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열리고 있는 후속 집회 네째날 말씀입니다.
목포에서 열리고 있는 후속 집회 네째날 말씀입니다.
  • 정대영
  • 승인 2003.05.02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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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본문말씀: "행; 8장 26절-40절"
"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의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것을 깨닫느뇨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면서, 기적과 이적을 보이시기도 하며, 말씀을 전하여 주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보지 않고, 선지자니, 엘리야니 등등 각기 다르게 보는 것일까?
똑같은 성경책을 보면서도 왜 사람들은 각기 다르게 말하는 것일까?

한번은 한산도에, 섬 전도여행을 갔었다. 한산도 주변으로는 크고 작은 30여 개의 섬들이 있다. 그 중 작은 섬에 살고 계시는 늙으신 할머니를 만다 복음을 전했다. 구원을 받으셨는데, 한쪽 발이 없이 살고 있었다.
배에서 그물을 내리다가 잘못해서, 그물과 함께 바다에 빠져버렸다. 그때 배 스크류에 다리가 걸려, 한쪽 다리를 잃으셨던 것이다. 젊어서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그날 후로 시골 작은 교회를 남편과 함께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몹시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암 말기였다. 죽어가고 있던 때에, 시골교회 목사의 권유로 남편을 3일 금식 시키며 기도를 드렸는데, 결국 남편은 죽었다. 목사는" 이제 악령이 떠났다, 구원 받았다 "했지만, 할머니는 아니었다." 내가 굶겨서 영감을 죽였어!."하면서, 양심의 가책 아래 사로잡혀 살았다. 그 후로 교회에 마음을 닫고, 나가지 않았었다.

그런 할머님이 복음을 듣고 너무나도 기뻐하셨다.
목사님의 옷깃을 쥐어잡으면서, " 목사님!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좀 더 일찍 오셔서 복음을 전해주었더라면 남편이 구원 받았을텐데...."
지금도 잘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복음을 전해서, 우리에게 예배당 건물을 빌려 주었던 목사 사모가 구원을 받았다. 여러명이 모여서 성경공부 모임을 갖었고, 수양회에도 오셔서 참석하였다.

섬에 사는 그 목사도 목사고, 나도 같은 목사인데, 왜 이리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까?

이번에 속리산에서 IYF대학생 수련회를 치뤘다.
학생들이 공을 차는데, 옆에 서 있다가 공을 받아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오른손 약지인대가 끊어졌었다. 서울로 와서 병원에 갔는데,의사가 하는 말이 "손가락 기부스하고 있으면 금방 붙습니다."라고 했다. 석달이 지나도록 붙지가 않아서, 안산에 있는 전문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의사는 수술해야 한다 했다. 하시는 말씀이" 끊어진 인대를 다시 찾아 꿰매어 줄수는 있으나, 회복되는 정도는 저도 장담 못합니다.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술경과가 좋으면 정상인 손가락처럼 돌아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수술하고 경과를 지켜 보면서, 확인해보니 다행히 좋았다.
똑같은 의사인데, 나는 서울 의사때문에 석달을 고생해야 했었다.
똑같은 목사인데도, 왜 다르게 보는 것일까? 그 목사님은 신학교를 나왔고, 시험 치러서 강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어, 심방학을 가르치고,신약개론을,구악개론을 가르치나. 죄로 고통하는 한 영혼을 주님앞에 인도해 자유케 해주는 복음을 알지 못했다. 나는 여러모양으로 부족하고 아는 것이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떻게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주님의 인도를 받아 복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는지 성경속에서 분명하게 지도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말씀 행 8장 "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읽는 것을 깨닫느뇨?" 너무나도, 못 배우고, 천박한 빌립의 전도이지만 주님 역사해 주시니까 내시가 복음을 듣고 깨달아 구원을 받았다. 한 번은 교회에서 주말을 이용해 주말 전도반을 했다. 오후에 두명 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내보냈었다. 그런데 예배당안에 나가지 않고 있는 두 자매가 있었다. 아마도 전도를 부담 스러워했던 모양이었다. 다시 둘을 밖으로 내어보낸 후에 저녁이 되고 모두들 돌아왔다. 두 자매는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올 생각을 안했다. 잠시후 입가에 큰 웃음을 머금고 오는것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길 거리에서 교회장로를 만나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장로님. 구원 받았습니까?, "암".
"장로님 죄는 있습니까?", " 아니, 죄없는 사람이 어딨어?".
" 성경에 있지요". " 어디",
성경책을 펴놓고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교회장로로 남들보다 봉사도 많이 하고,십일조, 헌금도 했으나,성경은 알지를 못했다.

요2장12절
예수님은 왜 가버나움에서 일하지 않으셨을까? 가나 혼인 잔치에도 일하셨고,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일하셨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 부족한자 속에 채우시는 일을 하신다. 예수님은 음란하고 추하고 악한 것으로 가득한 심령도 정결케 하신다.

마: 11장
"가버나움=꾸민다, 치장하다,가리우다"
"언제 사람이 가리우고, 꾸미기 시작합니까? 아담과 하와가 언제 자기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우고 나갔습니까?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지니까,자연스럽게 자신의 추하고 악함을 가리우고 꾸며서, 하나님께 나간다는 것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부족함이 나타나니까, 풍족하게 채워주셨고, 예루살렘 성전이 추하고 악함이 나타나니까, 주님이 정결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죄가 있으면서도, 없는것처럼, 악하고 추한 마음이 있는데도 없는것처럼 꾸미고 가리우니까 주님은 그대로 놔두시고 지켜보신다는 것입니다. "병원의 의사는 병을 발견했을때 그렇게 만족한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 마음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주님이 일을 하시니까요. 그런데 우리마음을 가리우고 내 잘난 것, 좋은 것으로 내 마음을 가리우면 우리 주님은 그냥 지나 가십니다. 만일 내가 아주 늦은 밤에 낯선 곳을 찾아가야 될때, 길가에 노는 그집의 아이을 만나면 나는 길을 몰라도 쉽게 찾아갈 수가 있다. 이 아이가 뭘 알겠나 싶어도 말입니다.

빌립은 다른 것은 몰라고 이 부분만큼은 정확히 알고 있어서 지도해 줄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가까이에 귀한 하나님의 종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마음을 열고서," 오늘 저녁 하나님 저도 구원을 받고 싶습니다 "하시는 분 오른쪽 손을 높이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07-06-13 13:37:46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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