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우간다에 오길 잘했지?
[라이프] 우간다에 오길 잘했지?
  • 글 | 김재성(우간다 기쁜소식캄팔라교회)
  • 승인 2024.02.05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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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호 기쁜소식
포토 에세이_선교사 가족
우간다에서 아들 김형진 선교사와 함께 복음을 섬기는 김재성 장로와 홍춘희 부부

나는 아내와 함께 우간다에서 선교하는 아들 가족과 살고 있다. 아내는 1979년 봄에 구원받았고, 나는 그해 겨울에 구원받아서 지금까지 교회와 함께하는 큰 복을 입었다. 처음에는 구원받은 복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그저 죄가 씻어져서 지옥에 안 가니까 감사하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는 비밀들을 알고, 그것을 교회와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1983년에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이왕 복음을 섬기며 살 거면 복음의 일에 삶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전도자는 안 되어도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삶도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1997년에 대구 계명대 앞에 있던 교회가 남대구교회 예배당을 지었는데, 그때부터 교회 안에서 살았다. 2012년부터는 김천에 있는 대덕 수양관에서 봉사하며 지냈다.
어느 날 박옥수 목사님이 대덕 수양관에 오셨을 때, 아내에게 ‘우간다에 가서 살지 않을래?’라고 웃으면서 물으셨다. 아내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어서 웃으면서 대답을 피했다. 그런데 2018년에 한 번 더 같은 질문을 받았다. 두 번째 질문을 받은 후로는 한 번쯤 생각했지만, 내 나이가 많다는 생각에 선교하는 아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우간다에 가서 살 마음은 없었다. 그때 내 나이가 예순세 살이었으니 주변에서도 다 그렇게 생각했다. ‘선교지에 가려면 젊은 사람이 가야지, 나이 많으면 짐이 안 되겠나?’ 하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로부터 ‘박 목사님이 자장면 먹으러 서울에 오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가 서울 대전도집회 기간이었고, 미련한 우리도 목사님이 무슨 일로 우리를 부르시는지 알 것 같았다. 자장면 때문에 대전도집회 기간에 우리를 부르실 리 없었다. ‘이번에도 박 목사님이 우간다 이야기를 하시면 무조건 “예!”라고 대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서울에 갔다. 그날 저녁 대전도집회가 시작하기 전에 서울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 목사님이 또 “우간다에 가서 살면 어떻겠어요?”라고 이야기하셨다. 우리는 “예!”라고 답했다.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2019년 1월,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의 삶을 다 정리하고 우간다로 왔다. 올해로 벌써 5년째가 되었다. 그때부터 좋으나 싫으나 복음을 전하며 보내고 있다. 오후에는 시간이 될 때마다 가정집에 방문하여 성경공부를 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주일 예배 때마다 새로운 분들이 오면 단기선교사들이 통역해주어서 복음을 전했다. 또한 매주 한 시간씩 선교학생들, 새소리음악학교 학생들, 단기선교사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오후에는 전도하고 있다. 한 번씩 외부 목회자들의 교회에도 주일 예배 말씀을 전하러 다니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케냐나 주변 다른 나라에 행사가 있으면 아내와 같이 전도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즐거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2022년에는 잠비아 선교센터 준공식에 갔다가 장로로 안수 받는 영광을 입었다.
누구든지 그렇겠지만, 복음을 전하다 보면 듣는 사람도 은혜를 입고 복음을 전하는 나도 많은 은혜를 입는다. 복음을 전하고 나면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복음의 지식은 너무나 단순하고 쉽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비밀은 깨닫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기에 말씀을 전하면 전할수록 하나님 안에 있는 신비하고 놀라운 세계가 보인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내 죄만 씻은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은 것들은 이미 예수님을 통해서 모두 다 주셨구나. 아!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마음에 대해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어서, 그것이 정말 좋았다. 말씀을 전하다 보면 때론 잘 전할 때도 있고 못 전할 때도 있는데, 그런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는 것이 행복했다.

낯선 나라에 와서 제일 먼저 부딪힌 어려움은, 어려운 형편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국에서 가지고 살았던 기준을 마음에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 기준이 있으니까 우간다 사람들을 무시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내 마음의 율법이었고 내 옳음인 것을 알았다. 사실은 나도 그들처럼 똑같은 사람이고 그들에게 은혜를 입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발견하니까 모든 부분에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우간다에 교회가 세워진 지 오래되었지만, 그에 비해 형제 자매들의 마음이 자라지 못한 부분이 있고, 현지 사역자들이 선교사와 한마음으로 일하지 못하는 부분이 어렵기도 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일은 형편과 상관없이 다 진행되는 것을 보면, 이것 또한 신기한 일이었다. 이번에 송구영신 예배를 준비하는 일도, 행사 한 달 보름 전부터 케냐 지부와 주변 나라 교회에서 선교학생들과 사역자들을 보내주어서 교회는 교회대로 구역 집회를 하면서 전도하고, 대외적으로는 목회자 모임 CLF를 하면서 목회자들을 초청하고 자원봉사자 행사나 집회에 관련된 일들을 할 수 있었다.

우간다에서 지내다 보니, 그동안 교회 안에서 복음을 섬기고 봉사하면서 배웠던 모든 것이 쓰임을 받고 있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많고, 그들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구원받은 당신의 자녀를 기쁘게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연약함과 상관없이 당신의 일을 하셨고, 우리는 그 영광스러운 일에 참여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동안 연약한 나 자신에 매여서 하나님께 나를 드리기를 얼마나 주저했던가. 그러나 이제는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 8:12)라고 하신 것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는 말씀이 나를 이기시고 내가 짊어지고 있던 모든 짐들에서 자유롭게 하신다. 
연말에 박 목사님이 우간다 기쁜소식캄팔라교회에 방문하셨을 때 우리 부부에게 “우간다에 오길 잘했지? 누가 여기에 오라고 했어?” 하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우간다에서 복음을 위해 살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렸다. 
이제 곧 정부로부터 기증받은 땅에 선교 센터를 건축하게 된다. 인적으로나 비용적으로 많은 부분이 부족하지만, 오히려 그 부족함으로 하나님이 힘 있게 일하실 것을 믿는다. 그 소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어 감사드린다. 한국에 계신 형제 자매님들의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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