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聽 테이프를 붙이자
청聽 테이프를 붙이자
  • 이선희(기쁜소식의정부교회)
  • 승인 2015.12.04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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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간증

 
6년 전, 교회에서 성경세미나 오전 말씀을 영상으로 보고 있었다.
 “여러분, 마음을 알면 믿음이 생깁니다. 아내들은 입에 청테이프를 붙이고 남편 이야기 좀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안 맞더라도 좀 들어보십시오.”
 순간 ‘목사님 또 남편들 편드시네. 맨날 여자들만 뭐라고 하셔!’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알면 믿음이 생긴다’는 음성이 말씀을 듣는 내내 떠나질 않았다. ‘내가 남편에 대해 믿음이 없는 것은 남편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구나. 하나님에 대해서도 믿음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구나. 그러면 난 누구를 믿고 있지? 악하고 거짓된 나만 믿는구나.’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 16:26)
 목사님의 말씀과 내 마음 사이에도 큰 구렁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큰 구렁을 없애고 마음을 만날 수 있을까?’ 목사님은 자신의 기준과 주관을 버리고 들어보면 마음을 알게 된다고 하셨다. 나도 목사님 말씀대로 청테이프 한번 붙여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즈음 박옥수 목사님께서 이혼 위기에서 서로 마음을 만나 화목하게 된 부부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그때마다 나도 그 자매님 마음에 한 번씩 들어가 보았다. 자신이 남편에게 잘못한 게 없다고 믿는데, 남편에게 “내가 잘못했어요”라고 말하라는 목사님의 인도를 무시하고 끝까지 자기 생각을 고집했다면 어찌되었을까? 분명히 이혼했을 것이다. 내 기준을 버리고 목사님의 인도를 따랐을 때 만난 행복에 대해 들으며 나도 그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금부터 30년 전, 다섯 살이나 어린 남편과 대학에서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 하나만을 믿고 결혼에 골인했다. 평생 “Only you”라고 할 것만 같았던 사랑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하루도 바람 잘날 없이 싸우는 부부가 되었다. 정치가가 꿈인 남편의 모습은 내 눈에 늘 비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쳤다. 어쩌면 하는 일마다 안 될 수가 있는지 신기했다. 들어가는 회사마다 망했다. 또 왜 그렇게 배신은 잘 당하는지, 남편의 마음은 늘 억울함, 원통함에 차 있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정치계 일을 못 하게 되자 어느 날부터 술로 한을 풀기 시작했다. 쌓여 가는 빚에, 날마다 마시는 술 때문에 아이들과 나는 말할 수 없이 어려웠다.
 결혼해서 내가 남편에게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당신은 나를 무시해”라는 말이었다. ‘내가 왜 연하랑 결혼했을까? 연하라서 자격지심이 많아. 자꾸 실패하니까 열등감이 많지. 그러니까 저런 소리 하는 거야’ 하며 나는 남편 말을 무시해버렸다.
 ‘다른 사람은 이혼도 잘하던데 하나님은 왜 우리는 이혼을 안 시키지?’ 푸념도 많이 했다. 교회에서는 깔깔대고 웃으며 일도 하고 전도도 하고 즐겁게 지내다가도 남편을 보면 웃음은 온데간데없이 세상 근심 다 짊어진 여자가 되곤 했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늘 반복되었다. 마음을 옮기는 것처럼 보이다가 얼마 못 가서 또 그 자리였다. 정말 남편의 마음을 알아 믿음을 가지고 싶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설교하신 대로 남편 앞에서 입에 청테이프를 붙이고 앉았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끊이지 않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 배신당해 분노에 찬 음성들을 듣노라니 너무 지겨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나 때문에 된 거야! 이 자식들, 사람을 몰라보네.” 하며 현실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는 남편의 말을 듣는 것에 더 이상 의미를 느끼지 못 하고 망설임 없이 테이프를 떼어버렸다. 그러다 얼마 후, 너무 힘들어 다시 청테이프를 붙이고 남편 앞에 앉았다. 그러나 그때도 화병이 날 것 같아 떼어버렸다 .
 그런데 자꾸 ‘끝까지 남편 말을 들어보라’는 목사님 말씀이 생각나 다시 한 번 남편 앞에 앉았다. 너무 듣기 싫은 이야기가 계속되었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들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한참 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하나님 아시죠? 더는 못 듣습니다!’ 하면서 듣는 것을 포기하려할 때 내 귀를 의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말이 그렇다는 거고 당신과 애들 고생이 많아. 미안해. 술도 마시지 말아야 되는데, 노력할게. 교회도 잘 나가야 하는데....”
 
 계속되는 남편의 이야기에 정말 깜짝 놀랐다. 그 말 속에는 억지와 막무가내뿐이며 가정을 생각하지 않는 남편은 없고, 가족을 사랑하고 잘해주고 싶은데 잘 안 되니까 오히려 미안함을 가리려고 큰소리치고 억지 쓰는 부드럽고 따뜻한 남편이 있었다.
 ‘아, 목사님께서 저 소리를 들으라고 하신 거구나!’
 그동안 내가 본 것은 남편의 겉모습뿐이었다. 남편 마음을 볼 수 없었던 나 자신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구원받고 20년 넘게 교회에 있었지만 내 마음 중심에서 남편은 늘 ‘교회 음성을 거스르는 자, 믿음 없는 형제’였다. 반면에 나는 교회에 잘 나가고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순종하는 자, 믿음 좋은 자매’였다. 누가 말은 안 해줘도 나는 내게 후한 점수를 주며 살았다.
 평소 남편을 대하는 내 태도가 떠올랐다. “밥 먹어!” 톡톡 쏘며 비아냥거리듯 말하고, 출근할 때도 내다보지 않았다. ‘나가면 뭘 해? 돈도 못 버는데. 벌면 뭘 해? 자기가 다 쓰는데. 돈도 안 갖다 주면서 요구하는 것은 왜 그렇게 많아? 완전 무대포야!’ 내 속내를 보니 나는 남편을 완전히 무시하는 아내였다. 그동안 남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말투부터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쑥스럽지만 “여보, 식사하세요.”라고 말해보았다. 출근할 때는 승강기 앞까지 나가 “여보, 다녀오세요.”라고 했다. 남편의 입가에 멋쩍은 미소가 흘렀다. 절대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또 해보았다. 휴대폰으로 “여보! 고생이 많아요. 고마워요.” 하며 ♡♡를 날렸다. 얼마 후 남편도 내게 문장 끝에 ‘-요’자를 붙이며 두 줄 가득 하트를 보내왔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당신은 나를 무시해.”라는 말을 언제 들었지? 식사를 준비하며 툴툴대지 않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돈도 안 들고 남편을 웃게 한다며 립서비스도 서슴지 않는 내 모습. 전에는 늘 내가 잘났기에 남편을 가르쳤는데.... 그건 내가 아니었다. 백퍼센트 하나님이 하신 것이었다. 일 년쯤 지난 후, 그토록 우리 가족을 어렵게 했던 남편의 술도 하나님이 끊게 하셨다.
 그동안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지만, 남편이 먼저 구원받고 날 교회로 이끌어 주었고 어려운 일 속에서 남편이 하나님을 경험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남편은 최고의 남편이다.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마음을 알면 믿음이 생기고 행복해집니다.” 목사님의 음성이 귓전에 울린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내 편견과 아집으로 들을 수 없었던 남편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내게 믿음과 행복을 준 청테이프.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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