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후속> 신앙의 기본 말씀
<양천후속> 신앙의 기본 말씀
  • 윤선미
  • 승인 2004.05.2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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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교회에서는 홍오윤목사님을 강사로 한주간 후속 집회를 치뤘습니다. `자기를 믿는 것이 죄`이기 때문에 자신을 믿는 믿음에서 떠나 새로운 세계로 옮겨져야 할 것에 대해 여러 말씀을 통해 증거해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막연한 생각 속에서 자신을 보기 때문에 마음이 심판에 도달하지 못하고 심판이 감각되지 않기에 생명 앞에 나아가는 마음도 없습니다. 정확한 말씀이 올 때 자신이 비춰지고 하나님 편으로 옮길 수 밖에 없음을 봅니다. 이하 후속집회 말씀을 간추려 보았습니다.

<5월 20일 목요일>

* 열왕기하 7장

종교는 절대 부담이 없지만 신앙은 부담이 따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지만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습니다. 믿음 안에 들어가려면 강한 부담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과 마음으로는 절대 믿음 안에 들어갈 수 없구나!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구나!” 신앙 안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한계가 옵니다. 이를 발견한 사람은 다른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네 명의 문등이들이 ‘사마리아 성 앞에 가면 양식을 얻을 수 있겠다!’는 실날 같은 소망이 끊어지자 “성안도 주리고 여기 있어도 주리니 아람 진으로 가서 항복하자!”라는 새로운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결국 죽을 위치에서 구원을 받게 되고 풍성한 양식이 있는 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사단은 우리가 부담을 넘지 못하고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여유를 갖게 합니다. 이 시대 많은 종교인들이 예수님 믿기 전과 믿은 후가 모양만 바꾸지 옛날 그대로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자기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끝이 났을 때 예수님의 말씀이 새로운 마음을 형성시킵니다.

누가 복음 12장 13절에 어떤 사람이 형님이 자신의 유업까지 챙긴 일로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예수님께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님이 재산을 돌려준다 해도 근본 마음에 탐심이 제거되지 않으면 또 다른 욕심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탐심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계가 왔을 때 마음을 바꿉니다. 한계나 죽음 앞에 섰을 때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는데 더 이상 나를 지킬 필요가 있나?”하고 담대해집니다. 네명의 문등이가 “아람진으로 가자” 38년 된 병자가 “자리를 들고 일어나자.” 이는 자기에게서 나오는 마음이 아닙니다. 다만 자기에 대한 기대가 끝이 나면서 예수님의 음성이 그대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관은 아직 한계가 온 적이 없습니다. 양식을 한껏 쌓아 놓은 장관이 한계가 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주 한계를 주셔서 “이 마음 갖고는 안되겠다!”하는 마음을 주셔서 새로운 세계로 옮기십니다.



<5월 21일 금요일>

*사무엘하16장 1~14

인생의 불행의 조건은 말씀을 믿는 믿음이 마음에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자기 안에서 나름대로 합당한 생각을 따라 자기가 주인이 되어 결정을 해버립니다. 어떤 경우에도 말씀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행에서 가장 많은 사고를 유발하는 것은 전적으로 계기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행착각에 걸렸을 때 계기보다 자신의 느낌을 믿으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입니다. 시험에 들고 어려워하는 이유가 자기 생각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말씀 그대로 믿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신앙의 기본은 말씀입니다. 말씀 앞에서 입을 다물어야 하고 느낌을 접어야 합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을 갈 때 시바와 시므이가 있었습니다. 둘 다 사울의 족속들 이었는데 시바는 다윗을 축복했으나 시므이는 저주를 퍼 부었습니다. 시므이가 맘껏 저주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도망가는 형편을 보고 다윗 시대는 끝이 났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윗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이 허물과 실수가 있어 하나님이 징계 하실 지는 몰라도 버리지 않는다는 약속의 관계임을 모르기 때문에 맘 놓고 저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바는 다윗이 하나님과 믿음의 관계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윗이 다시 왕으로 세움을 입을 것을 믿었습니다.

신앙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므이는 형편을 따라 마음을 바꾸는 사람이지 근본 자기 마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시바의 마음에는 사울의 족속이 끝이 났지만 시므이 마음에는 사울이 끝나지 않아 여전히 형편 따라 마음을 바꿉니다. 시므이와 시바와 같은 마음이 있는데 하나는 끝이 나야합니다. 말씀에서는 이미 세상과 우리의 육체가 끝이 났다고 하는데 사단은 세상과 육신에 미련을 갖게 해서 그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육신과 죄가 이미 끝났음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오직 복음의 생명의 역사만이 길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형편과 육신 속에서 갈등하다 시므이처럼 저주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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