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라이프]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 글 | 김택경(기쁜소식강릉교회)
  • 승인 2024.02.0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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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3대째 장로 가문의 전통만 자랑하며 살아오던 미련한 사람인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진리를 전하시는 하나님의 종을 만나 구원받은 교회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다. 내 마음을 믿는 미련함에서 벗어나 살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 모두 장로인 기독교 집안에서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1925년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할아버지의 교육 덕에 어려서부터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을 줄줄 외웠고, 교회에서 칭찬 받는 것을 낙으로 여기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친구들을 열심히 전도했고, 새벽과 저녁마다 기도를 드렸다. 목사님이 하라는 대로 실천하면 그 주 주일 설교 때 꼭 내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에 심취하여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달라’ ‘내 신앙은 온전해’라고 생각했다. 금식 기도, 철야 기도, 40일 새벽 기도도 하고, 헌금을 하면 강대상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것이 좋아서 열심히 헌금도 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곧 구원의 증거, 신앙의 척도로 여겼다. 장로교회에 다니던 나의 신앙의 모습은 이렇듯 ‘나’ 중심이었다. 
학원 강사로 명성을 얻었지만
장로교회 청년회장일 때 아내를 만나 사귀다가, 제대하고 1984년 2월에 대학교 2학년 복학생 신분으로 결혼했다. 아내는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대학생 남편 뒷바라지를 하느라 힘겹게 신혼생활을 해야 했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하자 아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툭 던졌다. “당신, 어디 가서 10만 원만 벌어다주어도 좋겠다.” 아내의 말에 충격을 받고 내 모든 계획을 접었다. 친구가 가려고 했던 공무원 학원 국어 강사 자리에 들어갔다. 학원 강사 생활이 쉽지 않았지만 일이 익숙해지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대전과 천안을 거처 서울까지 진출했다.
아내는 청주에 남아 두 아들을 키우며 유치원 일을 계속했고 나는 혼자 서울로 올라가 학원 강사 일을 했다. 나는 교회 장로였지만 술도 마시고 생존을 위해 무슨 짓이든 했다. 새벽에 눈 뜨는 순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돈 버는 일에 노예가 되어 살았다. 학원은 날로 번창했다. 학원 확장 사업에 2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고, 내가 원장이 될 날을 손꼽아 기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나를 ‘삼촌’ 하며 따르던 원장 아들이 학원에서 손을 떼라고 칼로 협박했다. 학원을 차지하기 위해 법적 싸움까지 했지만, 수강생들이 다 떨어져나가 결국 빚만 지고 학원 문을 닫았다.

거반 죽게 된 나, 인생 마감을 생각할 때
사업에 실패한 후 죄 된 생각은 또 다른 죄 된 생각을 낳았다. 나는 매일 내 안에 있는 못난 마음들과 싸워야 했다. 그 싸움은 쉽지 않았다. 도저히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어 자살까지 생각했다. 장로였지만 내게서 올라오는 죄를 이겨낼 힘이 없었다. 종교심으로 이겨보기 위해 여의도 순복음교회 새벽기도에 나가보았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주여’ 삼창하고 목에 핏줄이 서도록 목소리 높여 기도하며 은혜를 구했다. 기도를 끝내고 나오면 그 순간만큼은 산천초목이 나를 반기는 듯했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면 매일 실패자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괴로웠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습관처럼 새벽에 혼자 걸어서,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 순복음교회로 갔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었다. 점점 살아갈 용기가 사라져 인생 마감을 생각할 때였다.
2000년 5월, 그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어 뚫린 하늘을 쳐다보다가 우연히 육교에 걸린 ‘박옥수 목사 성경세미나’ 현수막을 보았다. ‘세미나’라는 용어가 익숙해서 성경을 깊이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끌려 잠실실내체육관에 찾아갔다.

구원의 기쁨과 소망의 태양이 나의 심령을 밝혀주었다
성경세미나에 참석해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박옥수 목사님은 ‘구원받는 사람의 마음의 위치가 강도 만난 자처럼 거반 죽게 된 그 자리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매우 충격적인 말씀이었다. 왜냐하면 장로교회에서 어릴 때부터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아야 한다’라고 배웠기 때문이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천국에 간다고 믿었기에 처음에는 박 목사님의 말씀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집회 삼 일째 되는 날, 2부 신앙 상담 시간에 어느 목사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 의문 나는 것은 전부 물었다. 
내가 질문할 때마다 목사님은 화도 안 내고 차근차근 성경 구절을 찾아서 읽어주셨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은 믿고 있었기에 목사님이 찾아서 읽어주는 말씀을 따라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동안 내 마음에 구원이 이루어졌다. ‘의인’이라는 말이 성경에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구원받고도 또 죄를 지으면 어떻게 처리하는지 몰라 다시 물었다. 히브리서 10장 12절~14절,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말씀을 들으면서 의심의 먹구름이 걷히고 구원의 기쁨과 소망의 태양이 나의 심령을 밝혀주었다. 우리를 죄에서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는 말씀이 내 마음에 빛이 되었다.

복음을 전해준 교회로 
‘구원받았으니 내가 다니는 교회에 가서 이 복음을 전해야지’라는 소명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친한 집사님과 권사님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쉽게 복음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대적자들만 늘어났다. 교회 곳곳에서 ‘김택경 장로가 이상한 종교에 빠졌다’며 쑥덕공론이 시작되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고 매주 목사님과 죄 문제로 충돌하면서도 꾸역꾸역 출석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말씀을 보여주셨다. 이 말씀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하든지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을 내 주인으로 모시고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로 정했다. 
어느 날, 새벽에 목사님이 전화했다. 내 아내가 새벽기도에 와서 교회 문이 잠겼다며 난동을 부렸다고 했다. ‘장로님이 떠나시든지, 아니면 제가 떠나든지 하자’고 했다. 나는 말씀이 생각나 머뭇거리지 않고 “목사님이 떠나시면 안 되지요. 제가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게 복음을 전해준 기쁜소식선교회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알게 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일 먼저, 내가 서울에 사는 동안 밥을 해준 처제에게 전했다. “처제, 나는 40년 동안 예수를 헛믿은 것 같아!” 하며 복음을 전했다. 처제는 “장로인 형부가 헛믿었다고 하면 평신도인 나는 어떻게 하라고요?!”라고 했다. “나도 모르겠어. 다만 성경을 안 믿고 내 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생각을 믿은 것 같아!” 이 말을 듣고 처제가 마음을 바꿀 것이라고 믿었는데 오히려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장모님은 내가 사업이 망하더니 이단에 빠졌다며 ‘당장 이혼하라’고 했다. 이혼 위기까지 내몰렸으나 아내는 이혼만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내가 정말 고마웠다. 그 후 아내는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할 수 없이 나를 따라 당시 기쁜소식마포교회에 출석했다. 처음에는 체면상 들어주는 척하다가 오히려 나를 설득하려 했다. 내가 흔들림이 없자 포기했는지 자기가 운영하는 유치원에 기쁜소식청주교회 목사님을 초대하여 상담받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내도 로마서 3장 23, 24절 말씀을 받아들여 죄 사함을 받았다. 그때부터 아내는 나의 가장 든든한 응원군이 되었다.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는 짐승처럼, 내 주변의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나의 어머니는 유달리 고집이 강하신 분이었다. 아버지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돌아가시며 “나 죽으면 택경이에게 가서 살아.”라고 유언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할아버지가 생전에 아버지에게 그렇게 유언하셨다고 한다. ‘큰형님도 있고 작은형님도 있는데 하필이면 다 망한 나지?’ 그러나 어머니는 유언대로 못 하겠다며 큰형님 집으로 가셨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크게 다툰 뒤 둘째 형님 댁으로 가기로 하셨다. 그런데 둘째 형님 댁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우리 집으로 오실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그제야 아버지 유언을 떠올리며 우리 집으로 오셨다. 구원받은 나와 아내는 기쁨으로 어머니를 맞았다. 어머니는 이단에 빠진 아들을 구해보려고 우리 교회에 출석하셨다가 복음을 듣고 구원받으셨다. 
중풍에 걸린, 사업하며 알게 된 건달 조직의 형님에게도 서울 성경세미나에 참석하라고 권하였는데, 성경세미나 후 가진 후속 집회에 참석해 구원받았다. 구원받고 너무 기뻐한 형님은, 당시에는 설교 말씀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들었는데, 말씀이 너무 좋아서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반복해서 들으실 정도였다. 형님은 나를 마치 생명의 은인처럼 대접해주었다. 한날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강릉수양회에 참석해 나에게 간증했다. 많지 않은 재산을 모두 처분해서 하나님께 드렸고, 주님 품에 가는 날까지 복음을 전하다 가고 싶다고 했다.
두 아들에게도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지금은 교회 안에서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본능을 거스르고 노아 방주에 들어가는 짐승들처럼 내 주변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하나하나 들어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자기 마음을 믿는 자의 생각이 죄라니...
죄 사함을 받은 후에도 나는 구원받기 이전의 종교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해 여러 부분에서 혼돈 속에서 지냈다. 어쩌다 교회에서 대표 기도를 하고 나면 아직도 장로교회 교인 같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럴 때면 신앙을 포기하고 싶었다. 내 생각이 얼마나 질기고 무서운 것인지 말씀 앞에 설 때마다 깨달았다. 
어느 날 내가 하는 기도를 내가 들었다. 인간 김택경의 자존심 회복과 타인 위에 군림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망한 사업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불꽃 같은 눈으로 내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나를 계속 간섭하셨다. 내 안에 있는, 말씀이 아닌 것은 깨트리기 시작하셨다. 사업 회복은 고사하고 경제적인 형편은 점점 악화되었다. 
형편을 따라 하는 나의 신앙생활이 바닥을 칠 무렵, 박 목사님의 저서 〈내 안에 있는 나 아닌 나〉를 읽기 시작했다.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말씀이 조금씩 보이고 들렸다. 
잠언을 읽는 중에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잠 24:9) 말씀을 보았다. 궁금했다. 도대체 누가 미련한 자일까? 찾고 찾았다. 잠언에 “자기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잠 28:26)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말씀을 연결하여 읽어보았다. ‘자기 마음을 믿는 자의 생각이 죄’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더더욱 놀란 사실은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구원 받았지만 내 생각이 죄인 것을 모르고 나를 믿고 살았으니, 여전히 마귀의 영향 아래서 산 것이다. 내 생각을 믿고 살았던 내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신앙인이 되어가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생각해 볼 때 가장 큰 기적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교사
학원 운영차 강릉으로 내려왔다가 운영에 차질이 생겨, 성남의 유명 학원에 자리를 제안 받고 옮기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에게 인사드릴 겸 상담을 요청했다. 당시 기쁜소식강릉교회 목사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한마디 하셨다. “형제님, 그 학원에 가서 성공 못합니다. 저와 함께 교회에서 대안학교를 같이 합시다.” 목사님은 새로 생길 강릉링컨학교 교감 직을 부탁하셨다. 나는 무조건 “예.” 하고 대답했다. 처음으로 말씀 앞에 순종이 아닌 복종을 했다. 
2007년에 기쁜소식강릉교회 예배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얼마 되지 않지만 주님께 드리고 봉사의 중심 자리로 뛰어들었다. 2008년에 강릉링컨학교 1기생이 입학했다. 처음에는 학교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몰라서 학생을 학원생 다루듯 함부로 대했다. 그러자 학교에서는 학교 설립 정신에 맞지 않는다며 교감 직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입시 학원을 시작했다. 돈은 모을 수 있었으나 기쁘지는 않았다. 어느 날, 학원 회식 자리에서 술잔을 돌리며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구원받은 사람이잖아. 그러면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데 그분 머리에 술을 붓고 있잖아!’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순간부터 입에서 술을 받지 않아 마실 수가 없었다. 그날 술을 끊었고, 지금까지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 
교회가 품어주고 긍휼히 여겨 전직을 회복했고, 강릉링컨학교 3기생부터 지도했다. 학생들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을 지켜보며 보람을 느꼈다. 학원을 운영할 때는 학생들이 돈으로 보였는데 우리 학생들은 하나님의 군대로 보였다. 세상에 나와 같은 기쁨을 가지고 일하는 교사가 있을까?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상관없이 내가 세계 최고의 교사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목사님의 인도를 따라 살고 싶었다
구원받고 23년이 지났다. 사탄에게 속아 신앙의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나를 소망 가운데로 인도하셨고, 내 생각이 아닌 말씀을 따라 살도록 이끌어 주셨다. 
작년에 우리 교회 박희진 목사님이 “형제 자매님들, 1년 안에 직접 복음을 전해 한 명이라도 옆자리에 앉혀서 함께 예배드려 보십시오! 신앙의 참맛을 알게 될 것이며 전도의 즐거움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목사님의 말씀대로 해보고 싶었다. 목사님은 ‘복음 전할 사람이 영 없으면 벽에 대고 전해보든지 아니면 강아지를 붙잡고라도 전해보라’고 하셨다. 목사님의 인도를 따라 살고 싶었다. ‘하나님 저도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주세요.’ 기도했다.
어느 날 처제에게서 연락이 왔다. 청주에서 일반 교회 권사로, 전도사로 병원 사역을 하시던 장모님이 연세가 90이 되면서 경증 치매 증세가 생겨 집을 못 찾아 경찰이 찾아주었다고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장모님이 우리 교회에 가기 싫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1개월이 지나 처제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장모님을 모시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작년 부활절 날 예배를 마치고 장모님을 기쁜소식강릉교회로 모셨다. 

장모님의 구원과 변화
그날 이후로 장모님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비록 치매 노인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귀는 열어놓으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새벽 1시도 좋고 2시도 좋고 장모님이 우리 방 문을 두드리면 일어나 복음을 전했다. 장모님은 벽도 아니고, 강아지도 아니고, 치매 환자도 아닌, 하나님께서 천하보다도 귀하게 보시는 영혼이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선포하신 말씀 그대로 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장모님을 구원하고 내 옆에 앉게 하셨다.
 2023년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마지막 날 내 옆에 앉아 계신 장모님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감사의 눈물을 마음껏 흘렸다. 이단이라고 배척하며 이혼을 강요했던 장모님의 변화는, 마치 포도주가 모자란 가나 혼인 잔치에 예수님이 함께하면서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처럼, 우리 가정에 예수님이 함께 계시면서 이전에 맛보지 못했던 예수님표 포도주를 맛보는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받게 해주셨으니
나는 장로 교단에 속한 교회에서 3대째 장로 가문의 전통만 자랑하며 살아오던 미련한 사람인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진리를 전하시는 박옥수 목사님을 만나 구원받은 교회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강릉링컨학교 교사로 복음의 꽃받침이 되어 살고 있다. 2022년 5월에는 꿈에 그리던, 구원받은 교회의 장로로 세움을 받았다. 복음 사역은 진행형이다. 가족과 친지, 친구들, 주변 사람들이 구원받고 교회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동안 복음의 일꾼으로 세워지리라 확신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 8~9)
갈등과 위선과 모순 속에서 살아왔던 나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구원받게 해주셨으니, 이제 나는 그리스도의 본을 좇아 살아가고 싶다. 남은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며 충성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기를 소망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나는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살고 있다. 김택경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이제는 김택경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며,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린다. 
주님께서 공급해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며 또 주 예수님을 위해 나의 은사를 질서 있게 사용하며 절제한다. 그리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힘을 다하여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데 쓰임받고 있다.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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