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소식양천 장로 취임 예배*
*기쁜소식양천 장로 취임 예배*
  • 윤선미
  • 승인 2004.11.29 0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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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기쁜소식 양천교회에 안병국 형제님이 장로로 세워지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28일 주일 저녁에는 안병국 장로 취임예배를 드렸는데 안병국 장로님의 간증, 황효정 장로님의 축하 메시지 그리고 김재홍 목사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안병국 장로님 간증>

장로 안수를 받는 다는 소식을 들은 군대 있는 큰 아이가 작은 아이랑 통화를 하면서 자신들이 부담된다고 서로 얘기한 모양입니다. 정작 부담되는 것은 저인데 말입니다. 또 남대구에 있는 처제랑 통화를 하는데 “형부, 장로 안수 받은 것이 축복이지만 자기를 세운다면 저주예요.”하고 말하는 거예요. 이게 축하하는 말인지, 아니면 저주인지 분간이 안가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전도할 때마다 상대방이 “내 생각에는...”하면서 자신을 주장하는데 자신의 생각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저주가 맞더라고요.

한번은 선교사님께서 형제님은 13년간 부인을 핍박하신 것이 꼬리표로 따라 다닐 것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집사람이 12시 넘어서 들어오면 문도 안 열어주고 성경도 3권이나 찢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배울 대로 배웠는데 왜 이런가?’하고 자책해보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니 사단의 영역 속에 있기에 별 짓을 다 할 수 있더라고요. 또 이번 잠실 집회 때 사람들을 초청하면서 “이 좋은 말씀을 사람들이 왜 기피할까?” 하고 생각했는데 박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단의 영역 안에 있으면 오고 싶어도 올 수 없구나!’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도하면서 상대방이 사단에게 잡혀 있는 것을 보면 나를 분명히 구원하시고 교회 안에 두신 하나님이 감사하더라고요. 저는 구원받은 지도 얼마 안 되었고 봉사한 것도 작정한 것도 없는 그야말로 어린 자입니다. 한 것이라고는 핍박한 것 밖에 없는 자인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했다는 말씀처럼 ‘핍박이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하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장로 안수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군대시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한번은 제가 살도 별로 없는 엉덩이를 20대 정도 맞아서 절뚝발이로 다녔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혹한 훈련이 있어 모두가 행보를 해야 했습니다. 한명이라도 낙오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절뚝발이이고 뛸 수도 없고 낙오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는데 저를 소대장으로 세워주더라고요. 소대장은 앞에 구령을 받아 전달하기만 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낙오할 수밖에 없는 제가 앞에 서서 함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저보다도 신앙이 좋은 신분들이 많고 제가 가장 연약하고 어린 말째인데 저에게 장로직분을 주셔서 요한복음 6장 29절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앞선 장로님들처럼 할 수 없는 자라 처음에는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박목사님을 이끄신 예수님이 나도 이끄실 텐데 그대로 따르면 되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제 잘난 맛에 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인데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베냐민의 은잔을 허락하셔서 구원하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황효정 장로님 축하메세지>

제가 장로가 되고 가장 큰 복은 목사님과 가까이 지낸 다는 것입니다.

제가 4년 전에 박목사님과 도영대 장로님, 도기권 장로님 그리고 이해영 선교사님과 함께 아프리카 전도여행을 같이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통 전도여행 가서 박목사님과 같이 안 주무시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다른 장로님들은 다른 방에서 먼저 주무시고 저만 남았는데 박목사님이 물끄러미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목사님 방에서 같이 잠을 자는데 목사님이 기도회를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목사님께서 먼저 이런 저런 일들을 기도하시고 그 다음에 잘 줄 알았는데 저보고 하라 시는 거예요. 근데 제가 그 때 최대의 실수를 했습니다. “박옥수 목사님과 함께 자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제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니깐 목사님께서 감동하셨는지 침대에 올라와 자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 날 밤 몇 번을 깼는지 모릅니다. 목사님은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계속 기도하시더라고요. 다음날은 아예 짐을 옮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박목사님의 생활도 보고 마음도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장로안수를 받고 어떻게 교회를 섬기는 것인지 몰랐는데 문목사님이 계속해서 가르쳐주시고 지금은 박옥수 목사님도 김성훈 목사님 그리고 김재홍 목사님도 오셔서 가까이 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종들과 가까이 하면 ‘어떻게 저런 마음을 가질 수 있나?’하는 마음이 들어집니다. 가까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이고 목사님과 끝 날까지 복음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김재홍 목사님 말씀>

* 사도행전 21장 7,8절

하루는 지역장 목사들을 위해 박목사님께서 기도를 해주시는데 제 차례가 되어 ‘어떤 기도를 해주시나?’하고 들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되도록 은혜를 입혀주세요”하시는데 처음에는 내가 그 삶과 거리가 멀어 부담스러웠는데 나중에는 종이 나를 위해 기도하시면 ‘주님이 그런 사람으로 만드시겠다!’는 소망이 생기더라고요.

이번 잠실 집회 때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하는 말씀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목사로 걸맞게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빌립은 집사직분을 가졌지만 전도자라는 사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직분과 사명이 있는데 하나님께 받는 상급은 사명을 감당하는 것에 달려있지 직분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보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복음 전하는 것은 사명이지 은사는 아닙니다. 직분을 받아 성실히 행하고 사명인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쪽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직분을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도하는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복음 전하는 일은 생명이 관련된 일이기에 우리의 계산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삶에는 항상 부담이 따릅니다. 아람 진으로 향하는 문둥이들이 자신들을 살려줄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데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나 복음 전하는 데 있어서는 늘 이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매일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지 열매를 맺으라고 것이 아닙니다. 삶이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삶, 전도하는 삶 그리고 말씀을 대하는 삶이 중요한데 사단은 끊임없이 열매를 놓고 따지게 합니다. 평소에 전도한 사람이 많아 이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말씀 전할 대전도 집회가 필요해서 한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문둥이들이 받아줄지도 모르는데, 사도 바울은 결박당할 지도 모르는데 발을 내딛은 것처럼 우리를 배척하는 사람에게, 강퍅한 사람에게도 발을 내디뎌 전한다면 우리는 다만 주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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