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연합집회 둘째날 저녁말씀
울산연합집회 둘째날 저녁말씀
  • 김동남
  • 승인 1999.10.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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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9-14]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박물관에는 냉각수가 터져 방사능 노출로 전멸당한 100개의 마을이 지도에 빨간선으로 그어져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방사능으로 인해 지금도 기형아와 암환자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인간들은 보이지 않는 죄와 생각을 통해 죄악 속으로 이끌려 갑니다.
누구든지 사람의 마음은 제어할 힘이 없습니다. 죄보다 강한 주님이 들어오시면 그 마음을 제어하고 변화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이 끝나면 우리 육체에 있는 구멍마다 벌레가 나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두기 싫어함으로 떠난 인생은 악하고 추하고 더럽습니다.
마가복음 5장 거라사인 지방에 귀신들린 자가 무덤사이에 살고있습니다. 여러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습니다.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라사인 지방에 들어가신 예수님이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내고 온전케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선할려고, 죄를 안지을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죄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시편 65편 2절-3절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고린도 교회는 죄악되고 음탕한 생활로 타락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를 향해 몇번이고 주의 말씀 안에 있기를 당부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안전하고, 삶의 변화가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삶을 두시기 원하십니다.

창세기 6장 5절-7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생들은 죄악된 인생이며 스스로 그 죄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짐승과 같이 취급하여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의 마음은 육체와 그 마음의 원함을 따라 살아갑니다.

에베소서 2장 3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사람이 느끼는 죄는 육체(식욕, 수면욕, 성욕)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마음의 원함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더 더러운 것으로 여깁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밤이 맞도록 수고했지만 얻은 것이 없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고 두배 가득한 고기를 잡았습니다. 자기의 경험, 방법 안에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수고를 했지만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수고가 끝난 지점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자기 마음을 믿고 살아온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달아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레미아 17장 9절-10졸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옛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선하다고 하는 기준은 다윗이 자기의 신복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후 그 죄를 가리기 위해 우리아를 잘대해 주는 마음처럼 위선입니다.
어떤 학생들이 자두밭에 서리를 하러 갔습니다. 그 중에 한 아이가 `자두서리를 하면 자두만 따가지 왜 남의 콩을 밟아서 밭을 못쓰게해.`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나는 자두서리는 했지만 콩을 밟지 않았어.`하며 의를 내세운다 할지라도 그것은 이미 잘못된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호세아 12장 7절-8절
"저는 상고(장사꾼)여늘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사취하기를 좋아하는도다. 에브람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무릇 나의 수고한 중에서 죄라 할만한 불의를 발견할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거짓 저울을 가지고 장사를 해서 부자가 되었으면서도 나름대로의 의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저울에 달면 의롭다 할 인생이 아무도 없습니다.

시편 62편 9절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구할 것은 긍휼외에는 없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 창기 두 계집이 솔로몬 왕에게 재판을 하러 왔습니다. 일인즉, 두 창기가 삼일 간격으로 아들을 낳았는데 육체의 잠을 자다가 한 창기가 자기 아들을 깔려 죽게하고 다른 창기의 아들과 바꿨습니다. 서로 산 아이가 자기 아들이라 주장하여 왕 앞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왕은 심리하여 판결했습니다.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공평하게 반으로 잘라서 나누라했습니다. 진짜 엄마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았고 "내 아이다."하는 본능에서 나오는 소리를 포기했습니다. 왕 앞에서 거짓말을 한 자, 아이를 깔려 죽인 여자 라는 지탄의 소리를 안고 거짓된 자가 되었습니다. 진짜 엄마는 자기의 소유권, 정당함, 본능에서 나오는 소리를 부인하고 왕으로 말미암아 아이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생명은 마음에 심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거짓된 인생으로 들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정당함, 공평함, 본능의 소리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거짓된 자로 시인 된 만큼 하나님의 것을 채워주기 원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사람 앞에 자기의 의를 세우고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 없다면 그는 교만한 자입니다. 자기의 한 일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고 내려갔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4절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시편 31편 19절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찐 그리 큰지요!"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죄를 가지고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면 그는 죄에서 떠나게 됩니다.
인생들 앞에서 옳고 그름을 벗어나 주님께 피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입혀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권위를 두시기 원하십니다. 변화가 없고 더러운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 2장 벧엘로 올라가는 엘리사를 향해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대머리라고 조롱하였습니다. 엘리사가 그들을 향하여 저주함으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42명을 찢어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다면 더러운 죄악의 삶이 나타납니다.

인생들 앞에서 주께 피한다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두려우심 앞에 죄를 갖고 설 수 있는지 내 영혼을 하나님 앞에 비추어 보고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하고 나간다면 세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의가 여러분에게 임할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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