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제동장치, 재영이
내 마음의 제동장치, 재영이
  • 남윤미(기쁜소식강남교회)
  • 승인 2016.02.26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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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재영이는 생후 3개월에 이가 나기 시작했고, 7~8개월쯤엔 기는 것을 대략 생략하고 걷기 시작했으며, 돌 정도 되니 뛰어다녔다. 15개월쯤엔 상당한 어휘력을 동원해 대화가 되었다. 하루는 차를 타고 가다 길을 잘못 들어 남편이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유턴하려고 건너편 인도 위로 차를 올렸다가 후진하려고 하는데, 뒷좌석에 있던 아들이 “왜 아빠? 주차하려고?” 하였다.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 입에서 나온 ‘주차’라는 단어와 상황 파악 능력에 어이가 없어서 잠시 아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빠른 성장, 유창한 언변, 쉬지 않는 운동성, 넘치는 에너지, 재영이의 이런 면이 한편으론 좋지만 또래 아이들과 있으면 자주 문제를 만들어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재영이가 무척 버릇없고 산만한 아이로 비쳐졌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어디에선가 전화가 걸려올까봐 늘 불안했다. 그런 삶이 몹시 힘들어 남편에게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검사해서 치료를 받든지 해야 해요.” 하고 말했다. 재영이가 만 다섯 살을 막 지났을 때였다.
 소아정신과는 예약이 많이 밀려 있어서, 마침 집 가까이에 있는 KAGE라는 아동 전문검사 및 교육센터에서 검사를 받았다. 세 시간 가까이 검사를 마친 후, 상담 선생님이 “재영이는 ADHD(과잉행동장애)는 아닙니다. 정서적으로 지극히 정상입니다. 다만 언어성, 동작성, 창의성, 지능이 또래 집단에서 상위 1% 이내입니다.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교육시켜야 하는 아이입니다.” 영리한 건 알았지만 지능지수가 무척 높아서 우리 부부는 약간 당황했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KAGE 영재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해 몇 개월 다녔는데, 영재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보통 아이들보다 많이 민감한 편이라 아이들과의 관계가 더 좋지 않았다. 희망을 가졌지만 그 기대도 무너졌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비로소 우리 교회 박옥수 목사님을 찾아갔다.
 “목사님, 우리 아이 검사 결과가 이런데, 아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지 우리를 너무 어렵게 합니다.”
 목사님은 “아무 문제 없는데?”라고 하시며,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야발, 유발, 두발가인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가 처음엔 야발처럼 먹고살기 바빠서 의식주만 해결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조금 여유가 생기면 더 좋은 것을 좇아가요. 그래서 유발처럼 수금과 퉁소로 마음을 즐겁게 하고 싶어져요. 그것이 지겨워지면 자극적인 것을 찾아 두발가인처럼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어서 짐승을 죽이거나 전쟁을 하게 돼요. 이것이 사람 마음이 흘러가는 길이에요.”
 이야기를 들으며 ‘이 말씀이 재영이랑 무슨 상관이 있지?’ 하고 의아했다. 나중에야 마음이 비뚤게 흘러가는 우리 부부에게 하신 말씀임을 알았다. 목사님은 집무실에서 거침없고 버릇없이 책들을 만지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재영이를 보며 우리에게 “이 아이, 정말 좋아요. 좋은 책을 많이 읽게 해요.” 하시고, 재영이에게 “너, 잘 자라서 내 옆으로 오너라.” 하셨다. 그리고 다시 우리 부부에게 “하나님이 이 가정에 축복을 주셨는데 저주로 받지 마세요.” 하셨다. 우리 마음에서 처음으로 재영이의 일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받을 여유를 가졌다. 

 

 형편이 바뀐 것은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담임 선생님이 재영이를 두려워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떠들고 다니는 재영이에게 선생님은 공부 대신 좋아하는 종이접기를 시켰다. 그래서 재영이 가방 안에는 늘 접어놓은 각종 동식물과 색종이만 가득했다. 친구들과 엄마들 사이에서도 재영이는 이상한 아이로 소문이 빠르게 돌았다. 학부모들의 불만, 고충을 토로하는 선생님의 전화를 자주 받아야 했다. 어쩌다 가는 공개수업은 재영이가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몰라 불안하기만 했다.
 학년이 마쳐질 즈음이면 담임선생님이 조심스레 전학을 권했다. “재영이도 노력하고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아이들의 편견과 학부모님들의 고정관념이 계속 따라다녀 재영이를 힘들게 할 거예요.” 하지만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나는 어려움을 견디며 조금씩 발전하는 재영이를 기대하고 격려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재영이는 놀이 치료도 열심히 받았고, 교장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일주일에 하루는 한국 멘사협회 회장님을 만나 멘토링도 받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물질과 시간을 들여 다 해보았다. 하지만 학년이 높아져도 재영이로 인한 주변의 원성은 여전했다. 우리 부부는 지쳤고, 남편은 다시 목사님에게 나갔다.
“목사님, 어디 외국이라도, 덜 민감하고 덜 경쟁적인 환경으로 보내야 할까요? 정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음…. 2년 정도만 지나면 초등학교 졸업인데, 버티고 졸업한 후 대덕 국제학교로 보내게. 거기 가면 아주 좋을 거야. 그건 그렇고, 우리 교회 형제 자매들이 다들 교회 근처 네이처힐아파트로 이사하던데, 형제도 거기로 이사하지?”
  그날 이후 우리 부부의 소원은 재영이가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이었다. 아파트로 이사하라는 말씀은 우리 형편과 너무 먼 이야기였다. 가능성이 10%도 없어 보였다. 그동안 가능한 일만 받아들이는 삶에 익숙했지만, 그래도 이사할 수 있는 길들을 알아 보며 온 가족이 함께 기도했다.
3개월 후, 많은 일들 후에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덕분에 재영이는 자동으로 전학하게 되었다. 이사한 아파트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가 새로 생긴 혁신 초등학교여서 기존 학교보다 자유로운 시스템과 분위기가 재영이에게 잘 맞았다. 가끔 담임선생님에게서 어려운 전화가 오긴 했지만, 적어도 선입견은 없어서 재영이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아파트로 이사하라는 목사님의 말씀은 그냥 거처를 옮기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 마음을 옮기라는 말씀이었고, 우리 마음을 옮기면서 재영이가 은혜 안으로 쑤욱 들어오는 계기가 된 것이다. 

 

 며칠 전, 재영이는 우리의 소원이었던 초등학교 졸업장을 가져왔다. 그리고 목사님의 이야기대로 하늘과 가까운 대덕산에 있는 국제중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재영이와 우리 부부가 떨어져 지내는 것이 쉽지 않을 듯한데, 목사님이 해주신 말씀이 우리 삶에 나침반과 같기에 안심이 된다.
재영이는 어떻게 성장할까? 어떤 사람이 될까? 우리는 약간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이 아이에 대한 기대와 책임이 처음엔 온전히 우리 몫인 줄 알았다. 이제 와 돌아보니, 박 목사님이 왜 창세기 4장 말씀을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이 야발, 유발, 두발가인처럼 흘러갔던 것이다. 처음엔 머리 좋은 아이를 어떻게든 잘 키워서 그럴 듯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럴수록 재영이는 문제를 계속 일으켰다. 그래서 ‘앗 뜨거!’ 하며 마음을 낮추었다가도 아이가 조금 좋아지는 것 같으면 또 욕심을 부려 나 보기에 좋은 방향으로 아이를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욕구를 좇아 흘러가는 내 마음을 발견했다. 재영이는 정말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축복이다. 폭주하려는 내 마음에 성능 좋은 제동장치다.
 재영이에게 이젠 친구들이 제법 많이 생겨, 그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늦게까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친구들과 팀별 수업을 준비하며 즐거워한다. 내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종과 교회의 인도 앞에 재영이를 던지니 하나님이 아이의 삶을 세밀하고 아름답게 이끌어 가시는 것을 짙게 느낀다.
재영이는 여섯 살 때 들은 이야기를 아직도 잊지 않고 가끔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나 스무 살이 넘으면 할아버지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목사님 옆으로 가면 되지?”
 하나님이 재영이를 이끄시고 복되게 하실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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