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천]박희진목사 성경세미나 넷째날 소식
[남인천]박희진목사 성경세미나 넷째날 소식
  • 노재옥
  • 승인 2005.05.13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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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룻기 3장 1절 -18절

성경 이사야 43장에 보면 하나님이 야곱을 부르시면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여호와께서 그 두 말씀이 43장 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야곱이 똑같은 사람인데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삼촌 집으로 도망했다가 에서를 다시 만나려고 했을 때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짐승의 떼를 만들어 에서와 화해 하고자 했습니다. 얍복 강을 건너기 직전 홀로 남아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야곱의 마음에 쉼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과 야곱이 날이 새도록 씨름하면서 환도 뼈가 위골되어 저는 고통을 겪었지만 이스라엘이라는 약속의 이름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들려질 때마다 불안과 염려가 잠재워졌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야곱으로는 부족했기에, 하나님이 그 야곱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로 새롭게 바꾸었습니다. 사람이 볼 때 쓸모없는 절뚝발이지만 하나님이 일하기 가장 편한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야곱을 부르시면서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날부터 야곱은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야곱의 부족한 문제를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연약한 문제, 악한 문제, 야곱에게 불편한 문제, 크고 적은 모든 문제를 하나님 당신이 책임지시고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 속에 부딪히던지 내가 너를 지키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자기가 일을 했습니다. 삼촌의 양을 칠 때 얼룩지고 점박이 양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으로 애를 썼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얼룩지고 점 있는 것을 주고 야곱을 지켜 주었지만 야곱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야곱의 일생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일을 하였는데 다시는 자기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아갈 수 없는 자로 만들었습니다. 육체를 의지할 수 없는 무능한 자로 만드시고 그 야곱의 이름을 바꾸시면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고 내가 너를 구속했고 너는 내 것이다 말씀 하셨습니다.

이사야 43:13 과연 태초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야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룻기 3장에 나오미가 룻을 보아스에게 이끌어 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13절에 보아스는 룻이 말한 것을 그대로 행할 것을 약속합니다. 보아스가 표면적으로 타작마당에서 일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의 마음에서는 룻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아는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로 보냅니다. 룻의 마음에는 저주받을 것이 뻔했기에 보아스에게로 가고자 하는 마음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룻은 합법적으로도 보아스의 근방에도 갈수 없습니다. 룻이 나오미의 말에 이끌릴 때 마다 룻은 보아스의 곁에 머물게 됩니다. 보아스와 대화가 이루어지고 보아스와 교제가 이루어지고 마음을 받아 나오는 삶이 계속 이루어집니다. 그가 나오미의 말을 따라 발치이불을 덮고 누웠을 때 보아스가 소리를 지를 것인지 조용히 볼 것인지 룻의 마음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런데 룻이 그 길을 자기가 간다면 모든 것이 걱정이 되겠지만 나오미로 말미암아 룻의 삶이 인도 되어져 그 앞에 수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지만 그걸 다 넘게 하셨습니다.
결국 룻이 돌아왔을 때 표면적으로 보리 여섯 되를 가지고 돌아왔지만 그의 마음에는 보아스의 약속을 받아서 왔습니다.


지금까지 나오미가 문제를 짊어지고 갔는데 그날 밤에 보아스가 그 문제를 짊어지고 갑니다. 실제 룻은 보아스에게 속해 버렸습니다.
우리 주님은 누구든지 당신 앞에 나오는 자에게 은혜를 입혀 주길 원합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는 이런 벽이 놓여 있습니다. 도덕으로도, 인생의 삶의 경험으로도, 윤리로도, 법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벽을 우리는 넘어가야 합니다. 보아스의 마음을 읽고 있는 나오미가 그 벽을 넘게 하듯이 이시대의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는 당신의 종을 우리 가운데 세워주셨고 그 종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을 따라 갈 때에 생애 속에 큰 복을 입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속에 살아온 삶을 돌아보십시오.
종의 삶속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참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와 간증을 듣고 감동을 받지만 아직도 우리는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향하여, 종을 향하여, 말씀을 열지 못하는 마음은 어디서 온 마음입니까? 사단이 주는 죄악된 마음입니다.
룻이라는 여인을 위해 나오미는 일생을 희생합니다. 베들레헴에 돌아온 후부터 룻을 위해 모든 삶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3년 반 동안 사시면서 누굴 위해 사셨습니까?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당신을 버리고 떠나는 순간까지 주님은 나 같은 이 인생을 향하여 초점을 맞추셨고 그 삶을 위해 고난과 핍박과 매를 맞으시고 찢기시고 조롱을 받으면서 입을 열지 않고 그 길을 묵묵히 가셨습니다. 이 못난 인생을 위해서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온전한 은혜 베풀고자 하는 그 마음 하나 때문에 당신을 그렇게 희생하면서 가셨습니다. 그 마음을 받은 종들이 그 길을 걸어왔고 지금 우리 앞에 걷고 계십니다. 룻이 나오미 속의 그 세계를 보는 순간에 룻은 이해하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저분은 나를 위해서 사시는 분이구나 , 저분은 당신을 위해 사시는 분이 아니고 이 마음을 위해 사시는 분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앞에 복음을 위해 사시는 믿음의 종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교회가 있지만 교회가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이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교회가 있습니다.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 속에 있는 마음을 보는 순간에 리브가의 말이 이해가 안 가지만 따를 수 있었고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

세상의 부귀와 복을 쥐었을지라도 그것이 나를 복되게 안식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내 심령이 복되고 안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하나님 품안에 내가 머무는 것입니다.
룻에게 가장 복된 세계는 보아스의 품에 들어가 사랑을 입고 마음을 흘러 받는 위치입니다.
그 속에 들어 갈 때 안식을 얻는 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나오미는 잘 압니다.

여러분과 내가 복을 얻고 참된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을 나의 종은 잘 알고 계십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솜털처럼 품으시면서 복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리브가가 야곱을 몰아가듯이, 나오미가 룻을 위해 안식할 곳을 구하여 복된 곳으로 몰아가듯이 교회와 종들이 우리가 복을 받고 잘되는 세계로 이끌어 가고자 합니다.
[넷째날 오전말씀 중에서] (글:김귀순 기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07-06-13 18:55:10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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