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설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 글 | 임민철 (기쁜소식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21.05.18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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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호 기쁜소식
갈라디아서 강해_6편

 

갈라디아서 2장 11~16절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과 합해졌다고 했습니다.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마음을 합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신앙은 우리가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마음을 합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해 신앙이 계속 곁길로 갑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서, 사도 바울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하였습니다. 바울이 살았던 때와 다윗이 살았던 때는 시대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이 걸어갔던 삶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바울에게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좋게 한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다윗처럼 하나님과 합해졌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걸은 길과 사도 바울이 걸은 길
다윗 이전 왕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성경이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사울이 듣지 않았고,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삼상 15:24) 사도 바울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잘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백성이 두려웠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왕이 백성을 두려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이 두렵고, 세상이 두렵고, ‘남들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할까’ 하며 주위의 눈총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때로는 짓밟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나는 한이 있어도 백성들의 요구를 따랐던 사울처럼, 성도들이 말씀을 무시하고 업신여길지라도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열매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자신을 위하려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과 마음을 합한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하면,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는 일에 그를 들어 쓰십니다. 신앙은 어렵거나 힘겨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하나님과 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당신이 계획하신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게바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갈라디아서 2장 11절에서 사도 바울이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라고 했습니다. 그 전에, 안디옥에서 구원받는 이방인들이 많아지자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내 교회를 인도하게 했습니다. 바나바는 다소에 있던 바울을 데리고 와서 함께 교회를 인도했습니다. 그처럼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를 인도하고 있을 때, 베드로가 안디옥에 찾아왔습니다. 
베드로는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에서 야고보를 따르던 이들이 안디옥 교회에 도착하자, 베드로가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나버렸습니다.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갈 2:12) 베드로가 급히 피하니까 다른 유대인들도 얼른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인도하던 바나바도 거기 휩쓸려 자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갈 2:13) 
야고보를 따르는 이들이 안디옥 교회에 도착하자,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던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제외하고는 다 황급히 도망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과 함께 먹지 않는다,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지 않는다’ 등 그들 스스로 만든 규례가 있었습니다. 그 규례를 깨고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할례 받은 사람들이 오자 규례를 어겼다고 힐난을 받을까봐 두려워 얼른 피한 것입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의 서두에서 다른 복음은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고, 어떤 사람들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드려서 우리 죄를 씻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거나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잠깐, 유대인이면서 구원받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마 23:1~2) 
그들은 율법대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모세가 율법을 반포했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나 간음하지 말라는 가르침에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마 23:3) 그들이 입으로는 율법을 말하지만 행동으로는 율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과 같이 음식을 먹다가 피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율법대로 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 마음에는 이방인과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규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은혜를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율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바리새인처럼 외식에 빠졌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그래도 반듯하게 살아야지?
우리는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믿는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말하면서도 반듯한 삶을 원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해서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을 외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갈 2:16)
이것이 구원입니다.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마음에 ‘그래도 반듯하게 살아야지, 그래도 잘해야지, 그래도 실수가 없어야지’ 같은 규례들을 담아놓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자신만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요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그 마음속에 유대인의 규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규례가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이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이 많은 유대인들을 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과 믿음의 교제를 하러 예루살렘에서 왔습니다. 그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베드로가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의 마음 밑바닥에는 ‘유대인은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규례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야고보를 따르는 사람들이 왔다는 말을 듣고는,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다가 얼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일로 바울이 베드로를 면책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유대인이지만 율법을 못 지키고 이방인처럼 살면서, 왜 이방인을 억지로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고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갈 2:14)

신앙은 행위가 반듯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믿는 것
사도 바울은 이어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의 진리를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5~16)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만들어놓은 규례로 자신의 신앙을 깎아먹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우리가 무엇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마음을 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바르게 세우려면 자신이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가 의롭냐, 아니냐? 이에 대한 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내가 믿음의 사람이냐, 아니냐? 이에 대한 답 또한 전적으로 성경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사탄은 구원받은 성도의 마음에 반듯하게 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을 집어넣어서 믿음으로 달려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베드로도 이방인이 구원받고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가 안디옥 교회까지 찾아가 성도들과 기쁨으로 교제를 나누고,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에 이르자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보고 “베드로, 어떻게 이방인과 같이 음식을 먹어요?” 하며 비난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율법을 말하기는 하지만 행동은 다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올바른지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마음을 함께하지 못하니까 자신의 행위를 바르게 하려는 쪽으로 마음이 끌려갑니다. 성도들이 자녀를 믿음으로 이끌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들의 행위를 바로잡으려고 하다가 그 안에 있는 믿음을 죽일 때가 많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감각하게 하고 주님과 마음을 함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의식하게 해서 자꾸 올무에 매이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이 어렵습니다. 신앙은 우리 행위가 반듯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 위에 서는 것입니다. 
행동이 바르지 않은 사람이 ‘내가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네가 의로워? 에이, 그 교회 이상하다. 너 같은 사람이 의롭다면 그 교회 가짜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반듯하게 살려는 마음이 강합니다. 그러나 행위를 바르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의롭고 온전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자신이 거짓되고 악하고 추한 사람인 것이 분명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고 거룩하고 온전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죄를 지으면서 의롭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있는 나사로를 깨우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나사로가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예수님의 말씀과 합하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에 자신이 만든 규례가 세워져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형편없이 살고 세상을 즐기는데 의롭다고? 온전하다고?’ 하며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하나님과 마음을 합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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