈에 눈이 어두워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여자가 부스스 일어서고, 두 사람은 황급히 줄행랑을 쳤습니다. 피트 반장은 짐 형사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그것 보게. 내가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 어떤 경우든지 사람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하네.”
짐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피트 반장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